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역/ 박종희
오랜만에 나서는 친정길이다. 늘 남편이 운전하는 승용차로 다니다가 기차를 타니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설렌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손님도 몇 명 없다. 학창시절엔 역무원이 서서 일일이 개표해 주었었는데, 그냥 개찰구를 빠져나가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
얼마나 오랜만에 기차를 탔는지 기차 내에 카페가 생긴 것도 몰랐다. 달리는 기차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새롭다. 마치 낯선 곳으로 혼자 여행하는 착각에 빠져 있는데, 기차는 정차하지 않는 역을 기적소리만 울리고 지나간다. 눈에 익은 목행역이다.
목행은 이모할머니가 사시던 동네라 기차를 타고 자주 왔던 곳이다. 별이 총총한 밤에 할머니와 나를 내려놓고 뿡! 하고 기적소리를 내면 역무원이 달려 나와 깃발을 흔들며 기차를 배웅하던 역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없다. 기차를 타는 사람도 내리는 이들도 없는 무인역을 보니, 덩그러니 두 분만 남아 있는 친정집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연세가 드시니 친정집보다는 병원으로 아버지를 뵈러 가는 날이 더 잦아진다. 덕분에 친정집은 역사만 남아 있는 무인역처럼 쓸쓸해진 지 오래다. 아버지의 손때 묻은 초록색 대문, 봉숭아물을 들이던 쪽마루와 아버지의 보물함인 연장창고도 그대로인데. 아이들을 키우며 알뜰하게 살림을 장만하던 젊은 부부는 어느새 여든을 눈앞에 둔 노부부가 되었다.
무인역에도 꽃은 피고 지듯 사람의 훈기가 없는 친정집에도 계절은 지나가나 보다. 텃밭에 뿌려 놓은 배추도 억센 고갱이가 앉았고 계절을 넘긴 호박은 누렇게 늙어 시름이 깊다.
육 남매가 자라던 친정집은 역 대합실처럼 늘 시끌벅적했었다. 그 많은 형제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일은 아버지 몫이었다.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소복하게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때면, 아버지는 동생들 밥그릇에 밥 덜어주시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던 것 같다.
요즘도 고등어조림을 할 때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아버지도 고등어조림을 꽤 좋아하셨다. 큼직큼직하게 무를 썰어 넣어 국물이 자박자박한 고등어조림은 그 시절에 최고의 반찬이었다.
통통하게 살이 붙은 토막은 자식들 앞에 미뤄놓고 언제나 아버지는 고등어 머리 한 개로 밥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 생선은 머리가 가장 고소하고 맛있다며 뼈까지 모조리 씹어 드시던 아버지의 야윈 젊은 날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시끌벅적했던 집이 이젠 절간 같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아버지는 앞마당에 텃밭을 일궈 농사를 시작하셨다. 심어놓기만 하면 탐스러운 엉덩이 같은 호박과 늘어지도록 오지게 달리는 가지, 오이, 토마토가 자식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버지는 풀을 뽑아주면서도 말을 건네고 거름을 주고 비닐을 씌워주며 육 남매한테 쏟던 애정을 텃밭에 모두 주셨다.
연세도 있고 이제 좀 쉬시면 좋으련만, 잠시도 쉬지 않고 고춧대에 북 주기를 하는 아버지의 손이 억세고 투박하다. 자식이 여섯이지만 아버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본 자식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니 나도 결혼하고 난 후 한 번도 아버지 손을 잡아 드린 기억이 없다. 딸아이의 손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잡아주고 얼러주면서 정작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의 손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손은 어린 시절 아버지 등에 업혀 다닐 때 내 엉덩이를 감싸 쥐시던 따뜻한 손과 결혼식 날에 하얀 장갑을 끼고 잡았던 손뿐이다. 그때 느꼈던 아버지의 손은 큼지막하고 한없이 따뜻했었는데, 이젠 작아져 뼈마디만 앙상하다.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은 거스러미 투성이다. 평생을 연장처럼 써먹은 손톱 밑은 굳은살이 박여 돌덩이처럼 단단해 보인다.
체력 하나는 타고나셨다고 자신하던 분이 이젠 당신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에 겨우신 모양이다. 젊은 날에 서릿발처럼 성성하던 그 기운은 어디로 가고 요즘은 손을 떨어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신다. 국 한 숟가락 뜨면 반 이상은 다 흘리고 빈 수저만 아버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늘 기차를 떠나보내고 맞이하는 역과 우리네 인생은 어쩌면 그렇게 흡사할까. 하나, 둘 여객이 줄어들면 쓸쓸한 무인역이 되는 것처럼 품 안의 자식들을 모두 떠나보낸 친정집도 적적하기 그지없다.
드는 자리는 몰라도 나는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처럼 원래 남아 있는 사람이 더 심란하기 마련이다. 일 년에 서너 번 명절이나 생신날에 우르르 몰려왔다 가버리는 자식들 생각에 며칠씩은 마음잡기가 어렵다는 어머니 말씀처럼, 기적소리를 울리며 잠시 머물다 가는 기차를 떠나보내는 무인역도 같은 마음이리라.
서둘러야겠다. 기차가 떠나기 전에 아버지가 머무는 병원에도, 단단하게 문이 잠긴 친정집에도 자주 들러야겠다. 가서 억세고 거칠어져 지문마저 지워진 아버지의 두 손을 따뜻하게 잡아 드려야겠다.
기차가 서지 않아도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미리 알고 배웅하는 무인역처럼, 내 손의 지문에도 아버지 손의 촉감을 오래오래 기억시켜 주어야겠다.
2000년 가을에.
첫댓글 이제는 오가는 사람을 마중하고 떠나보내는 작은 시골 역사가 사라지는 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쓸쓸한 무인역처럼 자식들을 키워내고 고향을 지키시던 부모님이 떠난 자리가 이젠 허허롭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며 가슴에 바람이 이네요. 잠시 숨 고르고 갑니다. 선생님, 어수선한 이때 건강 챙기셨으면 합니다.^^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역사가 하나 둘 무인역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 텅빈 친정집 초록 대문이 떠오릅니다. 생의 순환이고 순리인데 왜 그리 먹먹한지 모르겠어요. 기차는 아무도 없는 무인역을 지나면서 혹시나 하고 기적소리를 내더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