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고택뒷문 전경
▲추사고택(秋史古宅).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2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옛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2동 짜리 건물로 조선 영조의 사위이자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지은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데,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사랑채는 남자주인이 머물면서 손님을 맞이하던 생활공간인데, ㄱ자형으로 남향하고 있다. 각방의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어 통로로 이용하였다. 사랑채 댓돌 앞에는 석년(石年)이라 각자된 석주가 있다.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추사가 직접 제작하였다.<석년> 글씨는 추사의 서자(庶子)인 김상우(金商佑 1817~1884)가 쓴 것이다. 안채는 가운데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ㅁ자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살림살이가 이루어지던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하여 막아놓았다. 대청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쪽을 향하였고 안방과 그 부속공간들은 북쪽을 차지하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지형의 높낮이가 생긴 곳에서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하였다. 안채 뒤편 언덕에는 추사 김정희의 영정을 모신 추사영실(秋史影室)이 있으며, <추사영실> 현판은 김정희와 평생 막역한 사이였던 권돈인(權敦仁 1793~1859)의 작품이다. 고택의 오른쪽 담장에 달린 쪽문을 나서면 대대로 마셔온 석정(石井)이 있고,거기서 100m쯤 가면 김정희묘(문화재자료 188)가 있다. 방마다 모사품이기는 하나 선생의 유묵이 걸려 있다. 후손이 세거(世居)해 오다가 1968년 타인에게 매도된 것을 충청남도에서 1976년 문화재로 지정하고 동년 4월 25일 매수하였다.집 안에 있는 김정희의 영정과 도장, 염주, 붓과 벼루 등은 일괄 보물 제547호로 지정되어 보관되고 있으며, 고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가 어려서 공부했던 절 화암사가 있다. 현재의 추사고택은 1977년 조선 양반집의 한 범본으로 서울의 대목수인 인간문화재 이광규 옹이 원래 53칸의 집을 반으로 줄여 복원한 것이다.
▲김정희 선생 영정
▲추사고택(秋史古宅)안채.안채는 가운데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ㅁ자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살림살이가 이루어지던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하여 막아놓았다. 대청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쪽을 향하였고 안방과 그 부속공간들은 북쪽을 차지하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지형의 높낮이가 생긴 곳에서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하였다.
▲추사고택(秋史古宅) 사랑채.각 기둥마다 주렴이 걸려있고 벽에는 많은 현판들이 걸려있다.사랑채 댓돌 앞에는 석년(石年)이라 각자된 석주가 있다.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추사가 직접 제작하였다.<석년> 글씨는 추사의 서자(庶子)인 김상우(金商佑 1817~1884)가 쓴 것이다. 추사는15세때 동갑인 한산 이씨(韓山李氏, 15세)와 혼인하였으나 5년후사별하고3년후인 23세때에 예안 이씨(禮安李氏)를 재취(再娶)로 맞아들였으나 후사가 없었다. 제주도로 유배간 다음해인 56세때에 12촌되는 김태희의 아들 김상무(金商懋)를 양지로 들였고 다음해인 57세때 유배중에부인은 죽었다.김상우는 그의 서자
다.
▲뒤뜰의 매화나무
▲추사기념관추사 김정희의 드높은 서예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고 후세에 남긴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보존, 전시하여 추사선생의 다양한 면모와 그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2008년에 건립하였다. 규모: 대지면적 3.,63㎥ 연면적 1,576,66㎥주요시설: 상설전시장, 기획전시실, 다목적 영상실, 기념품 판매장
▲추사고택 및 기념관 관리소 사용
▲추사김정희묘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금속 학자이자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의 묘로 과천에 안장되어 있던 것을 1937년 선조(先租)가 있는 이곳에 이장하였다. 김정희선생고택(안채‧사랑채)(충남유형문화재43)에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묘 앞에는 상석이 놓여있고 묘의 바로 오른쪽 앞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은 직사각형의 화강암 대좌(臺座) 위에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이 올려져있고 오석위에는 옥개형 이수가 있다. 비신의 전면에는‘완당선생경주김공휘정희묘(阮堂先生慶州金公諱正喜墓)’라고 각서되어 있고 나머지 삼면에는 비문이 적혀있다.
▲김정희묘 비석 뒤쪽에 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