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강의①]
<1> 시조(時調)알기
☯ 시조(時調)란 무엇인가?
시조는 신라의 향가[처용가] 백제 가요[정읍사], 고려 속요[만전춘별사]의 맥을 이어 고려 말에 탄생한 전통정형시이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가사문학[사미인곡]과 쌍벽을 이루며 민족의 얼과 숨결이 담긴 고유문학으로 병진(竝進) 발전하였다. 19세기까지는 창(唱)의 가사로 존재하다가 그 후 분화하여 현대화 과정을 거치며 시조창과 시조시의 형태로 분화(分化)한 이 시조(時調)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슬기가 배어 녹아 있는 우리 전통 문학작품으로 자수 가락을 가진 정형시이며, 국민 모두가 즐긴 민족(民族) 시가(詩歌)이다. 정형시로는 중국의 한시(漢詩5, 7 절구, 율시), 서양의 소네트(14행) 일본의 하이쿠(3행 5, 7, 5)가 있으나 이들은 모두 율격상의 제약이 철저하다. 하지만 시조는 기본 틀에 약간의 넘나듦(1-2자)이 허용되는 여유의 문학이다.
☯ 시조 명칭의 유래
‘시조’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이에 대하여는 확실하지 않지만 영조 때 시인 신광수(申光洙)가 그의 문집 ≪石北集 關西樂府15≫에서“一般時調排長短來 自長安李世春)”라고 한 구절에 보이는 것이 문헌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뒤‘時調’라는 명칭이 종종 보이는데, 정조 때의 시인 이학규(李學逵)가 쓴 시 〈감사 感事〉24장 가운데 “그 누가 꽃피는 달밤을 애달프다 하는고. 시조가 바로 슬픈 회포를 불러주네(誰憐花月夜 時調正悽懷).”라는 구절이 나오고, 그 주석으로 “시조란 또한 시절가(時節歌)라고도 부르며 대개 항간의 속된 말로 긴 소리로 이를 노래한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시조’라는 명칭은 조선왕조 영조 때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시조’라는 명칭의 원뜻은 시절가조(時節歌調),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뜻이었으므로, 엄격히 말하면 시조는 문학 부류의 명칭이라기보다는 음악곡조의 명칭이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있어서도 그 명칭의 사용은 통일되지 않아서, 단가(短歌)·시여(詩餘)·신번(新潼)·장단가(長短歌)·신조(新調) 등의 명칭이 시조라는 명칭과 함께 두루 쓰였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서구문학의 영향을 입어 과거에 없었던 문학부류, 즉 창가(唱歌)·신체시(新體詩)·자유시(自由詩)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들과 이 시형을 구분하기 위하여 음악곡조의 명칭인 시조(時調)를 우리 고유문학 장르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시조엔 창(唱)으로서의 시조와 시(詩)로서의 시조가 존재하고 있다.
☯ 현대시조와 현대시의 변별성
현대시조는 그 내적 구조상 최소한의 의미단위가 이루어지는 구수율(句數律)을 지니고 있으며, 전체 12소절의 음율(音律)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초장, 중장, 종장 속에 펼쳐지는 4단의 의미구조를 가지고 있다. 3장의 짧은 내용 속에 현대시 1편의 의미구조를 담아 낼 수 있는 내적 틀을 갖추고 있는 것이 시조이다.
시조의 3장은 현대시의 3행과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이며, 한 행을 이루는 2구의 성격도 현대시에서의 한 행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시조는 장과 장 사이, 구와 구 사이의 내적 의미의 연결성이 현대시에 비해 매우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황진이의 시조에서 보면 기승전결의 시적 논리가 한 편의 시조 속에서 완벽하게 구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종장에서 현대시의 전환과 결말을 포괄하는 의미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은 시조의 특장으로써 그 미학적 특성을 잘 살려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를 도식화하면 초장(도입부와 전개부)의 A, 중장(도입부와 전개부)의 B, 종장(전환과 마무리)의 C로 크게 3등분된다. 또한 A와 B가 연속적일 때보다는 A와 B가 변증법적인 대립형태를 취할 때 C의 기능이 증폭된다. 특히 C에서 전환과 마무리를 동시에 담당함으로써 3장의 시가 갖는 단조로움을 피한 채 오히려 입체적 효과를 증폭해내는 장치야말로 시조의 탁월한 특장이랄 수 있다. 요즘 많이 쓰이고 있는 연시조의 경우에도 각 수마다 개별 작품의 의미구조를 수렴하면서 전체적 통일성이 이루어져 할 것이다. 시조의 이러한 표현체제가 현대시조에 내적 율격으로써 정립된다면 현대시와의 변별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리라 본다.
현대 우리 문학 장르로는 시, 시조, 소설, 수필, 희곡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유일하게 전적으로 서구에서 빌려온 문학이 현대시이다. 소설은 금오신화, 홍길동전, 춘향전 등과 같은 우리 문학이 있었으며, 수필은 목민심서, 역옹패설, 규중칠우쟁론기, 동명일기, 조침문 등과 같은 명문 작품이 있고, 희곡은 판소리 대본, 인형극본, 가면극본과 같은 문학작품이 있어 그 전통을 이어 서구의 그것과 현대적으로 상승 작용하면서 발전을 하고 있으나 현대시는 그 우리 조상의 문학에서 맥을 찾을 수 없다. 순전히 서구에서 빌려온 장르이다. 그런데 시조는 우리 민족문학으로 면면히 이어 내려온 문학 장르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시조문학으로 민족의 주체성(主體性)과 자존감(自尊感)을 지켜야 할 때이다. 그래 그런지 요즘 성춘복 시인, 문효치 시인(전 한국문협이사장), 오세영 시인(전 한국시인협회장)같은 원로시인 분들이 시조집을 상재하며 시조의 우월성을 말하고 있고, 이 고장에서도 나태주 시인이나 엄기창 시인, 리헌석 시인이 멋진 시조와 시조집을 상재하여 그 위상을 더하고 있음을 가상할 일이다. 시조는 신토불이 적장자(嫡長子)이고 시는 서구에서 데려온 입양서자(入養庶子)임으로 우리 모두는 우리나라 운문문학의 중심은 시조이어야 함을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 시조의 기본 틀
현대시조는 현실성과 시조성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시의(詩意)의 현실성(現實性), 시형(詩形)의 정형성(定型性)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구(句)와 구(句) 사이, 장(章)과 장(章) 사이는 통사율(統辭律)에 의한 긴장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아무리 현대시조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지켜야 할 규칙은 있어야 정형시(定型詩)로서 우리 문학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 최소한의 규칙은 1수(首) 3장(章), 각장(各章) 4소절은 지켜져야 하고, 1소절은 한 단어가 기본이고 두 단어가 결합되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단어 사이가 대립(對立)이 아닌 상보(相補)나 종속(從屬)관계이어야 한다. 소절에 있어서도 음수(音數)는 한 음절, 부득이한 경우 2음절 정도의 나듦을 할 수 있으나 각장(各章)이나 각수(各數)에서 소절수는 나듦을 하면 안 된다. 이를 철저히 지킨다면 여타의 내용상의 변주나 표현기법 등은 자유롭게 확장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시조의 기본율격을 어떻게 해야 될까를 정하기 위하여 정병욱의 <시조문학사전>에 실린 고시조 가운데 단시조 1853수를 조사한 결과이다.
<표1>
| 초장 | 중장 | 종장 |
자수 | 3 | 4 | 3 | 4 | 3 | 4 | 5 | 6 |
1구 | 1362 | 153 | 1277 | 107 | 1816 | 15 | 4 | 1 |
% | 73.3 | | 63.9 | | 98.0 | | | |
2구 | 33 | 1384 | 466 | 1265 | 29 | 75 | 887 | 799 |
% | | 74.7 | | 68.3 | | | 47.9 | 43.1 |
3구 | 902 | 879 | 925 | 863 | 71 | 1630 | 45 | 17 |
% | 48.7 | 47.4 | 47.9 | 46.6 | | 88.0 | | |
4구 | 13 | 1705 | 26 | 1717 | 1425 | 311 | 50 | 3 |
% | | 92.0 | | 92.7 | 76.9 | | | |
위 <표1>에도 나타난 바와 같이 단시조 한 수에 나타난 각 음보의 글자 수가 초장은 3, 4, 3(4), 4 중장은 3, 4, 3(4), 4 종장은 3, 5(6), 4, 3로 43(46)자로 현재 우리가 정격으로 인식하고 있는 음보별 음수율에 가장 근접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고시조의 경우 위와 같은 음보별 음수가 한 편 한 편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약간의 엇바꿈으로 나타나 있다. 이를 감안하여 일찍이 춘원(春園) 이광수나 도남(陶南) 조윤제선생이 제시한 시조의 기본율에 따라 그 정격의 범위를 45자 내외(±1∼2)로 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을 것 같아 3과 4의 음수율 자리에는 때에 따라 우리의 언어적 특성을 고려하여 4또는 3을 엇바꾸어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전체적으로 글자 범위에 ±1∼2의 신축성을 부여하여야 하리라 본다. 그래서 그 기본 틀로 <표2>을 제시한다.
<표2>
| 첫째 구 | 둘째 구 |
초장 | 3(4) | 4(3) | 3(4) | 4(3) |
중장 | 3(4) | 4(3) | 3(4) | 4(3) |
종장 | 3 | 5〜6(7) | 4 | 3(4) |
| 첫째마디 | 둘째마디 | 셋째마디 | 넷째마디 |
| 꼭 마음에 새겨 지킬 음수율 | | |
* 기본형에 충실한 고려 말 충신 길재(吉再)의 회고가
五百年 都邑地를 匹馬로 돌아드니
山川은 依舊하되 人傑은 간데없다.
어즈버 太平烟月이 어제런가 하노라
* 허용된 기본형으로 쓴 기녀 홍랑(洪娘)의 이별가(최경창과 송별)
초장=묏버들 갈해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
중장=자시는 창밖에 심거두고 보소서
종장=밤비예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 여기소서.
[허용음절]
* 현대시조로의 디딤돌
초장=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중장=알알이 붉은 뜻을
내 어이 이르리까.
종장=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조운의‘석류(石榴)'[출전 : 曺雲時調集, 1947년, 조선사]
3줄로 된 것을 장별 배행, 6줄로 된 것을 구별 배행이라 하는데 위의 것은 초, 중장은 구별 배행을, 종장은 음보별 배행을 하였다. 이 작품 <석류>는 가슴 속에 담긴 뜻을 온전히 펴서 알리지 못하고 언어의 한계에 다다른 시적 화자의 답답한 마음을 표현한 상징 이미지이다. 시인은 언어에 갇힌 답답한 마음을 알맹이가 부풀어 쪼개진 석류를 통해 감각적으로 실감 나게 나타내 주고 있다.
☯ 시조 짓기 걸음마는 마디가락 익히는 일
우리 시조의 마디 가락은 서구 시가에 보이는 속가락이 아니고 글자 수에 의하여 정해지는 한 수 열두 마디 겉가락이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수백 년 사용해 보고 가장 우리 호흡에 알맞게 우리 가락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퇴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 ‘단심가’]
② 다 부셔 지는 때에/ 혼자 성키 바랄소냐.
금이야 갔을망정/ 벼루는 벼루로다
무른 듯 단단한 속을/ 알이 알까 하노라
[최남선, ‘깨진 벼루의 명'][출전 : 百八煩惱, 1926년 동광사]
③ 成佛寺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자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뎅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망설이고
들릴 젠 또 들리라 소리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소리 데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이은상 ; 성불사의 밤]
[출전 鷺山時調集,1932년, 한성도서주식회사]
①은 고시조이고, ②는 근대시조 ③은 현대시조 작품이다. 시대는 흘러 그 세월의 격차가 있지만 이들 사이에 그 가락의 다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이영도의 작품이다.
④네 살짜리 손주 놈은 생선뼈를 창살이란다.
장지엔 여릿한 햇살, 접시엔 앙상한 창살
내 눈은 남해 검붉은 녹물 먼 미나마다에 겹친다.
[‘흐름 속에서’] 제3수
⑤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밴 양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비’]
[출전 : 靑苧集, 1954년, 文藝社]
④에서 ‘미나마다’란 수질공해로 인체 질병이 극심한 일본의 항만 이름이다. 모든 예술 작품에서 사상(事相)과 자연을 묘사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것으로 작품이 경지에 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묘사 속에 자연과의 대화가 있어야 한다(이은상)고 하였다. 앞의 작품을 보면 음수 넘침이 많이 나타난 있고 때론 소절이 넘친다. 예술성은 얻었으나 시조의 율격으로는 알맞지 않다. 엇시조 가락에 알맞다. 차라리 시라 하는 편이 나을 성싶다.
⑤시조에서는 모자람 현상이 초, 중장 첫머리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시조로서의 가락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억지스러움이 없다. 이는 생각의 흐름을 마디 가락으로 표현할 줄 아는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정격시조는 아니다.
☯ 시조 쓰는 법 다섯 가지
첫째 정형(定型)을 지키는 일이다.
이 정형은 궁색하거나 옹색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역사가 필연적으로 다듬어 놓은 그릇이다. 우리말은 무엇이든지 다 담고도 남음이 있다.
둘째 가락이 있어야 한다.
일상의 음률, 그 내재율이 무리 없이 다듬어져야 한다.
셋째 시조는 쉬워야 한다.
시조는 국민 시이기에 쓸 적에는 깊이 오뇌하고 무겁게 사량(思量)하고 곰곰 성찰(省察)하되 다 구워낸 작품은 쉬워야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언단의장(言短意長)하라는 말이다.
넷째 희(喜), 비(悲), 애(哀), 락(樂), 묘(妙), 현(玄), 허(虛) 등 그 어딘가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한다. 심심풀이, 더러는 화풀이 같은 작품은 민망한 일이다.
다섯째 시조는 격조가 높지 않으면 시조가 아니다.
비속어, 천속어가 난무하고 제 몰골도 수습 못할 지경이면 이는 이미 시조가 아니다.
그 외에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의 삼장으로 각장은 전구와 후구로 이루어짐을 기억해야 한다. 한 장 한 장이 마디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마디가 없이 줄글로 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