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무릉도원
친구야! 건강하게 잘 지내는가? 지금 나는 자네에게 지난밤 꿈에 다녀왔던 무릉도원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이 편지를 쓰고 있다네.
자네와 나는 같은 대학에서 함께 원예학을 전공하였지. 자네는 교직에서 은퇴하자마자 고향으로 가서 텃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배추 한 포기 심어본 적 없고 사과나무 한 그루 전정해본 적도 없다네. 졸업하는 날부터 은퇴하는 날까지 줄곧 조경 분야에서만 일하였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젊은 시절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테마공원에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재벌그룹 회장의 저택을 비롯하여 그 그룹 사업장의 조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내 손을 거쳐 설계하고 시공하였다네. 그동안 내 손으로 꾸미고 관리한 조경면적은 어림잡아도 백만 평을 훨씬 넘는다네. 그러나 이 나이가 되도록 나를 위한 정원은 단 한 평도 꾸며 본 적이 없다네.
은퇴하면 남아도는 것은 시간뿐이라는 것은 자네도 알겠지.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궁리하다가 마침내 나를 위한 정원을 꾸며 보기로 결심했다네. 남들은 조경기술자가 꾸미는 정원이니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할 테지만 내가 꾸미려는 정원은 그런 게 아니라네. 나는 다만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 집의 소박한 정원을 만들고 싶을 뿐이라네.
고향 집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만발하는 그런 집이었다네. 어릴 때 자주 불렀던 ‘고향의 봄’ 가사를 그대로 그려놓은 집이었지. 마당 동쪽에는 어른 키 높이 정도로 얼기설기 쌓은 축대가 있었는데 그 돌 틈 사이사이에 아기 진달래 몇 포기가 자라고 있었고 또 다른 돌 틈에는 작은 박새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네.
축대 위에는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마당으로 쓰러질 듯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이 정말 운치가 있었네. 살구꽃이 활짝 피면 마당은 온종일 꿀벌들이 윙윙대는 소리로 요란하였네. 지금도 조용히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니스프리 섬’의 한 구절을 읊조리게 된다네.
사립문 밖에는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꽃도 많이 피고 복숭아도 많이 달렸지. 아쉽게도 그 나무는 자리를 잘못 잡은 탓에 제 명대로 살지 못하였다네. 나무 그늘 때문에 벼가 자라지 못한다고 불평하시던 마을 이장님이 어느 날 밑둥치까지 바짝 잘라버렸던 거야. 나무가 베어진지 60년이 넘었으나 그때 그 복사꽃을 생각하면 시나브로 가슴이 두근거린다네.
전원주택을 짓고 정원을 가꾸려면 먼저 토지를 구입해야 하는데 그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
부동산회사에서 맨 먼저 소개해준 토지는 병천면 도원리에 있는 토지였는데 바로 옆에는 시냇물이 도란도란 흐르고 있었지. 우리 또래로 보이는 땅 주인에게 도원리라는 이름의 유래를 물었더니 무릉도원에서 유래했다더군. 무릉도원이라는 말에 갑자기 고향 집 복사꽃이 떠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렸네. 설계를 구상하려고 먼저 토지이용계획을 확인해보았어. 그런데 토지의 절반이 하천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네.
그렇게 다시 한 해가 지나고 이듬해 봄이 되자 이번에는 북면(北面) 오곡리(梧谷里)에 있는 토지를 소개받았어.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너무나 놀라 숨이 막힐 뻔 하였다네. 언제 보아도 가슴을 뛰게 하는 복사꽃이 밭두렁을 따라 띠를 두르듯 활짝 피어있었기 때문이라네. 복사꽃에 홀딱 반하여 즉석에서 계약하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네.
계약을 앞둔 며칠 전, 매스컴에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착공한다고 야단이더군. 그 땅 바로 옆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간다고 하니 공기도 나빠질 것이고 소음도 커질 게 불을 보듯 훤하지 않은가? 결국 두 번째 땅마저 포기하였고 또 한 해가 지나갔다네.
이번에는 동면 동산리에 있는 토지를 소개받았어. 서쪽으로는 실개천이 흐르고 북쪽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네. 실개천을 따라 복숭아나무를 심는다고 상상하여보니 무릉도원을 보는 듯 마음에 쏙 들더군. 꼭 살 테니 며칠간 말미를 달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네.
그날 밤 꿈속에서 그 땅을 다시 찾아갔었어. 낮에 구상해두었던 대로 실개천을 따라 복숭아나무를 심은 다음 살구나무랑 진달래랑 아내가 좋아하는 감나무와 앵두나무까지 골고루 심었다네. 잔디를 깎다가 잠시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개천 건너편에 살고 있는 어르신이 건너와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초대하셨어. 그날 저녁 그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나누며 무릉도원을 찾은 듯 행복한 밤을 보내다가 돌아왔다네.
오늘 아침, 계약을 하려고 일찌감치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갔다네. 사장은 내가 테이블에 앉자마자 등기부와 토지대장등본을 보여주었어. 두 서류의 소유주가 서로 다르니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 포기하겠다고 대답하는 순간 어젯밤 다녀왔던 무릉도원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네. 허탈한 마음을 달래며 사무실을 나서는데 갑자기 무릉도원에 다녀왔던 설화 속의 어부 이야기가 떠오르더군. 그 어부가 무릉도원을 다시 찾아가려고 했지만, 욕심이 눈을 가리는 바람에 길을 잃고 말았다지.
그 어부처럼 나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네. 고향 집의 소박한 정원을 꿈꾸다가 무릉도원까지 넘보고 말았으니 욕심이 지나쳤던 것이지.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꾸고 있으니 이게 바로 노욕(老慾)아니겠는가. 해가 서산에 걸린 줄도 모르고 아직도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다니···.
욕심을 버려야만 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네. 욕심 없이 담담하게 살아온 자네가 정말 부럽구나. 그러고 보니 자네야말로 무릉도원에 사는 것이구먼.
관상?
오랫동안 병상에서 투병하던 S그룹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친구로부터 “S그룹 선대(先代)회장의 신입사원 선발기준은?”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해서 머뭇거리다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아 “그건 문자로 보낼 만큼 간단한 이야기가 아냐.”라고 답을 해주었다.
다음날 전화를 걸어 무슨 일로 그런 문자를 보냈느냐고 물었다. 어떤 모임에서 며칠 전 작고한 L회장을 화두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단다. 이야기가 무르익어가자 누군가가 S그룹 선대회장은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관상을 보고 결정했다고 주장하더란다. 그것은 오래전 내게 들었던 이야기와 전혀 다른 내용이라 확인 차 보낸 문자라고 했다. 질문 요지를 확인했으니 정식으로 답변을 주어야 했다.
실제로 S그룹은 면접시험을 볼 때 이름난 관상가가 참여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1976년 4월, 용인에 테마파크를 개장하자마자 개발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잇달아 보도하는 신문이 있었다. 그 보도로 인하여 S그룹은 그룹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 무렵 우리 사원들 사이에는 그 기사를 쓴 기자의 관상에 관한 풍문이 나돌았다.
그는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그룹에 입사하려고 지원했는데 필기시험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나 면접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의 관상을 보았더니 회사에 큰 화를 끼칠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불합격시켰다는 소문이다. 그때 만약 채용했더라면 이보다 몇 배나 더 큰 화를 입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주 그럴듯한 내용이지만 단언컨대 이것은 출처를 알 수 없는 풍문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방법은 관상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인격을 보는 것이다. 관상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만 인격은 인간 됨됨이를 본다. 사람을 평가하려는 목적은 같지만 해결하는 수단은 전혀 다르다.
면접시험은 얼굴을 마주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관상과 인격 두 가지를 함께 보게 된다. 문제는 어느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느냐이다. 내가 겪은 바로는 회장님 역시 두 가지를 함께 보셨지만 외모를 보는 관상 보다는 내면의 인격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셨다.
70년대 말 S그룹이 남산 부근에 호텔을 건설할 무렵이었다. 회장님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테마파크로 내려오셔서 간부회의를 주재하셨다.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호텔 건설 현장으로 올라가셨는데 그때마다 조경 책임자인 나를 앞자리에 태우고 가셨다. 서울로 가는 동안 주로 호텔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셨지만 때때로 그날 회의에 참석했던 간부들에 대한 인물평도 들려주셨다.
그때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간부들은 대체로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앞뒤가 다른 말을 하는 사람,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 지시만 하고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 간부,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는 간부,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사람 등이다. 이런 내용들은 관상을 보고 내린 평가가 아니라 말과 행동을 통하여 내린 평가이다. 이 인물평을 뒤집어놓고 보면 이것은 곧 회장님이 인재를 발탁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
회장님은 작고하셨지만 그분의 인재 등용 기준은 여전히 옳았음을 증명하는 일화가 있다. 어느 해 연말, 중학교 동기들과 함께 송년회를 하는 자리에서 관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나는 오래전에 회장님으로부터 들었던 그 기준을 이야기하여 주었다. 그러자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던 S그룹 부장이 자신의 앞날을 예측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망설이던 끝에 “자네는 사장까지는 몰라도 전무까지는 틀림없이 승진할 것이야.”라고 말해주었다. 관상을 본 게 아니라 회장님의 기준을 따라 그의 인간 됨됨이를 보고 예측해 봤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몇 해가 지나자 친구는 상무로 승진하였다. 상무 임기가 끝나면 당연히 전무로 승진하리라 기대했는데 어이없게도 감사로 발령 났다. 그 당시 관행으로 보면 감사라는 직책은 임원으로서 막차를 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2년 만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감사 임기가 끝나자 놀랍게도 전무로 승진한 것이다. 회장님의 기준에 따라 그의 인격을 보고 판단하였던 내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됨됨이를 판단하는 회장님의 기준은 어디에 근거를 두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회장님께서 손수 집필하신 호암자전(湖巖自傳)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놀랍게도 그것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회장님은 그중에서도 ‘信’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그룹의 신용도를 높이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셨음은 물론이고 신입사원 선발 때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삼으셨으며 그룹의 후계자를 선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수명은 길어야 30년이라고 한다. 창업자가 늙고 병들면 기업체도 사양길로 접어든다. 거의 대부분 후계자를 발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S그룹은 3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우량 기업으로 건재하고 있다. 이것은 인격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했기 때문이 아닐까.
친구야! 알겠는가? 회장님이 인재를 선발하는 기준은 관상이 아니라 인격이라는 것을. 회사가 발전하려면 관상 좋은 사람을 뽑을 게 아니라 인격이 올바른 사람을 뽑아야 한다네. 이것이 바로 자네가 보낸 문자 메시지에 대한 회답일세. 관상을 보고 신입사원을 채용한다고 주장하던 그 지인에게 꼭 이야기해주게. 그래도 믿지 않거들랑 이렇게 물어보게. “당신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면 무엇을 볼 것인지. 인격? 아니면 관상?”
첫댓글 옥고 감사합니다.
*끝부분
이야기해주게 - 이야기해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