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 春秋时代 , Spring and Autumn Period , Chūnqiū Shídài , 366년]
B.C. 770 주(周)의 동천(东迁) 이후부터 B.C. 221 진(秦) 시황제(始皇帝)의 통일까지의 시기로 공자(孔子)가 사서인 춘추(春秋)에서 이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한 데서 붙여진 이름. 이 시대는 지방분권적인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진(秦), 한(汉)의 중앙집권적인 군현제가 실시되어가는 과도적인 시기로 존왕양이(尊王洋夷)의 정신을 숭상하며 지방 분권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전국시대에 들어와서 존왕양이의 정신이 쇠퇴하고 오로지 약육강식의 논리만 살아남음으로써 7개의 강국 진(秦)ㆍ초(楚)ㆍ연(燕)ㆍ제(齐)ㆍ한(韩)ㆍ위(魏)ㆍ조(赵)의 전국칠웅(战国七雄)만이 남아 중앙집권적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춘추시대의 군주가 후(候)라고 칭했던 반면, 전국시대의 군주는 왕(王)이라 칭하는 등 지방분권에서 중앙집권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춘추시대에는 최초로 철제농기구가 사용되고 우경(牛耕)이 시작되는 등 경제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으며 이러한 경제 발전은 사회구조에 변화를 가져와 은(殷)ㆍ주(周)로 대표되는 씨족 사회가 사라졌고 가문의 배경이 없더라도 본인 자신의 재능으로 활약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으며 평민, 귀족, 왕족에 상관없이 군주들은 나라의 북국강병에 도움이 되는 인재들을 등용하였고, 이러한 사회 흐름에 따라 다양한 사상을 주장하는 제자백가(诸子百家)도 등장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춘추시대 [春秋时代, Spring and Autumn Period, Chūnqiū Shídài] (중국시사문화사전, 2008. 2. 20., 이현국)
전국시대
[ 战国时代 , Warring States Period , Zhànguó Shídài , 182년]
기원전 403년~221년 사이의 시기. 기원전 403년 진(晋)의 대부 조(赵)ㆍ위(魏)ㆍ한(韩) 3가문이 주(周) 왕실로부터 정식 제후로 공인받으면서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제후들이 주(周)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지향해 제각기 왕을 칭하였으며, 진(秦)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곱 국가인 진(秦)ㆍ조(赵)ㆍ위(魏)ㆍ한(韩)ㆍ제(齐)ㆍ연(燕)ㆍ초(楚)를 전국칠웅(战国七雄)이라 칭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국시대 [战国时代, Warring States Period, Zhànguó Shídài] (중국시사문화사전, 2008. 2. 20., 이현국)
5호 16국 시대 ( 317-439) 122년
유목민족이 독립하고 이민족 지배기 5호 16국 시대가 열리다 (5 오랑케)
삼국이 위의 사마염이 통일하어 진나라가 시작됬다.
그런데 팔왕의 난이 일어났다. 서진(西晉)의 황족, 사마씨 8명의 왕들이 제위 계승 문제로 10여 년간의 내란에 휩싸인 것이다. 이들은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의 유목민족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정쟁에 투입했다. 스스로 호랑이들을 불러들인 꼴이었다. 점차 서진의 실체가 결코 강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유목민족들이 서서히 독립하게 되었다. 그중 첫 번째 인물이 남흉노의 족장 출신인 유연이었다.
304년 유연이 한(漢), 후에 조(趙)로 바뀌어 전조(前趙)라 불리는 나라를 건국했다. 중국 최초의 이민족 지배기인 5호16국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유연의 아들 유총은 거병하여 낙양을 함락시키고 회제를 자신들의 근거지인 평양으로 잡아다가 죽이고, 서진의 군사 10여만 명도 학살하였다. 이를 회제의 연호를 따서 영가의 난이라고 부른다. 이에 황족들은 강남으로 피하여 남경에 도읍하고 동진(東晋)을 세우게 된다. 북부의 5호 16국, 남부의 동진이
대치하게 된다.
5호란 흉노, 선비, 저, 갈, 강의 다섯 유목민족을 일컫는다. 흉노는 서쪽으로 옮겨가지 않고 남아있던 남흉노이고, 갈족은 흉노의 별종이다. 선비는 동북방에서 온 몽골계로 돌궐족 설이 있다. 저족과 강족은 티베트계로 전해진다. 사실은 이들에 의해 동시에, 혹은 시차를 두고 건국되었던 나라들은 16개국이 조금 넘는다. 그중 우리역사와 관련해서 선비족의 전연(前燕)과 저족의 전진(前秦)이 잘 알려져 있는데, 전진왕 부견은 5호 16국의 가장 위대한 군주로 꼽힌다.
전진이 북부를 한때 통일했으나 비수대전에서 동진에 패해 통일은 좌절되었다.
선비족의 척발씨가 북위를 세워 세력이 강해져 439년 중국 북부를 통일하여 5호16국은
끝났다. 북부의 북위,남부는 송의 유유가 통일하여 남북조 시대가 시작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5호16국 시대 - 최초의 이민족 지배기가 개막하다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2012. 3. 23., 안정애)
5대 10국 시대 (907 - 979; 72년)
5대 10국
중국 최후의 대분열기, 5대 10국 시기를 겪다
당이 망하고 70여년간 차례로 왕조가 들어섰다. 송이 전국을 통일하기 까지 이다
907년 황소의 부장이었던 주전충이 당 애제로부터 선양의 형식으로 제위를 물려받아 후량(後梁)을 세운 이후, 중원지역에서는 후당 · 후진 · 후한 · 후주의 다섯 왕조가 이어지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오 · 남당 · 오월 · 민 · 형남 · 초 · 남한 · 전촉 · 후촉 · 북한의 10국이 할거했다. 이들은 당나라 절도사 출신들이 많았다. 이 시기를 우리는 5대, 혹은 5대 10국 시기로 지칭한다. 960년 후주의 노장 조광윤은 공제로부터 역사상 최후로 선양 형식을 밟아 송을 건국함으로써 이 시기를 마감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5대 10국과 송의 건국 - 문치주의와 군주 독재체제가 확립되다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 2012. 3. 23., 안정애)
남북조시대 (439 - 589 ; 150년)
북위는 화북을 통일하고 남조를 정벌하려고 했으나, 양(육조)(梁)의 명장 위예(韋叡)[2]에게 종리(鐘離)에서 대패했고, 또 그 뒤에 6진의 난(六鎭之亂), 진경지(陳慶之)의 북벌 등이 벌어지며 헬게이트가 열렸다.[3]
이후 북위는 동위와 서위로 분열한 뒤에 다시 왕조가 바뀌면서 동위는 북제로, 서위는 북주로 바뀌었다. 고씨의 북제는 처음에는 강성했으나, 곡율광, 고장공이라는 뛰어난 명장들이 전부 황제에게 죽으면서 쇠퇴해갔다. 반면 우문씨의 북주는 점점 강성해졌다.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두 나라의 강을 사이에 둔 대치 지역에서 처음에는 겨울에 북주가 북제를 막으려고 얼음을 깨 도강을 막으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북제가 북주를 막으려고 얼음을 깼다.
끝내 북제를 멸망시킨 북주 무제는 중원 통일을 꿈꾸었으나 급서하였다. 황제의 장인이자 북주의 대장군이었던 양견은 권력을 장악하고 섭정을 했다. 선제(宣帝)가 매우 어리석어 난폭한 짓만 하다가 죽자 북주 정제에게서 선양을 받고, 수나라의 황제에 올랐다. 이것이 수문제다.
수 문제는 즉위 8년(개황 8년)인 588년 10월, 한금호(韓擒虎), 하약필(賀若弼) 등의 명장들에게 무려 52만 대군을 맡기고, 여덟 갈래로 군사를 나누어 남조의 진(육조)(陳)을 공격하였다. 진의 수도 건강(建康)은 순식간에 떨어졌고 우물에 숨어있던 황제 진숙보(陳叔寶)가 사로잡혀 진나라는 완전히 멸망했다
(나무 위키)
수나라로 통일
춘추전국시대는 548년 계속되었으니 분열기로 보기도 그렇고 각국이 각자도생하면서
백화 제방등 정치 문화가 존재했다.
122년 5호 16국 , 72년의 5대 10국 시기는 혼란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