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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지난2023년 한 해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우리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두 해 동안 기도 대행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기도에 힘쓰는 교회, 기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했습니다. 2024년은 성령 대행진입니다. 성령과 더불어 앞으로 2년 동안 우리는 달려가려고 합니다.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이 넘치는 새해를 우리는 기대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누구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어떤 사람과 어떤 교회의 성령의 은사와 기름 부음이 있는가?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가정, 기도하는 교회에 그런 역사가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약속하셨어요. 제자들이 그 후에 무얼 했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열흘 동안 그들은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셨고 신령한 은사가 부어졌고,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교회가 탄생했으며 세계 선교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2023년을 보내면서 야 이제는 기도 대행진도 끝났고 했으니까 기도는 여기까지 끝 그러면 안 됩니다. 내년에 성령의 역사, 성령님이 주시는 그 신령한 은혜와 축복을 기대하신다면 우리는 기도에 불을 끄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의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삶을 지속해야 합니다.
성경이나 교회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신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예요.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이 실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기도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나님께는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기도의 불이 타오르는 교회에 기도의 불이 타오르는 가정과 개인은 영향력이 넘치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무시로 기도하라 수없이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기 전에는 기도보다 더 급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기도가 가장 급하고 기도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됐어도 저와 여러분이 기도의 무릎을 꿇고 기도의 발전소를 돌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산상수온에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겠습니까?
기도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기도가 급하다는 거예요.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기도는 매우 단순한 거예요. 어린아이들도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만 세상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기도를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기도하는 사람 편에 아니면 기도하지 않는 사람 편에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살펴봅니다. 기도는 우선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구하는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오.
기도가 뭐예요? 구하는 거예요? 달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해서 하나님께 요청하는 겁니다.
프랑스어로는 드멍댑니다. 우리는 이미 이 일을 잘하고 있어요. 어린아이들조차도 이것은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자기 필요를 엄마에게 요청을 해요. 말을 하지 못할 때는 울어버려. 그러면 부모가 그 아이의 필요를 살피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 줍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자기 마음의 소원과 자기 인생의 결핍을 그것을 해결해 줄 자에게 구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말씀이 기도가 구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단순한 것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너무나 고상하고 너무 어려운 것으로 특별한 종교인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감히 기도를 시작하지 못하는 거예요. 기도에 대해서 엄청난 신학적 견해를 가져야 기도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야만 응답받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냥 구하는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그 문제 자기의 필요를 해결해 줄 엄마 아빠에게 구합니다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께 단순하게 요청하는 거예요. 진실하게 요청하는 거예요.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나 배고파요. 나 저거 사줘요. 먹을 것을 주세요.
그렇게 하는 것처럼
나 아파요. 고쳐주세요. 도움이 필요해요. 도와주세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하늘 아버지께 우리가 대상만 바꿔서 하늘 아버지께 구하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그런 필요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핍이 있습니다.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어떻게 해야 돼요? 구하면 되는 거예요 눈 감고 무릎 꿇고 여러분 입이 있잖아요. 그 입을 가지고 입을 열어서 하나님께
하나님 오늘은 내가 이게 필요해요. 나는 오늘 이게 너무너무 부족해요. 너무 결핍이 돼 있어요. 하나님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세요. 제 몸이 아파요. 하나님 치유해 주세요. 힘을 주세요. 오늘은 왠지 우울해요. 기쁨을 주세요.
그냥 단순하게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로를 다 알고 계시고 그리고 구하고 또 구하는 이에게 부어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는 분이 하나님이시오. 오늘 8절에 보면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오. 왜 못 받느냐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인데 왜 우리가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느냐 아주 단순한 거예요.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주신다는 거예요.
다만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욕심으로 구하는 경우나 아니면 잘못된 목적으로 구할 때 또는 우리가 그것을 받았을 때 내게 해로울 때 하나님은 그때는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만약에 그때도 그 기도를 들어주시면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 아니죠. 좋은 부모는 자식에게 자기 생명까지도 주지만 자식이 필요하다면 자 자식에게 유익하다면 모든 걸 줄 수 있는 것이 부모지만 자식이 잘못된 것을 구할 때 그것을 받아서 그 자식이 어려움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할 때는 주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을 주시는 분이에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구하는 자와 구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기도하는 자의 편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의 삶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증언하는 하나님의 응답을 증언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는 또 뭐냐? 찾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7절에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오. 기도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찾는 거예요. 셰셰 찾아내는 것 그것은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행동이에요. 탐구하는 행동 학자가 어떤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 연구하고 탐구하는 겁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그런 거예요. 그냥 기도실에 앉아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도 기도지만 그것은 일차적인 기도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조금 더 적극적인 행위를 하라는 거예요. 기도실에 앉아서 그저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는 것은 소극적인 기도라면 찾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줄 믿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내가 취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응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실에 앉아서 기도할 때 그냥 부어주시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은 몇 퍼센트의 응답은 어떻게 주시느냐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응답을 감춰놓으셨어요. 그래서 그것을 찾아가는 재미를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찾으라 이거예요. 우리가 소풍을 가거나 야유회를 가면 어린이들을 위해서 꼭 하는 게 뭐가 뭐가 있어요? 보물 찾기가 있어요? 보물 찾기 저는 보물 찾기를 하면 꼭 마음에 상처가 있습니다. 신기하게 저는 두 가지가 잘 안 돼요. 지금까지 보물 찾기를 하면 제가 보물을 잘 못 찾아 그래 잘 안 되더라고.
또 하나는 무슨 모임을 할 때 그거 뭐예요? 그 추첨 추첨할 때 기대하는데 추첨이 내 손에 들려 있으면 이게 안 돼. 근데 내가 누구 사가지고 누구를 주면 또 그건 되더라고 그래서 이 보물 찾기에 대한 그 보물 찾기 얘기가 나오니까 상처가 생각이 나는데 하여튼 이 보물 찾기 보물 찾기는 너무 재미있잖아요. 보물 찾기를 할 때 아이들은 그 찾는 재미가 있어요.
그다음에 선생님들은 그것을 감춰놓을 때 야 이건 절대 이놈들 못 찾게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감추는 게 아니고 아주 꼭 찾을 수 있도록 찾을 만한 곳에 갖다 놓습니다.
그렇죠 만약 어떤 선생님이 절대 못 찾게 하기 위해서 나무 꼭대기에다 갖다가 몰래 감춰놨다 그런 보물 찾기는 없어요. 아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그 찾아내는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감춰놓습니다.
그리고 어떤 저 같은 어리버리한 사람은 또 찾기 그렇게 쉽게 해놨는데도 이거 못 찾아 어디 있나 이렇게 할 때 선생님들이 그때 힌트를 줍니다. 어디쯤에 있다 아니면 막 데리고 가서 비슷하게 보여주면서 그걸 찾게 해주는 거예요.
중요한 건 자기가 찾아야 돼요. 찾아서 주지는 않아요. 자기가 찾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 해당되는 선물을 받게 됩니다.
기도도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실 때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에 그것을 감춰놓으시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서 그것을 찾아내는 노력과 기쁨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탐구자가 해답을 찾기 위해서 곰곰히 생각하고 발로 뛰고 실험실로 가서 실험을 하고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참고 도서를 찾아내는 것처럼 그래서 그런 노력을 통해서 찾아내면 기쁨이 몇 배가 됩니다.
그 해답을 얻었다고 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주실 때 그런 기쁨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갑자기 기도하면 뚝 떨어지는 응답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우리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찾아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 크리스찬은 세상 사람보다 더 적극적인 삶을 사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런 삶이 되시길 바래요. 2024년 23년에도 기도했다면 234년에 기도할 때는 이런 탐구하는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내는 적극적인 삶으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다음에 성경을 펼쳐서 읽으면 됩니다. 그러면 깨닫는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을 알게 해달라고 하고 성경은 안 읽어가지고 성경에서 막 먼지가 쌓여 있다. 하나님은 응답하실 수 없는 거예요. 성경을 펴서 읽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겁니다. 기도하지 않고 기도는 하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응답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요행과 같은 거예요.
그런 기도를 미신적 기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그렇게만 하면 우리 신앙이 미신으로 흐르게 돼 있어요. 그런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후에 그 응답을 사모하면서 적극적으로 살아나갈 때 하나님은 약속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숨겨놓으신 하나님의 보물을 찾아내는 기쁨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은 열심히 살지도 않고 적극적이지도 않고 굉장히 소극적이고 나태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진짜 기도를 하는 사람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삶을 살게 돼 있어요. 매일매일 기도하고 일어나서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응답을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살게 돼 있어요.
크리스천은 그런 사람들이 또 기도는 두드리는 거예요. 7절에 보면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에게 열릴 것이니 두드리는 거예요.
닫힌 문을 향해서 가서 두드리는 거예요. 프라페 문을 열어달라고 담판하는 행위 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아주 결심을 했어요. 문을 반드시 열고야 말겠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닫힌 문을 만나요. 터친 문을 만났을 때 마음이 내려앉습니다.
야 여기서 끝났구나. 더 이상은 우리가 진행할 수 없구나. 그 옆에 보니까 옆에도 다쳤어. 뒤로 돌아보니까 뒤에도 다쳤어. 그래서 그때 사람들이 절망하고 자포 자기합니다. 앞도 보이지 않고 뒤도 보이지 않는 상황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상황,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상황 누가 그런 상황을 원하겠어요?
그렇지만 우리 인생은 수도 없이 그런 상황을 만납니다. 앞길이 캄캄합니다. 미래에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열심히 공부했는데 진급하지 못했어요. 직장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그 성과를 누리지 못합니다. 사업도 힘들어요. 자녀들 문제도 그렇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기대했던 대로 되지 않아요. 우리에게는 건강의 문제도 있고 또 수많은 인생의 문제들이 우리 앞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닫힌 문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늘 우울하고 절망스럽고 포기하고 싶고 그럴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노력하다가 포기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그 순간에 포기하면 안 돼요. 닥친 문을 만났다 왜 닫혀 있어요? 열라고 닫혀 있는 거예요.
이렇게 적극적인 마음을 갖는 거예요. 어떻게 엽니까? 가서 두드리면 된다는 거예요.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 안에 계신 분이 열어주시겠다는 거예요. 닫힌 문을 만나면 아이고 틀렸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막막한 상황을 만나면 아이고 여기가 끝이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열어야 되겠네. 반드시 열고야 말겠다고 하는 그런 결심이 그런 결심이 속에서 터져나와야 돼요.
이게 기도입니다. 기도는 그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행위예요. 언제까지 하나님이 열어주실 때까지 하나님이 열어주실 때까지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 근성이 있어요. 어지간한 일로는 절망하거나 낙망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냥 오히려 더 오기가 있는 거예요. 내가 이거 반드시 풀고야 말겠다. 물론 기도를 오기로 하면 안 되겠지만 그런 근성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기도했더니 그냥 즉시 즉시 응답이 됐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한 번에 응답되지 않고 오랜 기다림 속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할 때 응답된 예가 많아요.
다니엘의 21일의 기도 하루아침에 응답되지 않았어요. 21일 동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이스라엘 땅의 기근을 위해서 그 땅에 비가 오기를 위해서 기도했던 엘리아의 기도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요.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린 겁니까? 언제까지 문이 열릴 때까지 비가 올 때까지 하나님의 응답을 들고 천사가 내려올 때까지 여러분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8장에 불의한 재판관과 어느 한 많은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 항상 기도하다가 낙심할 일이 온다는 거예요. 언제 닫힌 문을 만날 때 앞이 캄캄한 겁니다. 기도할 힘조차도 없어지는 거예요. 그때 낙심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그 과부하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 내용을 한마디로 응답 요약하면 이겁니다.
한 번 기도를 시작했으면 응답 올 때까지 하라.
이 간단한 교훈을 위해서 주님이 이 예화를 들어주신 거예요. 그 여인이 가서 자기 한을 풀어달라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했어요. 근데 이 불의한 재판관은 닫힌 문이에요. 닫힌 문 얼마나 다쳤느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세상에 이렇게 악질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고 그러니 과부는 얼마나 무시하겠어요
그런데 결국은 열어줬어요. 그 열어준 이유가 아주 유치합니다. 이 과부가 하는 얘기가 합당해서 논리적이어서 설득된 게 아니에요. 이 여자가 날마다 나를 번거롭게 하니 귀찮아 죽겠다는 거예요. 스토커 같다는 거예요. 그러니 내가 그냥 해결해 주고 말겠다 그런 이유로 해결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 재판관의 한 말을 들어보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반드시 속히 이루어 주시리라
포기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이 그리스도인의 길을 시작했다면 끝까지 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삶을 시작을 했다면 기도로 여러분의 인생을 한번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우리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고 말 것입니다.
문제는 기도하다가 포기하는 거예요. 끝까지 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은 역사가 거듭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사람이 적어진다는 거예요.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 이 믿음 잃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을 보겠냐 이거예요.
목회를 하다 보면 우리가 야 이게 저대로 쭉 가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처음에는 기도하다가 그런 어려움이 오면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사실 목사인 저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어떤 경우는 아 이거 괜히 해서 시간만 낭비하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마음이 올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그 순간을 넘어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 순간을 넘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 응답이 와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런 사람을 찾고 계셔요. 주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이 지상에 뭔가 엄청난 일을 이루기를 원하시는데 누구를 누구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느냐 항상 기도하되 낙망치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닫힌 문 앞에서도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근성 있는 그리스도인을 원하시는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2022년과 23년은 기도 기도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부서마다 모임마다 그래서 청소년부도 기도하고 청년부도 기도하고 청년들도 우리가 새벽 기도를 요즘 못 하니까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여기서 기도하고 또 청년 2부는 금요 기도회를 하고 여러 모양으로 기도 훈련을 해왔습니다.
근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요. 이제 2024년부터는 그 기도의 열매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근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요. 더 기도에 박차를 가해야 됩니다. 2023년까지 기도 대행진의 해지만 그걸 쭉 2024년에도 밀고 나가야 돼요. 그러면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어지면서 성령의 그 신령한 은혜가 우리 삶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 살아갈 때 인생이 얼마나 피곤해요 피곤하고 늘 스트레스 받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릴 때는 어릴 때 학창시절은 자기 미래 때문에 늘 불안하고 또 나이가 들어보니까 노후가 불안해 그래가지고 나이 든 사람은 또 그게 불안하고 죽을 때가 다 되면 또 야 이걸 인생 이렇게 끝나는 건가 혹시 지옥 가면 안 되나 뭐 죽은 이후의 삶이 불안한 늘 불안한 게 인생이에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런 불안한 마음을 이 고민을 말씀드릴 상의할 대상이 있는 거예요. 그분이 하나님이에요. 그것이 기도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 마음속에 오는 여러 가지 그 결핍과 소원과 두려움과 내 안에 있는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그저 어디 골방이 없으면 길 걸어가더라도 메트로 타고 가더라도 번뜩 생각이 나면 하나님께 그냥 말하세요. 말해도 괜찮아요. 누가 알아듣는 사람 없어요. 한국말 요즘은 조금 알아듣긴 하지만 하세요.
만약에 그게 좀 불편하면 방언으로 말하고 아니면 제일 좋은 건 여기다 이어폰 하나 꽂고 말하면 사람들이 이 전화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하나 기도는 하나님께 내가 통신하는 거니까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 길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주셨다는 거 얼마나 위안이 되고 힘이 되고 그게 기쁨이 되는지 몰라요. 이 기도를 여러분 포기하지 마시고 2024년에도 계속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구하고 자꾸 두드리는 겁니다. 다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에요. 다만 기도하되 기도만 하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기도하다가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기도하고 또 부지런히 찾아 나서고 끝까지 기도하면 반드시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영혼에서 기도의 불이 활활 타올라서 2024년을 밝힐 수 있도록 이 한 해를 마지막 마무리하면서 기도의 결단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면 2024년에는 성령의 불과 능력과 각종 신령한 은사와 은혜가 우리의 삶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