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군대라는 특별한 조직의 경험을 공유한 사나이들은 일면식이 없어도 동기라는 사실 하나로 바로 말을 트고
스스럼이 없다.
작년 11월 이후 이 나라에 광풍이 불어 무고한 대통령과 국내 최대 재벌총수가 영어의 몸이 되었다
눈보라 치는 시청광장에서 처음 만난 우리들은 겨우내 열심히 태극기를 흔들며 법치를 외쳤지만 무위로 끝났고 허탈해진 우리들은 선릉의
한 생선횟집에서 모임을 결성했다
이른바 “바람의 아들”이다
옛 중국 은나라의 백이와 숙제는 불의한 세상을 등지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평생 고사리 뜯어 먹다가 세상을 하직했지만
현대를 사는 ‘백이.숙제’는
영악하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쨋던
살아남아 ‘내가 죽거든 성문 앞에 내 눈을 걸어 吳나라가 망하는 걸 보겠다’는
오자서(伍子胥)의 결기와 오기로 세상을 살기로 했다
‘바람의 아들’들은 바람처럼
무애(無涯)하다
자식들 다 키워 내보냈고 연금과 적금으로 최소한의 재정적 여유는 있다
건강은 아직도 쇠를 씹어 삼킬 정도고..
시간은 모래알처럼 많다.
바람의 본질은 이동, 그리고 자유!
바람의 아들답게 우리들은 여행을 통해 자유와 지혜를 얻기로 결의했는데 첫번째 목적지는 중국의 실크로드.
평생을 교직에 있었던 金군과 은행가였던 張군의 버킷리스트 중 상위를 차지하던 곳인데 직업이 여행인 權군이 일정 작성과 현지수배를
담당하고 토목회사사장인 康군이
합류했다
환갑을 훌쩍 넘긴 4명의 중늙은이들이 중국의 서북쪽 오지를 자유여행으로
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자칭 여행전문가 권군도 처음 가보는 길이라 한달 여 중국내 교통편, 숙박, 일정 짜느라 X고생했다는..
[제1일]
실크로드는 ‘역사와 문명을 만든 위대한 길’이다
고대 중국과 로마를 잇고 사람과 문화와 경제, 종교와 예술이 오고
가는 소통의 장이었다
실크로드여행은 西安에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들은 일정상 감숙성 란저우(蘭州)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중국 동방항공 상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서는
란저우로 바로가는 항공편이 없어 상해를 경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 개념도
가운데 붉은 타원형이 타클라마칸사막을 싸고 있는데 위쪽의 길이 천산남로, 아래쪽은 서역남로이다.
비교적 교통이 뜸했던 천산북로(우루무치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길)는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다
상해 도착시각은 09:45시. 란저우행 항공편 출발시각은 16:05시, 환승시간 5시간여를 이용 택시로 공항을 빠져 나와 와이탄(外灘)에서 상하이의 마천루들이 그려내는 멋진 스카이라인을 감상하기로 한다
왼쪽부터 김, 장, 강군. 필자는 찍사로 빠져 있다
비구름을 뚫고 솟아있는 상해의 마천루들이 인상적이다
맨 왼쪽은 동방명주탑(통신탑, 전망대) 맨 오른쪽 구름을 뚫고 솟아있는 최고층빌딩은 상하이타워.
[제2일]
전일 9시경 란저우에 도착, 호텔서 푹 자고 난 다음날 우리는 첫번째 여정인 병령사석굴(빙링스-炳靈寺石窟)로 향한다
병령사석굴은 란저우시에서 자동차로 2시간여 서남쪽으로 달려 우선 유가협댐으로 가야한다. 이 유가협댐에서 쾌속선을 타고 인공호수인 비파호를 가로질러 1시간 정도 달리면 병령사가 나온다
병령사는 4세기경 북위(北魏)시대 때 황하 상류에 있는 소적산(小積石山)에 조성된 석굴로 서쪽으로는 하서회랑으로 접해있고 동쪽으로는 장안으로 연결되는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많은 상인과 승려들이 거쳐가던 곳이다
병령사는 중국말로는 '빙링스'인데 빙링이라는 말은 티베트어로 '십만불(十萬佛)'이라는 뜻이라 한다. 불교가 성하던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절 이곳에 수도 없이 많은 석굴이 조성되었음을 짐작케하는 말이다
쾌속선을 타고 가면 보이는 풍경들.. 병령사 선착장 부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밋밋한 풍경들..
병령사 선착장 주변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기암괴석의 봉우리들이 절경이다
쾌속선이 정박하는 선착장
쾌속선은 빠르긴 하지만 좁고 불편했다. 갑판이 없어 선내에 꼼짝없이 1시간여 갇혀 있어야.. ㅜㅜ
배에서 내려 5분여 걸어야 병령사석굴 입구에 도달한다
병령사 입구
긴 회랑식으로 된 탐방로 외에 아랫쪽에는 도보길도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드뎌 병령사 大佛이 보인다. 높이 27m의 거대한 석불이다
상반신은 석재, 하반신은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다. 최근 보수를 한 탓인지 깔끔해 보인다
대불 왼쪽의 수직계단을 올라가면 169호, 173호 석굴이 나오는데 보수 중이라 올라갈 수가 없었다
북주시대의 조각
조각마다 일련번호를 매겨 관리하고 있다
병령사가 있는 소적산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탐방하는 이들의 눈을 감탄케한다
자매봉
부지런한 강군이 어느새 난간 아래로 내려가 친구들을 위해 로우샷을 시도한다
그림같은 풍광을 배경으로..
강군 특유의 포즈. 카메라를 거총자세로 드는.. 헌병 출신인가?
김교장이 강군의 카메라삼각대(엄청 무거움)를 대신 들고 고생이다. ㅋㅋ
강군의 별명은 '강틀러'. 독재자다. 그래도 예쁘게 사진을 찍어 액자까지 만들어 보내주는 성의가 아주 괘씸하다
바람의 아들의 리더이자 이번 여행을 기획한 훈남 張군
다시 쾌속선을 타고 댐으로..
유가협댐은 1961년 완공된 댐으로 높이가 148m, 길이가 840m의 큰 댐으로 저수량은 57억 입방미터에 이르는 대규모 댐이다
병령사석굴 매표소가 있는 건물인데 무슨 용도인진 몰라도 엄청 크다. 중국인의 허장성세가 그대로 느껴진다
강군이 예의 거총자세로 또 폼을 잡고 있다
깐수성(甘肅省)은 한무제가 이 지역을 평정하기 전까지는 흉노족이 세력을 떨치며 살던 곳이었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 7대 황제 무제(武帝)가 장건(張騫)을 서역으로 파견하여 서역의 지리와 정세를 살핀 후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 두 맹장을 시켜 감숙성의 흉노들을 토벌한 후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설치했는데 바로 우리가 여행하게 될 하서주랑의 도시들, 무위(武威), 장액(張掖), 주천(酒泉), 돈황(敦煌)이 바로 그 도시들이다
하서주랑(河西走廊)은 동쪽은 난주 인근의 오초령(烏鞘嶺),에서 서쪽은 돈황 부근의 옥문관(玉門關)에 이르며, 남쪽은 기련산(祁連山)과 아미금산(阿爾金山)), 북쪽은 마종산(馬鬃山), 합려산(合黎山) 및 용수산(龍首山)) 사이의 길이 약 900km(폭은 10km~100km)에 이르는, 서북-동남 방향으로 늘어선 좁고 긴 평지이다. 복도 모양과 같고 黃河의 서쪽에 있어 하서주랑(河西走廊)이라 부른다.
실크로드는 서안을 출발해 난주에서부터 본격적인 서역의 길에 들게 되는데 이 여정이 바로 하서주랑인 셈이다
란저우(蘭州)는 감숙성(甘肅省)의 성도(省都)이다
인구 약 370만명, 서북지방 최대의 공업도시로 모택동이 장개석와 패권을 다툴 때 장개석과 내통한 지역이라고 해서
부러 개발에서 소외시켰던 지역이기도 하다
병령사를 탐방한 우리 일행은 바로 란저우 시내로 복귀해 바로 란저우 시내를 둘러 보았다
황하제일교에서 조망한 란저우 시내
황하제일교(黃河第一橋)
1907년 淸末에 놓여진 황하 최초의 다리. 손문의 호를 따서 中山橋라고도 한다
다리 아래로 그야말로 누런 황토빛의 물이 흐르는데 연간 황하가 하류로 흘러 보내는 토사량이 자그만치 16억톤!
황하제일교는 유서깊은 백탑산공원 바로 앞에 있다. 김군 뒤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위의 탑이 바로 백탑이다
철교라서 운치는 없다
란저우 전통시장 초입
시내엔 위구르족이 많이 눈에 띈다
백탑산 공원(白塔山公園)
황하모친상(黃河母親像)
[여행 TIP]
** 여행지 특징 : 병령사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 대불의 위엄과 수많은 석굴과 조각이 인상적임
** 좋았던 점 : 병령사석굴 주변의 기암괴석 봉우리와 호수가 어우러진 절경
** 별로인 점 : 란저우에서 병령사까지 장시간 이동 (란저우-유가협댐 : 2시간/편도, 유가협댐-병령사 : 1시간/편도)
페리 쾌속선의 운행시간 상 병령사 체재시간 너무 짧음.(1시간 정도)
** 여행경비 :
- 전세승합차(란저우-유가협 왕복) : 800元 (하루 전세, 팁포함)
- 페리쾌속선 운임 : 125元(인당/왕복)
- 병령사 입장료 : 50元(인당)
(계속)
첫댓글 서역만리, 손오공, 그이후엔 촉나라 유비가 자리잡은 곳(?) 사천성에서 가까운 곳인가 봄니다.
주유천하, 작지만 야무진 꿈이 펼쳐지고 있슴니다.
시리즈로 된 이 탐방기는 이 카페 해외테마여행 '실크로드'에 계속 연재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