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처녀가 임신을 했대.
화가 난 처녀의 아버지가 처녀를 다구치니까 그 처녀는 스님 애라고 말했대.
그래서 처녀 아버지가 스님한테 가서 언성 높여가며 그 말을 했더니 스님 왈
1. '아 그렇습니까? 하더래
그리구 드뎌 처녀가 애를 낳으니까 처녀 아버지가 이제는 갓난아이를 데리고 절에 가서
니 새끼니까 니가 키워라 하면서 한바탕 난리를 쳤더니 그때 또 스님 하는 말이
2. 아 그렇습니까?
였대.
그러데, 몇 년이 지난 후에 처녀가 자기 애 아버지하고 꿍짝이 잘 맞아갖고
인제 자기 애를 찾아오고 싶어져서
아버지한테 이실직고 하고 애 아버지하고 같이 스님한테 가서 자조지종을 말하니까
스님 하는 말이
3. 아 그렇습니까?
였대.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1. 번 2번 아 그렇습니까? 는 나도 하겠는 데,
3번 에선 아 그렇습니까 가 안 나올 거 같아.
기껏 내 애라고 맡기고 갈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남의 애니까 애 내놓으라고 하면
그동안 공들여 정들여 키운 건 어뜨카고 .........
아 그렇습니까? 하고
어떻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애를 내주느냐 말야
그저 한 자락 바람이 불었다는 듯
그게 그렇게 해뜨고 해지고 비오고 눈오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냐 말야
그게 어떻게 그렇게 사소한 평상적인 일이냐말야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말야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 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즐거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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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산골에 공이 높은 젊은 스님이 계셨더랍니다.
마을 주민이 모두 존경하였는데 그만 동네 처녀가 임신을 했고 불같이 노한
처녀의 아버지가 다구치자 처녀는 애아버지는 그 젊은 스님이라고 실토했다
지요. 난리가 났겠지요. 동네주민을 앞세운 처녀의 아버지는 갓난아이를 들고
그 절로 쳐들어가 한바탕 소동을 피운 다음 스님의 절절한 사과와 보상을 다짐
받고는 아이를 책임지라고 놓고 왔다지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아이가 성장을 하는데 그 아이의 모습이 점점 그
스님과는 달리 동네의 한총각과 비슷해지더라는 것입니다. 놀란 주민들이 까닭을
추궁하자 처녀가 실토하길 스님에게 죄를 밀면 조용해질 줄 알았다나요.
큰일난 것은 년전에 젊은 스님께 몰려가 행패를 부린 처녀아버지와 동네 주민
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전후사정을 알게 되었으니 사죄를 해야겠지요. 기가 팍 죽어
젊은 스님께 동네사람들이 몰려 갔는데...
그 스님을 하염없이 웃기만 하더랍니다.
-수행하는 자가 그 욕됨을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근본이 착한 청춘남녀들이니 이제라도 혼사를 맺어주심이 어떻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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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임신을 한 이야기 찾다가 발견한 책-<중같은 신부 신부같은 중>
그 책은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모자르다>라든가 <느리다>라든가하는 천천히 움직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런 생활의 모습들로 꽉 찬 것처럼 느껴졌으며 ..............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중요한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는 사실, 그래서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중요성을 깜빡 잊고 살았었구나!...하는 탄식 비슷한 감정을 쉴새없이 일깨워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들도 찬찬히 살펴보면 자기를 비하하는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남의 이상한 몸짓이나 목소리를 흉내내어야만 까르르 웃는다든 지, 표현이 우습거나 야비하거나 건방져야 엽기적(?)선망의 대상이 된다든 지... 그러면서도 기실은 아닌 것 처럼 변명을 하고.. 때로는 그 속내가 다른 것이라고 우기는 경향이 많지요. 그 속내를 따라 그 사람의 언행이 그대로 표현됨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을 능숙하게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반복된 훈련의 결과일 뿐이지 그것이 그 사람의 인품을 정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기술이니 개발이니 이익이니를 앞세운 날카로운 경쟁은 좋게 말해서 선의의 경쟁이지 혹독하게 말하면 인간성의 피괴요 자연스러움에의 파괴요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음에의 파괴가 아닐 런지요. 그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속다른 웃음을 웃으며 사느니 자연스럽게 한번 인연을 맺어 늘 여유있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회가 된다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착하고 너그럽다>고 하는 것은 그런 토양을 말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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