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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고전 9:19~23)
* 오늘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하는 주일이다. 정확히 500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중세교회의 관행으로 굳어져 내려오던 “면죄부 판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95가지 조항으로 피력했다. 이 문제가 공론화되자, 교회 안에서 격렬한 논쟁과 대립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루터 자신을 비롯해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물론 이후의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도사요, 독일제국 변방에 위치한 비텐베르크 대학의 일개 교수가 전체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교황, 그리고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와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놀라울 만한 사건이었다. 한국 교인들이 기독교라고 부르는 개신교회는 그런 과정을 통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것이다. 아시는 대로 개신교인에 대한 영어 표현은 프로테스탄트이고 이 말의 원래 의미는 항의자 또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 개신교인이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는 이유는 오랜 관행과 제도적인 관습을 통해 세속적으로 변질된 가톨릭교회에 맞서 성경에서 제시하는 교회의 모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 기념주일은 유대인의 유월절에 비견될 만한 날이고, 루터의 표현을 빌리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의 날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 기념주일은 개신교의 생일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루터와 초기 개신교인들이 가톨릭교회에 항의하며 이의를 제기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단지 ‘면죄부 판매’라는 외적인 일이나 형식적인 물음만이 아니었다고, “하나님이 진정 나에게 은혜로우신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른 모든 불법과 범죄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푸시는가? 내 삶에 축적된 모든 죄악들을 갖고 그분 앞에 설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은 루터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몰아붙여서 아무런 평화도 구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지 루터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세인들의 공통적인 의식 혹은 신앙심이기도 했다. 중세교회는 신자들의 이런 요청에 대해 아주 인간적인 방식으로 대응했다. 즉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물건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은총 백화점을 세워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 자비로운 하나님의 모습을 매우 신중하고 깔끔하게 고급스러운 방식으로 진열하고, 장식하고, 주제별로 정돈해서 누구에게나 매력적 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비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잠깐 동안을 위한 것이었다. 연옥을 대비하기 위한 판매도 이루어졌는데, 일 년에서 수년 혹은 오랜 기간 유효한 것도 있었다.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입할 수 있는지는 돈지갑에 달려있었다.
* 실제로 백화점의 영업은 왕성하였고, 활기에 넘쳤던 것 같다. 비록 일상에서는 조금만 검소하고 절약해서 살면, 언젠가 내 영혼과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심지어는 이미 죽어 연옥이라는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조상들조차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중세 내내 지속되었다. 그렇다. 교회가 백화점의 매표소가 된 까닭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돈으로 환산되었고, 실제로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 교회의 모든 업무가 돈으로 계산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크고 작은 포장에 담겨서 지갑을 열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미 팔려나갈 준비를 마쳤다. 단지 계산대만 통과하면 되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구매자는 정식으로 자신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투자했고, 판매자인 교회의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다음은 최근 읽은 어떤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 당시에 교회라는 백화점의 수익을 위해 열정적이었던 지배인은 마인츠의 대주교 알브레히트(Albrecht)였다. 그는 23세에 마인츠의 대감독이라는 직책을 구매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푸거(Fugger)가에 상당한 빚을 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는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직도 갖고 있었다. 교회법으로는 한 교구 이상의 감독직을 차지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지만, 어느 시대든지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 교황 역시 로마에 대성당이라는 기념물을 세우고 기독교세계에 과시하기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면죄부 판매에 앞장섰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했기에 중세 내내 이런 사업은 한동안 활개를 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정원을 마구 파헤친 멧돼지로 묘사되거나 평화의 교란자 혹은 선동자로 불리는 마르틴 루터는 도무지 이 일을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그가 보기에 이런 일은 성경과 무관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가톨릭교회는 그런 루터를 골칫덩어리요, 훼방꾼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를 파문이나 죽음으로 위협함으로써 회유시키려 했으나, 그는 결코 타협하기를 원치 않았다. 오히려 성경에 바탕을 둔 루터의 확신과 생각이 확산되어 갔다. 그렇게 해서 이제까지의 교회백화 점 대신에 새로운 복음적인 상점이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 새로운 상점이 도시마다 문을 열었을 때, 적지 않은 소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독점상태에서 경쟁상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상상을 해 보라. 이미 한 백화점이 기득권을 차지한 곳에서 어떻게 새로운 상점의 출현이 지속가능했을까? 진정한 경쟁상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 이 새 상점에서 하나님의 자비는 상당히 가격이 인하되었다. 면죄부 구입에 비하면 거의 공짜에 가까웠다. 이런 경쟁은 영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 개신교라는 상점은 불안과 소란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이전의 생활양식에 만족했던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면죄부를 판매해 온 것을 타당하고 만족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이 정도를 감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를 공짜 혹은 싸구려로 취급하는 새로운 상점을 비난하고 나섰다.
* 심지어 교회백화점의 매니저들은 새로운 상점의 방식에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너무도 많다고 비난했다. 하나님의 자비를 그렇게 헐값에 넘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한 다면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처음 출발은 개혁적이고 신선했으나, 그런 경고처럼 새로운 상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새 상점들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는 특가로 제공되었다.
* 그리고 자신들이 제공하는 상품이 모든 이에게 다 잘 맞는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상품이 좋은지 나쁜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떠나 거의 만병통치약에 가깝다고 선전했고 그 선전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며 큰 반응을 일으켰다. 새 상점은 기존의 백화점을 위협할 만큼 성장했지만 그 성장만큼 타락하고 부패했다. 이제 새 상점이 이전의 백화점처럼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 2017년이 시작되면서 종교개혁 500주년과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겹치는 해인만큼 우리사회와 교회에 큰 변화의 조짐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촛불항쟁을 통해 우리 사회는 변화의 물꼬를 텄지만 교회는 그런 기대가 무색할 만큼, 그리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입에 올리기가 멋쩍을 만큼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올해 주요 기독교단의 총회에서 결의된 내용들을 보면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이 아까울 정도다.
* 합신은 성경이 여성목사 세우는 것을 금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여성목사 안수 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거스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예장합동 역시 여성목사 안수 불가 방침을 고수했고, 이혼 후 재혼은 간음이라면서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이혼과 재혼은 모두 죄라는 신학적 입장을 제시했다. 그리고 동성애자나 옹호자의 신학교 입학, 임용을 금지하기로 결의했다. 통합은 요가나 마술 등을 금지하기도 했다.
* 기장은 성소수자 인권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임보라 목사에 대한 타교단의 이단 시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성소수자 교인목회 연구위를 구성하자는 안건을 기각시켰다. 안건이 통과되면 ‘이단’ 소리 들을 것이라는 장로들의 주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각 교단의 총회 결의 사항들을 지켜보면서 한국 교회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500년 전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은 교회가 죄인을 용서하는 곳이며 그 용서에는 면죄부와 같은 대가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누구든지 함께 할 수 있는 교회가 진짜 교회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스스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죄인이라 규정하고 판단한 사람들을 정죄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그런 규정과 판단에서 예수의 가르침, 특히 사랑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자신들의 판단만이 중요할 뿐이다.
* 개신교는 누구도 진리를 독점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내적 신념과 외적 표현을 억압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성직자의 중재 없이 직접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 그리고 평신도가 성경을 읽고 스스로 해석할 수 있게 한 것은 자유와 자율을 지닌 근대적 개인이 출현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종교자유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권리가 필요했고 이는 근대 인권의 방향과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유가 아니라 복음의 전파였다. 그 목적을 위해 유대인을 만나면 유대인처럼 될 수 있었고 이방인을 만나면 이방인처럼 될 수 있었다. 율법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그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이 되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자신과 생각이나 신앙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겠다는 열린 마음이다. 바울의 자유는 그런 열린 마음에서 비롯된다. 루터의 종교 개혁 역시 가톨릭이 1500년 동안 고수하며 주장하던 가르침에서 벗어나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복음의 전파였듯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었다.
* 바울과 루터의 자유는 무원칙하거나 무분별한 자유가 아니라 분명한 원칙과 기준에 입각한 상태에서 누릴 수 있었던 자유였다. 그러나 그 원칙과 기준이 성경이 아니라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는 자의적인 판단과 규정이라면 자신만 얽어매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까지 구속하는 무자비한 무기가 되고 만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200년 전 발생한 마녀사냥부터 현대의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이 그에 해당한다.
* 어제는 2016년 10월29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고 처음 시작된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1차 집회’ 이후 1주년이 되는 날이라 10만 명 이상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다시 촛불을 밝혔다. 각자의 기대가 다른 만큼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만큼의 변화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교회도 마땅히 변해야 하는데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씁쓸하기만 하다.
* 지난 월~화 전주, 군산, 완주 등을 돌아다니면 복음교회 목사들과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전진택, 김홍술 목사와 순천으로 오면서 홍인식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지난 여름 이후 순천청소년노동인권조례 문제 때문에 만나기도 하고 연락을 하기도 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일들을 막아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해왔었다.
* 여러 목사들과 의논을 하는 가운데 순기총에 맞설 수 있는 대항마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현실상 가장 강력하고 파급력 있는 조직인 KNCC와 결합해 순천NCC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화요일 저녁에는 김민해 목사도 만나 협조를 구했고 어제는 사랑어린배움터 마을잔치에 참여해 이현주 목사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빠르면 다음달 중으로 조직의 윤곽이 잡히고 12월 중에 설립이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 한국기독교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개혁이 아니라 퇴행을 일삼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라도 올바른 길을 걸어가자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 길을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도 이제 기독교대한복음교회의 일원으로써, 그리고 새롭게 결성될 순천NCC의 일원으로써 함께 기도하고 힘을 모아 하나님나라의 정의와 사랑을 구현하는 갈을 더욱 힘차고 꾸준하게 걸어가길 바란다.
* 종교개혁은 성경에 제시된 진리의 길을 벗어난 가톨릭의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진리의 길이다. 우리는 진리의 길을 걸어갈 때 비로서 자유로울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이야기한 내용도 그가 진리의 길을 걸어간다는 확신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바울과 루터처럼 우리도 진리의 길을 걸어가기 바란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