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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황새도 잡고 조개도 잡고 (8)
- 성나라와 허나라 멸망!
이러한 소식에 영토가 작고 힘이 약한 소국의 제후들은 또 한 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정장공(鄭莊公)의 비위를 거스르면 멸망한다.
이런 의식이 팽배해졌다.
대국이라 자처하는 나라들도 정장공(鄭莊公)의 눈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극도로 조심하는 자세를 취했다.
제(齊)나라와 노(魯)나라 군대를 돌려보내고 신정으로 개선한 정장공은 허성(許城) 점령에 공이 큰 장수들에게 포상을 내렸다.
제일 공훈자는 성벽 위로 뛰어올라가 아군의 사기를 높인 하숙영에게로 돌아갔다. 하숙영(瑕叔盈)은 사은숙배(謝恩肅拜)하며 말했다.
"사실 이 상(賞)은 영고숙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대 말이 옳소. 하지만......"
영고숙은 죽었다.
정장공은 그것이 가슴 찢어지도록 아팠다.
영고숙(穎考叔)은 정장공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었다.
의리와 용기가 남달라서가 아니었다.
지난날 어머니 무강(武姜)을 영 땅에 안치하고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던가.
그런 정장공을 찾아와 올빼미로써 효도를 말하고, 염소 고기로써 감동을 안겨주었던 사람이 바로 영고숙(穎考叔)이 아니던가.
영고숙이 아니었던들 정장공은 황천(黃泉)을 파 모자의 정을 돌이키는 감격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립구나. 고숙이여!"
그럴 때 이상한 소문이 신정 거리에 나돌았다.
- 영고숙(穎考叔)은 억울하게 죽었다.
- 영고숙을 활로 쏘아 죽인 사람은 정(鄭)나라 장수이다.
정장공(鄭莊公)도 그 소문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허(許)나라로 사람을 보내 영고숙을 쏘아 죽인 자를 잡아내리라 마음먹고 있던 정장공은 범인이 정나라 장수라는 소문에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은밀히 제족(祭足)을 불렀다.
"사람을 풀어 조사해보시오. 꼭 진상을 밝혀야 하오."
그 날부터 제족(祭足)의 정보원들은 허성 전투에 참가했던 장수와 병졸들을 상대로 세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진상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다만 .........."
정장공(鄭莊公)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제족(祭足)은 말꼬리를 흐렸다.
"다만 무엇이오?"
"영고숙이 죽던 때에 공손알(公孫閼)의 행동이 수상쩍었더랍니다."
"수상쩍었다는 뜻은........?"
"싸우다 말고 수레 옆으로 몸을 숨기는 것을 보았다는 병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화살을 쏘았는지 어쨌는지는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공손알(公孫閼)을 범인으로 단정할 수가 없었다.
설사 공손알이 활을 쏘는 모습을 목격했다 하더라도 어찌 그 증언을 온전히 믿으리오. 그만큼 공손알이 정나라 공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컸고, 정장공의 신뢰가 두터웠다.
"공손알이......... 그럴 리 없소!"
정장공(鄭莊公)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
제족(祭足)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더 이상 사건이 확대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제 와서 영고숙(穎考叔)을 죽인 범인을 찾아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범인이 누구든 간에 일만 더 커질 뿐이다. 이것이 제족(祭足)의 생각이었다.
"그럼 이만 ........."
제족(祭足)이 물러가려고 하는데 정장공(鄭莊公)이 그를 불러세웠다.
"잠깐. 그대는 이번 조사에 매우 소극적이군. 그럴 만한 까닭이라도 있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니오. 나는 그대를 잘 아오. 그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게 틀림없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공연히 들추어내 군심을 어지럽힐 필요가 무엇 있겠는가라고 말이오."
"...................."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한 번 일어난 일은 또 일어날 수 있소. 나는 그것을 방지하고 싶을 뿐이오."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잘 아는자가 범인이라는 뜻이오?"
정장공(鄭莊公)의 눈이 번뜩였다.
"아닙니다. 저 역시 범인이 누군지를 모릅니다. 다만,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내분이라......?"
정장공(鄭莊公)은 순간적으로 동생 태숙 단(段)의 일을 떠올렸다.
끔찍한 추억이었다.
내분이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범인을 색출해냄으로써 내분의 소지를 미리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이번 일을 그냥 지나치면 장수들이 불안해서 전쟁터에 나갈 수 없게 되오."
정장공은 제족(祭足)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주공의 뜻이 정히 그러하시다면...... 무사(巫史)들을 불러 영고숙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냄과 동시에 활을 쏜 자를 저주하는 주문을 짓게 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무사(巫史)란 제사를 전담하는 관리이다.
지금의 무당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 무렵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했고, 그들에 대한 제사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때였다.
"제사?"
정장공은 제족(祭足)의 뜻을 이내 알아챘다.
영고숙(穎考叔)이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가라앉지 않는 한 정(鄭)나라 장수들은 불안에 떨 것이다. 또한 범인을 색출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정장공에 대한 신뢰에 문제가 생긴다.
정장공(鄭莊公)이 염려하는 바가 이것인만큼 진혼제와 더불어 범인 색출을 위한 제사를 올리게 되면 어느 정도 장수들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범인을 잡아내지 않더라도 좋았다. 그냥 저주하는 주문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제족(祭足)은 범인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정장공의 마음 상함을 방지하기 위해 제사 운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과연 제족(祭足)다운 처신.'
정장공(鄭莊公)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며칠 후 정나라 공실의 태묘 앞에 대대적인 제례(祭禮)가 벌어졌다.
"허(許)나라 토벌에 참전했던 군사들은 졸(卒)마다 돼지 한 마리를 준비하고, 행(行)마다 닭 한마리씩을 마련하라."
정장공은 제례를 올리기 전 이런 명령을 내렸다.
졸(卒)은 병사 1백명을 나타내는 단위이고, 행(行)은 병사 25명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요즘 군제로 치면 졸(卒)은 중대요, 행(行)은 소대인 셈이다.
정장공(鄭莊公)이 각 부대 단위별로 돼지와 닭을 마련케 한 것은 그렇게 해야 주문의 효험을 최대한 얻어낼 수 있다고 하는 당시의 풍습 때문이다.
무사(巫史)들은 영고숙의 죽음을 위로하는 진혼제에 이어, 영고숙을 쏘아 죽인 범인을 저주하는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저주문은 사흘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제례 마지막날이 되었다.
정장공(鄭莊公)은 모든 대부를 거느리고 친히 태묘앞으로 나갔다.
제단 위에서는 끊임없이 주문을 불사르는 연기가 피어 올랐다.
제례의 절정이다.
연기는 점점 짙어졌다.
정장공을 비롯한 모든 대부들의 몸이 그 연기에 휩싸였다. 그에 따라 무사(巫史)들의 주문 소리도 점차 커져나갔다.
그때였다.
태묘 앞을 가득 메웠던 연기가 별안간 한 곳으로 뭉치더니 정장공(鄭莊公)의 뒤에 서 있던 대부 중 한 사람을 휘감았다. 동시에 그 대부는 연기에 감싸인채 제단 앞으로 뛰어나오더니 돌연 정장공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슬피 통곡하며 외쳐대기 시작했다.
"신(臣) 영고숙은 누구보다도 먼저 허나라 성벽 위로 올라섰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정나라를 위한 충성심에서일 뿐 다른 뜻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지난날 모호와 수레를 빼앗으려고 싸움을 걸던 자의 화살에 맞아 죽을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신(臣)은 너무나 원통하여 상제(上帝)께 청해 원수를 갚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주공께서 이렇듯 신을 생각해주시니, 신은 이제 구천에 있을망정 그 은혜를 잊지 못하겠습니다."
영락없는 영고숙(穎考叔)의 음성이었다.
정장공(鄭莊公)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영고숙이 살아 돌아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말을 마친 그 대부는 한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입 안에 쑤셔넣기 시작했다.
고통의 기색이 역력했다. 별안간 손을 뺐다. 그와 동시에 입에서 한 줄기 시뻘건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악 - !"
그 대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쓰러졌다.
전신을 에워싸고 있던 연기가 걷히고 있었다.
"앗!"
사람들은 놀랐다.
정장공(鄭莊公)의 입에서도 외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피를 토하며 땅바닥에 스러진 사람은 바로 소년 장수 공손알이 아닌가.
"공손알(公孫閼)을 구하라!"
사람들이 달려들어 전신을 주물렀다.
하지만 공손알은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제야 영고숙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가를 알았다.
경악했다.
정장공(鄭莊公)의 충격은 더욱 컸다.
범인을 찾아내면 후회할 수도 있다는 제족(祭足)의 말이 맞았다.
"아아........"
정장공(鄭莊公)은 안타까운 신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사태를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정장공(鄭莊公)은 영고숙과 공손알을 위해 각기 제사를 지냈다.
그런 후에 따로이 제례를 관장하는 무사(巫史)를 불러 명했다.
"영곡(穎谷) 에다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려라."
오늘날 하남성 등봉현은 옛 영곡(穎谷) 땅이다.
지금도 그 곳에 순효묘(純孝廟)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영고숙(穎考叔)을 모신 사당이다.
또한 유수(洧水)강가에도 영고숙의 사당이 있는데, 그 곳은 영고숙이 정장공과 그의 어머니 무강을 위해 팠다는 황천(黃泉)이 있는 곳이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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