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론을 보자,
중론 6. 행위와 행위자에 대한 분석
우리의 모든 행위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저장되었다가, 어느 시기가
무르익으면 행복과 불행으로 변하여 그것을 우리가 체험한다고 가르친다.
이를 ‘인과응보’의 가르침이라 부르는데, 이건 어떤 절대자가 있어서가 아니다.
나 스스로 나의 행복과 불행을 만들어 간다는 점을 가르치는 의미에서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가르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업(業)은 우리가 짓는 행위(까르마),
득(得)은 획득하거나 받는다는 의미이다.
모든 것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 이것이 통상적인 불교의 가르침이다.
즉, ‘만드는 동시에 종자로 심어지고 받는다’
중론의 입장을 보자,
중론의 제 8 <관작작자품- 행위와 행위자에 대한 분석> 에서는,
이렇게 ‘내가 업을 짓는다’는 사고방식에서 논리적 오류를 지적한다.
“ 실재하는 행위자는
실재하는 행위를 행하지 못한다.
실재하지 않는 행위자도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행하지 못한다”
“행위자” 즉 업을 짓는자가 실재한다고 볼 경우,
‘행위자가 행위한다’는 말은 논리적 오류를 범한다.
왜냐하면 행위자가 실재하려면 행위자가 말을 하는 순간 그가 이미 행위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행위하지 않는 행위자는 존재할 수 없다.
‘실재하는 행위자가 행위를 한다’는 것은,
이미 행위를 하고 있는 행위자가 다시 행위를 한다는 의미가 되기에 두 번의 행위가 있게 되는 오류가 발생한다.
주어인 ‘행위자’라는 말에 전제된 행위이고,
술어인 ‘행위한다’는 말에 쓰여진 행위이다.
위 게송 전반부에서 ‘행위자가 행위한다’는 판단 중,
주어에 대한 제1구적 이해가 비판되고 있는데...
앞에서 배웠던 ‘비가내린다’는 판단이 범하는 논리적 오류의 구조와 대비시켜보라!! (앞 자료 참고하시고)
논리적 오류로 지적된 ‘의미 중복의 오류’가 발생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 하나 제 1구에서 제 4구까지~~ 주어와 술어로 이루어진 단일한 판단에 대한 이해방식이 총 16가지 있다는 점을 교재를 통해 이해하자!!
“행위자가 행위한다”는 판단데 대한 갖가지 이해방식이 모두 오류에 빠지는 것은 ‘행위자’라는 개념과 ‘행위’라는 개념이 결국 연기 관계에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어떤 행위를 할 때,
행위의 주체와 행위하는 작용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냥 한 덩어리의 사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의 가위에 의해 ‘행위자’와 ‘행위’를 만들어 낸 후 ‘행위자가 행위한다’는 판단을 작성한다.
그러나 ‘행위자’도 ‘행위’도 독립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용수의 마지막 조망을 이해 해 보자,
행위자는 행위를 조건(緣)으로 삼고,
행위는 그런 행위자를 조건으로 삼아 나타난다.
어떤 것의 근거를 추구할 때 이 외의 것은 없다.
결국 행위와 행위자의 이런 연기관계가 ‘행위자가 행위한다’는 판단에 대한
총 4구적 이해방식 모두를 비판하게 만드는 토대인 것이다.
생각으로 끊임없이 분별하고 있는 ‘나’를 바로 보라!!
첫댓글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