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을 생각하다
1. 젊은 국악인(대금 연주자) 이주향이 쓴 <국악은 젊다>를 읽었다. 국악의 입문서로는 적절한 책이라 생각되었다. 입문서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입문서가 다루는 영역의 핵심적인 내용이나 정보를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대략 살펴본 대부분의 국악 입문서는 국악의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책의 부피도 컸고 내용도 지나치게 많았다. 입문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 입문서는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계속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의지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그 분야로 끌어들이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악은 젊다>는 국악의 고갱이를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고 현재의 국악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악’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내딛는 첫 걸음의 동반자로 적절하다.
2. 2020년, 청년 시절이었던 1980년대와 비교할 때 아쉬운 장면 중에 하나는 전통적인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의 실종이다. 1980년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전통의 화려한 부활이 진행된 시기였다. 아이러니 하지만 5공 군부세력이 최초로 기획한 대규모 문화행사도 ‘국풍’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문화를 중심으로 놓았다. 각 대학에는 탈춤반이나 농악반과 같은 동아리가 활성화되었고 곳곳에 만들어진 야외극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상설로 이루어졌다. ‘전통’은 ‘민중’이라는 정치적 의식과 결합되어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그 역할을 다하였다. 전통적인 우리 문화는 현대적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우리의 익숙한 일상이 되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작은 소극장에서 공연된 박동진 선생의 판소리 마당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일시적 융성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문화적 유행은 항상 일정한 주기를 띠며 반복된다고 하지만 우리 문화의 퇴락은 급격하면서도 완벽한 소멸의 방식으로 진행된 느낌이다.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소위 ‘○○방’의 성공과 실패의 구조와 동일한 생존주기가 우리 문화에도 작용된 듯싶었다. 우리에게 일상적인 위로가 되어야 할 영역이 물질적 영역과 동일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버려졌다는 느낌은 아쉽다. 이제 우리 문화는 특정한 무대에서만 공연되는 ‘예술’로 전환되었다. 과거 마당에서 자유롭게 펼쳐졌던 다양한 우리 문화의 활력을 다시금 일상적 삶에서 확인하고 싶다.
3. 한국의 음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왕실과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정악’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들이 즐겼던 ‘민속악’이다. 우리의 정악은 조선 시대 유교적 통치이념에 의해 정립되어 계승되고 활용되었다. 이러한 정신적 배경은 ‘종묘 제례악’과 같이 500년 이상의 전통을 유지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형유산으로 등재된 ‘종묘 제례악’은 제례악의 원조인 중국에서도 원형에 대한 연구 필요성 때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이다. ‘종묘 제례악’의 특징은 단순히 중국의 음악을 그대로 계승한 것을 넘어 우리의 현실에 맞도록 개정된 문화의 수용과 창조라는 바람직한 문화계승 모델의 한 사례라는 점이다. 한국 정악의 자랑스런 힘을 확인하면서도 아쉬움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은 조선 조 이전부터 전승되었던 많은 음악들이 ‘유교’라는 원리에 의하여 변형되고 통합되어 다양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정악의 대표적인 음악 ‘수제천’은 과거 고려가사 ‘정읍사’가 변형되어 가사는 사라지고 연주곡만 남은 형태이며, ‘영산회상’도 불교 음악이었지만 유교적으로 재해석되어 현재의 형태가 되었던 것이다. 유교적 통합의 힘은 민속악의 영역인 ‘판소리’에까지 침투했다. 기록에 따르면 판소리는 고종 때 12마당으로 정리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판소리는 5마당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판소리가 사대부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유교적 윤리에 맞지 않는 인간의 자연스런 성을 다루거나 양반의 위선을 조롱하고 남녀차별의 현실을 조롱하는 내용들을 제거한 결과였다. ‘유교’의 억압적인 성격이 민중 문화에까지 끼친 ‘다양성’의 억압이라는 부정적 특징은 안타까운 일이다.
4. 국악에서 가장 관심을 가는 영역은 ‘민요’이다. 민요는 민중들의 가장 솔직하고 진솔한 감정이 투영되어 있는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진실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요가 흥미로운 데는 민요마다 지역의 특징이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도 한 몫 한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지역마다 다른 음악의 특징을 국악에서는 ‘토리’라고 하는데 서울 경기 지역의 ‘경토리’, 서도지역의 ‘수심가토리’, 남도 지역의 ‘육자배기토리’, 한반도 동부 지역의 ‘메나리토리’로 구분된다고 한다. 민요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탄생한 민중들의 내면적인 목소리다. 민요 속에는 노동의 고통, 가족관계의 어려움, 차별받는 민중의 울분, 그러면서도 모든 고통과 슬픔을 넘어서려는 의지와 해학이 담겨 있다. 최근 창덕궁 앞에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이 설립되었다. 우연하게 방문해서 전국의 민요를 들어보았는데 감상할 수 있는 민요가 많지 않았다. 민요에 관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고 우리 민요의 특징을 전체적으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곳의 탄생을 축하하면서도 좀 더 많은 곡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기대해본다.
5. 지금도 대학의 국악 관련학과에서는 수많은 졸업생들이 배출되고 있다. 이들은 새롭게 접하게 되는 음악 활동에서 엄청난 어려움과 직면할 것이다. 과거의 전통 음악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악의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음계와 형식이 가미된 ‘창작 국악’이 만들어지고 있고 국악이 낼 수 있는 소리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전통적인 악기들이 개량되고 있다. 특히 관심을 가는 것은 양악과의 협연으로 이러한 노력은 국악의 보존과 발전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국악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국악의 방향과 일반적인 음악 애호가들이 원하는 국악의 모습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소위 ‘퓨전국악’ 공연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다. 국악의 특징과 양악의 특징이 버무러져 만들어진 음악은 분명 ‘혼성’의 독특함으로 흥미를 주지만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음악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삶의 배경과 단절되었을 때 그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며 생명력을 잃기 쉽다. 민요에 관한 선호도가 높은 것도 이러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어떤 새로운 ‘국악’이 만들어져야 할까? 국악에 대한 깊이가 부족한 관계로 아직 말하기 어렵지만 앞으로 감상자이자 수용자로서 이 문제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우선은 <국악은 젊다>의 저자가 말한 다음과 같은 태도를 국악에 참여한 사람들이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단련시킨 다음이 아니라면 창작음악과 퓨전음악은 그 이름과 달리 창작도 퓨전도 아닌 괴상한 무엇이 되어버린다. 새로움과 신선함은 항상 깊은 내공 뒤에 온다.”
6. 감상자로서 한국인으로서 ‘국악’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많이 접하고 친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 복사해 두었던 판소리 다섯 마당의 완창 무대를 천천히 시간을 내어서 감상해 보아야겠다.
첫댓글 전통적인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의 실종. 80년대 우리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