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사각지대에서 작동하는 사적 통제
⑥#26-1009 금 02》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
by여유시간
Oct 9. 2026
공공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라고 해서 그 안의 권력까지 공적인 것은 아니다.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도, 누군가 그 권한을 이용해 타인의 일상과 관계까지 통제한다면 그곳에는 또 다른 형태의 권력이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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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직은 종양이고, 소통은 징계 대상인가
2026년 10월 8일 MBC 보도에 따르면, 서울 마포청년센터의 채용 관련 서류에는 3인 이상의 사조직을 금지하고, 특정 직원들이 모여 단체 대화방을 만드는 행위도 징계 대상으로 삼는 내용이 담겼다. 입사 동기 모임과 연령별 모임, 성별 모임까지 사례로 제시하며 사조직을 ‘집단의 종양’이라고 표현하고 수시로 점검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미담장학회는 앞서 상급자의 지시에 대한 반대 의견은 한 번뿐이라는 취지와 ‘백의종군의 자세로 일하라’는 문구가 담긴 근로계약서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운영기관 측은 이번 서류가 공식 양식이 아니며 인사 담당자가 임의로 추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단체 대화방 금지는 과거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예방하고 악의적인 사조직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모든 통제 수단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괴롭힘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직원들의 정상적인 소통과 자율적인 관계 형성까지 제한한다면, 예방과 통제의 경계부터 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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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자의 지시가 조직의 법이 될 때
조직에는 업무상 지휘와 질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휘권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권한이지, 구성원의 생각과 인간관계까지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은 아니다.
상급자의 지시에 이견을 제시할 기회를 제한하고, 동료끼리의 대화와 모임을 감시한다면 구성원은 문제를 발견해도 말하기 어려워진다. 서로 의견을 나누며 개선책을 찾는 대신,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부터 걱정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침묵일 수 있다. 겉으로는 질서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여도, 내부에서는 신뢰가 무너지고 문제를 드러낼 통로가 막힐 수 있다.
특히 청년들의 권익과 성장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면 더욱 엄격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청년을 위한 공간을 운영하면서 정작 그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자율성과 인격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기관이 내세우는 목적과 실제 운영 방식 사이에 심각한 모순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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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금지하지 않는다고 정당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살펴볼 문제는 특정 문서가 법률에 위반되는지 여부만이 아니다. 실제 징계가 이루어졌는지, 어떤 근거와 절차로 제한을 두었는지, 직원들의 권리를 침해했는지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관련 법령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법적 위반 여부와 별개로, 조직의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는 중요한 사회적 질문이다. 법에 명시적인 금지 규정이 없다고 해서 모든 통제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부당해 보이는 모든 조치가 곧바로 불법이 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 차이를 구분하면서 법과 제도의 빈틈을 살펴야 한다.
위탁 운영기관이 공공의 자산과 예산을 바탕으로 사업을 수행한다면, 운영의 자율성만큼 책임도 따라야 한다. 위탁을 맡긴 지방자치단체 역시 계약과 감독 체계를 통해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있게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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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작은 일터에서도 작동한다
우리는 권력이라고 하면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거대한 조직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권력은 일상적인 일터에서도 작동한다.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 계약을 연장하는 사람, 징계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할 때 구성원은 쉽게 약자가 된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 하지만, 법을 알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러기 어려운 사람 사이에는 현실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사회초년생은 부당함을 느끼더라도 문제를 제기했을 때 감당해야 할 불이익을 먼저 걱정할 수 있다.
그래서 법의 평등은 법전에 적힌 문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권한의 한계를 지키는지,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는지, 감독기관이 제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현실의 평등은 달라진다.
공공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면 그 책임은 더욱 무거워야 한다. 청년을 지원한다는 명분이 내부 구성원을 통제하는 면허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어느 편의 주장이 더 큰가가 아니라, 권한이 누구에게 주어졌고 그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으며, 잘못된 통제를 누가 바로잡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법의 사각지대는 법이 전혀 없는 곳에만 생기지 않는다. 법과 제도가 존재해도 권한을 감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에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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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물색없는 것들#26》AI수정·협업》실용인문학을 독학한 관찰작가 여유시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