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PN ] RKBO
TIME 10 – 제 3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에는 ‘빌런’이 존재한다. 실제 세계에서의 대표적 빌런으로는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있고, 가상 세계 MCU에는 울트론, 타노스와 같은 빌런들이 있다. 모든 조직과 세계에는 악역이 존재하며
이들은 대개 그들이 존재한 세대를 통째로 ‘작살’을 내버리는
등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RKBO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여전히 우리에게 회고될 정도의 타노스 급의 빌런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유력 주간지인 「TIME」은 2004년부터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을 선정해오고 있다. RKBO라는 작은 커뮤니티도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각자 나름대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회인이 모여있는 작은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사이에서도 늘 사회작용이 발생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빈번하며 그 중에서도 타인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RKBO TIME」이라는 제목을 달고 그런 사람들을 다룰
예정이다.
소니
소니 사태를 겪지 않았던 이들이 ‘소니’를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 떠오르는 키워드, 화려함일 것이다. 소니는 화려했다. 은퇴 이후 케로로에게 통산 안타 1위를 빼앗기긴 했지만 RKBO 역사상 최고의 타자라고 불려도 손색없을
정도의 기록을 남겼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RKBO 역대 최초 3000경기, 역대 최초 3000안타, 역대
최초 2000득점, 역대 최초 2000타점 등의 기록과 더불어 통산 타율 3할, 통산 450홈런, 역대
통산 타수 2위 등 RKBO에서 소니라는 캐릭터는 정말 ‘극강’의 캐릭터였다. 외적인
단순히 성적만을 놓고 보면 소니는 RKBO 명예의 전당 0순위로
꼽힐 정도의 수준이었다. RKBO의 수많은 선수 중에서도 가장 ‘화려함’이라는 수식어와 가까운 사람이 소니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소니는 성적 이외에도 RKBO 전반에 뿌리 내리고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커리어는 화려함으로 도배될 수 밖에 없었다.
운영진
소니는 RKBO에 발 디딘 지
약 1년이 지난 후, 통합언론사장의 직책에 오르며 운영진
활동을 시작하고 다음 시즌 은행장을 겸임하기 시작했다. 소니는 그때부터 RKBO 전반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가 되었다. 그렇게 운영진으로 지내던
와중, RKBO는 빅터의 주작 사건이 터지며 큰 파장을 맞이 했고, 시뮬러
빅터가 퇴출되고, 총재 흑형, 은행장 소니(빅터 사태가 일어났던 9차 시즌부터 통합언론사장은 아이린이었다.) , 사무국장 조병일이 운영진의 직책을 내려놓게 되면서 RKBO 운영진의
대대적인 개편이 단행되었다. 이후 김성권이 총재로 오르고 시뮬러에 왕정호, 은행장에 듀오가 선임되면서 ‘빅터 사태’로 얼룩진 RKBO가 일단락되었다.
이 시기 운영진의 대부분이 물갈이 되었는데 이때 소니는 사임 의사를 표했지만 카페 전반이 흔들린 상태에서 많은 운영진이 이탈할 경우
문제 발생이 염려되어 기존 존재하지 않았던 직책인 리그협의회장을 맡으며 운영진에 잔류했다.
그렇게 소니는 점차 RKBO에서
실권을 잡기 시작했다. 운영진 간의 상하관계가 없다고는 하지만 리그 전체를 총괄하는 사무국장이나 협의회장은
관할 부서가 한정된 통합언론사장이나 은행장에 비해 실제적으로 얻는 힘은 강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소니는 10시즌을 협의회장으로 지냈다. 이 기간 중 16차 시즌부터는 통언사장을 겸하면서 4시즌을, 협의회장을 내려놓고도 통언사장으로 5시즌을 더 보냈고 23차와 24차 시즌에는 시뮬러의 역할까지 소화했으니 소니는 19시즌을 운영진으로 지낸 사람이었다. RKBO가 이번 시즌으로 36번째 시즌을 맞이했다는 걸 미루어보아 소니는 RKBO의 반 이상을
운영진이라는 직함을 달고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RKBO에서
소니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크기를 방증한다.
예능
통합언론사장으로서의 소니 역시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통함언론사 소속 기자로서의
소니 역시 ‘명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통합언론사에는 다양한 기사감이 존재한다. 시뮬레이션 성적을 토대로
하는 분석기사, 선정기사를 비롯해 RKBO 자체에 대한 기자의
의견을 담은 칼럼, 혹은 인터뷰 등이 통합언론사 게시판을 채운다. 그
중에서도 소니는 ‘예능’에서 큰 두각을 드러냈다.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RKBO 통합언론사의 명작, 언론사 ‘The SHOW’의 ‘나홀로
연애중’이나 ‘아바타 인터뷰’ 등 레전드 작품에서 소니의 예능 감각이 여실히 드러났다. ‘나홀로
연애중’에서는 수위 선을 왔다 갔다 하는 드립을 선사하며 존재감을 나타내는 등 소니라는 이름이 정말
RKBO의 많은 회원들의 뇌리에 박히게 만들었다. ‘믿고
보는 소니’라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였다.
통합언론사에서의 소니가 아니었더라도 그의 예능적 모먼트는 존재했다. 배우 이민정을 좋아하고 있었던 소니에게 이민정은 결혼을 발표했고, SBS 소속
아나운서 장예원을 좋아하기 시작하니 박태환과 열애설이 뜨는가 하면, 배우 채수빈을 좋아할 땐 구자욱과
열애설이 뜨면서 많은 알크버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이런 점들은 좀 더 소니와 RKBO 구성원 간의 친밀함을 높였고 이는 RKBO 내부에서 소니가
영향력을 더욱 크게 행사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소챔
소챔, RKBO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들에게는 어색한 이름일 것이다. 소챔은 소니 챔피언스리그를 줄인 말로 현재는 RKBO 챔피언스리그(알챔)라는
이름으로 존속되고 있는 RKBO의 대표적 요소다. 이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알챔이라는 요소는 소니로부터 시작되었다. 8차 시즌 소니는 소니 챔피언스리그라는 이름으로 RKBO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을 만들었다. 초기에는 상금이 배정되지
않는 단순히 통합언론사에 연재되는 글이었으나 11차 시즌 룰이 개정되며 통합언론사 이벤트로 배속되어
통합언론사 상금 수여가 가능해지며 RKBO를 대표하는 이벤트가 되었고,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당시 소챔은 리그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더불어, 소챔만큼이나 RKBO의
뜨거운 감자였던 소니엔젤스리그(소엔) 역시 소니의 작품으로
현재 존속되지는 않지만 당시 RKBO 회원 대부분이 향유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등 RKBO에서의 소니의 영향력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갔다.
소니 사태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빅터
주작 사건 이후 평화롭던 RKBO에 새로운 파장이 일어나게 되는 사건이었다. 정확히 말해 소니 사태라고 하긴 어려웠다. ‘알조축 사태’라고 하는 것이 정확했을 뻔 했다. 우규민, 오지환 등 당시 운영진은 아니었지만 구단의 수뇌부를 하고, 언론사
활동을 하는 등 운영진만큼이나 RKBO에잔뼈 굵은 선수들이 일부
RKBO 회원들과 함께 RKBO 조기 축구회(알조축)을 결성한 것이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오지환(임정우), 우규민, 이기훈, 최성호, 헤세, 임현구, 세일, 서명진, 전성우, 정수정 등 당시 RKBO의 ‘네임드’ 회원들의 상당수가 알조축에 가입되어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는 소니의 염려를 불러일으켰다. 소니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친목이 심화될 경우 그 커뮤니티에 망조가 깃드는 것을 염려했고 2015년 9월, 알조축에
대한 강경 입장을 밝혔다. 직후 알조축의 회원이었던 헤세가 이러한 소니의 의견에 대한 반대를 표했고
운영진과 알조축 간의 대립 구도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싸움은 서로에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알조축 회원의 상당수가 비활로 돌아서면서 RKBO와
거리를 멀리하게 되었고, 소니 역시 운영진의 직책을 내려놓았다. 딱
이때까지만 해도 소니는 그간의 공로가 있었고 업적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름답게 물러나는 듯했다. 실제로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면 이 단락의 제목은 ‘알조축 사태’이었을 것이고 ‘소니 사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소니가 RKBO를 떠나고 그 이후에
그가 벌인 일이 RKBO에서 그가 제명된 이유이고 이 단락의 제목이 ‘소니
사태’가 된 이유다. 소니는 RKBO를 거의 대부분 똑같이 베낀 새로운 가상 시뮬레이션 카페 JKBO를
창설했다. 정말 똑같았다. RKBO의 규정, 시스템, 게시판 등을 그대로
JKBO에 가져갔고 RKBO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만큼 親 소니 계열의 많은 RKBO 회원들을 JKBO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이는 소니가 반감을 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JKBO는 反 RKBO가 기조였던 네이버의 시뮬레이션 카페 IKBOL과 동맹을 맺는
등 RKBO에 대항하는 카페를 만들겠다는 이념을 내세우며 RKBO의
공분을 샀다. 결국 소니는 RKBO에서 활동중지의 중징계를
받으며 RKBO에서는 가장 명예로운 운영진이자 선수로 남을 수 있었지만 끝없이 추락하였다. 징계 이후 소니는 긴 시간 동안 RKBO의 운영진으로서 자신이 작성해왔던
징계나 여타 공지사항들을 악의적으로 삭제하고 떠났고 여전히 이것은 복구 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RKBO
하면 소니를 떠올렸을 정도로 소니가 RKBO에서 가지는 영향력의 크기는 상당했다. 소니는 RKBO 회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왔었던 운영진으로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들은 훨씬 더 큰
쇼크를 불러일으켰고 당시 부총재였던 최원준의 말처럼 RKBO는 그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소니는 빌런으로 남았다. 그것도 RKBO 역사상 최고의 빌런으로 남았다. 본지는 항상 이 기사의 끝을
인터뷰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오늘은 인터뷰를 할 수가 없다. 인터뷰가
가능하다면 묻고 싶다.
당신이 만들어왔고 일궈내 왔던 RKBO를 왜 그렇게까지 파탄 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