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느끼는 평등
우리는 작년에 맞이한 봄보다 올해 맞이하는 봄이 보다 행복하길 바라지만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영주권자인 컬럼비아대 한인 여학생을 추방한다는 뉴스에 우리가 놀란 이유는 미국에 사는 영주권자는 물론 시민권자의 자유권과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나도 그리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해서 한인 사회는 행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사건은 당장 추방이 아닌 재판 중이다. 정의로운 한인 사회라면 추방은 어림도 없고, 정부를 상대로 손해 배상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스트레스는 당사자인 여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민온 한인 모두 받았으니..
불교에서 자유와 평등은 "천상천하에 내가 가장 뛰어났다. 고통에 쌓인 중생들을 내가 행복하게 하리라" 하는 부처님 탄생게에서 잘 보여준다.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자유가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석가모니에게 너는 노비 신분이므로 수행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억압했다면 그가 부처님이 될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이었으리라.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행복해야하는 이유는 그들은 나와 차별이 없는 평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는 계급과 신분이 우선하는 사회였기에
그런 풍토를 비판하며 석가는 말씀하셨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 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본인이 행한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라고.
수천 년 역사시대에서 근래에 이르러 급속적인 문화 발전이 가능한 것은 과거에는 신분제에 갖혀 소수가 누렸던 자유를 이제는 누구든 자기의 자유를 맘대로 펼칠 수 있는 구조 덕분이었다. 석가모니는 당시 신분 사회에서 출가라는 방법으로 탈출하여 자유로히 수행을 하여 부처님이 되었지만 그의 의지대로 모든 중생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 시대는 모든 인간에게 자유권과 평등권이 보장하는 사회가 아니었으므로.
이렇듯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간 개인의 자유와 만민 평등 사상을 2600여 년 전에 선포하고 불교라 하여 세상에 전했으나, 그때 이미 굳건히 자리잡은 '왕이 곧 국가'라는 불평등한 신분 사회는 만민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제가 나오기 전까지 현실이 아닌 이상 세계로 머물고 있어야만 했다.
이제 21세기는 민주화 시대라 하여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는 누구든 자유와 평등을 자신 있게 주장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교묘한 장치 속에 여전히 사회불평등이 진행되고 있다. 하여 불교는 그런 민주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시간이 왔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보살은 아닐 수 없다. 보살의 뜻은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졌지만, 보살이란 일체 중생을 행복토록 하여 자신은 마지막에 행복해지겠다는 원을 세운 불자로 우리 불교가 가야 할 모습이라 하겠다.
하지만 삼국 시대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 천 칠백 여년이란 긴 시간 동안 왕이 주인이고, 국민은 종 취급하는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불교의 본래 의미는 퇴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일체 중생을 건지겠습니다' 하는 사홍서원의 첫 발원을 하지만.. 실천은 미약하고 말로만 하는 선에 머무는 게 마치 불교인 것처럼 고착화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유와 평등을 마음껏 주장하는 민주 시대가 되었다.
이런 민주제 시대라면 오래도록 덮여있던 보살의 본래 의미를 살려내 바르게 실천하는 불교로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며칠 전 만난 스님은 말한다.
자연의 바람을 느끼세요. 바람은 탐욕이나 걱정,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내가 스트레스에 가득 차 있으면서 이웃의 스트레스를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나를 탐욕으로부터 멀리하세요. 바람을 보십시요.
그런데 보살의 길은 고락중도에서 보듯 쾌락의 길이 아니요, 고행의 길이 아닌 중도를 실천하는 길이다.
쾌락이나 고행을 하는 이유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행동임을 안다면.. 중도란 나가 아닌 남의 행복을 우선하는 이타적 실천이 아닐 수없다. 하여 남을 우선하면 할수록 나는 작아져 그 끝은 내가 사라지니 더불어 남도 사라지는 무아가 된다.
주위를 보면 한국을 포함해 거의 모든 나라가 권력을 잡고 있는 정치인들의 횡포로 그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보살이라면 도처에서 고통스러운 겪고 있는 이웃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권력자들의 횡포를 막는 일에 앞장서야 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살은 안으로 깨침을 구하고 밖으로 중생을 행복하게 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후자를 우선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지..
유흥식 추기경님은 "정의는 중립이 아니다" 라 하셨듯이 보살행은 중립이 아닌 오로지 정의에 서서 행하는 것이라고..
부처님이 오신 5월의 봄바람을 느끼며 드는 생각이다.().
첫댓글 긴 글…
장문이지만 누구든 한번쯤 읽어본다면 모두 공감하지
싶네요.
모자르는 인간들까지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