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더워도 너무 덥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올여름은 덥다는 말이 입에 붙은 것 같다. 나는 챙이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어르신 댁으로 출근한다. 현관문에 들어서면 내 얼굴은 벌써 땀범벅으로 화장한 얼굴이 얼룩덜룩하다. 신발장 안쪽에 붙여진 ‘스마트 장기요양’ 카드에 휴대전화를 대고 로그인한다. 아무개 어르신의 이름이 나오고 세 시간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년 나는 십여 년 넘게 근무했던 아동복지 교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졸지에 백수가 되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밤에는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았다. 용어는 생소하지만, 교수님들의 강의는 어둠 속에 핀 불꽃처럼 뜨거웠다.
어둠이 내린 육거리에서 할머니 한 분이 열무를 팔고 있었다. 나는 천 원 빼주신다는 열무를 제값인 삼천 원을 드리고 샀다. 집에 들어와 흩어진 열무를 삶으려고 물을 끓였다. 끓는 물에 열무를 넣었는데 초록 잎에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까만 껍데기가 보였다. 순간 깜짝 놀라서 까만 껍데기를 건져내어 찬물에 담갔다. 달팽이였다. 살려고 열무 잎에 붙어 있던 달팽이를 끓는 물에 넣었으니. 혹여 화상을 입지 않았을까 걱정되어 하루 동안 찬물에 담가두었다.
다음 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달팽이에게 갔다. 다행히 살아있었다. 달팽이는 머리를 내밀고 두 쌍의 더듬이를 좌우로 움직였다. 그날부터 달팽이는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어르신 댁에 출근한 지 오 개월째다. 나는 어르신 호칭 대신 친근감 있는 어머니라고 불러드렸다. 어르신도 좋아했다. 어르신은 슬하에 외동아들 한 명을 두었다. 결혼한 아들이 손주 두 명을 두었다고 자랑을 할 때는 어르신 얼굴이 함박꽃처럼 환했다. 어르신은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산악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내리며 약 빨랐던 몸을 세월이 데리고 갔다고 하소연했다. 집에만 계시니 말수도 줄어들었다. 어르신은 주말에 아드님과 며느리가 다녀갔던 이야기를 할 때는 눈이 작아지도록 웃었다. 하지만 고개를 바닥에 떨구는 아침은 조용했던 주말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내가 방문하는 날이면 어르신 댁 현관문은 반쯤 열려 있다. 반쯤 열린 현관문에 들어설 때는 ‘똑똑’ 두드리고 “어머니 안녕하세요?”라고 큰 목소리로 인사해야 한다.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면 어르신은 알아듣지 못해 대답이 없다.
“어젯밤에 잘 주무셨어요?”라고 여쭤보면 “못 잤어. 죽은 사람들이 을매나 꿈속에서 나를 괴롭히는지… 내가 몽둥이로 마구 휘두르다가 깼는걸… 아침에 인나보면 물병이 쏟아져 있어. 아휴! 맨날 밤마다 귀신들이랑 싸워. 얼른 커피나 타유.” 나는 어르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찻물을 끓인다.
어르신하고 같이 있으면 집에 있는 달팽이가 생각난다. 방바닥에 붙은 엉덩이를 끌어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이 흡사 달팽이를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달팽이는 발이 따로 없다. 복족류라서 배를 발처럼 밀면서 자리를 옮겨 다닌다. 어르신도 달팽이처럼 한 번 움직이려면 한참 걸린다. 병원에 진료하러 갈 때는 유모차를 끌고 어린아이처럼 손을 붙잡고도 뒤뚱뒤뚱하니 가끔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르신이 정말 산악회 회원으로 등산하러 다녔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어르신과 외출할 때면 당신도 한창때는 날다람쥐 같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렇다. 젊어서는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고 자식 출가시키고 나니 어느새 노인이 되었다. 이제야 남편과 자식 걱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무릎이 안 좋은 어르신은 앉았다 일어설 때도 한참 걸린다. 그러니 내가 가지 않으면 종일 방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대낮에는 껍데기에 들어가 있는 달팽이처럼 말이다. 달팽이가 까만점으로 배설하고 다닐 때, 어르신은 변비로 오랫동안 화장실에 앉아계신다. 며칠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장운동을 보면 검정 매직으로 숫자 큰 달력 위에 체크한다. “오늘은 수월하게 나와서 좋아유.” 하시며 배를 살살 문지른다.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면서 어르신들을 만나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친정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는 거동이 불편해 혼자 나다니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달팽이처럼 늘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혹시라도 인기척이 날까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하셨다.
어르신을 돌봐드리고 오면서 달팽이가 먹을 청상추와 꽃상추를 샀다. 청상추와 꽃상추 위에 달팽이를 올려놓았다. 나선형 껍데기로 들어가 나오지 않던 달팽이 머리가 나왔다. 상추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달팽이는 두 쌍의 더듬이로 두리번거리다가 점액으로 미끄르르 움직였다.
신기했다. 청상추는 구멍이 뽕뽕 뚫렸고 꽃상추는 그대로 있다. 달팽이는 청상추만 좋아한다는 걸 알고부터는 청상추만 사서 달팽이 먹이를 주었다. 새끼손톱만 했던 달팽이가 엄지손톱 크기로 컸다. 달팽이가 사는 집도 까맣게 점이 늘어났다. 달팽이가 크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했다.
제법 잘 자란다고 여기던 달팽이가 장마철이 시작되었을 때 목이 가늘어졌다. 마음이 쓰여 수시로 들여다보는데 이상했다. 나는 나무젓가락으로 달팽이의 나선형 껍데기를 집었다. 물컹 들어갔다. 덜컥 겁이 났다. 어디가 아픈가. 내가 청상추만 주어서 입맛을 잃었나. 그러고 보니 달팽이 등껍질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우리 눈에는 그저 달팽이 집으로 보이지만, 등껍질 속에는 간과 위, 심장 등 달팽이의 중요한 장기들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분명 어딘가 탈이 난 것 같았다.
화상 입은 달팽이를 잘 돌봐주겠다고 한 것이 내 욕심이었던 것 같다. 달팽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자연으로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청상추에 앉은 달팽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화단에 있는 비비추 잎 위에 올려놓았다. 풀숲에서 마음껏 맛있는 것을 찾아 먹고 쪼그라든 달팽이의 집이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달팽이를 놓아주면서 내일은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어르신이 좋아하는 호박 부추전을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긴 장마로 눅눅해진 마음과 무릎 통증으로 입맛까지 잃은 어르신이 호박전을 드시고 기운을 내셨으면 좋겠다. 비 온 뒤에 뿌리가 더 깊어지듯 달팽이도 어르신도 행복해지기를 비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은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먼저 수업에 수상소식 들었는데 축하드립니다.^^!
글이 참 편안하고 따뜻합니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순수히 생각하는 시간이었어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쓰시리라 기대 됩니다^^!
자양선생님, 요양보호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글이죠.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