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잡는 해병이 책(冊)을 잡았다. 한 달에 책 2권씩, 전역 때까지 50권을 읽겠다고 눈을 부릅떴다. 해병대 관계자는 "현대전에서 전투력은 체력뿐 아니라 지식에서도 나온다"며 "처음엔 구타·가혹 행위가 많다는 오해를 불식시키려고 독서운동을 시작했는데 긍정적 효과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해병들의 책 읽기는 지난 2013년 취임한 이영주 해병대사령관이 '리딩 1250' 운동을 제안한 데서 시작했다.
군기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해병대 특성상 '사령관님 말씀'에 무조건 따르는 '군대식(式) 강제 독서'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난해 해병대 제2사단 포5대대는 '한 달 2권 이상 독서율' 84%를 달성했다. 장병들은 주로 책 6000권을 보유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다. 부대는 취침 시간 전 30분을 책 읽는 시간으로 보장했고, 식사 전후나 훈련 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자유롭게 독서할 수 있도록 했다.
해병들이 책을 읽게 하는 수단으론 채찍 아닌 '당근'이 사용된다. A4 용지 1장 이상 분량 독후감을 써서 중대장에게 제출하면 독서 실적을 인정받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다. 10권을 읽으면 1박 휴가를 준다. 50권 분량 독후감을 제출하면 5박6일 휴가를 받는다. 병사 중에선 "처음에는 휴가를 가고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젠 독후감 쓰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독서가 재미있다"는 말도 나온다. 난독증(難讀症)이 있거나 '죽어도 책은 싫다'는 병사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달리기 100㎞에 1박을 주는 '체력 마일리지제'도 병행하고 있다.
군대라고 해서 얄팍한 자기 계발서나 실용서 위주로 읽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포5대대 관계자는 "도서관엔 '소크라테스의 변명'(플라톤), '명상록'(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채근담'(홍자성) 같은 동서양 고전도 있는데, 해병들이 이런 책들도 곧잘 빌린다"고 말했다.
해병들이 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박진광(23) 병장은 입대 후 지금까지 110권을 읽은 독서왕이다. 그는 "입대 전 읽은 책을 다 합쳐도 30권이 되지 않을 만큼 지독히도 책과 거리가 멀었는데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하다 보니 글 읽는 속도도 붙고 글쓰기 실력도 느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마이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를 완독하고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며 "요즘 올리버 예게스의 '결정 장애 세대'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혁(21) 상병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위대한 개츠비'(F 스콧 피츠제럴드)를 꼽았다. 특히 쾌남(快男) 조르바에게서는 세상에 맞서 주체적 삶을 살아가려는 호연지기를 느꼈다고 했다. 박 상병은 "'인생은 무엇일까'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인생에서 꼭 한 번쯤은 해봐야 하는데 군대에서 인문학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라 지켜야 할 군인이 독서삼매에 빠지면 전투력이 약해지지 않을까. 배정훈 중령(해사 48기·대대장)은 "철저한 훈련은 물론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서 문화가 정착되면서 구타·가혹 행위, 군기 문란 행위가 50% 이상 줄었다. 결과적으로는 전투력이 상승한 셈"이라고 말했다.
혈기왕성한 20대 초반 남성이 모인 군대에선 욕설이나 폭언이 난무하기 쉬운데 이런 문화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병사들은 "책을 가까이하니 자신도 모르게 말이 순해지고, 분위기도 부드러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휴가 때 술집 대신 서점에 가서 신간 또는 베스트셀러를 찾아보는 병사도 있다. 민간인과 시비가 붙는 등 '사고'를 칠 가능성은 더 줄어든다. 박진광 병장은 "휴가 나가서 친구들이 '뭐하냐'고 물으면 '책 읽어'라고 말하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섭섭했다"고 말했다.
첫댓글 좋은 글이네요. "해병대의 변신, 해병대의 사고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책 읽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우리 당사자들도 "책 읽기"를 많이 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읽기 저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존감세우는 지름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