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면서 우는 게, 뭐 어때서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가 <동백꽃 필 무렵>, <나의 아저씨>, <응답하라 1988> 등 드라마 속 명대사의 의미를 파헤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라는 에세이를 펴냈습니다.(2020.8)
드라마 속 대사는 처음에는 단순한 대본에 불과했으나 어느 한 순간 대중들의 공감을 받으며 명대사로 재탄생합니다. 정덕현 평론가가 대중의 공감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50대 남자가 드라마를 보면서 운다고 손가락질? 이제는 달라졌다. 우는 건 굉장히 귀한 경험이다. 내 세계뿐 아니라 타인의 세계에 다가가서 공감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랑, 만약에, 나랑 결혼하면 이거 평생 먹을 수 있는데… 내가 이 국밥 그릇처럼 평생 식지 않고 명희 씨 사랑해 줄 수 있는데… 그래서 말인데요, 제 옆에 좀 더 가까이 오래 있지 않으시겠습니까? 평생 명희 씨만 생각하고, 명희 씨만 사랑하고, 명희 씨만 걱정하면서 살겠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요. 명희 씨 주변에 저 보다 괜찮은 놈 없으시면요… 후… 저랑…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국밥 그릇처럼 투박한 프로포즈가 아름답던 이 장면은 KBS-TV 주말드라마 <사랑을 믿어요>의 한 대목입니다. 국밥집 아저씨 철수(조진웅)가 사랑하는 여인 명희(한채아)에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한 명대사입니다. 명희는 자신을 사랑하는 철수의 진심어린 고백에 공감하며 그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드라마 속 대사가 공감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배우와 시청자 간 감정이입이 됨으로써 친밀감이 형성되고, 그로 인해 격려와 위로를 받을 수 잇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를 보던 50대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슬픔에 진짜로 공감한다는 의미입니다.
편안한 주말 오후에 한 부부가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듬직한 모습의 애인과 함께 근사한 초밥 집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비쳐졌습니다. 아내가 군침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와, 저 초밥 정말 맛있겠다!” 하지만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뚫어져라 TV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저녁 밥상머리에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아파트상가 1층에 초밥집이 오픈했는데 무척 맛있다고들 하네.”, 암편이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개업이라니, 아마 그 식당 얼마 못가서 망하겠네. 망하겠어!”
어느 날 오후 함께 퇴근하던 그 부부는 아파트상가 1층의 초밥집 앞을 지나게 됐습니다. 그때 아내가 말했습니다. “초저녁인데도 초밥집 안에 손님들이 많네.”, 그러자 남편이 곧바로 응수했습니다. “저거 다 개업 빨이야, 절대로 얼마못가!”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따로 없습니다. 아내가 ‘초밥’을 연신 강조했던 이유는 우리도 한 번 초밥 좀 먹어보자는 애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는 엉뚱한 말만 연신 내뱉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애정 결핍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공감 결핍 때문입니다.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여 주기만 해도 마음을 얻습니다.
세상을 비틀어보는 75가지 질문
Chapter 4. 더 부드럽게, 더 강하게, 마치 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