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문학과 사상
1. 1930년대 한국의 지식인들이 활동한 무대의 중심은 ‘신문’이었다. 3개의 민간신문(<조선일보>, <동아일본>, <조선중앙일보>)은 지면을 증설하고 늘어난 지면을 문학에 할애했다. 문학 특히 신문의 연재소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여 신문구독자 수를 늘리게 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여러 형태로 신문과 관여했다.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거나 신문기자가 되거나 신문편집에 참여했던 것이다. ‘신문’이 당시 한국의 문화를 주도한 것은 신문 이외에는 지식인들이 생계를 유지할 만 것이 없고 그만큼 지적 풍토가 열악했기 때문이다.
2. 신문의 연재소설 중 대부분은 우리의 역사와 역사적 인물에 관한 것들이었다. 특히 홍명희의 『임꺽정』은 중간 중간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10년 이상 걸쳐 연재되면서 수많은 작가들의 칭송과 대중의 인기를 받은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소설로 연재되었다. 작가가 신문에 참여하는 것을 비판하던 김동인도 ‘과부의 서방질’이라는 자조섞인 탄식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러한 신문 주도의 문학 현상을 두고 당시의 평론가 이건영은 『저널리즘의 문학』에서 “문학에서는 원래 개인적 독창이 중요시된다. 그러나 저널리즘에서는 개인적 독창은 극단으로 배격된다. 여기서는 표준화가 지배한다. (.....)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 문학이 발전하려면 좋든 싫든 저널리즘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인문학 또한 신문을 매개로 하여 전개되었다. 특히 30년대는 ‘조선학’ 열풍이 분 시기였다.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은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특별한 정신적 힘을 다양한 개념으로 표출시켰고 그것을 통해 우리만의 독자적인 문화적 성격을 제시하였다. ‘우리 것을 알자’, ‘조선을 알자’가 그들의 목표이자 구호였다. 이러한 인문학 운동은 점점 공고해져 가는 일제의 통제 속에서 사라져가는 민족정기를 지켜 독립을 유지하려는 시도였다. 신채호 또한 강렬한 ‘민족주의적’ 정신의 중요성을 역셜하였다. 신채호는 극단적인 민족적 시각을 통해 김부식이나 이성계와 같은 인물을 반민족적 인물로 비판하였고 최영이나 묘청과 같은 인물에 해서는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4. 조선학 운동은 모두의 동조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모더니즘 계열의 문학가들이나 사회주의자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상은 ‘과거에 집착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는가’하고 의심하였고, 김동인은 잡기 기고문을 통해 이러한 풍조를 공격하였다. “진실한 가치로 보아서 아무 곳도 보잘 데가 없는데, 단지 옛것이라 하여 좋게 보려는 것은 희극일 따름이다. 옛날 무덤의 벽화를 보고는 즉시 그 시대의 미술을 운운하는 희극학자가 적지 않다.” 사회주의자 백남운은 “식민주의 사학이 우리 역사의 ‘특수사정’을 강조하는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주의 사학은 우리 문화를 ‘초월적 지배적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는 특수한 것으로 강조함으로써 또 다른 신비적·감성적 특수 사정론‘에 빠졌다”고 공격했다.
5. 신채호의 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민족주의적 사학에 대한 강렬한 지지를 보였던 신채호는 30년대 후반 ‘아나키즘(무정부주의)’에 심취하면서 일종의 사상적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장을병이나 신용하와 같은 학자들은 신채호의 아나키즘으로의 변신을 안타까워 했지만 그러한 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김정호는 신채호의 아나키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저항적 민족주의의 내용와 방법 그리고 목표를 심화하는 발전적 계기로서 수용했고, 둘째, 그의 무정부주의는 민족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상호보완적 관계로 수용하는 것이며 셋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종합·지양하는 제3의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신채호는 관념적인 역사관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당시의 시대적 한계 속에서 민족의 생존 가능성과 발전적 계기의 토대를 찾으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6. 30년대는 사회주의 문학가들의 모임인 ‘카프’가 해체된 시기이기도 하였다. 약소민족의 해방과 새로운 계급을 통한 변화에 매료되었던 지식인들은 한국적 현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기계적이고 관념적인 사상을 맹목적으로 강요하는 움직임에 실망을 느껴 많은 사람들이 탈퇴하였다. 대표적인 탈퇴선언이 박영희의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여 잃은 것은 예술이다.”이다. 이러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속에서 관심을 갖게 하는 인물이 안재홍이다. 안재홍은 민족주의적 시각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정리하였지만 사회주의가 갖는 장점을 받아들여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사회주의가 갖는 도식적이고 관념적인 이론 적용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하나의 사상에 몰입하는 극단주의를 배격하였으며 민족적 관점을 통해 사회주의의 장점을 받아들이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시도는 우익으로부터는 ‘조선식 공산주의자’라는 비판을, 좌익으로부터는 ‘계급의식을 희석화시키는 소부르주아지’라는 공격을 받으며 양 쪽 모두로부터 소외되었다.
7. 안재홍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흐름은 ‘극단주의’에 대한 심취와 동조였다. 특정 사상이나 이념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다만 단기적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태도는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원하기보다는 변화 속에서 이해관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문제점은 신채호의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와 같은 성찰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조국의 해방을 목표로 투쟁했던 사회주의자들도 조선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했지만 오히려 소련의 지령에 종속되거나 서구적 이론에 경도된 채 민족적 저항의 가치를 훼손하고 저항의 강도를 약화시켰던 것이다. 사회주의 세력 간에 벌어진 끔찍한 살육의 현장은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이해관계의 충돌에 지나지 않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중시하는 민족주의적 관점도 결국 이광수의 사례에서와 같이 민족의 결점을 부각시켜 일제에 대한 종속을 정당화시키는 관점을 제공하였고 결국 친일적 움직임으로 전환하였던 것이다.
8. 사상과 이데올로기는 현실의 이해관계와 권력적 상황을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러한 관념적 힘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속시키고 결집시키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의 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이데올로기와 관념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 선행작업을 통해 현재 제기되는 정책과 행정적 시도의 의도와 목표 그리고 정치적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국민들의 세속적 욕망을 부추기는 행위는 교묘하게 ‘86운동권 퇴출’과 ‘이승만 띄우기’라는 이데올로기적 공격과 함께 시행되고 있다. 언제든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시도를 강화시킨다. 만약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다면 남는 것은 불평등 강화와 비루한 역사적 존재들의 우상화 작업이 될 것이다. 홍범도를 쫓아내고 <이승만 기념관>을 서울시 중심에 세우려는 시도처럼 중도적 가치를 잃어버린 권력의 힘으로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현재 도덕적, 정치적으로 파산한 야당은 무력할 뿐이다. 특히 비열하고 파당적인 지도자 주위로 모여들어 권력을 획득하려는 현재의 야당 세력은 결코 대안세력이 될 수 없다. 신문에서 수많은 경고를 날리지만 귀를 막고 직진하는 강철 심장(?)을 가진 이들의 무리를 제어시키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의 희망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윤과 이의 비열한 대선이 치러진지 3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변한 것은 없다. 현재 정치적 변화의 일순위는 이러한 구도를 파괴하는 것이다. 현재의 대통령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와 유사한 야당 세력의 위험인자는 제거해야 한다. 이제 선거의 가징 중요한 목표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여당의 승리가 기정사실로 되어가고 있는 지금, 선거의 목적은 ‘이재명 사단’의 몰락이며 새로운 민주 세력에 대한 지지이다. 그러한 몰락 이후 새로운 민주적 세력들의 결집을 통한 중도적이고 통합적인 진보정치가 시작되어야 한다. 현실적인 이유에 의해 오염된 권력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것 또한 유권자들의 방치이다. 때론 위험과 불안 속에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결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또한 현실적인 의미에서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첫댓글 - 정치판(인간의 본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의 변화는 신기하고 결과에 따라 역사는 흘러간다. 윤석렬에 대한 추천과 중용에 따른 문 대통령과 조국 장관의 결정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져왔다. 그 결과 역사의 물줄기가 꺾였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은 졌다. 그렇다면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조국도 이재명도 윤 정권 타도를 외친다. 동조하는 세력들이 생긴다. 판세 장담은 어렵다. 누가 더 옳은 판단이고, 누가 더 틀린 생각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 이번 총선에서 윤 정권 대 야당과의 싸움이 다시 크게 벌어질 태세이다. 그래도 이제 우리나라 정치 민도도 높아져 무조건적인 압승은 어렵다는 판단이다. 보수 진영의 억지 논리와 보수 언론들의 편향적인 보도는 35%의 지지층을 다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일부 진보적인 언론과 여러 시민 단체들,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밀어주는 진보 진영도 35%는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30%의 향방이 이번 선거의 결과를 나타낼 것으로 짐작된다.
- 독재 권력의 행정권을 견제하는 국회의 기능이 제대로 갖추어지면 그래도 균형잡힌 나라로 유지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살아남아야할 이유이다. 이재명의 존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야당의 방어적인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국회의 필요성이 삼권분립의 기초이다. 민주주의의 발전이 그냥 저절로 오지 않은 것처럼, 이번 선거에서도 자연적인 민주당의 승리는 그냥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큰 싸움 총선 승리 다음에 각자 노선에 따른 작은 싸움들이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