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원(38), 김영옥(36)과 함께 WKBL을 대표하는 노장 가드로 명성을 떨쳐온 김지윤(34).
저돌적인 돌파와 파워 넘치는 플레이로 리그를 호령해온 그녀였지만 지난 몇 년은 여러 악재가 겹치며 농구인생 최대의 슬럼프를 맞아야했다. 하지만 올 시즌 김지윤은 완벽한 몸 상태를 보이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녀는 신세계에서 농구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다
김지윤은 농구에 있어서는 타고났다. 남들 10번 연습할 때 1번 연습해도 항상 남들보다 앞섰다.
타고난 운동신경 덕이었다. 그러다 보니 재능을 믿고 운동을 게을리 하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 자만해서일까. 금호생명에서 국민은행으로 트레이드 된 김지윤은 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농구인생의 가장 큰 슬럼프를 맞았다. 하지만 2008년 4월, 신세계에 새 둥지를 튼 김지윤은 달라졌다.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한 적이 없단다. 진짜 농구선수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와~ 사복 입으시니까 못 알아보겠는데요? 그래요? 그냥 평범하게 입은 건데….
플레이오프 경쟁이 한창인데, 요즘 어떠세요? 아휴, 하루하루 힘들죠. 정말 매 경기 피 말린다니까요. 하지만 자신감은 있어요. 국민은행도 워낙 좋아져서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말이죠.
지난 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는데, 이번 시즌에는 완전히 부활한 모습입니다.
지난 시즌 중반에 무릎 반월판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어요. 병원에서는 뛰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적하고 첫 시즌이라 미안한 마음이 많아서 무리해서 뛰었죠. 그러다 보니 몸이 안 좋을 수 밖에요. 지금은 완전히 나은 것 같아요. 몸 상태가 정말 좋아요.
2시즌 째 신세계에서 뛰는 느낌은 어떠세요? 신세계는 제 세 번째 팀이에요. 국민은행은 프로에서 처음 뛰었던 팀이고, 오래 뛰어서 그런지 친정 같은 느낌이에요. 금호생명은 우승도 경험해보고, 제가 주축이 돼서 뛰었던 팀이라 그런지 시댁 같은 느낌이랄까요? 신세계는…. 제가 뒷받침을 하는 느낌이에요. 신세계는 제가 오기 전에 이미 틀이 잡혀 있던 팀이고, 기존의 그 틀을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많거든요. 후배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고요. 제가 굴러 들어온 돌이잖아요.(웃음) (김)정은이가 저번 시즌보다는 체력이 좀 떨어진 것 같아서 제가 많이 도와주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 팀에서 오래 뛰면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팀 여러 번 옮겨서 좋은 게 없더라고요.
신세계 와서 살도 많이 빠지신 것 같아요. 몸무게는 별로 차이가 없는데, 많이 빠져 보이나 봐요. 저보고 한 10kg 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예전에 저 국민은행 있을 때 어머니가 경기를 보러 오셨는데, 관중석에서 그러더래요. “저기 국민은행에 제일 뚱뚱한 애, 5번 쟤가 제일 잘해”라고,
그때 저희 어머니가 창피해 못 살겠다고, 저보고 살 좀 빼라고 막 그러셨어요. 하하.
정인교 감독님은 어떠세요? 경기 때 보면 굉장히 엄격해 보이시는데…. 의외로 여리세요.
저희 막 혼내시다가도 금방 풀고 그러시죠. 신세계 와서 감독님 뵙고 “많이 힘드시겠구나”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이것저것 신경 쓰셔야 하니까요. 제가 성격이 활달해서
감독님하고 말도 잘 하거든요, 근데 한번은 감독님한테 너무 혼나다 보니까 대든 적이 있어요.
감독님이 저한테 “너 그렇게 할거면 집에 가서 살림이나 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후배들 있는데 너무 창피해서 운동 안 한다고 하고 막 대들었죠. 하하.
감독님 선수 시절 때는 마주친 적이 없었나요? 거의 못 뵀어요. 예전에 감독님이 해설하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여자경기 해설하시면서 저 보고 깜짝 놀라셨대요. 여자선수 중에 저 같은 선수 처음 봤다고요. 제가 남자 같았나 봐요.(웃음)
감독님이 가장 많이 혼내시는 선수가 김지윤 선수라고 하시던데요. 네. 저는 성격상 그렇게
악바리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냥 농구가 좋고, 즐기면서 하는 걸 좋아해요. 제 환경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집안 사정이 나쁜 편은 아니라서 특별히 고생도 안 했고, 부족한 게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런 악바리 근성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는 제 가장 큰 문제점이 너무 빨리 포기하는 점이래요.
김지윤 선수를 보면 연습도 정말 열심히 하고, 악바리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말이죠.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정말 아니에요. 선수로서 저는 좀 게으른 편이죠. 제 자랑 같지만 연습을 열심히 안 해도 잘 했거든요. 하하.
확실히 타고난 게 많으셨나 봐요. 네. 저는 정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도, 남들 10번 하는 거 1번만 해도 그만큼 효과를 보는 것 같아요. 트레이너 선생님도 저는 진짜 농구를 하기 위해 태어난 몸이래요.
주위에서 김지윤 선수가 신세계 와서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시는데요. 그동안은 철이 좀 없었죠.
국민은행 때도 안 좋은 일이 많아서 문제가 좀 있었어요. 이유가 어찌 됐든 제가 적응을 못한 거니까 제 잘못이죠. 국민은행에서 트레이드를 해줘서 정말 감사하고 죄송해요.
국민은행 때는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그때는 감독님하고 의견이 안 맞았어요. 당시에는 제가
제 실력만 믿고 좀 거만했던 것 같아요. 쉽게 20점씩 득점하고 그랬으니까요. “근데 왜 나를 무시하나”라는 생각이 많았죠. 제가 좀 곱게 운동을 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시절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주위에서 ‘정신적 조루 현상’이 왔다는 말도 들었어요. 국민은행에서 나왔을 때 정말 농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때는 농구도 재미없었고, 마음도 못 잡아서 진짜 바닥까지 떨어졌던 상황이었죠. 정신적으로도 해이해져서 제 자신이 실망스러웠어요. 근데 신세계 와서 농구선수로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에요. 선수 생활하면서 가장 열심히 운동하고 있죠. 신세계 와서 하루도 운동을 쉰 적이 없어요.
상처로 남은 국가대표, 하지만…
김지윤은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었다. 국가대표로 뽑혀도 언제나 주전가드 자리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국가대표에서는 김지윤 같은 공격형 가드보다는 게임 리딩을 책임져줄 정통파가드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김지윤에게 국가대표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게끔 만든 사건이 있었다.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다는 얘기가 많은데, 국가대표에 관한 욕심은 없으세요? 미련은 없어요. 예전에 몇 번 선발됐지만 많이 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죠. 주원 언니에 가려진 이유도 있지만,
국가대표에서는 저 같은 공격형 가드보다 리딩형 가드를 더 중시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가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어요.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이 달린 대회였는데, 당시 저는 다리에
부상을 입어서 뛸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대표팀에서 “네가 꼭 필요하다”고 하셔서 아픈 것도 참고 대표팀에 합류했죠. 시합을 나갔는데, 12명 중에 11명이 뛰는데 저만 못 뛴 거예요. 너무 섭섭했죠. 저는 아픈 몸을 이끌고 간 건데요.
상처를 많이 받았겠군요. 그렇죠. 물론 제가 몸이 좋지 않았던 것은 맞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고
절 데려가신 거잖아요. 가서도 모든 훈련을 빠지지 않고 다 참여했거든요. 왜 저를 출전시키지 않으셨냐고 물어봐도 확실한 답변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그 이후로 국가대표에 대한 미련을 버렸죠.
지금 국가대표에 대한 제의가 들어와도 거절할 건가요? 글쎄요…. 불러주시면 해야죠. 지금은 제가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다시 불러주시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SK 실업시절이 궁금한데요. 그때는 우승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멤버가 진짜 좋았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SK에 입단했는데, 그 해 주전 가드였던 선배가 은퇴를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바로 주전으로 뛸 수 있었죠. 그때 (유)영주 언니, (정)선민 언니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많았는데, 그 틈에 제가 낀 거예요. 당시 3연속 우승을 차지했었는데, 정말 운이 좋았죠. 지금으로 따지면
갓 졸업한 신인이 신한은행 주전 자리를 차지한 거랑 똑같은 거죠. 근데 그때 너무 편하게 운동을
해서 그런지 궂은일을 몰랐어요. 화려한 것만 쫓았죠. 지금도 공격 리바운드는 약한데, 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90년대부터 활동했던 선수들이 아직까지 최고로 남아 있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어린 선수들한테 미안한 부분도 있죠. 신세계 와서 (박)세미한테 제일 미안해요. 원래는 세미가 신세계의 주전가드였잖아요. 선수는 무조건 경기를 많이 뛰어야 실력이 느는데, 그러지 못 하니까 많이 미안하죠. 구단들이 너무 성적에 급급해서 나오는 현상 같아요. 감독님들 목숨이 파리 목숨이잖아요. 성적을 내려면 잘 하고 노련한 선수를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후배 선수들을 키울 수가 없죠. 구단 측에서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줬으면 좋겠어요.
전주원, 김영옥, 이미선 세 선수와 함께 오랫동안 경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라이벌의식은 없나요? 라이벌 의식은 없어요. 어릴 땐 있었죠.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넘어야 될 산이 있었죠.
(전)주원 언니요. 근데 지금은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까 그냥 동반자 같아요. 주원 언니도 잘 했으면 좋겠고, 영옥 언니, 미선이 모두 잘 됐으면 좋겠죠. 주원 언니 덕에 저희 수명이 좀 더 길어진 것 같아요.
요즘 후배 중에 잘 한다고 생각하는 후배 있나요? 저희 팀 세미도 잘 하고, 다른 팀에선….
(이)경은이가 잘 해요. 경은이도 타고난 게 있는 것 같아요. 패스하는 거 보면 센스가 있어요.
좀 더 많이 클 것 같아요.
좋아하는 남자선수도 있나요? 이상민이랑 전희철이요. 예전에 경복고등학교에서 농구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고교 농구도 인기가 많았죠. 경복고에 전희철이랑 우지원이 있었거든요.
길쭉길쭉한 선수들이 막 덩크슛하고 그러니까 너무 멋있는 거예요. 예전에 대표팀 있을 땐 제 별명이 신기성이었어요. 농구하는 스타일이 비슷하다고요. 대표팀 오빠들이 저만 보면 “기성아, 기성아” 그랬죠.(웃음)
그렇다면 친한 남자선수도 있나요? (황)진원이랑 (송)영진이요. 마산 고향 후배에요.
예전에 제가 중학교 3학년일 때 진원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제가 드리블 가르쳐주고 그랬어요. 걔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똑똑히 기억하죠. 진원이, 영진이랑 밥도 먹고 그랬어요.
그리고 (현)주엽이랑도 친했어요. 대표팀 시절 때 만나면 얘기 많이 하고 그랬죠.
농구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이 언제세요? 금호생명에서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지만, 한가지가 더 있어요. 예전에 방콕 아시아 선수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저랑 (박)정은이가 막내였던 시절이죠. 일본이랑 경기를 했는데, 저희가 11초 남기고 1점 뒤지고 있었어요.
그때 (유)영주 언니가 5반칙을 당했어요. 당시 감독님이 임영보 감독님이셨는데, 누가 들어가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선수들은 다 부담이 돼서 등 돌리고 있었죠. 그때 감독님이 “김지윤 너 들어가” 하시더라고요. 막내였으니 얼마나 긴장이 됐겠어요. 그때 일본 선수 자유투였는데, 주원 언니가 자유투가 실패하면 뒤도 보지말고 뛰라고 했죠. 정말로 일본 선수가 자유투를 실패하더라고요.
그러고는 주원 언니가 리바운드를 잡아서 저에게 패스를 해줬고, 제가 쏜살같이 달려가서 마무리를 했죠. 그래서 저희가 우승을 한 기억이 있어요. 그때 정말 너무 기뻤죠. 11초 뛰고 역전골을 성공시켰으니까요. 하하. 처음으로 나라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기분에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은퇴 전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세요? 어시스트상을 9번 타봤는데, 한 번 더 해서 10번 채우고 싶어요. 근데 기회가 올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개인적인 것보다는 다른 선수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저는 그동안 개인적인 영예를 많이 이뤘으니까, 이제는 동료 선수들에게 그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 전에도 “득점 욕심이 많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거든요. 동료들을 살려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농구 욕심 여전해
김지윤은 여자농구선수 중 몇 안 되는 주부농구선수다.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아이 걱정도 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이보다 농구에 대한 욕심이 더 많단다.
숙소생활 때문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별로 없으실 것 같아요. 네. 남편은 사업 때문에 필리핀에 가 있어요. 한 달에 1~2번 정도 보는 것 같아요.
남편께서 경기장에는 자주 오는 편인가요? 아니요. 저는 남편이 경기 보러 오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왠지 남편이 경기장 자주 오면 그냥 할 일 없는 사람 같아 보여서 별로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주위에서는 남편이 잘 안 오니까, “혹시 헤어진 거 아니냐, 사이가 나쁜 건 아니냐”라고들 물어보시는데, 절대 그런 건 아니고요. 잘 지내고 있어요.
아내로서 김지윤은 어떤가요? 0점이에요.(웃음) 남편이랑 떨어져 있을 때가 많고, 제가 집에도 못 가고 그러니까요. 요리도 잘 못하고요. 저는 이상하게 요리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사실 남편이 예전에 레스토랑을 한 적이 있어서 요리를 잘 해요. 그래서 제가 요리에 대한 욕심이 없나 봐요. 나중에 아기 낳으면 요리도 배워야죠. 저희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뭐든지 닥치면 잘 한데요. 하하.
2세 걱정도 하실 것 같아요. 그렇긴 하죠. 근데 아직까지는 농구선수로서의 욕심이 많아요.
좀 더 오래 선수생활하면서 제가 못 해본 것들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우승도 더 해보고 싶고요.
애를 낳으면 농구를 못 하잖아요. 남편하고도 아이 얘기는 다 끝난 상태라 이해를 해 주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전)주원 언니가 진짜 부럽고 대단한 것 같아요. 언니는 애 낳고도 복귀해서 정말 잘 하잖아요.
쉴 때는 무엇을 하나요? 요즘 영어공부를 시작했어요. 아직까지는 단어만 외우는 수준이에요.
운동을 할수록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포크아트(Folk Art)’란 것에 빠져있어요. 판자에 색칠하는 미술인데요. 비시즌 때 동생이랑 같이 배웠는데, 너무 재밌어요. 한때는 운동 그만두고 “그거나 할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만큼 빠졌다니까요. 그리고 스트레스 쌓일 땐 가끔 피아노도 치곤 해요. 잘 치는 건 아니고 제가 칠 줄 아는 거 몇 곡씩 연주하곤 하죠. 그러면 스트레스가 좀 풀리더라고요. 제가 예능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워낙 뛰어다니는 일을 하다 보니 더 그런 쪽에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운동 때문에 여자로서 누려보지 못한 것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아쉬운 마음은 없으세요?
물론, 조금은 있지요. 하지만 농구 때문에 저의 20대를 정말 행복하게 살았고, 많은 분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괜찮아요. 제가 농구 아니면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겠어요. 다른 것보다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조금 남는 것 같아요. 운동을 하다 보니 공부를 많이 못한 게 사실이죠. 하지만 제가 공부를 계속 했다면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것 같아요. 지금 저의 인생에 만족하고 있답니다.
은퇴 후에 지도자도 계획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은퇴 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들어가는 게 목표에요. 체육관련 공부를 해서 지도자가 되는 거죠. 아직은 먼 꿈같은 이야기죠. 제가 정말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글 곽현 인터넷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2010-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