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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니에슈카 테넌트 Agnieszka Tennant 2011.8.2 홍종락 옮김
작고한 Sing-a-song Wiriter 리치 멀린스는 캔자스주 플린트힐의 외곽을 차로 달리며 눈물을 흘렸다. 테이프를 통해 프란체스코수도회 사제 출신
브레넌 매닝의 설교를 처음 듣던 날이었다. 그는 트럭을 도로 한쪽에 세웠다. 나중에 그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매닝의 메시지는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도덕주의적 종교성’의 힘을 깨뜨리고 오래전에 시들어버린 하나님의 용납하심에 대한 깊은 인식을
되살려냈다.”
「하나님의 모략」과 「마음의 혁신」(이상 복있는사람 역간)의 저자 달라스 윌라드는 매닝의 글이 “영혼에 불씨를 던져 넣는다”고 쓴 바 있다.
가수이자 저술가인 마이클 카드는 “상황이 어려울” 때 매닝에게 전화를 걸고, 그의 이름을 따라 맏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그는 브레넌
매닝의 책 「사자와 어린양」(복있는사람 역간)이 “내가 그리고 있던 하나님 상을 고쳐주었다”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심리치료사이자 영적 지도자 래리 크랩은 매닝에게 조언을 구한다.
유진 피터슨은 매닝의 365일 선집인 「부랑아를 위한 묵상집」(Reflections for Ragamuffins)이 “복음이 좋은 것, 눈부시게 좋은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복음에 대한 열정적이고 정확한 묘사”라고 소개한다.
록밴드 U2의 멤버들은 매닝의 책을 읽는다.
가수 마이클 W. 스미스는 매닝의 책 「한없이 부어주시고 끝없이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규장 역간, 원제는 ‘부랑아 복음’)를 하도 많이 나눠줘 그 수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한다.
작가 필립 얀시는 매닝을 좋은 친구로 여긴다.
복음주의권을 이끄는 이들이 “뽐내고, 과장을 일삼고, 지성인입네 허세를 부리고, 사람들을 참아줄 줄 모르고, 술을 마셨다 하면 끝장을 본다”고 자백하는 70세 가톨릭 신자의 어떤 부분을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끼는 걸까?
사기꾼의 추적
매닝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끈 부분은 짙은 검은색 눈썹이었다. 눈썹은 최근에야 희끗한 기운이 어리면서, 눈이 내린 것
같은 그의 백발과 비슷해질 기미를 보였다. 그 다음에는 그의 턱, 얇은 입술, 그리고 입 주위의 깊은 주름살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지만 지독하게 파란 눈만은 영원이 담긴 듯 젊었다.
얼굴 아래로 내려오면
어린아이의 영혼에서 나온 것 같은 기발함이 보였다. 알록달록한 네모 천을 보란 듯이 기워놓은 옅은 색 청바지. 마치 본인과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내가 성자라고 생각하지 마라. 난 부랑아고, 당신도 부랑아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베스트셀러 「한없이 부어주시고 끝없이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그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심을 안다는 뜻”이라고 밝힌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진정한 자기용납은 적극적인 사고나
심리게임, 대중심리학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할 때 나오는 믿음의 행위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고, 매닝은 본인이 지난 41년 동안 해온 일 외에는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죄인들이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자기용납에 이르는 여정을 돕는 일이다.
그
역시 그 길을 걸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사기꾼’이라 부르는 캐릭터를 떨쳐버리지 못한 채 지금도 매일 그 길을 걷고
있다. 누구나 이런 ‘사기꾼’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그것은 “참된 자아로 가장하는 교활하고 병적이고 교묘한 모습”이다. 이런
사회적 가면은 호의와 사랑과 인정과 용납을 갈망한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진정한 자아가 타락한 자아보다 더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고 더 실질적인 존재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 사기꾼은 지루할 틈이 없었던 매닝의 생애에 줄곧 그늘을
드리웠다. 어린 시절을 보낸 브룩클린에서도, 저널리즘을 공부한 한 학기 동안도, 해병대로 복무한 한국에서도 그랬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팬티웨이스트 차림을 한 열여덟 살짜리 사제 지망생들과 함께 라틴어로 시편을 읊조리고”, (“싫어하는”) 근대를
먹으라는 명령을 받고, “발목까지 오는 겉옷을 입고 계단을 오를 때 옷자락을 들어 올리는 것을 잊고 자꾸 넘어지는 일들”이 끔찍해
7일 만에 그만둔 가톨릭 신학교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프란체스코회 수도회 소속으로 미국에서 섬길 때도, 유럽에서 예수의작은형제회와
함께할 때도 그랬다. 현재 살고 있는 뉴올리언스에도 그는 자유롭지 않다.
1955년 10월 어느 밤, 매닝은 모든
것을 다 이루는 꿈,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완벽한 삶을 누리는 꿈을 꾸었다. 아내가 빵을 구워주고, 차고에는 포르쉐가 있고,
자녀가 넷이고, “벽에는 금테로 두른 명판이 걸려있었다. 내가 받은 노벨문학상 증서였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은 악몽이었다. 그는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소리쳤다. “하나님,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매닝은 여전히 이렇게 기도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여 불만에 사로잡힌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를 데려다 많은 경험을 하게 하셨고 그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엿보게 하셨다.
그는 1960년대를 지나며 다양한 각도에서 예수님을 보았다. 「아바의 자녀」(복있는사람
역간)의 저자는 공적 사역에 앞서 당시 프란체스코회에서 2년간 유급휴가를 받아,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 일에 헌신한
예수의작은형제회에 합류했다. 낮에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육체노동을 하고 밤에는 기도를 했다. 스페인에서는 나귀가 끄는 짐마차를
몰고 여러 마을에 물을 운반했으며, 프랑스에서는 석수 일을 돕고 설거지도 했다. 스위스의 감옥에 자청해서 들어가 강퍅한
범죄자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다. 오직 간수만이 그의 정체를 알았다. 매닝의 설명은 이렇다. “나는 다른 죄수들에게 무슨 죄목으로
들어왔는지 묻지 않는다. ‘남의 일에 신경 끄라’는 답변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게 같은 질문을 할 때면 나도 ‘남의
일에 신경 끄라’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의 사라고사 사막에 있는 한 외딴 동굴에서 여섯 달을 지냈다. 일요일이면
누군가가 음식과 물, 등유를 두고 갔다. 그곳에서는 대부분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성경,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삼부작, 샤를 드
푸코의 저작, 그리고 작은형제회 운동에 영감을 제공한 한 순교자 사제의 글을 읽었다. “밤에는 잘 자고 낮 시간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기도 전에 금세 지나가버리는 날들이 많았어요. 무미건조하고 외로운 날들도 있었지요.”
왜 그렇게 했을까? 그는
무미건조하고 외로운 날들에도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정서적 친밀감을 느끼고 싶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부부에게 두 주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나 생생하고 실감나서 그
자리에 있는 동안, 계란을 먹건 성만찬을 하건, 그분의 임재감을 한결같이 느낄 수 있다고 정말 믿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 동굴에서 매닝은 계시를 받았다.
1968년 12월 13일 새벽 3시,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나는 너를 사랑하여 아버지 곁을 떠났다. 나를 피해 달아난 너, 나에게서 도망친 너, 내 이름을 듣기 싫어하던 너에게 왔다.
너를 사랑해서 침 뱉음을 당했고 주먹과 여러 도구로 얻어맞았고 나무 십자가에 달렸다.”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의 메시지는 매닝의
마음에 새겨졌고, 이후 그가 수없이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매닝은 사람들이 죄와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아바의 품에 안전하게 안기게 한다. 그분의 사랑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그의 재능이다. 매닝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은 실패를 맛본 사람들이 사랑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실존적 체험에 이르도록 돕는 것입니다.”
1970
년대 중반, 매닝이 플로리다주 브로워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교목으로 있을 때였다. 그의 속에 있는 ‘사기꾼’이 동굴에서 만난 하나님을
무시하고 엉뚱한 장소에서 사랑과 용납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의 인정을 갈망했다. 그리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술에서 위안을
얻었고 마침내 알코올 중독으로 무너졌다. 6개월간 치료를 받은 후, 그는 술을 끊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알코올중독은 이후
1980년과 1993년에 두 번 재발했다.
매닝은 이 일을 통해 배운 교훈을 글로 썼고, 이후 강연과 영적 휴양
모임을 여러 차례 맡아서 인도하게 되었다. 일정 기간 동안 특정한 종교적 관습을 따르다 곧 안정감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찾아 나서던 그는 1982년에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떠났다. 그리고 경건한 루이지애나 출신 여성을 사랑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뉴올리언스에 정착했다. 이 결정으로 그는 “비활동 사제”가 되었다. 가톨릭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거나 성만찬을 집전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자신의 실패에 충격을 받거나 경악하지 말라
알코올 중독과의 싸움 배후에는 자기혐오라는 더 무서운 적이 버티고 있었다. 매닝은 “수치심, 죄책감, 회한, 자기정죄에 시간을 허비한 것”이
참으로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죄를 짓고 난 후 느끼는 합당한 죄책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죄책감 속에
뒹굴면서 그것에 거의 탐닉하는 모습인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나를 생각과 관심의 중심에 놓는 일종의 우상숭배”다.
그는 최근작인 「자기혐오와의 결별」(The Glimpse of Jesus: A Stranger to Self-Hatred) 집필이
“엄청난 치유의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망가진 상태 그 자리에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자기비난에
빠지지 않고 망가진 행동을 주님께 내어놓아 재빨리 회개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거나 경악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얼마 전, 그는 18년 동안 부부로 살아온 로슬린과
이혼했다. 매닝은 파경이 자기 탓이라고 말한다. “여러 해 동안 잦은 출장과 몇 번의 알코올 중독 재발로 부부관계는 악화되었고
결국 2,000년에 이혼했습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천천히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 고통의 그늘이 지나갔다.
그와 로슬린은 몇 차례 상담을 받았다. 1년간 별거했다가 다시 합쳤지만 또 다시 별거 상태로 3년을 지냈다. “그 무렵 로슬린은
다시 합치거나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상담을 받으려는 기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혼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이혼한 남녀가 흔히 보이는 적대감은 없다. 로슬린은 이 기사를 위한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지만 전남편의 사역을
돕고 있다. 매닝은 “내가 떠난 후에도 그녀가 오랫동안 부족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두었다.
“우리 사이가 다정하다고 말하면 너무 진부하게 들릴 테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낫습니다. 진실한 우정이 있고 서로를 기뻐하며 만날 때마다 포옹을 합니다. 부부로 지내던 마지막 몇 년보다 헤어진 지금 더 잘 지내는 것 같습니다.”
침묵과 고독
매닝은 자신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죄를 지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수치심에 더 주의를
기울였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가 인기를 얻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 죄는 많이 지적하지만
은혜를 가르치지 않았던 교회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해방의 선언이다.
“알코올 중독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비슷한 문제들로 씨름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매닝 덕분에 나는 내게 약점들이 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바로 그 약점들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이클 카드의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신뢰하는 지도자들을 통해 매닝을 추천받아 그가 인도하는 휴양 모임에 참가하고 그의 책들을
읽는다. 매닝은 성공회, 루터파, 감리교, 장로교, 심지어 일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도 강연 요청을 받는다. “하지만 내 사역의
절대다수는 복음주의권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주의권에서 그가 만나는 복음주의자들은 “40% 정도가 가톨릭
출신”이다. 가톨릭 교회를 떠난 이유를 묻는 매닝에게 그들 중 “절대 다수는 가톨릭교회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전(禮典)은 접할 수 있었지만 복음은 들을 수 없었던 겁니다.” 매닝은 가톨릭 출신의 복음주의자들과 적어도 세 가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다. 성직자의 독신제도가 선택사항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마리아에게 기도하지 않는다(“하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는 비판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복음주의자들이 매닝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또 있다. “복음주의 목사들에게서 지도자가 이끌어주는 침묵 휴양 모임에 대한 욕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대상으로 몇 차례 침묵 휴양 모임을 인도했습니다.”
매닝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침묵과 고독의 자리로 물러난다. 1년에 8일간 콜로라도의 예수회휴양센터(Jesuit retreat
center)에서 머문다. 그 기간에는 하루 45분간 영적 지도자와 나누는 대화를 제외하고는 일체 침묵한다. 또, 지난 8년 간
영적으로 그를 이끌어준 도미니크회 소속 한 수녀의 도움도 받는다. 두 사람은 기질검사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고, 매닝은 “수녀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말한다.
뉴올리언스에 있는 동안에는 성령성당(Holy Spirit Catholic
Church)의 아침미사에 매일 참석한다. 그의 경건생활은 오전과 저녁, 각기 한 시간씩 기도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오전에는
그날의 성경구절과 해당 본문의 주석을 읽고 침묵 속에서 묵상한다. 대략 20분 정도면 내적 고요 상태에 이르러 “정신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것, 음식과 섹스와 인간관계와 기타 모든 일에 대한 생각”을 떨치게 된다. 저녁기도 시간에는 신앙서적도 읽는데,
“예를 들면 얀시의 신간서적”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카테터와 수액백
아침과
저녁시간 이외에는 <아메리카>, <크리스천센츄리>, <뉴스위크>를 읽는다. 뉴스는 CNN과
공영라디오방송 NPR로 접한다. “뉴올리언스세인츠의 상심한, 그러나 열렬한 팬으로서” 프로미식축구를 즐긴다. 좋아하는 작가는
프레드릭 뷰크너. “쉬운 답변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와 “대단히 우아한 산문, 깊이 있는 통찰, 유머감각, 그리고 가차 없는
정직함” 때문이다.
보수적인 개신교 신자라고 해서 모두 매닝을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이단대책본부(PsychoHeresy Awareness Ministries)라는 단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그를
보편구원론자로 비난한다. 그는 이런 주장에 기겁을 한다.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내 세미나나 휴양 모임에 참석해보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분명히 적어주세요. 나는 보편구원론자가 아닙니다. 보편구원론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헛된 일로 만드는
이단입니다.”
매닝의 글과 휴양 모임은 심오하지만, 그와 친분을 쌓게 되면 장난기 많은 측면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책들을 읽은 사람들은 “신비가에다 성인 같은 인물을 예상하겠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작고 마른 사람이 바나나
스플릿을 한 번에 두 개나 먹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머감각이 뛰어납니다. 우리는 자유분방함과 기쁨이
신앙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매닝과 함께 있으면 많이 웃게 되고 싱거운 농담과 허튼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가 찾아오면 우리는 함께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갑니다.” 카드의 말이다.
금세 눈에 들어오지 않는 매닝의 또 다른
특성은 약함을 숨기지 않는 태도다. 한번은 그가 등을 다쳐 수술한 직후에 강연 차 내슈빌에 간 적이 있다. 카드가 그를 태우러
공항으로 갔을 때, 매닝은 허리보조기를 한 채 카테터와 수액백을 매달고 있었다. 카드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허약한 상태였습니다.…유령 같은 모습에다 몸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비행기 타고 집에 가라”는 친구의 선의의 충고를 무시한 채
매닝은 약속 장소로 향했다.
“대단한 행사는 아니었습니다. 강연장은 그냥 조그마한 고등학교였습니다. 그런데 강연을
듣고 난 뒤 교장 선생님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시더군요. 매닝이 들려준 내용에 몹시 감동하셨던 거지요. 교장 선생님의 모습과
많은 고등학생들의 반응을 보고서야 몸이 안 좋은데도 그가 강연을 고집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본받은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약함을 통해 강함이 나오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 매닝의 표현대로 “자신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아는 불안정하고 무릎이 후들거리는 사람들”, “추레하고 늙고 녹초가 된” 사람들, “유전적인 결점과 부족한 재능을 가진
가난하고 약하고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모든 부랑아에게 위안이 되는 사실이다.
아그니에슈카 테넌트(Agnieszka Tennant)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의 편집자다.
첫댓글 브레넌 매닝(Brennan Mannning)이 대표적인 관상가의 한 명이라고 무조건 비판하는분들도 있는데,
위의 글을 읽어보면 배울 점이 많은 것 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