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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장 1-3절 바울의 근심과 고통
1.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구원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영원한 승리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다고 선언했습니다.
2)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고 선언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아들도 내어 주셨는데,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다고 선언했습니다.
4)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선언했습니다.
5) 그래서, 바울은 이 세상의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나 곤고나 위험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고,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마귀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도 영원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영원한 승리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2. 그런데, 바울은 바로 다음 절(오늘 9장 1절)에서 마음에 큰 근심과 고통이 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도 의아한 말씀입니다. 너무나도 이율배반적인 말씀 같습니다.
3. 그러면, 왜 마음에 영원한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있는 바울이 마음에 큰 근심과 고통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골육 친척과 동포들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로마서 9장 1-2절에,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 친척을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1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am telling the truth in Christ, I am not lying, my conscience testifies with me in the Holy Spirit,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Ἀλήθειαν λέγω ἐν Χριστῷ, οὐ ψεύδομαι,
truth I speak in Christ, not I am lying
‘말하고’(λέγω, I speak)와 ‘거짓말을 안 한다’(οὐ ψεύδομαι, not I am lying)는 모두 현재형입니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συνμαρτυρούσης μοι τῆς συνειδήσεώς μου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bearing witness with me the conscience of me in Spirit Holy
‘증언하노니’(συνμαρτυρούσης)는 현재분사입니다(bearing witness).
2절.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at I have great sorrow and unceasing grief in my heart.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ὅτι λύπη μοί ἐστιν μεγάλη
that grief to me is great
‘있는’(ἐστιν)은 현재형입니다(is).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καὶ ἀδιάλειπτος ὀδύνη τῇ καρδίᾳ μου.
and unceasing sorrow in the heart of me
1. 그러면, 왜 바울은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마음의 근심과 고통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이 구원의 기쁨을 자신만 가지고 있고, 사랑하는 형제와 친척과 동포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자신은 말할 수 없는 건강을 가지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기쁨을 가지고 있는데, 막상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암으로 죽게 되었고, 엄마는 쓰러져 기절해 있고, 동생들은 학교를 못 다니고 굶고 있는 가족들을 보고서, 자기가 올림픽 승리에서 가진 기쁨이 다 사라지고, 가족을 위한 마음의 근심과 고통이 가득한 사람과 같습니다.
2.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구원 받은 기쁨을 혼자서 갖느니, 차라리 자기는 저주를 받아서 구원의 기쁨을 모두 잃더라도, 자기의 형제와 친척과 동포가 구원의 기쁨을 얻기를 원한다고 애절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could wish that I myself were accursed, separated from Christ for the sake of my brethren, my kinsmen according to the flesh,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원하는 바로라
ηὐχόμην γὰρ ἀνάθεμα εἶναι αὐτὸς ἐγὼ
Could wish for curse to be myself I
직역하면 ‘나 자신이 저주가 될지라도 원하노라’는 뜻입니다.
'내가'( 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바로라’(ηὐχόμην)는 미완료과거로서(I am wishing)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원하고 있는 바라는 뜻입니다.
뒤의 동사(εἶναι)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입니다(to be).
나의 형제— 위하여 –-끊어질지라도
ἀπὸ τοῦ Χριστοῦ ὑπὲρ τῶν ἀδελφῶν μου
separated from the Christ for the brothers of me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τῶν συγγενῶν μου, κατὰ σάρκα,
the kinsmen of me, according to flesh
직역하면 ‘육신을 따라 나의 친척’이란 뜻입니다.
1. 이 얼마나 간절한 형제애이며 동포애인지 너무나도 감격적입니다.
(1) 우리나라에서는 6월이 애국의 달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애국 애족을 했습니다.
애국 애족 한 선조들의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2) 한국 YMCA의 창설자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이승훈이 회개하고 변화되어 평북 정주에 오산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안창호는 서재필, 윤치호 등과 같이 민족 독립 운동을 했습니다.
안창호를 통해서 변화된 이승훈이 19074년에 오산학교를 설립하고, 물산장려운동을 한 조만식 장로와 춘원 이광수 등이 교사를 했습니다.
이 오산학교 출신으로 주기철 목사, 당시 세계 최대 장로교회를 설립하고 대광고등학교를 설립한 한경직 목사, 시인 김소월, 함석헌, 화가 이중섭 등이 모두 오산학교 출신들입니다.
(3) 조만식 장로는 주기철 목사를 평양 산정현교회 담임목사로 초빙했고, 주기철 목사와 산정현교회는 당시 일제에 항거하는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이광수의 권유로 오산학교에 입학했고, 김익두 목사의 설교를 듣고 회심 체험을 했습니다.
산정현교회는 일제에 항거하다 교회가 폐쇄를 당했고, 주기철 목사는 오랜 옥살이를 했습니다.
한번은 주기철 목사가 더이상 옥살이를 견딜 수 없어서 집에 왔는데, 아내인 오정모 사모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을 해서, 다시 감옥에 갔고, ‘일사 각오’로 순교했습니다.
당시 한국교회에 대표적인 지도자는 주기철 목사, 여수 애양원 교회의 손양원 목사, 고려신학교를 창설한 한상동 목사였습니다.
(4) 평양에서 산정현교회가 일제 항거를 대표했다면, 남쪽 서울에서는 상동교회가 일제 항거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원래 상동교회는 스크렌톤 선교사(William Benton Scranton, 1856~1922)가 설립했습니다.
이 스크렌톤 선교사가 남대문 쪽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전덕기라는 청년이 외국인 선교사를 미워해서 돌을 던져 선교사 사택 창문을 깼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선교사가 전덕기를 전도해서, 전덕기를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07년 상동교회의 담임목사가 됩니다.
전덕기 목사의 목회 표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이었습니다.
(5) 이 상동교회에서는 구국기도회를 계속했는데, 전국 회원이 3-4천명이 되었습니다.
그때 김구 선생도 황해도 지부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6) 이 상동교회에는 상동중등학교를 운영하면서 인재를 양성하고 있었는데, 교사로 전덕기, 이승만, 남궁억, 최남선 등이 활동했습니다.
이 상동교회 구국회원들은 장사들을 모집하여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에 조선을 대표한 박제순을 암살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7) 이 상동교회에는 비밀결사 조직체인 <신민회>가 있었는데, 전덕기, 안창호, 이승훈, 이동휘, 신채호, 이준 등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신민회는 이준 열사를 네델란드 헤이그에 밀사로 파송했고, 1910년에는 일제가 조작한 총독 암사건에 105인이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8)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이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고, 이토히로부미를 조선 총독으로 임명했을 때, 미국인 스티븐슨이 외교 고문으로서 미국에서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것은 조선인들에게 유익한 것이고 조선인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악선전을 했습니다.
그때 전명훈과 장인환이 예배당에서 밤새 철야 기도를 하면서 신앙적 열정과 동포애로써 이튿날 기차역에서 스티븐슨을 총살해서 처벌해버립니다.
이 사건이 <여명21>이란 책에 감명깊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장인환은 건국훈장 대통령장으로 표창을 받았습니다.
(9) 당시 일제 치하에서는 교회의 설교 대부분이 출애굽기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에 관한 설교였습니다.
이런 애국애족 정신이 1919년 3․1운동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유관순 여사도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미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 연합군은 우리나라를 일본에 속한 한 지역으로 나누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3․1운동 덕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일본의 한 지방이 아니고, 독립국가라는 것이 입증되어서, 오늘의 독립국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2. 우리는 바울에게서 애끓는 동포애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애국자였습니다.
(애국은 형제와 친척과 이웃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 대표적 인물은 모세와 다윗과 에스더입니다.
3. <모세>는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애굽의 유일한 왕자로서 이 세상의 향락을 최대로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히브리서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래서, 왕자의 직을 버리고, 애굽 국민에게 종살이 하고 있는 자기 백성을 독립시키기 위해서, 출애굽의 해방운동의 선봉장이 됩니다.
모세는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민족 해방을 성공시킵니다.
(2) 또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갔고, 그 백성들은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애굽인들의 민족신인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면서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다 죽이고, 모세만 살려서 큰 민족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차라리 자기를 대신 죽이시고,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희생적인 기도를 드렸습니다.
출애굽기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보아서 백성을 용서하시고 살려주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한 목숨 바쳐서, 온 인류를 영원한 멸망에서 살리신 것과 같습니다.
3. <다윗>도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자기를 죽이시고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역대상 21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백성들을 죽이려 다니는데, 다윗이 하나님의 사자 앞에 서서,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집을 치시고,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소서”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역대상 21:17.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이로 인하여, 나라에 재앙이 그쳤습니다.
4 또 <에스더>는 잘 아시는 대로, 자기 민족을 말살하려는 정책이 확정되었을 때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써 금식하고 왕에게 가서 자기 민족을 살려내는 거사를 이룩했습니다.
에스더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목숨을 내건 민족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5. 그런데, 참된 애족애국의 길은 무엇일까요?
(1) 우리나라에서 애국애족하신 분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우선 이순신 장군처럼 전투를 통해서 외족의 침략으로부터 민족의 목숨을 건지신 분들이 애국자십니다.
또, 나라의 경제적 부요를 위해서 잘살아 보세 하면서 부국강병을 위해서 공헌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또, 민족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 한글을 제정하신 분들도 애국자십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근무하는 공직자들이나, 성실하게 각종 산업전선에서 일하시는 국민들도 애국자십니다.
(2) 그러나, 성경에서는 진정한 애국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이 말씀한 애국은 한 마디로 신본주의입니다.
즉, 나라를 위해서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나라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애국은 국가지상주의가 아닙니다.
모세는 민족을 위해서 민족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민족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민족이 모압 평지에서 모압사람들이 숭배하는 우상신을 숭배하면서 모압 여인들과 혼혈결혼을 할 때, 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두령 시므리와 모압 여인 고스비를 찔러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풀었던 것입니다.(민수기 25장)
6.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동포애는 동포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근심하며 예수 믿고 영원한 구원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1)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불행은 예수 안 믿고, 마귀의 종노릇 하다가, 지옥에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종노릇 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삶인 것을 잘 압니다.
마귀를 섬기는 가정이나 가문마다 귀신으로 인해서 얼마나 서로 싸우며, 괴로운 날들을 보냈습니까?
앞으로 지옥 형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서운 영원한 고통입니다.
(2)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암 부쓰>는 가족을 전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내가 당신들을 두 주간만 지옥에 보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지옥 고통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친히 경험한다면,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지옥에 가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7. 이러한 신본주의적 애국의 길에는 동족으로 인한 오해와 박해도 따릅니다.
(1) 바울이 예수 복음을 전하자, 완고한 율법주의자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민족 고유의 정신에 위배된 사상을 전한다고..
(2)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구원의 도리를 전하면서, 마귀를 섬기지 말라고 하니까, 전통적인 유교인들이 제사문제로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지금도 핍박합니다.
(3) 바울은 복음을 통한 애국의 길을 가다가, 동족들에게 매 맞고, 돌로 맞고, 감옥에 갇히고, 암살하려는 위험을 수 없이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동족이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동족들은 바울이 저 하나 구원받기 위해서 민족을 버렸다고 비난할지 모르나,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서 지옥 형벌을 당할지라도 민족이 구원받기만 한다면 그것을 택하겠다고 가족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복음적 애국의 길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8. 성경은 국가에 대해서 두 가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1) 로마서 13장 입장은 국가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적 집단이기 때문에 세금도 내고 군대도 가고 공직자를 존경하면서 국가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2) 한편, 요한계시록 13장에는 국가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요 사탄에게 조종 받는 짐승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가 하나님을 믿도록 자유를 주면 애국하지만, 국가가 우상을 숭배하고 귀신을 섬기도록 강요하면 국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9. 고린도후서 11장에는 바울이 주님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적인 삶을 살았는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바울의 생애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희생과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서 희생과 고난의 삶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10. 다른 사람들은 세상 길로 타협하며 살아갈지라도 나만은 ‘남은 자’ 되어서 주님을 위해서 헌신의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1) 로마서 11장에는 세상 사람이 다 세속화의 삶을 살아갈 지라도, ‘남은 자’로서 복음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 한 사람을 통해서, 애굽에 안주하고 노예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엘리야 한 사람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에 바알 세속화 우상이 가득할 때에, 바알 종교가 타파되었습니다.
바울 한 사람을 통해서, 율법주의 도덕종교가 타파되고, 이방인들도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2) 이제도 한 사람의 ‘남은 자’ 되시는 여러분들을 통해서 순수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를 통해서 부요해졌는데, 지금은 중국과 북한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세속화 되었다고 탄식하고 있답니다.
기복신앙으로 하나님을 세상출세를 위해서 이용하고, 물질과 향락에 빠져서, 순수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다 잃어버렸다고 탄식한답니다.
11. 이제 우리는 <별세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옛사람이 죽어버린 존재입니다.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어버렸고, 이제는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은 믿고 모시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래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산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심으로써 진정한 애국애족의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가족과 친척과 이웃을 전도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의 길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일상생활에서 잘 하시는 여러분이 애국자입니다.
용서와 사랑과 희생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진정한 애국자십니다!
더욱 충성스런 신앙인이 되셔서, 진정한 애국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