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2]
누워 있는 남자 / 김이진
평소에 나는 그 남자와 안면이 있다. 그런데 안면만 있지 깊이 아는 관계는 아니다. 같은 아파트 동(棟)엘리베이터에서 가끔씩 만났다. 갸름한 얼굴에 깡마른 체구, 키는 나 보다 눈썹만큼 작다고 느낄 정도니까 169 센티쯤 되는 노인이다. 외모만 보고 그가 노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일 수도 있지만.
그는 늘 왼 손 가운데 손가락에는 담배 한 개비 오른 손엔 서울 장수막걸리 한 통을 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같은 아파트 주민들에게 매우 낯익은 이미지로 박혀있다. 장수막걸리 상표로 말이다. 어느 날에는 엘리베이터 공고 벽지에 이미 몇 동 몇 호 아저씨 때문에 괴롭다는 주민이 나왔다. 가끔씩 아파트 비상계단에서도 담배를 피워댔다. 몸에서는 항상 박하 냄새가 풍겼다. 아마도 박하담배 탓일 것이다.
사실 나는 남자의 부인과도 안면이 있다. 아파트 지하 휘트니스 클럽에서 아침 운동 때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눌 정도니까. 부인은 작달막하지만 성격이 활달해서인지 이웃사람들과 함께 아침 운동을 거의 빼먹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그 부부가 어울리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 나이쯤이면 부부가 음극과 음극의 관계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늘 혼자다.
아내와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늦은 저녁, 나는 죽은 듯이 뻗어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죽기 바로 직전쯤으로 알았다. 바로 옆 경비원을 부르는 것조차 잊은 채 다급하게 스마트폰 119만 눌러댔다.
그가 죽은 듯이 드러누워 있는 곳은 아파트 현관 입구 맞은편 쓰레기 분리수거장 담벼락 밑이다. 창백해진 얼굴은 안치실에서 방금 꺼낸 냉동된 시신을 닮았다. 볼 살이 광대뼈 속으로 박혀버린 듯 푹 꺼져있다. 감색 추리닝 바지가랑이 밑으로는 오줌을 지렸는지 물기가 축축이 흘려 내렸고 온 몸에 퀴퀴한 막걸리 냄새가 배어나왔다. 나는 줄행랑치고 싶었다. 사실 갑자기 경비원에게 달려간 것은 순전히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황급히 연신 119를 눌러대는 아내를 남겨둔 채.
한달음에 달려온 경비원이 다행스럽다는 듯 말한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살짝 남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꿈쩍 않는다. 다시 흔들었다. 그때서야 그는 가느다란 호흡을 내몰고 실낱같이 눈꺼풀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둠을 타고 체온의 반감이 입김을 따라 올라온다.
“아저씨! 몇 호에 사시지요? 아저씨, 몇 호시냐고요!” 남자는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1104호‧‧‧ 1102호, 1204호‧‧‧”
눈동자는 커졌어도 입술로만 옹알거리니 번호가 이리저리 맴돈다. 1204‧‧‧1104......
나는 엘리베이터 안을 떠올렸다. 입소문이 난 터라 안면은 익숙했지만 정작 그가 몇 호에 사는 지는 전혀 관심 밖이었다. 물론 남자도 내가 몇 호에 사는 누군지 따위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았겠지만.
나는 관심으로부터 머나먼 절벽의 섬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곳은 거의 외부와 단절된 곳이랄까. 누군가 절벽의 끝머리에 앉아서 이렇게 노래 부르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나는 그 섬에 가고 싶다. (섬/정현종)
섬 밖의 사람들은 보통 이런 말을 화사하게 도식해서 각자의 입맛에 맞게 꿰맞추려고 하지만 이 시적인 대사(臺詞)를 처음 구사한 사람이야말로 매우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이미 각자의 섬에 살고 있다. 어느 섬은 불행하게도 안락도 희망도 없는 경우가 있다. 그와 정반대의 섬에 가고 싶지만 그 곳은 갈 수도 없고 또 소통도 되지 않는 먼 곳이다. 아파트 철근과 시멘트벽을 사이에 두고서 바로 이웃과의 간격조차 좁힐 수 없는 것처럼. 말하자면 층간과 층간, 벽과 벽 사이에만 어두운 절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 말과 말, 믿음과 소통, 이해와 사랑의 경계 구간은 때로는 더 어둡고 외로운 섬이다.
갑자기 현실의 함수(函數)가 뒤집어 진다. 지금 누워 있는 남자가 곧 나의 변형으로 바뀐다. 그가 내 대신 누워있는 것이다. 그가 곧 미래의 암울한 거울이자 유령일 수 있다. 그러자 그를 마냥 맨바닥에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연민의 정이 든다.
“아저씨, 1204호 맞아요?”
그는 머리를 끄덕인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눈꺼풀만 약간 오르락내리락 했는데 끄덕인 것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아내에게 부탁해서 빨리 1204호로 달려가게 했다.
<구급차 출동 중. 신고자는 잠시만 대기 바랍니다!>
아내가 맡겨둔 모바일 폰 속으로 119 구급대로부터의 안심 문자가 날아온다.
나는 더욱 초조해진다. 쓰레기장 옆 보도블록 바닥은 차갑다. 날씨는 상당히 풀렸다지만 아직도 늦은 밤의 공기는 여전히 춥고 어둡다. 그가 내 대신 맨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허벅지께로 쭉 벋은 왼손 손가락엔 타다가만 젖은 담배꽁초가 싸늘하리만치 검정 끄트머리를 드러내고 있다. 담배 주인의 몰골처럼 초라하게 내 눈을 주시하고 있다.
나는 어깨를 구부린 채 그에게 정신이 드느냐고 다그치듯 물었지만 뱉은 말은 공허 속에 헛돌 뿐이고 그는 그대로 누워 어눌한 입놀림만 할 뿐이다. 1204호를 향해 올라 갔던 아내가 쫒아 내려왔다. 표정이 일그러져있다. 1204호, 1202호‧‧‧‧ 한마디로 그런 노인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고,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지 말라는 핀잔까지 뒤집어쓰며 내려왔다.
그런데 그가 1101호에 살고 있음을 안 것은 때마침 자기 집 쓰레기통을 들고 내려온 어느 중년 남자 덕분이다.
“이 아저씨 우리 집 맞은편 1101호 인데요!”
“아! 그렇습니까?”
1101호 인터폰으로 남자의 부인과 연락이 닿았다. 부인의 음성이 분명했다. 부인은 내려오자마자 나무라 듯 외마디 소리를 치면서 몸을 번쩍 일으켜 가볍게 앉혔다. 매우 익숙한 솜씨이다. “술을 처먹었으면 고이 집에 처박혀있을 일이지.” 그녀는 손바닥으로 남자의 등을 몇 차례 후려쳤다. 남자는 도리어 어리둥절한 듯 멍하니 주위를 둘러본다. 자기 상태가 어떤 상황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누워있던 머리 뒤 부위 블록 바닥엔 피가 흥건하다. 뒷머리 상처 부위는 붉은 피와 희끗한 머리카락이 뒤엉켜 피범벅이 되어있다. 구급대원 한 명이 노란 플레시로 눈꺼풀을 뒤집으며 여기저기를 살핀다.
“병원으로 빨리 갑시다!”
이내 남자는 구급차 침대에 묶인 채 짐짝처럼 태워진다. 나는 그가 구급차 뒷문을 통해 침대 채로 태워지는 장면을 뒤로 하며 현관문을 들어섰다. 현관 로비엔 백열전구가 썰렁하게 빈 칸을 지키고 있다. 텅 빈 공간의 여운을 타고 이제서야 제대로 남자의 음성이 들려온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니.... 도대체 그 섬은 어떻게 생겼을까. 나 같은 인간에게 그 곳은 소통의 안식처일까, 차가운 단절의 숨 막힘 일까. 나는 지금까지 바다 위에 고고히 떠있는 희망의 섬을 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어. 죽어라고 현실의 바다를 헤엄쳐 왔지. 그리고 이제는 피안(彼岸)의 섬에 도달했다고 안심 했어. 그런데 내가 지금 끌려가고 있는 곳은 도대체 어디지?”
나는 그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인다.
“어쨌든 나도 바다를 건너 그 섬에 가고 싶습니다. 결국 당신처럼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갈 수도 있겠지만.”
누워 있는 남자가 계속 무엇인가 얘기하려고 우물거리고 있다. 여전히 왼 손에는 담배꽁초, 오른 손엔 장수막걸리 한 통이 쥐어져 있다. 언제나 혼자이고, 혼자 그 만의 섬을 드나든다. 혼자가 아닌 상황을 본 것은 현실적으로 딱 한번이다. 모처럼 자식들이 왔는지 어린 손자의 앙증맞은 손을 잡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엘리베이터에 타는 장면이었다. 그 후로 그는 멍한 가면(假面)을 쓰고 다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체리 색 벽(壁) 속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만의 섬을 그려가고 있었다.
나는 왠지 그를 다시 보자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되지 않을까하고 을씨년스런 기분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엘리베이터 안의 벽면에 희망의 섬을 그리며 올라간다.
약 력
- 수필가 自由文學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노원문인협회 이사
- 이영팜 대표
첫댓글 이 수필의 작가는 김국장인가요 ?
아니면 수필가 존함은 ?
맞지요.
분명 섬은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