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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활용소설창작계획서
32163476 이재원
1. 소설 제목
방어적인 인격체
2. 주제와 의도
- 주제: 여성들의 가부장제 거부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
- 의도: 사회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나 사실 모두 일반적인 사람들이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사실 모두가 특별하며 이상하다. 범법이 아닌 인격의 다양성은 모두 존중되어야 하나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배척하고 배척당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각자의 잘못이기도 하고 각자만의 잘못이 아니기도 하다. 아이는 낳고 싶어 하나 결혼을 원하진 않는 여자의 선택과. 평범에 곧 안정이 있다고 여겨오던 남자의 후회를 보며, 독자들 또한 사회에 은밀하게 내제된 가부장제,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존중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다.
3. 인물 설정과 관계 소개
이유준- 31살 남성으로 서울의 4년제 경영학과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대기업 문고계열사 마케팅팀 대리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침착하고 잔정이 많다.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고 예술을 깊게 탐미하진 않지만, 예전부터 글을 써오다 작가로 등단한 동생을 보며 내심 예술가와 이상주의자에 대한 판타지와 동경을 키워왔다. 순한 성격에 주변인들에게 헌신적인 편이다. 무의식 속에서 그러한 연유로 동생 유진의 친구 혜주를 만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애초에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할 계획이었지만, 비혼주의자이자 오랜 연인인 혜주와의 미래를 불길해 하고 있다.
지혜주- 29살 여성으로 웹툰 작가다. 네 편의 작품 중 두 편의 드라마화와 영화화가 결정되어 강연 제의도 들어오고 있다. 결정장애가 있어 무언가를 결심하기 전까지는 변덕스럽지만 그 후에는 확고하고 냉정한 편이다. 믹스견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비혼주의자이고 아이를 좋아해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이유진- 29살 여성이며 작가. 유준의 여동생이다. 자유분방하고 다소 감정적인 편이다. 재작년에 낸 첫 소설이 심심찮게 입소문을 탄 후 이번에 막 에세이를 냈다. 이곳저곳에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4. 전체줄거리
- 발단
유준은 퇴근 후 여자친구 혜주와 함께 집에서 밥을 먹다 말고 충격을 받는다. 혜주가 미국에 있는 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를 갖고 싶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간 6년을 만나면서 그녀가 비혼주의자라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변성기 목소리까지 귀여워할 정도로 무척 아이를 좋아하기에, 변덕스럽고 귀가 얇은 그 성미와 더불어 혜주의 딜레마는 곧 무너지리라고 여겼다. 거침없는 그림체 때문에 소수의 마니아층만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 연재한 웹툰의 인기와 드라마화 확정 소식은 그녀의 시니컬한 사고를 잠시 마취시키기도 했다. 그녀의 미래를 응원하는 것과 별개로 그는 혜주의 그림체가 여전히 취향에 맞지 않았으나, 세상은 이미 그녀의 개성에 열광했다. 비혼의 이유 중 하나였던 경제적 문제는 이미 해결된 지 오래였다. 마침 유준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서, 동거를 제안해 그녀의 마음을 천천히 열어볼 셈이었다. 하지만 딜레마의 결혼이 뜬금없이 미국행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던 유준. 그냥 남들 그러듯 자신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안되는 거냐고 묻지만 혜주는 완강하다. 법적으로 묶인 관계는 반드시 권태를 동반하게 돼 있다는 답변에, 유준은 지금은 안 그럴 수 있냐고 따지고만 싶다.
- 전개1
그녀의 사상을 과소평가해온 것 같아 오히려 할 말이 없는 유준. 하지만 다른 남자의 정자로 아이를 가지겠다는 것도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다. 혜주도 그런 유준의 마음을 아는 건지 발랄했던 평소와 달리 태도가 소극적이고, 이후 둘의 관계는 서먹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간이 나온 유준의 여동생 유진은 한 턱 내기 위해 호숫가에서 그와 밥 한 끼를 한다. 유진은 한때 과 동기였던 혜주를 친오빠와 연결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유진은 얼마 전에 이곳에서 외숙모를 만났다고 말을 꺼낸다. 외숙모는 남매가 어렸을 때 외가와 다툰 적이 있었다. 이후로는 외삼촌이 두바이로 발령을 가게 되어 연이 끊겼었다. 유준은 외숙모의 사납고 신경질적이었던 인상을 떠올린다. 그는 신기해하면서 호숫가에 왕왕 있는 아이들과 개들을 구경한다. 유진에게 혜주의 미국행을 알고 있었냐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혜주는 그저 외숙모 같은 악역이 되는 걸 애초에 피하려 할 뿐이라고 말한다. “넌 혜주를 괜히 공격적인 사람으로 여길 수 있지만, 사실 방어하는 쪽은 걔야. 괜히 뭘 뺏으려 하지 마. 혜주가 그냥 이 관계를 지키고 싶은 거야.” 곧 있을 북콘서트에 둘을 초청하는 유진. 유준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은 타들어간다.
- 전개2
유진이 어떤 말을 해주었던 건지, 혜주는 가끔 유준의 집에 들어와 안 하던 밥을 지어 함께 차려 먹기도 하고 대학생 때도 안 했던 아기자기한 데이트 코스를 짜오며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유준은 유진의 말과 혜주의 노력을 보며 어느 정도 응어리가 풀린다. 또 혜주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함께 북 콘서트에 가기 위해 유진의 책을 두 권 구매한다. 그러나 카페에서 무심코 혜주의 노트북을 쓰다, 우연히 그녀가 정자은행에 보낸 메일을 보게 된다. 메일 속에서 그녀는 키 185cm 이상에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온 백인 남성의 유전자를 원하고 있었다. 유준은 어쩔 수 없는 짜증이 밀려오면서 자신이 옹졸함과 이 모든 일이 어쩔 수 없는 결과로 치닫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 절정
집 가는 길, 유준이 차를 두고 온 탓에 둘은 오랜만에 함께 지하철을 탄다.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자는 혜주. 그녀가 내릴 역에 도착하지만 유준은 차마 깨우지 못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위한 배려다. 결국 종착역에 둘은 내리게 되고 같이 졸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함께 택시를 타고 혜주의 집까지 바래다준 후, 유준은 담담하게 이별을 통보한다. 혜주가 이유를 묻자 그는 더 이상 네 편이 되어줄 수 없다고 말한다. 혜주는 난 네 편이 맞지만 네 것은 아니라고 한 후, 집으로 들어간다.
- 결말
결국 유준은 동생의 북콘서트에 홀로 참석한다. 자신은 초청했으면서 다른 가족을 초청하지 않은 것에 조금 의아스러워한다. 콘서트 내내 졸음을 이겨가며 글에 대한 유진 나름의 철학을 듣던 유준은 낭독 시간이 되자 처음으로 책을 펼쳐본다. 드문드문 익숙한 일러스트가 보인다. 혜주의 일러스트다. 그제야 유준은 유진이 왜 둘이 오라고 한 것인지 깨닫는다. 동생이 읽으려고 하는 부분은 외숙모에 대해 쓴 글이다. 단순히 예민하고 기 센 성격 때문에 외가와 갈라선 줄 알았던 외숙모가 사실 두바이에 함께 안 가고 일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다투었다는 사실. 그리고 유준과 유진은 크게 의식하지 못했지만, 외가의 편애와 가부장제에서 느꼈을 외부인의 스트레스 말이다. 유진의 글에는 진실을 막 안 자의 참회, 그리고 같은 성인 여자로서의 ‘치’공감이 담겨 있다. 외숙모를 표현한 사나워 보이는 인상의 그림은 혜주와도 닮은 듯 하다. 맨 가운데 좌석에 앉아 있던 유준은 유진과 눈을 마주치는 게 어색해 밖으로 빠져나온다. 그리고는 혜주에게 전화를 건다. 해외에 있다는 통보가 들려올 뿐이다. 유준은 음성사서함에 목소리를 남긴다.
“혜주야, 널 잃고 나서야 네 그림이 정말 멋있는 그림이라는 걸 느껴. 무한하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계속 이런 식으로 살겠지. 넌 아냐. 너는 너의 그림체대로 살아.”
요즘에 음성사서함을 쓰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안다. 게다가 유준은 혜주를 6년간 봐온 파트너로서 무심한 그녀가 절대 이것을 열어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이로써 유준은 혜주는 정말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5. 수필 활용
수필 <모두 상식 밖으로>는 작중 유진의 신간 에세이 일부이자, 북콘서트에서 신간 에세이를 낭독하는 대목에 등장한다.
6. 소설의 시작 부분
홍대거리의 나름 이름난 문화복합공간인데도 강당 안은 히터를 튼 차 내부 같았다. 공기는 답답했으며 특유의 농밀한 가죽 내음이 났다. 유준은 가져온 아이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목이 더 매캐해지는 것 같았다. 목도 약하면서 왜 여기서 커피를 마셔, 더 건조해지게. 옆에서 혜주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혜주가 쓴소리하면 유준은, 투정 대신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곤 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옆 좌석에는 자신의 벗어둔 코트와 낡은 서류 가방만이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길이 막힐까 싶어 퇴근 후 저녁도 거르고 부리나케 왔다. 다른 가족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 보였지만, 이미 안에는 관객이 꽤 들어차 있었다. 행사가 시작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유준은 동생의 첫 책 반응이 좋다고는 들었으나 이 정도로 날리는 작가인 줄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날리는 작가, 이따 만나면 골려주기 좋은 말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는 휴대폰으로 무대조명 앞의 커다란 현수막을 찍었다. 그 사진을 동생 유진에게 전송해 도착했음을 알렸다. 동생에게 알겠다는 답장이 왔다. 그는 다른 가족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 가족 중에선 오늘 오빠만 초청했어.
왜? 이유를 물었으나 유진은 메신저를 읽은 후에도 잠시 답이 없었다. 그 대신, 혜주도 왔지? 하고 되물을 뿐이었다. 유준은 읽었다. 답장할 수는 없었다.
그 날은 둘 간의 특별한 날이었다. 둘이서 정한 기념일도 아니었고 사회가 정한 공휴일도 아니었으나, 유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혜주가 가장 잘 먹는 음식인 닭볶음탕을 자신이 드디어 실패하지 않고 제대로 요리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혜주는 오늘 그가 퇴근하고 나면 말할 것이 있다고 했다. 유준은 사뭇 진지한 목소리의 그 전화를 듣고, 같이 살자는 그의 말에 답을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혜주는 비혼주의자였다. 그 제안은 프로포즈가 아니라 이번에 자신이 분양받은 아파트에서 동거하자는 것이었다. 웹툰작가로 입봉한 후 한동안 혜주의 소득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이 결혼관의 사유에 큰 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여유는 올해가 되자 유준의 안정적이던 경제적 상황을 아득히 뛰어넘게 되었다. 투박한 그림체 때문에 매니아층만 있었던 이전과 달리, 이번 신작이 조회수 2위로 완결한 것이었다. 거기에도 모자라 얼마 전에는 드라마화 제작까지 확정되었다. 사실 유준은 6년을 만나고 있는 지금도 세간이 개성으로 인정한 그 그림체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그녀의 폭넓은 세계관과, 그것이 든 좁은 이마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답변이 어떻든 간에 그는 오늘 오랜만에 밥 한 끼를 해줄 차였다. 순전히 그가 착해서는 아니었다. 거절했을 때 일어날 자신의 불안감을 상쇄하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맛이 어떻든 간에 유준이 요리하는 걸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한 입 먹고 나면 놀리기 위한 준비운동으로 얼굴 전체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지던 이전과 달리, 그녀가 닭볶음탕을 베어먹고서 말이 없어지자 유준은 긴장되면서도 뿌듯한 마음이었다. 마냥 성취감을 만끽하며 유준은 애인의 할 말이 무엇인지 물어볼 차였다. 유준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혜주였다.
“준, 정자은행 알아?”
그녀의 말이 한 번에 와닿지는 않았다. 유준은 방금 들은 말을 곱씹으면서 정자, 은행? 하고 나누어 물었다. 잘못 들은 건 아니었는지 혜주는 그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유준은 먼 옛날에 본 다큐멘터리 내용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불임 부부나 동성애자가 애 가지려고 가는 곳이 아니냐고 했다. 혜주가 닭 다리를 뒤적거리며 말을 아꼈다. 자주 서로를 안고 장난치다 투닥거리던 곳이 적막해지는 게, 그는 생경했다. 그리고 천천히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혜주는 비혼주의자고 동시에 아이를 아주, 정말 무척이나 좋아한다. 유준은 이 점 때문에라도 그녀의 결혼관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애초에 이것이 딜레마가 아니라면?
“나 정자은행으로 애 가지고 싶어.”
수필 전문 인용
모두 상식 밖으로
언제부턴가 우리 집이 외숙모와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삼촌 내외가 두바이로 발령 갔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외숙모가 외할머니와 다툰 것이었다. 둘의 좋지 않은 사이를 진작에 눈치챈 것은 아니었지만, 알았다고 해도 평소와 달리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엄마는 우리 손을 잡고 외가댁을 갔다. 보통 김치가 떨어져갈 즈음이었다. 그때마다 외삼촌이나 외숙모는 반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마주친 적이 드물었다. 외숙모는 주부가 아니었다. 해금 연주자에다 대학교수여서 우리는 몇 번 VIP로 공연에 초청되었고, 나는 자주 졸았다. 보수적인 집안 환경에 적응한 당시의 나는 규칙적으로 친할머니댁에 출근하는 엄마에 비해 외가댁에 잘 오지 않던 외숙모가 조금은 의뭉스러웠다. 그녀는 살가운 성격도 아니었다. 인사 말고 외숙모가 말을 붙일 때라곤 우리가 티비를 볼 때였다. 외사촌 오빠와 함께 텔레비전에 열 띈 집중을 하고 있으면 외숙모가 가까이 보지 말라고 빽 혼을 냈는데, 다정이 모두 말라비틀어진 하이톤의 짜증은 하도 혹독하고 야박하게 들려서 그녀는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아주 가끔 우리에게 근황을 묻기도 했으나 그 질문들은 내가 듣기에도 기계적이었다. 정말 할당량을 채우듯 외숙모가 이곳에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물며 어르신들에게 그러한 태도는 눈엣가시일 게 분명했고, 그것으로 나 홀로 갈등의 근원을 정리했다.
이후 나는 대학에 합격했고 엄마와 맥주를 마시며 그 일을 다시 물을 수 있었다. 엄마는 어른들의 일로 무마하려 했으나 이제 그 핑계는 유효하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외숙모의 행실을 타이르려 했는데 거기서 서로의 불만이 터져 관계가 단절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상대로였다. 나는 그 이후로 잠실에 갈 때마다 평소의 푼수 짓으로 두 분의 고루한 일상을 타파하려 했다. 외할머니와 셀카를 찍거나 외할아버지 옆에서 김치를 담그며 훈수하는 그를 따라하는 등 뻔ᄈᅠᆫ한 성미를 이용해 자주 재롱을 부렸다. 이에 낀 음식물을 괜히 혀로 건드려보듯 엄마가 상습적으로 외숙모를 들먹이려 할 때면, 그만 좀 하라고 핀잔도 해보았다. 그리고 아들의 집도 못 가서 시무룩해진 외할머니를 보며 내심 속으로 생각했다. 그분은 남들만큼만 굴지 왜 유난을 부려서.
구체적인 진상이 궁금해진 건 외삼촌과 함께 밥을 먹었을 때였다. 어른이 된 후 오랜만에 만난 외삼촌은 엄마와 외할머니가 정의 내린 성격과는 달랐다.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젠틀하고 성숙한 분이었다. 가끔 나오는 말에서 신중함이 엿보였다. 언급했다시피 잘해준다 해서 모두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재를 못 하고 우왕좌왕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내가 잘못 생각해도 단단히 잘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져도 단단히 달라졌을지도. 그때의 상식과 지금의 상식이.
마침 소주와 삼겹살에 취해 몽롱해진 아빠에게 진상을 물을 수 있었다. 집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아빠는 그때 외가와 여행을 갔다 온 후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고, ‘네 외삼촌이 여행만 자주 보내드렸어도’라는 불만으로 이 여행 스트레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술을 마신 아빠의 입이 그 외삼촌만큼이나 무책임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외숙모는 애초에 자신의 남편을 따라 두바이에 간 적이 없었다. 그녀는 7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서울에 살고 있었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녀는 해금 연주자였다. 동시에 음대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외삼촌은 두바이로 발령이 났고, 외사촌오빠 또한 두바이에 가고 싶어 했다. 둘은 두바이로 가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아니었다. 남편은 이곳에 남아 자신의 일을 하고 있겠다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애초에 말릴 이유와 권리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자식 뒷바라지만을 위해 촌에서 서울로 올라오기도 한 외할머니에게는 당신 세계관 밖의 일이었다. ‘용납’과는 상관없는 사이지만 용납하지 않고 할머니는 외숙모에게 전화했다. 전화로도 설득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자 결국 외할머니는 물었다.
“하다못해 네가 거기서 밥은 차려줘야 할 것 아니니?”
거기서 외숙모는 터져버렸다고 한다.
“어머님이 신경 쓸 일이 아니잖아요.”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후로 관계는 완전히 두절되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2012년도의 일이었다. 외삼촌과 오빠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우리를 만났을 때에도 그녀는 없었다.
아빠는 말이 되냐고 치를 떨었다. 외숙모 얘기만은 아니었고 외삼촌의 부족한 중재를 탓하고 있었다. 나는 둘의 갈등을 처음 알았을 때보다도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혔는데도 와중에, 그러네, 라고 답할 여력은 있었다. 하지만 18살 때와는 달리 23살의 나는 무섭게 외숙모의 입장으로 빨려 들어가 속으로는 다르게 말했다. 중재랄 게 뭐 있어, 이미 그때 다 끝나버렸는데.
삼겹살이 비워진 후라이팬 위의 기름과 함께, 할 말들이 입속에 고여 제자리에 굳어갔다. 나는 과제를 핑계로 후라이팬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와 같이 반찬들을 치우고 식탁을 닦았다. 아빠는 담뱃갑을 쥐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벅벅 닦은 그릇들을 개수대에다 갈무리하며 생각했다. 이전부터 존재했을 둘의 간극과 그간 외숙모에게도 있었을 스트레스를. 엄마는 외숙모 같은 며느리가 되지 말라고 했지만, 나라고 거기서 전화를 안 끊을 재간이 있을까. 왜 그들의 실망을 무서워해야 하는 걸까. 소박을 기다리는 아낙네처럼.
그렇다고 이제 와 그녀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일이 있은 후 노인들이 큰 수술을 겪는 동안 연락도 안부도 없던 그녀를, 긴 시간이 지나 누군가의 장례가 있다 해도 올지 안 올지 미지수인 그녀를 섣불리 포장할 순 없다. 결국 그렇다. 무지한 아빠와 불쑥불쑥 흉을 일삼던 엄마, 생판 남에게까지 관대하면서 정작 며느리에 대한 예의는 모르던 두 노인이 언제고 내게 그랬듯이, 나는 영영 이 성급한 사람들의 편일 것이다. 잘해준다고 좋은 사람도 아니고, 불친절하다고 나쁜 사람도 아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 또한 송곳니처럼 무례해진다. 그리고 합리화를 붙이며 적응해간다.
위선적이지만 그때부터 외숙모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뻔뻔한 내 성미 때문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연락이 왔을 때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닌, 그리움과는 다른 결의 진심이었다. 가족 관계로는 아니다. 우연히 마주치는 상상을 한다. 내가 서촌에 갈 때면 들르는 빵집이라던가, 혜화동 극장이라던가. 평소에도 좋아하지만 조금은 생경한 공간에서 익숙하지만 좋아하지 않은 사람과의 재회를 그려보는 것이다. 따뜻한 빵이나 프로그램북 같은 것을 사 쥐어드린 후에, 할 수만 있다면 몇 마디 말도 한 켠 건네고 싶다.
외숙모, 저예요. 어렸을 때 온 가족과 VIP로 공연 초대해주신 거 정말 감사했어요. 부모님 따라서 감사하다 말했어야 했는데 쭈뼛거려서 나중에 말씀드려야지 했던 걸 이제야 전하네요. 제 자리가 관객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었다는데 제가 졸았던 것도 다 보이셨죠. 죄송해요. 좋아서 그랬어요. 빈말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솔솔 잠이 들었어요. 외숙모가 하는 음악이 산들바람만큼 포근해서 그랬어요. 이전까지 내내 빈말만 하고 쭈뼛거렸던 거, 죄송해요.
꼭 살고 싶던 모습대로 살아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