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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를 판단하지 말라!
롬 14장 1-6절
강자만이 사는 세상은
동물의 세계이고 본능의 세계요
하나님이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배하는 세계는
약자가 살 수 있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믿음의 세계에 있어서도
강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있고
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당시 로마는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던 사람들이
개종하여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고,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가지 문화적인 배경에서
여러 풍습들과 습관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각기 다른 문화의 옷을 입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로마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것은 해야 하며,
어떤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계속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자로 살아갈 때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수있습니다.
첫째는 '먹는 문제'요,
둘째는 '날을 지키는 문제'입니다.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어떤 사람들은 먹어도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안 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날(안식일, 월삭)을
꼭 지켜야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지킬 필요 없다고 합니다.
모든 날이 다 주의 날이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한 날보다는
모든 날을 주의 날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그 당시 로마 교회 안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당시 성도들의 분포도를 보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모였는데
이들은 흰색과 검은 색이 다르듯이
완전히 대조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통적으로
어릴 적부터
율법을 엄하게 지키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예수 믿은 다음에도
율법주의를 고수하는
옛날 버릇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음식을 가려먹는 습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한 음식, 부정한 음식을
어려서부터 가려먹었기 때문에
예수 믿은 다음에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고집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고기를 먹는 것은 죄다.
경건하게 살려면 채식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고기 먹는 성도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주변에 있는
믿음 없는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
그 사람은
세상에 살다가 이제 왔기 때문에
믿음이 깊을 수가 없다.
아직 성경도 모르고
교회생활도 모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세상적이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잘난척도 하고 실수도 한다.
그런 사람을
아니꼽게 보거나 비판하지 말고
거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14장 1절을 보겠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받는다’ 는 말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은 받아들이지만
싫은 사람은 거부하고 배척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받아주고, 이해하고,
격려해 주라는 말입니다.
받아주고, 이해하고, 들어주는 것이
그들을 돕는 첫걸음입니다.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첫걸음입니다.
교회는 병든 사람과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들을 껴안고, 사랑하고,
치유하고, 고치는 것이 교회입니다.
믿음이 약한자를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수용하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를 2절에서 볼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어떤 음식은 먹어도 되고
어떤 음식은 먹지 말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음식은 귀신이 붙어있다고,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수용과 이해의 폭이 좁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성경은
믿음이 약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을
성경에서는
성숙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생각만 옳은 사람은
믿음이 얕은 사람이라고
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고린도 전서 10장 23절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음식을 먹어도
마음에 시험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음식을 골라먹습니다.
그 음식을 먹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럴 때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할 행동은
나는 다 할수 있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덕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유익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 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 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고
내 기준으로 보지 말고
그 사람의 기준에서 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임이니라”
음식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음식 먹는 것이
예수님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인지 확인하고
그렇다고 판단되면
두말 하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전통과 습관과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형식을 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내용을 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주변을 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방법을 보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원리를 봅니다.
원리가 중요한 것입니다.
방법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릇이 중요합니까?
그릇에 담긴 물이 중요합니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선택하여야만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정말 성숙한 신앙생활 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계속 재미있는 말씀을 합니다.
만일 불신자중에 어떤 사람이
여러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우리에게 밥을 먹자고 할 때
묻지 말고
그냥 먹으라고 말합니다.
제사음식이 올라왔어도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신앙의 최고의 절정은 자유함입니다.
영적인 자유함입니다.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내가 싫은 사람까지 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방법이 틀렸고
내가 싫어하는 방법이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고쳐집니다.
이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틀린 그것을 계속 지적하면
그 사람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주시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네가 비판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사랑하면
그 사람이
고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메시지 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무엇이든지 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이것은 먹고, 이것은 못 먹는 사람을 보면
우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아직 믿음이 작으니
그럴 수 밖에 없구나.
내가 조금 더 기다려 주고 지켜주면
저 사람이 좋아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꾸 따지고
야단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무엇을 먹는 것에서
항상 걸리는 사람은
아무 것이나 먹는 사람을
잘난 척 한다고
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했다면
여러분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했다고 하면
사랑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미움이 아니고 사랑이며
정죄가 아니고 용서입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것은
비판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은 고쳐져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고쳐야
참으로 축복입니다.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참으신다면
여러분도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했다면
여러분도 사랑해야 합니다.
나같은 것도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도 사랑합니다.
혹시 상대가 실수했거든
같이 울어주십시오.
사랑을 가지고 격려하고
축복하고 울어주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로마서 2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마태복음 7장 3절을 보십시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본문 4절을 보십시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예수님은 자꾸 세워주는데
너는 왜 자꾸 허무느냐고 말합니다.
어디에서 있던지
세워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허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허무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심판을 하는 분,
원수 갚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랑 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 사람의 좋은 것만을 얘기하십시오.
격려하십시오. 축복해 주십시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너무나 날카롭습니다.
자기는 못 속인다느니
척 보면 안다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한 사람을 지적할 때
세 손가락은
자기를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남의 잘못을 들추는 일에
예민하지 마십시오.
알아도 모르는 척 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판단치 말고 격려하십시오.
제일 위대한 것은 속아주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속이는 것을 알아도
속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남편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매일 축복해 주십시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인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용서받아야 하고
위로받아야 합니다.
격려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남을 판단하게 되면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혹은 ‘이것은 선이고 이것은 악이다’
라고 구분하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선악과입니다.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아담과 이브에게 준 것이
바로 선악과입니다.
선악과라는 것은
나쁜 짓이나 도둑질하라는 것도 아니고
간음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것은 옳고, 그르고
이것은 좋고, 나쁘다 라는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만 만나면
‘너는 맞고 너는 틀리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의감을 앞세워서
'아무개는 이것이 나쁘고
아무개는 이것이 나쁘다'
라는 것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이 선악과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어떻게 될 까요?
매일 싸우게 됩니다.
‘너는’ 이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입니다.
사탄은 아담과 이브만
선악과를 먹인 것이 아니라
여러분도
매일 밥 먹이듯이 먹이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은
모두들 시비하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화가 나고 불편합니다.
그래도 또 교회에 가서
설교 듣고 찬송하지만
곧 선과 악을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 몸에
습관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악과 대신에
생명나무를 먹어야 합니다.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생명나무를 먹으면
미운 것이 잘 보이지 않고
정죄할 것이 보이지 않고
비판할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용서하고 축복하게 됩니다.
입만 열면 축복의 말이 나오고
격려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를 세워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나무입니다.
오늘 저는 오늘부터 여러분이
선악과를 그만 먹고
생명나무를 먹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은 약한 자를 받아주고
그를 비판하지 말라 고 말합니다.
5-6절을 함께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먹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싸우는 사람이 있고
교회에 와보면 날짜 가지고
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날짜 가지고 싸우다가
이단이 생겼습니다.
'토요일이 주일이다.
주일이 주일이다' 라고 싸웁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더니
사람들이 병 고친 것은 관심이 없고
왜 안식일에 했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 중에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여러분 주일은
안식일이며 축복된 날입니다.
그러면 주일만 거룩하게 살고
나머지 날들은 마음껏 죄짓고 살아도 됩니까?
십일조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십의 일만 드리면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써도 됩니까?
교회 와서 봉사할 때는 거룩하게 하고
나가서는 욕하고 살아도 됩니까?
아닙니다.
제 멋대로 사는 이것은 위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식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나머지 날들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내어
하나님의 돈으로 구별하는 사람은
나머지도 가치 있게 씁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은
그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먹어도 주를 위하여 먹고
먹지 않아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습니다.
이날이 좋다고 하거나
저 날이 좋다고 해도
모두 주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방법이나 그릇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좀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해서 하는 것이면
괜찮습니다.
기도합시다
우리모두 주님의 사람으로서
약한 자를 돌보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