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글을 쓰는 걸까? 냄새와 흔적을 지워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동물들과 달리 삶을 기록하고 족적을 남기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동물과 달리 인간은 왜 이런 욕구를 갖게 됐을까?
<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서 나는 그 답을 찾는다. 인문학 에세이도 아니고 고전 강연도 아닌, 투병하는 아내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일기에서. 인문학 저술가이자 강사인 강창래씨는 이 책의 서문에서 ‘내 삶의 한 부분을 영원히 살려두고 싶어서’ 글을 썼다고 했다.
사십년 동안 함께한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 낯선 부엌일을 시작하면서 배우게 된 것들, 암 투병이라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드물게 찾아오곤 했던 짧은 기쁨들을 남겨두고 싶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글로 쓰면 위로가 됐다’. 아내는 남편의 글에 ‘슬픈 이야기지만 독자들이 읽으면 행복할 거야’라는 평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요리책이다. 애써 만든 음식을 밝은 얼굴로 맛있게 먹어주던 아내, 그러나 먹고난 뒤 엄청난 후폭풍을 견뎌야 했던 밤의 시간들, 그나마도 아예 먹을 수 없게 돼버린 위기의 순간들이 요리마다 한줄 후기처럼 달려 있다. 볶음밥, 콩나물과 시금치나물, 잡채·떡국·계란탕과 북엇국 같은 평범한 밥상에 간절한 소망 한대접이 함께 놓였고 무염·무당 음식에 간은 눈물방울로 맞췄다.
새벽 다섯시에 강의하러 집을 나서고, 매일매일 마트에 들르고,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고, 주말이면 병원을 향했던 남편은 이제 와서 고백한다. 혼자 맛있는 밥을 느긋하게 먹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고. 대개는 커피 한잔과 샌드위치로, 서서 얼른 허기를 채우는 게 일상이었다고. 그런 사람이 쓴 요리책이라니…. 그런데도 그가 세밀하게 기록해놓은 ‘오믈렛의 비밀’과 ‘초간단 비빔밥’ ‘참나물 국수’ 같은 게 먹고싶어 침이 돌다니, 참 이상하기도 하지. 볶음밥에 찬밥이 정석인 이유는 ‘따뜻한 밥은 세상과 부대끼며 단련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물지 않아서’이고 소식(小食)이 좋은 이유는 ‘다른 생명을 적게 탐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적은, 인문학 강사다운 표현 때문이었을까.
남편이 아픈 아내의 밥상에 그토록 신경을 썼던 이유는 어쩌면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면 아무 희망이 없다. 삶이 죽음과 다를 게 없다. 즐거움과 행복함, 기쁨 그리고 그 무엇보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어야 한다. 희망이 없다면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아내는 고통과 통증에 시달렸지만, 남편의 바람대로 남편이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했다.
책은 남편의 시선으로 쓰였지만 독자로서 나는 남편의 밥상을 받아든 아내의 마음으로 읽어보려 했다. 가족들이 모두 나간 아침, 따뜻하게 데워진 밥과 국을 넘기며 숟가락질 한번, 젓가락질 한번마다 창문 너머 먼 하늘을 바라보고 아픔과 사랑을 함께 삼켰을 떠난 아내의 명복을 빈다. 그 기억을 그리움으로 품은 채 이승에 남은 남편도 부디 행복하시라 같이 빌어본다.
첫댓글 눈물방울로 간을 맞춘 음식...슬픔이 커서 더 궁금합니다...이 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