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간 좀비훈련..근대5종 전웅태, 서장훈과 약속 지켰다
박린 입력 2021. 08. 07. 20:13 수정 2021. 08. 07. 20:18
올림픽서 한국 근대 5종 첫 메달
예능 출연해 '메달로 종목 알리겠다'
K팝 가수 외모의 만능스포츠맨
리우서 쓴맛, 도쿄서 달콤한 맛
도쿄올림픽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 김경록 기자
근대 5종 국가대표 전웅태(26·광주광역시청)는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해 “사람들이 근대 5종을 잘 몰라요”라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진행자 서장훈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에서 만난 전웅태는 “결국 그것밖에 없다고 느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장훈의 조언이 맞다는 의미였다. 전웅태는 비록 금메달은 아니지만, 동메달을 따며 그 약속을 지켰다. 전웅태는 7일 일본 도쿄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근대5종 남자부 경기에서 3위(1470점)를 기록, 한국 근대 5종 최초로 메달을 획득했다.
예능 무엇이든 물어보살을 찾은 전웅태. [사진 KBS JOY 캡처]
근대 5종은 한 선수가 하루에 펜싱, 수영, 승마, 레이저 런(육상+사격) 등 5개 종목을 모두 하는 종목이다. 007 첩보원 제임스 본드처럼 검으로 찌르고, 헤엄치고, 말 타고, 달리며 총을 쏜다.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이 만든 ‘가장 올림픽다운 경기’다.
K-팝 가수 같은 외모의 전웅태는 ‘근대 5종 아이돌’이라 불린다. 2018년 월드컵 3차 대회와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고, 그해 국제근대5종연맹(UIPM)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4월 불가리아 소피아 월드컵 2차 대회에서 2년 11개월 만에 우승했다. 코로나19 탓에 1년 만에 출전한 대회였다. 코로나가 심했던 작년 4~5월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전웅태는 “검(펜싱)은 고기굽기용, 채찍(승마)은 파리잡기용으로 썼다”고 농담해왔다.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가 7일 오후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근대5종 경기에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뉴스1]
올림픽은 이틀 전에 펜싱 풀리그를 먼저 한다. 경기 당일 ▶수영 200m(영법은 자유) ▶펜싱 보너스 라운드 ▶승마 장애물 비월(장애물 15개 넘기) ▶레이저 런(육상 800m를 뛰고 사격 5발을 맞히는 과정을 4회 반복)을 진행한다. 합산 점수로 36명의 순위를 가린다.
“할 수 있다”로 유명한 2016 리우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26)이 전웅태의 친구다. 펜싱 거리를 잡는 데 박상영이 큰 도움을 줬다. 승마는 경기 당일 무작위로 말을 추첨해 배정한다. 전웅태는 체육부대의 말 25마리로 훈련했다. 그는 체구(1m75㎝·68㎏)가 크지 않아도 ‘레이저 런’에 강한데, 도쿄에서도 레이저 런에서 4위에서 3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전날 펜싱 랭킹 라운드에서는 9위에 그쳤었다.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가 7일 오후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근대5종 남자 승마 장애물 비월에서 말을 타고 장애물을 넘고 있다. [뉴스1]
수영 선수였던 그는 중학생 때 근대 5종으로 전향해 승마 특훈을 받았다. 그의 왼팔에는 20㎝ 수술 자국이 있다. 지난달 그는 “고등학생 때 낙마해 말발굽에 밟혔다. 뼈가 부러져 수술을 받았고 아직도 철심을 못 뺐다. 쉴 틈 없이 달려왔다”고 했다.
하루 일과를 묻자 “오전 5시 45분에 일어나 6시부터 육상, 10시부터 수영을 한다. 오후 2시부터 승마, 4시부터 펜싱, 7시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중간에 잠깐씩 먹고 잔다. 우리끼리 ‘운동에 미친 좀비 같다’고 한다. 밤 9시부터 힙합 엠비션 뮤직을 듣는 게 낙”이라고 했다.
그의 팔에는 왕관, 고래, 닻, 나침판이 합해진 문신이 있다. 전웅태는 “지난달 높은 위치에 오래 머물겠다는 의미다. 근대 5종 중계 방송을 제대로 본다면,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종목이다. 부디 빠지지 마시길”이라며 장난스레 웃었다. 많은 팬들이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며 근대 5종의 매력을 알게됐다.
전웅태는 처음 출전한 리우 올림픽에서 19위에 그쳤다. 지난달 커피숍에서 만난 전웅태는 “리우에서 아메리카노 3샷처럼 쓴맛을 봤다”고 했다. 초콜릿 셰이크를 주문하면서 “도쿄에서는 달콤한 맛을 봐야죠”라고 했다. 전웅태가 하루 15시간 좀비처럼 훈련한 끝에 ‘달콤한 동메달’을 땄다.
도쿄=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
13
23
0
0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