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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가의고층빌딩 | 중심가의고층빌딩 | 중심가의고층빌딩 |
그러면 빵은 어떨까요? 이 나라가 어느 나라의 식민지였습니까?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의 빵 기술은 드러내놓고 자랑을 하지는 않지만 프랑스의 것보다도 더 훌륭하면 훌륭했지 뒤지지 않을 겁니다. “하하하 으매~ 기죽은 거~!” 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이곳은 퇴직연금들이고 한 두어 달씩 놀러나 와야 하는 곳이구나.……. 하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아직 옛 건물같이 허름한 건물의 한쪽에는 꼭 조그마한 손수레에 음료와 먹을거리가 있는 간이점이 있고 그 주변에는 서너 명의 사람이 앉아있다. 이제 8시가 넘은 제법 늦은 시간인데 그러는 사이 우리일행은 숙소에 도착을 했고 차량은 호텔 안까지 들어와 주차를 하여 우리를 내려 주었다. 우리가 묵는 이 호텔은 4성급으로 호텔에 수영장이 딸려있는 우리나라 특급호텔정도 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호텔리어들의 복장도 단정하고 예의바르게 행동을 했으며 삼일을 자는 동안 매일 청소와 정리를 잘해주었다. 아직 관광산업이 발달되지 않은 곳이라서 그런지 우리에게 대하는 호의적인 행동이 순박해 보였고, 어떤 바람이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오늘은 조금 피로가 덜하니 주변의 마트 같은 곳을 찾아 쇼핑을 하여 보기로 하고 숙소에 가벼운 짐도 다 놓아두고 일행 중 손 선생과 함께 호텔을 빠져 나왔다. 우리는 아침에 호텔을 빠져나와 회사로 가는 길목에서 까르푸를 보았다. 그리고 까르푸에 물건이 많다고 이야기도 들었기에 그리로 가려고 했는데, 도착 전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호텔을 나가서 우측방향으로 조금만가면 커다란 쇼핑몰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순진하게 가이드의 말을 듣고 우측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어둠은 깊고 우측으로 이동하는 길 멀리로는 화려한 건물들이 보이고 그곳까지 가려면 한 500m정도는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정도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자며 걷는데 호텔을 벗어나자마자 음침한 상가건물이 불이 꺼진 채 있고 그 상가 건물 앞 계단에는 차안에서만 보던 노점상이 있고 그 옆에는 그것을 사서 먹는 사람이 두세 명 있다. 무엇을 사먹나 보니 꼬치와 같은 구이종류도 있고 과일장사도 있고 음료수 장사도 있었다. 다 무시하고 이동을 하는데 아무리 가도 쇼핑몰은 나타나질 않고 새로 건물을 올리는 공사장만 나타났다. 이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보다하고 우리는 다시 거슬러 오다가 길을 건넜고 호텔을 지나 까르푸가 있었을 만한 곳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다시 500m이상을 가도 까르푸는 보이질 않았다. 마침 화려한 치장을 한 중국집이 보였고 그 옆에는 그 건물을 지키는 경비원인 듯한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까르푸 갈려면 어떻게 가냐고, 그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질 못했다. 그때 옆에 다른 사람이 다가와서 또 물으니 그도 역시 우리의 질문에 답을 주질 못했다. 쇼핑하는 곳이라는 말은 알아듣겠지 하여 물어보니 역시 쇼핑은 알아듣고 가는 방향으로 더 많이 가야한단다. 꽤 많이 걸어왔는데 가지말까도 생각했는데 손 선생이 올 때 택시타고 오잔다. 그래 그렇게 하자면서 또 한참을 걸었다. 군데군데 높은 건물들은 있었으나 대부분 사무실이나 호텔이고 쇼핑센터는 보이질 않았다. 족히 2Km정도는 걸은 것 같다. 멀리서 밝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사람들이 봉투를 들고 차를 타거나 걷는 모습이 나타났다. 드디어 도착 까르푸는 아니었고 우리나라 대형마트 같은 곳이었다. 쇼핑타운으로 지상에는 상점들이 있고 지하에는 마트로 되어 있었다. 이미 10시가 다되어가기에 급히 마트로 내려가 상품들의 진열 상태가 어떤 것들이 있나 보았다. 마트의 크기는 우리나라와 별 차이는 없었고 진열하여 놓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다. 그런데 이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다들 깔끔하고 낮에 그리고 걸어오면서 구석에 앉아 무언가를 사먹는 후줄 거레한 옷차림의 사람은 없는 것이다. 진열된 상품도 그 종류는 우리와 별 차이는 없었으나 유난히 플라스틱 제품이 많았다. 그리고 애채는 그 종류가 특별히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와는 좀 다른 종류가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과일은 그 종류가 아주 많았으며 가격도 매우 저렴한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커피인데 사향고양이가 먹은 커피열매 배설물에서 얻은 원두로 만든 커피 ‘루와 커피’ 그리고 또 하나 라면이 유명하단 말을 듣고 상품을 찾아보니 커피는 정말 많았고 루와 커피라는 고양이 사진이 있는 커피도 많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가짜가 대부분이니 그냥 커피라 생각하고 사란다. 그래서 원두커피를 샀는데 가격이 우리나라 돈으로 3천원이 조금 넘는 다. 커피와 열대과일을 조금사서 숙소로 오는데 너무 멀어서 그냥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숙소 명을 알려주니 잘 데려다 주었다. 요금은 우리나라 돈 1700원정도로 생각보다 저렴했다. 숙소에 와서 구입한 과일을 다른 일행들과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자카르타에서의 마지막 일정이 시작되었다. 모든 여행 짐을 정리하고 내려와 체크아웃을 하고 뷔페식을 한 후 세 번 째로 방문하기로 한 ACMI 회사가 있는 땅그랑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신발의 밑창을 만들기 위해 발 모양을 닮은 틀(몰딩)을 주조로 만들어 신발 생산 공장에 납품하는 곳이다. 공장장님의 회사소개와 생산시설 안내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내다 인권비가 높아 할 수 없이 사양길에 접어들어 해외로 눈을 돌려 인력이 풍부한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렇게 해외로 진출한 우리나라 산업체의 활약을 보며 뿌듯함을 갖기도 했다. 피자와 햄버거 음료는 맛나고 푸짐한 점심으로 모국에서 왔다는 그것만으로도 서로 정을 주고받는 우리 내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훌륭한 대접을 받고 우리는 또다시 문화 탐방에 나섰다. 오늘은 순다꼴라빠 항구를 보고 시간이 많이 남으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백화점을 가보기로 했다.
이동하는 동안 군데군데 정체되는 곳이 있었으나 벌써 익숙해졌는지 특별히 짜증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이동을 하는 중에도 갈림길이 생기면 교통정리해 주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 운전기사나 조수가 조금의 돈을 주어가며 이동을 하여 어느 한곳에 도착을 하니 출입을 통제하는 문이 있고 그 앞을 보니 내 눈이 의심이가는 정도의 모습이 펼쳐졌다. 옛날 옛적에 전설 같은 해적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처럼 어느 숨겨진 섬에 나무로 만들어진 해적선이 늘어서 있는 그런 모습( ??? ) 범선의 모양이 나무로 정말 예쁘게 그 끝을 뾰족하게 올리고 정박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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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선들의 행렬 | 목재부리는 목선 | 정박 중인 목선 |
한 두 척도 아니고 몇 십 척은 족히 넘는 광경이었다. 처음에는 폐선을 할 수 없어서 모아놓은 줄 알았는데 막상 내려서 부둣가를 가보니 정말 나무로 만든 길이 20~ 30m는 되는 목선들이었다. 조그마한 목선에 여러 가지 생필품이나 음식재료를 놓고 파는 그런 장면은 다큐나 영화에서 종종 봐왔지만 물건을 운반하는 목선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본 기억 밖에는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어촌에 고기잡이 소형선박들 위에는 이런 목선이 있다니, 눈으로 보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지만 생소한 느낌은 감출 수가 없었다. 가이드가 20분정도 자유 시간을 준다기에 카메라를 메고 근접하여보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서있는 부둣가에 1m정도 높이 쌓은 방파제가 있는데 목선 가까이가면서 바닷물을 보니 바로 물이 차있는데 오히려 수면이 부둣가 보다 높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어라고 표현을 해야 하나 이 광경을 적당히 나이를 먹을 만큼 한 내게 우리나라에서의 이런 관경은 보질 못했으니, 족히 500m이상 되는 그 부둣가에 이런 범선 같은 목선들이 서있는 것이다. 조금 걸어가니 그 목선에서 화물이 부려지고 있다 목재가 내려지고 커다란 포대자루에 담긴 석회 같은 것이 올라가고 목선의 상갑판에 기중기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어 물건을 옮기지만 그 중간에 많은 사람들이 밀고댕기는 일을 하며 분주하다. 100여m 쯤 갔을 때 뒤에서 가이드가 부른다. 돌아보니 일행들은 다 없고 나와 같이 가던 최 선생만 있는 것이다. 돌아서 가니 큰 목선 사이에 아주 작은 배가 하나 있는 데 그것을 타란다. 방파제를 넘어 작은 배에 오르니 나이 많은 노인이 큰 목선사이를 잡아당기며 빠져나가더니 배에 시동을 걸어 항구 바깥쪽으로 배를 몰았다. 조금만 흔들리면 전복될 것 같은 배에 몸을 맡기니 불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갔는데 희한하게 이 포구 안은 파도도 없고 우주 잔잔한 것이다. 조금마음이 놓이자 주변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이 순다골라빠 항구가 네덜란드 식민지가 되면서 최초로 개방된 항구란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적을 간직한 항구인 것이다. 목선이 정박되어진 부둣가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니 내가 타고 있는 소형 목선 또는 그 보다는 조금 큰 목선들이 정박되어 있는데 어떤 것은 위에 간이 천막 같은 지붕이 쳐져있고 그곳에서 자는 사람, 무언가를 만들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그 작은 배에서 생활을 하고 부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을 한단다. 그것도 배에서 저런 것이 일종의 수상가옥이구나. 하며 그 앞을 보니 다 쓰러질 것같이 얼기설기 대충 못을 막아 비바람만 피하게 만든 집들이 부둣가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부둣가 바로 뒤에는 화려하고 멋진 족히 20층 이상 되어 보이는 아파트가 들어서있고 또 지어지고 있었다. 정말 부조화한 모습이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며 점점 내가 조각배는 넓은 바다로 향했다. 화물목선들이 서있는 곳에서 약 100m 정도 더 나아가자 내 눈 앞에는 드넓은 바다가 펼쳐졌고 양쪽의 등대 같은 사각의 표지 뜸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커다란 파도가 넘실거리며 나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또 다른 모습은 그 파도가 많이 치는 곳에는 철로 만든 화물선들이 떠있고 부둣가에 정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나가니 파도는 곧 나를 삼킬 듯이 달려들었고 겁에 질린 나는 빨리 돌아가자고 외쳤다. 불과 10m도 안 되는 거리를 들어오자 언제 파도가 있었냐는 듯이 잔잔한 포구가 있는 것이다. 섬이 6000개 이상 있는 인도네시아는 수상화물 활동이 많아 아직도 옛날 방식의 목선이 운영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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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꼴라빠 항구의 풍경 |
그래서 이 목선들은 대부분 국내화물을 나르는 데 이용된단다.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길에 보는 목선의 뒷모습은 앞모습과는 달리 나무가 떨어져 나가고 썩어지고 하는 모습들이다 그런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선원들의 모습이 간간히 보이고 멀리 거대한 외항선들이 화물을 부리는 반면에는 이와 같이 각 섬에서 나는 화물을 부리는 작은 부둣가라…….
이렇게 소형목선을 타고 생각지도 못했던 고전적인 목선의 화물운송모습을 보고 내려서는데 한 선원인 듯한 사람이 반바지 차림에 웃옷을 벗은 모습으로 방파제를 넘어서는 나에게 인사를 하듯 환하게 웃는다. 아주 검은 갈색피부가 땀에 젖은 듯 윤기가 흐르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사진 한 장 찍자하니 쪼그리고 앉은 상태로 웃어주어 한번 찍었다. 찍고 보니 팔과 다리 가슴 군데군데 검은 윤활유 같은 것이 묻어 있어 혹시 기관실에서 일하는 선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순다꼴라빠 항구를 구경하고 버스로 가는데 주차장 옆에 옛날 멋들어지게 항해를 하며 동양과 서양을 오갔을 범선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울타리가 처져있고 그 범선 앞에는 정말 이 항구가 얼마나 화려하고 귀한 항구였는지를 보여주는 듯한 건물이 있다. 언 듯 보아도 범상치 않은 건물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 항구를 관장하는 사람들의 집인 듯 했다. 많이 훼손되어 일반인출입을 막아 속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항구에서의 멋진 예스러운 풍광을 보며 현대적인 도심지의 사람의 삶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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