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평 남짓한 단칸의 월세방이 뭐가 그리 소중한지 허리도 안좋으면서 연신 불편한자세로 걸레질을 하고있는 엄마...
헤지고 늘어나버린 옷이 오늘따라 유난히 궁상맞아 보이고 초라해 보였다.
“엄마, 나 수학여행에 입고갈 바지가 없어. 청바지 하나만 사줘”
곧 있을 수학여행에 입고 갈 옷이 걱정이었던 나는, 편모가정의 우리집이 어느정도의 형편인지 충분히 인지할수 있는 나이였지만 괜한 반발심에 투정을 부려본다.
“옷이 왜 없어... 지난번에 산 옷도 아직 있잖아. 엄마가 다음에 꼭 사줄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예상했던 대답과 새옷을 샀다며 좋아하던 친구 지연이의 모습이 겹쳐지며 솟구치는 짜증에 괜히 역정을 냈다.
“맨날 다음에 다음에! 친구들은 다 새옷사는데 왜 나만 안사주는데! 엄마가 도대체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는데!”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문을 쾅 하고 닫아버리고는 밖으로 나와버렸다.
마땅히 갈데가 없어 무작정 거리를 배회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가로등이 켜질때쯤 집에 들어가니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티비를 보고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와 ? 저녁은 ? 밥차려줄까?”
“됐어... 배안고파...”
불현 듯 아까의 일이 미안해져 사과를 하기위해 말을 이어갔다.
“엄마... 아까는 내가...”
---------삐이이이이이이이이----------
귀를 아프게 하는 기분나쁜 경고음이 티비에서 갑자기 흘러나와 하려던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좀 전까지 나오고있던 월화드라마의 재방송이 갑자기 꺼지더니 잘차려입은 노년의 서양남성이 나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얘기를한다.
자막에는 [세계항공우주연합 국장]이라는 그의 소개와 함께 [인류의 혼란을 막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타개책을 모색하기 위해 지금껏 공개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손쓸 방도도 시간도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기에 공표를 한다]라는 말이 나왔다.
행성충돌...
지구멸망...
믿을수도 없었고 믿고싶지도 않은 말들이 티비를 통해 비쳐졌다.
평소 침착하고 이성적이라고 믿었던 내 자신이었지만 눈앞에 닥친 거대한 현실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주저앉아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창문을 내다보니 질서도 규율도 없는 아수라장이 되어있는 도시가 보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망가지고 깨지고 엉망이 되어갔다. 태초의 인류도, 그 어떤 짐승도 이렇게까지 포악하고 무지하며 본능적으로 행동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지금 이 순간이 꿈도 영화도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 확연히 실감이 났다.
더 이상 아무것도 송출해내지 못하고 잡음만을 뱉어내고있는 티비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가 옆에서 아무말도 없이 여전히 누워있는 엄마에게 시선이 향했다.
“엄마...이거 뭐야 ? 어떡하지 우리 이제”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게...우리 딸... 이제 어떡하지? 이러면 안되는건데...”
내가 물은건 우리 였는데 돌아온 대답은 우리딸 이었다.
엄마의 말에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가슴속 무언가가 울컥 솟구치며 뜨거운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엄마...엄마...이제 어떡해...흑...”
고된 노동과 오랜 집안일로 인해 갈라지고 거칠어져버린 엄마의 두 손이 내 손을 잡으며 나를 위로 해주었다.
“우리딸 울지마... 엄마가 ... 엄마가 ... 무슨일을 해서라도 우리딸은 살려달라고 빌어볼게”
한 날 한 시에 인류가 멸망할 예정이다. 그 누구라해도 그것을 벗어날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서조차 이 ‘엄마’라는 존재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 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옷사러 갈걸 그랬다, 괜히 우리딸 기분만 망쳤네...
엄마 허리 수술도 괜히 받았다. 그 돈이면 우리 딸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가고 싶어 했던 해외여행도 갔다 왔을 텐데... 못난 엄마 만나서 고생이 많았네...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해”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야 엄마...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흑흑... 엄마아아...”
터져버린 눈물은 그칠줄 몰랐고 한없이 흘러내렸다.
붉어진 눈시울을 딸에게 들키키 싫은 엄마는 고개를 돌려 얘기를 이어갔다.
“우리딸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이렇게 이쁜 생명이 나한테 와줘서 너무너무 고맙고 행복하더라. 꼭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가 되자고 다짐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네.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갖고싶은거 다 사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해준거 항상 미안하게 생각해...
다음 생 에는 나처럼 못난 엄마 만나지 말고 꼭 나보다 더 좋은 엄마 만나서 꼭 더 행복하게 살아, 알겠지 ??”
나약하기 짝이 없는 어린 딸이 더 무서워할까봐, 꿋꿋이 엄마는 눈물을 참았고, 엄마가 참았던 눈물만큼 내가 다 쏟아내고 있었다.
“엄마랑 마지막으로 밥 먹을까? 너 오면 해줄려고 사다놓은 고기 있어,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밥 맛있게 차려줄게”
아까 집을 나선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않아 배가 고프기도 했고 아마도 생에 마지막 식사다 될지도 모를 일 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요리를 하는동안, 밥을 먹는동안 엄마를 쳐다볼수 없고 같이 있을수 없는 그 짧은 순간마저 아까워 그냥 이대로 있자고 하고 엄마를 꼭 안았다.
단 한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이 순간이, 인류의 마지막이 결정되어져버린 이 순간.
언제나 집에 가면 볼 수 있었던
세상의 모두가 등돌려도 내편이 되어주는
내가 가시 덤불에 뒹굴어도 나를 품안에 안아줄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 전부를 다 바친
그런 엄마를...
볼수 있고
만질수 있고
말할수 있고
느낄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 남았다.
-두번째글입니다. 이사하느라 시간에 쫓기면서 급하게 쓴 글이라 허술한점이 많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뭉클~ ㅜ잘 읽었어용~
다시 봐도 좋은거 같아요^^ 내 취향임ㅋㅋ
딸이라는 반전에 모두 놀랐던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