|
2021. 06. 26
최근 자율주행 기술이 실제보다 많이 과장돼 있다거나 빨리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자율주행을 어느 수준, 어떤 영역부터 적용하기 시작할 것인가에 따라 논의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SF영화처럼, 어떤 복잡한 교통환경에서도 자동차가 알아서 집에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것을 생각한다면 곧 오기 어렵겠죠. 기술 완성도 문제뿐 아니라,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벌어질 기계 운전자와 사람 운전자 간의 조화, 법·사회·윤리적 책임과 판단 문제 등이 있을테니까요. 완벽한 자율주행은 기술 뿐 아니라 인간이 공유하는 가치를 코딩한다거나, 혹은 가치 판단을 컴퓨터가 알아서 해줘야 한다는 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겁니다. 결론은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이겠죠.
첫번째보다 중요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두번째입니다. 자율주행이 ‘된다 안된다’라고 지금 갑론을박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자율주행기술의 발전 상황이 난관에 봉착해 있다거나, 심지어 ‘사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텐데요. 그것이 일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대개는 무익한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기술 발전 과정에서 ‘안된다, 어렵다’ 혹은 ‘이런 어려운걸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 많냐. 너무 그럴 필요 없다’ 뭐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중에 기억되는 일은 없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겠죠. 그들은 어려운 과제에 대해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았으니까요.
처음 단계에선 모두 비슷해 보입니다. 결정적 포인트를 넘어설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모두 같은 수준에 있는 것은 아니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어보죠. 일이 쉽거나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거나 규모가 작은 단계에서는 대충 하는 사람이나,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이나, 스스로 문제를 고민하고 이리저리 좌충우돌·풀파워로 노력하는 사람이나 결과가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의 난도가 올라가고 영역이 커질수록 차이가 점점 커지게 마련이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 자율주행 개발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현재 성과에 만족하느냐에만 초점을 맞출게 아니라,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각각의 회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 ‘반도체의 마법사’로 불리는 짐 켈러는 인텔을 떠나 AI반도체 스타트업으로 옮긴 직후인 지난 2월 AI과학자 렉스 프리드먼의 팟캐스트에 출연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2.0 시대가 오고 있으며, 여기에 최적화된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 렉스 프리드먼
◇ 천재 반도체 설계자 짐 켈러의 행보와 테슬라 자율주행의 상관관계
천재 반도체 설계자 짐 켈러(Jim Keller·62)가 작년 6월 인텔을 떠났을 때 업계에선 그의 다음 행로에 주목했습니다. 테크놀로지 산업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업계 최고 해결사이자 혁신가였기 때문입니다. 회사 옮길 때마다 반도체 역사에 남을 걸작을 탄생시켰는데, 특히 애플과 테슬라의 첫 독자 반도체를 개발한 것은 지금도 전설이죠. 그가 개발한 첫 독자반도체를 기반으로 ‘애플 실리콘’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됐고요. 켈러의 업적을 기반으로 ‘테슬라 실리콘’ 역시 앞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켈러가 세계 최고의 CPU 회사를 버리고 간 곳은 놀랍게도 캐나다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런트
(Tenstorrent)’였습니다. 그는 “컴퓨터의 미래인 ‘소프트웨어 2.0’에 맞는 하드웨어(반도체)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는데요.
이 말의 깊은 의미에 대해 주목해봐야 합니다.
켈러는 세계최고의 반도체 개발 환경을 두루 겪으며 하고 싶은거 다 해봤을 겁니다. 돈이요? 이런 사람에게 더 이상의 돈은 동인(動因)이 되지 못합니다. 그는 단순히 칩 설계만 뛰어난게 아니라, 업계 흐름을 바꾸고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며, 그런 도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입니다. 간단히 말해 ‘수퍼 엔지니어’라고 할 수 있죠.
다시 말해 그는 ‘반도체 경력이 40년 됐고 이런 위대한 일을 했다’며 젊은이들 앞에서 거드름 피우거나 “니네들이 뭘 아니, 내가 40년간 해봤는데 말이야' 따위의 말을 하며 여생을 낭비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컴퓨터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예측하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인 반도체 설계에서 어떤 변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 늘 고민했을 겁니다.
그 결과, 아마도 켈러의 마지막 도전일 수도 있는, 바로 소프트웨어 2.0에 맞는 반도체 솔루션 개발에 뛰어들었을 수 있다는 거죠.
소프트웨어 2.0 시대에는 소프트웨어의 정의가 송두리째 바뀝니다. 기존 소프트웨어(1.0)는 연역법 기반이죠. 컴퓨터에 일을 시키려면 조건을 주고 그에 맞는 결과가 나오도록 인간이 논리구조(알고리즘)를 짜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특수한 언어(소프트웨어 랭귀지)를 사용해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는 작업(코딩)이 필수였지요. 매우 전문적이고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일입니다. 컴퓨터에 시키는 일이 복잡해질수록 기계적 작업을 수행할 인력과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해졌고, 이것이 시킬 수 있는 일의 한계로 다가왔습니다.
소프트웨어 2.0 시대엔 인간이 직접 코딩해 알고리즘을 짜지 않습니다. 대신 컴퓨터에 시키려는 일에 부합하는 데이터를 인공 신경망(뉴럴넷)에 투입해 인공신경망이 스스로 뛰어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도록 하는겁니다.
▲ 테슬라의 AI 개발총괄인 안드레이 카파시는 지난 22일 온라인으로 열린 CVPR 자율주행 워크숍에서 “테슬라가 소프트웨어 2.0 방식으로 주행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자체 수퍼컴을 보유하고 있는데 전세계 수퍼컴 가운데 5번째로 성능이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CVPR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두 거인' 짐 켈러와 안드레이 카파시, 2017년 테슬라에서 만나다
그럼 하드웨어 설계자인 짐 켈러는 어떻게 소프트웨어 2.0에 착안하게 됐을까요? 우선은 본인 역량이겠죠. 정말 뛰어난 하드웨어 설계자는 필연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생각할 것이고, 그런 그의 전문성이 예정된 길로 이끌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유추해 볼만한 게 있긴 한데요. 그가 애플에 갔다가 이후 위기에 빠진 친정 AMD로 복귀해 인텔에 반격할 회심의 반도체 아키텍처를 만들어주고, 정말 절정의 주가를 올리던 2016년, 갑자기 테슬라로 가서 자율주행 독자칩 설계를 맡았다는 것에는 어떤 사건들이 있었을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이듬해인 2017년, 현재까지 테슬라 자율주행 AI 총괄이자 업계의 ‘문제적 인물’인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가 테슬라에 들어오게 됩니다. 스탠포드대의 천재 AI 연구자였다가, AI언어모델 ‘GPT-3’를 개발해 유명해진 연구소 오픈AI를 거친 뒤, 일론 머스크의 낙점을 받고 테슬라로 영입됐죠.
그리고 그해 카파시가 처음 들고나온 용어가 소프트웨어 2.0이었습니다. ‘비(非)지도 학습’ 즉 인간이 인공신경망에 가이드라인을 세세히 줄 필요 없이 충분한 데이터만 넣어 충분한 컴퓨팅파워로 신경망을 학습시키면, 컴퓨터가 알아서 최고의 자율주행 AI에 근접해 갈 것이라는 것, 이 과정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이었죠.
물론 이런 개념 자체는 카파시가 처음 만든게 아니지만,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관점에서 기존 1.0과 2.0의 차이를 알기쉽게 설명하고, 문제 해결에 대한 명확한 지향점을 제시했다는 것,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 2.0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2017년 카파시를 스카우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겠죠. 카파시도 물론 뛰어나지만, 이 사람이 가진 능력과 비전의 확장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고 테슬라 AI 총괄 자리로 끌어올린 머스크가 실은 더 뛰어나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천리마를 곁에 두고도 이를 모르고, 진가를 모르기 때문에 여물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왜 이렇게 인재가 없냐’고 한탄만 하는 리더들이 세상에는 차고 넘치는데 말입니다.
2017년에는 모호했지만, 2021년 시점에서 많은 AI 전문가들이 소프트웨어 2.0 상업화의 최첨단에 있는 것이 테슬라의 자율주행 AI라고 말합니다. 소프트웨어 2.0 시대엔 전통적 소프트웨어 1.0으로는 불가능했던 일을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도로주행에서 발생하는 모든 조건을 코딩한 뒤 완벽한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때 소프트웨어 2.0 방식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정확히 얘기하면, 차량의 기본 구동은 소프트웨어 1.0 기반이되, 1.0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자율주행의 복잡성을 푸는 책무를 2.0이 맡는다는 개념입니다.
테슬라가 자율주행의 알고리즘을 다듬어나가는 방식은 정확히 소프트웨어 2.0에 해당합니다. 소프트웨어 2.0에서 최고의 알고리즘을 만들려면, 어떤 목적에 맞는 양질의 아주 많은 데이터, 극히 예외적 상황에 대한 다양한 사례, 거대한 데이터를 신경망에 집어넣어 학습시킬 초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한데요. AI 전문가들은 이런 것만 충족되면 컴퓨터 능력이 거의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고, 따라서 지금까지 인간이 풀 수 없었던 난제를 해결하는데 더 빨리 다가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네이버는 지난 5월 열린 ‘네이버 AI 나우’ 컨퍼런스에서 AI 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를 공개했다. 국내 최초의 초대규모 AI로, 50년치의 네이버 뉴스와 9년치 블로그 데이터를 인공신경망으로 학습시켰다. 전통적인 프로그래밍 대신 데이터로 직접 논리구조를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 2.0’을 채택했다. / 네이버
◇ 네이버 ‘하이퍼클로바’에서도 증명된 소프트웨어 2.0의 가능성
이것이 허황된게 아니라는건 최근 네이버가 개발한 AI 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를 개발하기 위해 50년치 뉴스와 9년치 네이버 블로그 데이터를 자체개발 신경망에 넣어 학습시켰고, 이를 위해 국내 최대·최고 성능의 슈퍼컴을 자체 구축해 사용했습니다.
개발과정이 카파시가 말한 소프트웨어 2.0 방식과 유사합니다. 아주 많은 한국어 데이터를 초고성능 컴퓨터를 통해 신경망학습을 시킨 결과, 개발자들도 예상치 못한 수준, 즉 인간의 감정에 대응해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고 콘텐츠의 수정·창작까지 가능한 AI를 탄생시킨 것이죠. 게다가 하이퍼클로바가 더 놀라운 점은 일을 처리하는 속도, 스스로 개선해 나가는 속도입니다. 개발자들에 따르면, 하이퍼클로바는 기존 AI방법론으로는 몇 달 걸릴 일을 몇 분만에 해결해 개발자들마저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즉 인간이 알고리즘을 짜는게 아니기 때문에, 개발자들 스스로도 예측을 못할 수 있는 거죠.
이를 다시 테슬라에 대입해 보면, 그들이 하고 있는 일과 그 일의 지향점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테슬라는 전세계에 깔린 100만대 이상의 자사 차량으로부터 실제주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죠. 차량 바깥엔 8개의 카메라가 달려 있는데, 이를 통해 수집된 정밀한 영상 정보가 테슬라가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발전시키는데 사용됩니다. 테슬라에 따르면 이렇게 수집된 차량 데이터의 양은 48억km, 즉 지구를 12만 바퀴 달린 양에 달합니다.
작년 전세계에서 자율주행 ‘테스트’ 거리가 가장 길었던 회사는 GM과 구글의 자율주행전문회사인 크루즈·웨이모였는데요. 각각 124만km, 101만km였습니다. 수집 데이터량의 차이가 드러나는 이유는 테슬라와 GM·구글 등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테슬라가 이미 판매된 차량을 통해 데이터를 긁어모으고 있는 반면, GM·구글은 별도의 시험차량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테슬라만큼 대량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또 모으면 모을수록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입니다.
반대로 테슬라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시험차량’을 팔고, 테슬라를 산 사람들은 주행데이터를 테슬라에 실시간 무료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 테슬라는 현 시점에서도 가장 양질이면서 가장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있고, 판매 증가에 따라 데이터의 양과 질이 계속 올라가고 있지만, 데이터 수집에 드는 추가 비용은 거의 없는 상황인거죠.
그래서 테슬라는 돈 안들이고 개발하고 있는거냐고 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죠. 돈을 쏟아붓고 있는 곳이 바로 수퍼컴입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정보를 신경망에서 학습하려면 초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한데요. 카파시는 지난 22일 한 자율주행 워크숍 발표에서 “테슬라가 데이터 학습에 세계에서 5번째로 강력한 수퍼컴을 사용하고 있다”고 공개했습니다.
자율주행의 완전한 도입은 기술뿐 아니라 법적·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논외로 치겠습니다. 다만 테슬라의 최신 자율주행 베타버전을 탑재한 차량을 타고 샌프란시스코 시내 등을 주행하는 유튜버들 영상을 보면, 외부 카메라를 통해 얻은 시각 정보만으로 차량이 스스로 추론해 완성도 높은 자율주행을 수행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구글·GM을 포함해 일반적인 자율주행차들이 초정밀지도·레이더·라이더(빛으로 주변을 탐지하는 장치) 등을 총동원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테슬라는 인간이 다른 위치·거리 측정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두 눈의 감각을 활용해 운전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을 구현하는데, 여기에서 핵심이 바로 소프트웨어 2.0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는 자체 자율주행 알고리즘인 것이죠. 이 방식이 무서운 것은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더 높은 성능의 컴퓨터에 넣어 신경망 학습을 할수록, 알고리즘의 판단이 점점 더 영리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프로그램을 고쳐 개선해나가는 소프트웨어 1.0 방식으로는 대응이 거의 불가능하겠죠. 학습할 데이터량은 실시간으로 급증하고, 반영해야 할 예외 상황도 계속 새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 카파시와 켈러의 만남의 결과물이 ‘도조’?
그럼 2017년 짐 켈러와 안드레이 카파시의 역사적 만남이 어떻게 테슬라 자율주행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테슬라가 소프트웨어 2.0으로 자율주행 과제를 풀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방식엔 아주아주 많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데이터 크기가 커질수록 학습 인프라, 즉 데이터센터의 인프라도 아주 많이 필요해지겠죠. 앞서 켈러가 “소프트웨어 2.0에 최적화된 하드웨어(반도체) 솔루션을 개발하겠다”고 한 것은 소프트웨어의 패러다임 전환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하드웨어(반도체)의 구조에서도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켈러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2.0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데이터 사이언스로 치환하려는 생각’입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소프트웨어 2.0은 컴퓨팅의 장기적 이노베이션을 이룰 큰 기회”라면서 “기회를 잡으려면 컴퓨터와 로우 레벨 소프트웨어를 포괄적으로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지금의 반도체는 소프트웨어 1.0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2.0 시대엔 데이터 신경망 학습에서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설계의 반도체, 바뀐 소프트웨어들과 반도체가 더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죠.
여기서 한가지 구분하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테슬라 차량에 들어간 테슬라 독자칩, 즉 ‘추론(인퍼런싱)’을 위한 칩의 능력은 이미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반면 테슬라가 엄청난 데이터를 계속 ‘학습(러닝)’시키는데 필요한 수퍼컴의 능력이 역부족이라는 거죠.
정리해 말씀드리면, 이미 테슬라는 차량에 탑재하는 추론용 칩은 독자화했고 이미 성능도 나쁘지 않거나 조만간 충분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도 켈러가 말한대로 소프트웨어 2.0 시대에 최적화한 칩이 나온다면, 더 적은 전력으로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구현할 수도 있겠지만요. 적어도 개별 차량에 탑재된 추론용 칩의 성능이 턱없이 부족해 보이진 않습니다.
문제는 현재 맹렬하게 진행중인 작업, 즉 데이터를 넣어 신경망 학습을 시키는데 필요한 수퍼컴입니다. 아직까지는 수퍼빅데이터를 충분히 학습시켜 궁극의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탄생시킬만큼 뛰어나지 않다는게 문제입니다. 카파시가 지난 22일 “테슬라가 세계에서 5번째로 강력한 수퍼컴을 쓰고 있다”고 말한 것은 그만큼 ‘데이터 학습에 어마어마한 컴퓨팅파워가 필요하고, 이 부분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카파시는 “현재는 데이터와 연산의 물리적 한계 아래에서 데이터 신경망 학습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컴퓨팅 자원을 얻게 되고 모든 하드웨어가 신경망에 특화될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AI의 발달이 믿을수 없을 정도로 빨라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모든 프로세서들은 신경망에 특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AI 발전에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거죠. AI를 도입할 분야의 데이터 크기가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더 뛰어난 두뇌능력(고성능 컴퓨터)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즉 소프트웨어 2.0을 제대로 구현해가면서 이에 최적화된 컴퓨터 하드웨어를 만들어내는 두가지 일이 맞물려 돌아갈 것이고, 여기에서 앞으로 엄청난 기회가 있다는 것이 카파시·켈러 등의 예언인 것이죠.
이제 오늘 얘기의 마지막, 테슬라의 자율주행 데이터 학습용 수퍼컴의 끝판왕 ‘도조(Dojo·道場)’를 설명 드려 보겠습니다. 카파시는 테슬라가 쓰고 있는 세계에서 5번째로 강력한 수퍼컴이 ‘도조의 전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즉 이건 도조가 아니며, 다음 단계의 수퍼컴이 도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렇다면 생각해 봅니다. 세계에서 5번째로 강력한 수퍼컴도 도조가 아니라면, 도조는 도대체 어떤 성능을 갖는다는 얘기일까요?
저는 아직 도조의 실체를 모릅니다만, 그의 얘기로 미루어 보건대 소프트웨어 2.0 시대, 즉 수퍼빅데이터를 충분히 학습시켜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운전AI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초강력 컴퓨터, 특히 신경망학습에 특화된 컴퓨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도 이것이 짐 켈러가 말하는 소프트웨어 2.0에 맞는 새로운 하드웨어 솔루션과도 연결돼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소프트웨어 2.0을 위한 하드웨어 혁신과 맞물렸을 때, 도조의 능력이 계속해서 혁신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도조 개발에 켈러가 실제로 관여하고 있는지, 혹은 어느정도 관여하는지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아마 2017년 켈러와 카파시가 테슬라에서 역사적 조우를 한 이후 많은 일이 있었을 겁니다.
◇ 일론 머스크 “한 달 뒤 AI 데이 열겠다” 예고
일론 머스크는 지난 21일 트위터에서 “아마도 한달쯤 뒤 ‘AI데이’를 열 예정”이라고 썼습니다. 테슬라의 AI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진척 상황이나 트레이닝 등에 대해서 소개할 예정으로, 목적은 인재의 채용이라고 합니다.
머스크는 올해 1월 결산 발표에서 “사람의 운전보다 신뢰성이 높은 자율주행차가 올해 안에 실현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과장광고 측면도 분명 있어 보입니다. 테슬라는 지난 5월 캘리포니아주 당국에 “2021년말까지는 완전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규제당국은 테슬라가 주행지원 시스템을 팔면서 완전한 자율주행이 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 것의 규제 위반 여부를 조사중인데, 이와 관련해 주당국에 보고한 내용입니다.
현재 테슬라가 팔고 있는 FSD(풀셀프드라이빙)라는 소프트웨어는 이름과 달리 주행지원 시스템에 불과합니다. 이름부터 과장광고 소지가 다분하고, 이에 대해 비난받을 소지는 여전히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테슬라의 주행지원 시스템이, 현존하는 주행지원 시스템 중에 성능 면에서 돋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계속 시스템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것도 사실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절대 주행지원 수준에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겠지요.
테슬라 혹은 다른 여러 업체들이 하고 있는 자율주행 연구가 돈낭비·헛수고라는 취지로 얘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돈과 수고를 들이면서도 당장의 결과가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 수고는 결국 결과로 서서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테슬라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그럴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머스크가 한 달쯤 뒤로 예고한 ‘AI데이’에서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이에 대해 비판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원석 /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