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 모사, 추사 관련 질문입니다.
도사, 모사, 추사의 방식은 어진에 쓰이는 방식입니다. 임금이 생존시 그리는 경우 도사에 해당합니다. 태조, 태종, 세종, 세조의 어진이 이에 해당합니다. 덕종은 일찍 돌아가셨기에 추사라는 양식이 생겼습니다. 모사는 어진이 훼손된 경우 다시 그리는데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어진, 도장, 의복 등을 관리하는 기관이 종친부였는데 여기서 임금 초상의 초본부터 모든 것을 수합 관리했다합니다. 이 중 훼손되거나 새로이 진전할 경우 추사가 이루어지는데 상상화라 보면됩니다. 그래도 사실성을 부과하고자 하는 방식이죠. 공신의 초상화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됩니다. 그러나 조선 초, 중기까지는 임금이 도화서의 화원을 보내 초상제작이 진행되기에 도사이고, 후기에 이르러 보통 사당에 있거나 관리가 안돼, 후손들이 훼손된 진적을 모사(훼손된 영정)+추사형식으로 제작합니다.
근 현대에 들어 도사와 추사는 일반화됩니다. 도사는 사진의 도움을 받아요. 그런데 조각의 경우 입체를 다루니 깊이가 사진만으로는 가늠이 안돼죠. 흉상과 동상의 경우 눈의 깊이가 가장 문제가되는데, 이럴 경우 추사로 관련된 분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제작합니다.
2006년 민통선예술제에 참여하면서 설치미술가 이승택 선생님, 관련 작가 십여분과 중국 남경에 체류했을 때 일화입니다. 이승택 샘이 전업 작가로 수입이 들어 오기 전까지 동상 제작으로 영위하였다 하시며 사진 만으로는 측면을 알 수 없는데 그중 가장 큰 난관이 눈의 깊이랍니다. 측면 사진이 있다면야 도움을 받을 터인데 그 때나 지금이나 누가 측면만을 사진으로 남겨 놓나요. 이럴 경우 가족들의 추사가 가장 큰 도움이 된다 하시며 소조시 일부러 눈을 예상보다 안쪽으로 만드는데 수정 시 앞으로 빼는 것이 쉽기 때문이랍니다. 의뢰인은 육여사 아드님과 따님, 눈이 앞으로 좀더 나와야 된단 말에 헤라를 관자놀이에 푹 집어 넣어 앞으로 미니 다들 기겁을 했다죠. 작가의 덕목에 배짱도 추가랍니다.
몸무게가 너무 가벼워 신을 사면 10년돼도 밑창이 닳지 않는다는 샘. 이제 여든을 훨 넘기셨을텐데 문득 생각이 나네요.
잘 지내시지요?
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