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5. 11.
(문제) 여자축구에서, 필드 플레이어가 가슴으로 오는 볼을 손으로 막으면 반칙일까, 아닐까?
(답) 물론 핸드볼 반칙이다. 만일 자기 페널티에어리어 내에서 수비수가 이 같은 반칙을 범하면, 상대방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진다.
어리석은 질문이다. 웬만한 축구팬이라면 틀린 답을 내놓을 리가 없다.
그러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렇지만도 않다. 1970년대 중반 이 땅에선, 반칙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여자축구가 첫선을 보인 그 시절,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고려한 로컬 룰이었다. 이 특별 규칙은 여자축구가 뿌리를 내리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끝에 도태되며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반세기가 흐른 요즘엔,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이야기”라고 웃어넘길 법하다. 이 기간에, FIFA(국제축구연맹) 세계 랭킹이 17위(3월 25일 기준)까지 치솟았을 만큼 크나큰 발전을 이룬 한국 여자축구다.
1990년 9월 6일 A매치 데뷔전에서, 일본에 당한 참패(1-13)는 이제 여명기의 추억거리일 뿐이다. 1990 베이징(北京)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을 급조하면서 10여 년 만에 여자축구를 다시 시작한 우리로선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던 일본에 당한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한국 초강세… 1·2위 비롯해 4개 팀 톱 10 반열에 올라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국 여자축구는 비약적 성장을 거듭했다. 이제는 국제 무대에서도 더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제법 내로라하는 축에 들어갈 정도다. 2010 FIFA 트리니다드 토바고 U-17 여자 월드컵에선, 일본을 꺾고 우승 축배를 들었을 만큼 세계 여자축구계의 중심권으로 들어섰다.
이 같은 한국 여자축구의 뚜렷한 상승세를 읽을 수 있는 자료가 발표됐다.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가 지난 9일(현지 일자) 내놓은 대륙연맹별 여자 클럽 랭킹 AFC(아시아축구연맹) 톱 10에서, 한국은 초강세를 보였다. 한국은 1·2위를 비롯해 4개 팀이 1~10위 반열에 올랐다(표 참조).
올 4월 30일을 기준으로 삼은 이번 순위는 지난 1년간 국제·국내 대회를 망라해 획득한 점수를 바탕으로 했다. 1991년 이후 전 세계 축구 클럽 랭킹을 발표해 온 IFFHS의 쌓인 연륜이 토대가 된 자료여서, 그만큼 신뢰성이 높다.
한국 여자축구의 양강인 경주 한수원과 인천 현대제철은 1·2위를 휩쓸었다. 129점을 획득한 경주 한수원이 126점을 얻은 인천 현대제철의 거센 추격을 따돌리고 선두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일본의 우라와 레즈(102점)를 비교적 큰 차로 제치고 석권한 1·2위여서, 더욱 한국 여자축구의 힘찬 도약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1989년 여자축구 리그가 출범한 일본은 현재 1~3부리그를 운영할 만치 튼실한 뿌리를 내렸다. 1부리그인 나데시코리그 디비전 1에만 10개 팀이 자리하고 있다. 2부리그인 나데시코리그 디비전 2에 10개 팀이, 3부리그인 챌린지리그에 동·서부지역 각 6개 팀씩 총 12개 팀이 편성됐을 정도로 활성화한 상태다.
반면, 2009년 첫 잔을 띄운 한국 WK리그는 세미 프로패셔널 형태로서 현재 8개 팀이 자웅을 겨루고 있다. 이같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건을 딛고 일본에 앞섰다는 데에서도 한국 여자축구의 비약이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은 가장 많은 톱 10 클럽을 배출했다. 화천 KSPO가 7위(81점)를, 수원 FC (위민)가 9위(78점)에 각각 오르며 한국의 절대적 강세를 거들었다.
한국에 이어 중국의 두 팀이 10위 안에 들었다. 우한(武漢) 장한(江漢)대학이 4위(99점)에, 상하이(上海) 성리가 5위(84점)에 각각 자리했다. 이 밖에 일본, 이란, 요르단, 호주가 제각각 한 팀씩을 10권 안에 올려놓았다.
한국이 FIFA 여자 세계 랭킹에서도 일본, 중국, 호주에 뒤진다는 점도 한국 여자축구 클럽의 활약상을 분명히 느끼게 한다. 한국은 17위(AFC 5위)로, 호주(12위·〃 2위), 일본(13위·〃 3위), 중국(16위·〃 4위)에 뒤진다.
각종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 여성은 강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그런 특징이 다시 한번 뚜렷하게 나타난 이번 IFFHS 집계·발표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O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