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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시 2편– 시詩 교실 문학치유사 강사 초대시】
첫눈
- 이삭빛 시인
가을이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소리에 그대여, 슬퍼하지 마라.
가을이 깊어져 겨울이 되어서야
네가 내게로 올 수 있나니
그대여!
겨울은 어쩌면 내 생에 가장 빛나는 봄날,
그리움의 주머니에 네 눈빛을 넣고
네가 좋아하는 메타세콰이어 길에
눈송이 같은 미소로 마중 나가 있을 테니,
사랑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았던 청춘으로 내게 와라.
웃음꽃
- 이삭빛
-
평생을 마주보고 싶은 사람
죽을 때까지 지켜주고 싶은 사랑
【희망의 명작품 초대】
호호호虎虎虎
- 정성수 시인
호랑이가 이빨을 감추더니 굴문을 철가리했다
호피를 깔고 어둠을 끌어당겨 이마를 덮는다
간헐적으로 내뱉는 잔기침이 목침을 흔들어도
호랑이를 품에 안는 꿈을 꾸어라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꿈을 꾸어라
꿈들이 모여모여 好好好
호랑이 가죽이 욕심나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겁날 것 없다.
꼬리를 잡으면 로또를 맞은 거다. 나는 알고 있다. 흰 범은 함甝이요, 검은 범은 숙虪이라는 것을, 뿔은 있으나 앞발이 없고 표범무늬를 가진 놜貀이라는 짐승이 있다는 것도.…
호랑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곶감이 아니라 캄캄한 굴속이었다. 굴속으로 들어간 호랑이는
한 마리 두더지에 불과하지만 굴 밖으로 나오면 송곳니는 날카롭고,
수염을 날리는 구름무늬를 가진 조선 표범이다.
멧돼지들이 나뭇등걸 파헤치는 소리에 잠이 깬 호랑이가
짐승의 피를 몸에 바르고 양미간에 꽃물을 들이면
와지끈 무너져 내리는 산이
산을 부른다
호호호虎虎虎
어머니의 그네
-김해빈 시인
굳은살 박힌 구십 년
그네에 앉히고
힘껏 굴러본 발판
앞뒤의 거리가 위태롭습니다
뒤로 물러서야 앞으로 나가는
그녀의 법칙은
지난날의 고해성사 인가요
차고 나가는 길이
지나온 거리보다 가쁘고
솟아올라야 할 높이마다
숨 막히게 어지럽습니다
다 비워버렸기에
당기지 않고 구르지 않아도
흔들리는 시간입니다
봄여름 가을 지나
겨울 문턱에 들어선 거리를
이제야 애타게 붙잡지만
참 부끄럽습니다
주상절리
-이오장 시인
끊어진 불꽃이
가닥가닥 곤두섰다
식어버린 용암이
켜켜이 포개졌다
따라 들어온 물이
불꽃 지워 용암을 보듬던 날부터
날아온 학들이 만든 골짝
황토는 스며들고
뚫린 구멍마다 샘물 솟아나
쪽빛 물이 흐른다
민출랑에 앉은 햇살이
드나드는 발길 붙잡아 돌리는 맷돌
너른 바위 끝자락에 고드름 내린다
돌이 돌을 만나 물길 만들고
그늘마다 늘어진 쉼터에
돌개구멍 자갈들이 노래하는 계곡
급경사에 떨어지는 물도
서로 어울려 어깨춤 춘다
초인(超人)
-이양우(李洋雨) 시인
나의 죽음에 대하여 미리 말한다.
“그대들이여!
모든 것은 끝났다.
아무 것도 생각지 못할 영겁에 들겠노라.
시간도 자유롭고
구애 없는 평화에 깃드노라.
초인은 만세를 부른다.
내가 말하는 초인은
땅속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제는 흙에 충실하리라.
거친 사막도 내 것이요.
비옥한 광야도 내 것이로다.
추악과, 죄악과, 허무와, 공포와,
허위와, 가식뿐인 세상도
나를 잡지 못한다.“
완전한 자유로부터의
운명애(運命愛)
그곳은 초인의 본향이다.
나를 괄시받게 한 운명도
나를 놓아주었다.
사나운 고해도
평온한 낙원으로 바뀌었다.
혈육들아, 어서 내곁에서 멀어져라.
자유는 정결한 것이라.
누구도 이를 범접치 못할지라.
모두가 나를 잊어다오.
"그렇지, 그래야 하지!
무덤 조차 없애버려야 하지!
초인은 날아가는 천사!"
누구의 눈에서도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으로의 귀환자.
슬퍼하지 말자,
죽음이란 신성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초인,그 자유의 함성과 내면의 혁명
제비꽃
- 송하진 전)전라북도 도지사, 시인
꽂아, 제비꽃아
너를 볼 때마다 나는
시 한편을 쓰고 싶어진다.
마음이 둥둥거리다가
덜컹거릴 때면 더욱
시 한편을 쓰고 싶어진다
그런데, 제비꽃아
미안하지만 나는
너 보다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다
너 대신 나를 울어 줄
그런 시를 쓰고 싶은거야
그러나, 나의 용기는 항상 애매해서
청아한 너의 곁으로 다가가는 시간들 조차
겸연쩍기 그지 없다
그러니까, 제비꽃아
울지 않는 제비꽃아
청아할 뿐 결코 울지않는 네가
나는 너무 미운거야
빙어를 낚다
- 손해일 시인
얼음판에 가부좌하고
순수를 낚는다
빙판 위 통통 튀는 은빛 햇살
투명한 빙어 속살
기실 감출 것도 없으면서
속내 들킬까 저어하다
갯고랑 살여울
숨죽인 소용돌이
버선목 뒤집듯
내 속도 뒤집어 보일 수 있을까
오늘은 반가부좌로
동안거冬安居에 든다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시인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자면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 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 바다를 건너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리사랑
- 신방윤 시인
백발의 아버지가 되어도
어머니한테는 언제나 아들인가 보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손자들이 오는 날에는
여느 때보다 손발이 바빠지신다
다녀간 날짜를 용케도 기억하시고
기다리는 마음은 정류장을 향하시기 때문이다
손자들의 얼굴빛이 좋으면
색시감이라도 만나고 있느냐
까칠하면 아픈데라도 있느냐 물어보신다
가족들에게 어머니는
주치의이자 일류 요리사다
자신을 돌볼 만큼 성장했어도
병원 검진이라도 받아보라 성화시다
아들 덕으로 어머니의 저녁 밥상이
세월의 장독대에 손맛이 더해져 진수성찬이다
맛있어요 맛있어요 두 그릇째 먹어도
더 먹거라 건네는 사랑에
울타리 가득 웃음꽃이 피고
손자들 사랑이 어머니에게는 비타민이다
밤새 소리 없이 하얀 눈이 토방에 쌓였다
화단을 외롭게 지키던 난초마저 숨을 거두었다
가슴으로 보듬어 주고 홀로 베갯잇을 적셔도
어머니란 이름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듬어 주시는 거룩한 내리사랑에
감나무 가지에 백설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구부러진 길
- 이준관 시인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어머니의 키질
-김관식 시인
어머니께서는 노을이 질 무렵
부엌 앞에 키를 들고나와 쭉정이와
알곡이 섞여 있는
곡식들을 키질하셨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지난날
가슴앓이 같은 붉은 노을에
가족들의 한 끼 알곡을 받쳐 들고
헐떡거리며 살아온 생애처럼
까닥까닥 키질해대면
제 잘났다고
까불대는 쭉정이들은
길길이 날뛰며
키 밖으로 달아났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랑의 곡들이
제 모습을 찾아
어머니의 가슴으로 다가와서
숨을 죽였다
끝까지 남은 것은 알곡만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딱딱한 상처의 응어리로 남은
작은 돌멩이까지 섞여 있었다
눈물을 먹고 살아온 세월
알곡과 함께 섞여 살아온
암 조각처럼 단단한 돌 부스러기들도
말없이
어머니께서는 바가지에 함께 담으셨다
돌은 키질로 걸러낼 수 없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눈물을 먹고 살아온 돌 조각
키질 대신
물에 담가 조리질로 걸러내시곤 하셨다
화해 花蟹
- 하송 시인
냄비뚜껑을 열자 꽃처럼 붉은 꽃게가
철갑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건들기만 하면 짤라버리겠다고 엄지발을 치켜든다
뭉툭한 가위로 발을 절단하자
죽는다고 소리 지르는 것은 꽃게가 아니라
가위였다
골수가 울컥 쏟아지더니
바다는 잠잠했다
사는 일은 파도가 잠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갯뻘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기는 것이다
꽃게는 파도가 거칠수록
두 눈 똑바로 뜨고 등딱지에 힘을 준다
한 평생 꽃처럼 배를 보이지 않는 것이 꽃게다
섬 하나가 안테나를 세우고
육지로 나간 꽃게 소식을 기다리는지
바닷바람에 허리가 꼿꼿하다
바다를 버린 꽃게는 절대 바다를 돌아보지 않는다
화해花蟹 : 꽃게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이기철 시인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시(詩)
-노상근 시활동가
마음 언덕
붉은 해가
온 대지를 지배하듯
나의 공간
사이사이
구석구석
그대가 왔다
와락 ~ 청춘처럼 일어서는 눈물방울
심연(深淵)
-논개
김경수 시인
바람을 걸러낸 눈빛은 진하다
그 눈빛의 심연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향기롭다
당신을 바라보면 행복한 미소보다 눈물이 난다
세상은 온통 욕심을 찾아 헤매지만
그대 안으로 들어온 무수한 삶의 모습들은 가난하다
슬픔의 모든 뿌리가 선이라는 것도 알아야 하기에
보이는 모든 풍경들이 네 안에 들어오면 슬픈 수초가 된다
그래서 촉촉한 물기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흔들림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아버지의 모습처럼
생각을 움츠린 채 길 위를 시적詩的 시적詩的 걷기도하지
그는 늘 쉬지 않고 심상心象의 깃을 세우며
뿌리가 간결하게 흔들리도록 춤을 추지
춤추는 저 물기어린 투명한 형체의 리듬을 보아라
빠른 물결과 굽이치는 급물살에 생이 휘감기는 곳
그 곳에 몸을 묶고 상구를 돌려 대는 저 유연함에
어린아이가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 숨결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인가를
절박한 꽃으로 피워내는 순간이다
절명시絶命詩
-김영붕 박사(매천 황현 시 2,027수를 최초 완역한 인물/절명시 1편)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안다)”은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한 세기를 앞서 살아간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은 '매천야록' '오하기문' 등을 남긴 역사학자요, 문학가 시인으로 또 애국계몽사상가, 교육가,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매천은 1855년 광양에서 태어나 평생을 구례에서 살았다.
살아생전에 호남삼걸湖南三傑로 이름이 높았으며, 조선 후기 3대 시인으로 신사가新四家로 당대를 풍미했다.
매천이 남긴 글은 후세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은감불원殷鑑不遠(은나라의 왕이 거울삼을 만한 것은 먼데 있지 않다; '시경' 「탕편」)의 고사가 있듯이 우리는 매천의 시문詩文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1910년 8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고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멸망되자 선비로서의 책임과 치욕스러움에 통분해 칠언절구 4수 1편의 <절명시>를 남기고 일제에 항거해 목숨을 끊었다.
제1수에서 분연한 자결에의 의지, 제2수에서는 망국의 한, 제3수에서는 반성해 보는 지식인의 자세, 제4수에서는 투쟁하지 못한 자기 신명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는 마무리였다.
이 <절명시> 가운데 제3수에 후세의 한국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있다.
“새 짐승 슬피 울고 산 바다도 찡그리고(조수애명해악빈, 鳥獸哀鳴海岳嚬)/ 무궁화 금수강산 침몰돼 없어졌네(근화세계이침륜, 槿花世界已沉淪)//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오랜 역사 되새기니(추등엄권회천고, 秋燈掩卷懷千古)/ 글 아는 선비답게 행세하기 어렵도다(난작인간식자인, 難作人間識字人)”라 읊었다.
'매천야록'에는 한국인들이 가장 읽고 싶지 않은 「한일병합조약」의 전문이 있다.
“제1조 :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한국은 완전히 일본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한다.”는 내용이다.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은 윤덕영을 시켜 어새를 날인케 하니 조선 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멸망되고 말았다.
이날 체결된 조약은 일주일 동안 비밀에 부치다가 칙유와 함께 이를 반포한 것은 융희 4년 8월 29일(양력)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이 조약으로 매천은 더이상 순종황제의 조칙이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3차례에 걸쳐 다량의 아편을 먹고 9월 10일 자결 순국했다.
한국은 경술국치 이후로 수치스럽게도 35년간이나 온갖 수모를 겪고 일제의 식민지로 살았다.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식인의 사명이 있다. 국가가 망해가고 망해버린 절체절명의 시점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지식인이 아니다.
지식인은 매국 행위를 견제하고 구국救國에 앞장서야 한다. 매천은 이 <절명시>에서 위정자들의 매국의 책임을 묻고 일제에 대항하려는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밝혔다.
매천은 단 하루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가가 망한 것을 혼자만의 책임인냥 일제의 국권 침탈을 막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죽음으로 지식인의 사명을, 선비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매천의 사상은 충인의忠仁義의 사상이다.
매천은 조선조 제일의 애국시인이다. 조선왕조의 멸망 과정을 '매천야록'에 기록하면서 대은大隱의 선비로 평생에 걸쳐 통곡의 삶을 살았다.
그의 많은 애국시 내지는 우국시憂國詩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천하만물이 잡화경(雜花境)이다
- 김동수 시인, 전라정신연구원장
물리학자인 양형진은 『산하대지가 참빛이다』는 책을 내 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사물에 의탁해 진리를 드러나게 한다)’이라는 ‘현상의 법신관(法身觀)’을 드러냈다. 이 세상은 온갖 잡화(雜花)들로 장엄한 화엄경이라 했다. 화엄(華嚴)은 불교의 경전인 ‘잡화장엄(雜華莊嚴)’ 곧, ‘온갖 꽃으로 장식한 세계’라는 뜻으로 여기서 말하는 ‘꽃’이란 깨달음의 공덕을 꽃에 비유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의 이면에는 그 나름대로의 진리가 다 들어 있으니 삼라만상이 곧 부처요 잡화로 장엄한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 아름답지 않은 생명이 따로 있지 않다는 말씀이다. 일체중생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연기적 실상, 그게 바로 이 세상의 모습이요, 우주의 본상이라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고행 끝에 새벽 별을 보고 이 화엄의 세계를 깨달았다고 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참빛의 세계’로 볼 수 있는 눈, 일체의 것들을 평등심 속에서 한 몸의 것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눈,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것들이 ‘잡화경(雜花境)’이라는 통찰을 통해 우리 모두가 그 일원으로서 이 ‘잡화경의 축제’에 즐겁게 동참하자는 것이 화엄의 세계요, 잡화경의 세계다.
시인의 안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소외되고 억압되어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것들, 그 또한 잡화(雜花)요 화엄의 일원임을 깨달아 그것들의 일체를 사랑으로 재발견하고 보듬어 가는 일이다. 그리하여 시인의 눈에는 세상의 어떤 것도 ‘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좋은 시가 나올 수 없다는 게다. 범부의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그 ‘잡화’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쓰임에 따라 세상을 장엄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진정한 시인의 자세요 안목이라 생각된다.
시(詩)는 언제 어디에서 오는가? 시는 사(私)적인 내(我)가 현상을 넘어, 그 현상적 내(我)가 공(公)이 되고 무아(無我)가 될 때 온다. 나와 나의 감정을 앞세울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나(我)을 벗어날 때 비로소 시가 온다. 그러기에 시인의 시어는 이전의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로 거듭나는 언어, 그야말로 ‘잡어(雜語), ‘잡화(雜花)의 축제’에 참여하여 자기도 잡화(雜花)의 하나가 되어 저잣거리로 나서는 화엄의 화신, 선사(禪師)들의 언어이다.
파편적 존재로서의 소아(小我)가 무너지고, 우주적 존재로서의 전일적(全一的) 자아의 확장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대상과 세계를 방하착(放下着), 자신을 비워 자아의 실상을 온전하게 인식하여 무아(無我)가 열리는 세계이기도 하다. 떼 지어 몰려다니는 집오리떼의 언어가 아니라, 하늘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 독수리의 눈이다. 때문에 시인의 언어는 언어의 국경을 넘어 진아(眞我)의 세계로 넘어가는 ‘날개옷(wing suit)의 언어’. 언어를 쓰되 언어를 넘어선 ‘초월의 언어’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비현실로, 각질화된 일상에서 비일상의 세계로, 의식에서 때로는 무의식으로, 사실(fact)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체제와 논리를 떠나 철학적·형이상학적 담론을 감각적 이미지로 대체하면서, 현실 저 너머의 세계를 직조(織造)하는 은유적 언어,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근원적 욕망을 주문하는 샤먼의 언어, 고통의 현실에서 실존적 해방감을 안겨 주는 치유의 언어이기도 하다.
인간도 육체를 가진 동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함께 물질계에 속하지만, 언어를 통한 사유와 그에 따른 영적 세계가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그러기에 시인의 언어는 일상적 언어가 아니라 『반야심경』의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우리 모두 함께 넘어가자)에서처럼, 현실의 언덕을 넘어 가는 염불의 언어, 무명(無明)의 번뇌에서 광명의 진리로, 환영(幻影)의 사바계에서 실상(實相)의 극락계로, 중생의 삶에서 보살의 삶으로 건너가자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진언(眞言)이기도 하다.
여체(女體)
- 도창회 전)동국대교수, 수필가, 노벨문학상 후보
조물주가 인간의 몸을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짓지 않았다는 지배적인 견해인 같다.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아무려나 그 쓰임새에 따라 매우 조화롭게 지었는가 싶기도 하다. 일찍이 어떤 시인은 인간의 육체를 소우주에 비겼다. 어떤 생각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옛 그리스의 천문인 푸톨레미는 우주는 분명 질서가 있고, 우주 안에 있는 만물들은 모름지기 모두 질서 있게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런 소릴 내가 믿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단순한 몸뚱어리를 소우주라고 보고서 찬찬히 각 부위를 뜯어보면 신기하기가 이를 데 없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그 특색이 있겠지만, 그러나 대체로 여자의 육체는 남자보다는 더 아름답게 지어졌다는 게 통설이다.
그림 속의 나부(裸婦)를 가만히 지켜보면 나는 어느새 탐혹(耽惑)되어 야릇한 감흥에 젖는다.
나는 하릴없이 어느 무료한 날 무료한 시간을 빌어 여체의 전라(全裸)의 부분 부분에 상상의 나래를 펴 나름대로 느낌을 글로 적어보기도 했다.
여체의 부위 중 맨 윗부분은 두발이 될 것인즉, 거기서 시작해보기로 한다.
널따란 지표(地表)는 천연 숲 그대로였다. 거기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원시림으로 바람기가 조금만 있으면 출렁거림이 있다. 이 천연 숲 위에 태양이 뜨면 금빛 화려한 출렁임이 있고, 달이 뜨면 은빛 신비스런 출렁임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촘촘히 불모지를 메운 이 수림에 바람이 불 때엔 흡사 모두가 모여 이구동성으로 내지르는 아우성의 광장일 수도 있지만, 다시 불던 바람만 그치면 고요한 대화의 광장일 수도 있다. 벌목을 해버리면 산토끼 한 마리 숨길 수 없어, 눈이 내리면 하얀 설원으로 변해 평화의 광장이 되기도 한다. 내보기에 이 천연 숲에는 고요 속에 자유분방한 변화가 늘 있는 성싶다.
원래 이 원시림에 인적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었으나 인간이 지(知)가 깨이고부터 이곳을 개간하여 가시덤불을 헤치고 가르맛길을 틔워 놓았다. 원구 배면의 너른 땅도 같은 수림으로 덮여 있어 나는 길 찾기가 어려웠고 간신히 숲 가운데 난 가르맛길을 좇아 곧장 직하했다.
숲을 나서니 목전에 뜻밖에 나타난 것은 풀 한 포기 없는 망망한 붉은 황토 벌이었다. 동서로 가로 누워있는 이 황색 들판은 아침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다. 이 광막한 황야에는 늘 바람이 불어 고적감마저 서려 있었다. 이 황야도 원래는 원시 밀림으로 덮여 있었던 듯 보이나 어느 때 산불이 났거나, 아니면 화전민들이 농사를 지어먹을 요량으로 풀을 뽑고 나무를 베어내어 개간해 놓은 곳 같기도 하다. 지금은 황토의 생땅이지만 두엄을 내고 가꾸기만 하면 비옥한 농토가 되어 작물이 잘 자랄 것도 같다.
여기서부터 두 개의 여우굴이 뚫린 산정까지는 아직 먼 거리지만 들판 중간 양편에 억새풀이 무성한 논둔덕이 보인다. 그 둔덕 아래 두 개의 천연 웅덩이가 나란히 있어 이 소(沼)의 맑은 수면은 낮에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비쳐 그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다. 소에 고인 물도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게 되면 소의 물빛이 흐리다. 흐린 수면에 비친 보름달이 실바람에 어른거려 그 모습이 선명하지 못하다. 나는 물 위에 뜬 보름달을 한참 완상하다 산줄기를 타고 언덕으로 향했다.
등성이를 타고 조금씩 오르다보니 산언덕은 점점 높아져서 어느새 마루에 이르게 된다. 정상은 언제나 그렇듯 사방이 두루 보인다. 높은 곳은 평지에서 못 보던 정경들도 보인다. 아하, 저런 곳도 있었구나 싶다. 산정이란 동쪽 하늘에 태양이 뜨면 언제나 맨 첫 번 햇볕을 받는 곳이라 세상 기별에는 가장 귀가 밝은 곳이기도 하다. 높은 곳은 두루 내다보여 좋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방이 드러나 있어 된바람을 맞기가 일쑤다. 고지란 언제나 누군가의 정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그 높이만큼이나 고독하고, 불안하고, 바람이 드세다.
나는 산꼭대기에 나는 바람을 잡아 들이키니 막혔던 가슴이 펑 뚫린다.
문득 발밑을 굽어보니 심연이 하늘을 마실 듯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어 아찔한 현기증에 눈을 꼭 감고 말았다. 높은 벼랑에서 보는 심연은 너무나 깊어 끝닿는 바닥을 헤아릴 길 없다. 이 심연 중심으로 해서 양편에 바람을 막는 바람막이를 세워 놓았다. 언뜻 보면 뭔가 좀 인위적인 데가 업지 않다. 바람막이의 존재는 오직 거기에 부딪는 요란한 바람소리가 있음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그런 점으로 바람막이란 모름지기 세상 시끄러운 소리에 견디기 괴롭고 고적하다 하리라. 하나 괴롭다 하여 모면할 수 없는 게 또한 바람막이가 아니던가.
오밀조밀 군데군데 볼 것 많은 세상을 등지고 못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 아랫동리를 향했다.
내리막을 타고 미끌어지면서 곧바로 전혀 상상치 못했던 신천지가 지척으로 달겨든다. 나는 별유천지에 들어선 듯 초입부터 가슴이 마구 설렌다. 베일에 싸인 어떤 신화의 줄거리가 밝혀지려는 듯 가슴이 서서히 조이는 순간이다. 내가 처음 이 두 거봉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안개 속에 묻힌 채 끝만 뾰족 내민 쌍산봉을 보고 놀라 한참 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만시지탄의 격세지감마저 느꼈다.
나는 언제나 비경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몰래 마음이 급해진다. 뭔가 다급한 상황을 맞은 듯 쫓기는 기분이다. 나는 쿵덕쿵덕 뛰는 가슴을 간신히 누르며 마음으로나마 바삐 봉우리를 오르는 기분은 몹시 부드럽고 묘한 거였다.
비경(秘境)은 비경(悲境)이라고 했지만 조물주는 양쪽 알맞은 거리에다 어쩌면 그렇게도 또옥 닮은 두 개의 산봉을 세워 그 사이 깊은 골을 파놓았으니 실로 제주가 용타는 생각을 떨어버릴 수 없다. 사실 우리가 사뭇 평평한 평원을 만나면 구경거리가 없다. 막막한 사막은 하다못해 돌무더기라도 있어야 눈요기가 된다.
높은 뫼가 있으면 깊은 바다가 있듯 조물주가 이 단조로운 지형에다 나란히 두 개의 거봉을 세워 그 사이 깊은 골을 파 조화를 꾀했나 보다. 히말라야 산정은 항시 흰 눈으로 덮여 백두(白頭)가 되었다지만 여기 이 쌍산봉은 엷은 안개로 둘러져 있어 보일락 말락 보는 이로 하여금 은실 발에 가려진 신비한 모습에서 한껏 풍만한 시정(詩情)마저 돌게 한다. 비경은 사람의 족적(足跡)이 없어야 신비를 더하는 법, 아무도 정복하지 못했을 그 정상을 쳐다보며 꿈속에서나마 발길이 잦던 유년 시절을 잠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 그곳엔 분명히 썰렁한 바람이 불고 있을 거란 게 내 느낌이고, 내 추측이다.
나는 이별을 주저하며 내키지 않는 걸음을 재촉하여 남으로 향했다. 눈에 아른 거리는 그 배경의 환상을 억지로 지우려 애쓰며 묵언행보 하는 도중 멀리 전방 둥근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섬을 발견하였다.
그 생김새가 하도 유별난 데가 있어 잠시 멈춰 나의 기묘한 상상력을 억지로 유발시켜 보았지만, 그러나 갈 길이 멀어 눈을 돌리고 말았다. 길은 계속 남으로 이어졌고 나는 그 길을 따라 마음을 모으고 걸었다. 내가 걷는 이 길은 광대무변한 평야 한가운데 나 있는 유일한 간선도로다. 이 길이 끝날 쯤 해서 낮은 구릉지로 미끄러져 내리면 별안간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안전에 큰 솔밭이 나타난다. 다박솔들로 채워진 잔솔밭이긴 하지만 제법 밀렵꾼이 끼어들 정도로 으슥한 곳이다. 아스스 한기가 돈다.
태고적 정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고요히 잠들어 있는 영구의 천연 숲이다. 나무들이 나서서 길을 막으니 자세한 지형은 알 길 없지만 얼핏 보아 삼각주 모양으로 이루어진 오지인 것 같다. 이 삼각주 꼭지점 부근은 낭떠러지로 발의 전진이 전혀 불가능했다. 벼랑 끝에 분명 신기한 구경거리가 있을 성싶은데 ‘접근절대금지’라고 주서로 쓴 위험표시의 팻말을 보고나니 호기심이 싹 가셨다.
전진불능의 만부득한 사정이고 보면 빨리 우회로를 찾는 수밖에 없다. 숲 속 골짜기에 난 우회로는 지세가 험난해 발바닥의 수고로움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 길밖에 없으니 딴 궁리가 있을 리 없다. 삼각주 꼭지점 언덕에서 다시 자세히 지형을 탐색해 보니 비슷한 길이 동서로 갈라져 있었다. 나는 일단 서쪽으로 난 우회로를 택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줄창 뻗은 골짝 길은 험하고 멀어 나의 숨은 턱에 닿고, 나의 안색은 노랗게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고갯길ㅇ르 벗어나 막 산모롱이를 돌자마자 돌연 거대한 두 개의 민둥산이 시야를 가렸다. 마치 서울 근교에 자리 잡고 있는 불암산에 솟은 쌍유봉을 연상시킨다. 하늘을 배경으로 유형선으로 휘어진 능선이 몹시 부드러운 서정을 가져다준다. 둥그마니 휘인 민둥산의 곡선을 눈길로 점차 좇다보니 어느새 나는 잠결에 아내의 뒷부분을 더듬는 착각에 헤맨다. 민둥산 굴곡을 좇아서 좌우로 빨리 눈을 회전하여 번복하면 어느덧 어떤 윤무(輪舞)가 시작되고 나는 그 가운데 어떤 황홀감 같은 것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뫼가 높아야 골도 깊어 이 두 개의 민둥산에 낀 골짜기에서는 맑은 개울물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상상력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시 찬찬히 민둥산이 그은 곡선을 따라 눈길을 보내면 거기 움직이는 어떤 율동이 보인다. 마치 산들바람에 물결치는 보리 이사들의 춤사위가 보인다. 부드러운 맥무(麥舞)가 나를 유혹한다.
치키고 뻗은 산이 남성적이라면, 순하고 야트막한 산은 여성적이라고 하리라. 높은 산은 높은 산대로 아름답지만 야트막한 산은 낮은 산대로 앙증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아트막한 민둥산에 무에 그리 아름다움이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러나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다르리라고 본다. 치솟은 산이 고담준려(高談峻厲)하다면, 야트막한 민둥산은 후정다감(厚情多感)하다 하리라. 비록 민둥산에 나무가 벗겨져 헐벗은 모습이 남루하고 따분하지만, 그러나 그 따분한 가운데 먼 훗날 푸름으로 채울 여유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민둥산을 기어오르고 내리는 매끄러운 굴곡은 차라리 내겐 하려한 촉감의 유희다. 정체된 어떤 공간에 감도는 아늑한 분위기가 나를 싸안는 듯 나는 그 몽롱한 분위기에 몰입하여 넋을 놓는다. 직립한 두 개의 민둥산이 더욱 내 맘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산 먼발치 어디쯤에 낯익은 안태고향이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우직스레 하늘을 떠받들고 솟아 있는 그 아둔한 모습에서 나는 무거운 어떤 뚝심 같은 걸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의 모성애 같은 뚝심으로 버티는 그런.
발길 가는 대로 맡겨놓아 예까지 다다르고 보니 다시 깊은 쌍갈래로 쪼개져 흡사 한쪽은 경상도로, 다른 한쪽은 전라도로 뻗은 길 같더라. 심신이 피로하고 서산에 일락하니 갈 길이 막연하여 나는 그만 이쯤에서 금일 관광을 끝내고 노숙을 청하여 남은 곳은 다음날 가보려 한다.
불통을 넘어 소통으로
-서거석 전)전북대 총장(15⦁16대), 전라북도교육청 교육감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아쉬워지는 계절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話頭) 중 하나는 소통입니다. 선거에 나오는 대부분의 후보들이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소통의 모습을 보이며 임기를 마치는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소통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혈관 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모든 핏줄마다 건강한 혈액을 공급해줄 수 있는 통로를 유지하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란 생각 때문에 혈관을 어떻게 건강하게 유지해야 하는지 관심이 많은 상황입니다.
같은 이유로 사회에서도 건강한 혈관의 역할을 하는 다양한 소통의 통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껏 우리들은 많은 지도자들에게서 소통을 강조하였지만 자신의 아집으로 인해 불통의 모습을 보이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무조건 옳고 자신과는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하고 불이익을 주는 모습을 우리는 지난 세월을 통해 지켜보았습니다. 요즘 사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한다면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청바지를 입고 다닙니다. 불필요한 허례를 배척하고 조금이라도 현실을 가까이서 느끼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입니다. 교육감이 예의를 갖추고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말을 가끔 듣기도 하지만 양복을 차려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면 제일 먼저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고 불편하지 않은 복장이 우선이 되어야겠다." 라는 생각에 청바지를 즐겨 입고 있습니다. 청바지는 저에게 있어 건강한 소통의 통로를 만드는 소중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항상 생각하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하면 화를 낼 일도 없고, 닫혀진 마음을 갖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거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했을 때 나와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일은 몹시도 힘든 일이 될 것이고, 그러한 힘듦은 자신의 의사를 따르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표출될 것입니다.
우리 몸의 피돌기가 잘되기만 해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혈관, 건강한 소통의 통로를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 계속 청바지를 입고 ‘열심히 뛰어야 겠다.’다짐해 보는 오늘입니다.
【청하면 시詩교실- 문학치유사편】
어머니의 블랙홀
-김혜숙
세월의 중력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에
붕괴된 세월이 누워있다
어제는 강으로
바다 같은 도량으로
한 치의 눈 판적도 없이
기도의 향기만 심던 어머니
손끝도 야무져
대소사를 지휘하고
어떤 모양에 담겨도
모난 데 없던 어머니
겸손으로 허리 굽혀
이제 꿈인 듯 생시인 듯
버퍼링 중이다
.몰라‘가 답 이지만
자식의 이름 앞에선
눈동자가 출렁이며
이슬이 맺힌다
삶을 지우며
저 산과 하나 될 때
나는 어머니 머리에
수레국화 관을
씌워드리리라
......
행복 했었다고
붉은 이야기
-김혜숙
해 박힌 포도알이
드라이한 향 품어내면
마음에 취기 오르며
붉은색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생각이난다
빨간 쉐타
빨간 신발을 사주시며
신호등 앞에 멈추듯
기다림 참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가슴 저린 이야기에
눈이 먼저 붉어지고
고단한 이들
구불구불한 이야기에
채움보다 비움을
옳지 않은 일은
주먹을 불끈
남의 허물을 즐기지 않는
곧은 마음이다
와인은 내게 와
아버지 사랑이 수혈되고
호락호락 하지 않은
붉은 이야기는
지금도 브랜딩 하고 있다
노을의 세레나데
- 김혜숙
바다에 나갔다
서두르지 않는 템포로
노을의 심장을
끌어 당기는 바다는
노련한 연주자이다.
붉던 사랑
세월에 먹힌 그리움은
나를 곱게 익게하는
진실이었다.
이별을 위한
언어는
가슴에 산란을 하고
부를 수 없는 이름 앞에
그 언어들을 침몰시킨다
이젠 그리움의
허기를 채우지 않으리
새도 알고
바람도 아는
그 이름위에
세레나데가 흐른다
당신의 아비가일
-이혜지
그옛날
사울왕의 핍박으로
광야를 방황하던 다윗
어리석은 나발에게
분노가 하늘로 솟아
그 가족을 멸하려 달려 갈 때에
그 진노가
불같아서
그분의 은혜를 능가하고
그분의 속성이 사라져 갈 즈음
조용히 마중 나와
엎드린 사람
아비가일
“주인이여
원수는 그 분이 갚게 하소서
장차 왕이 될 위대한 손에
피를 묻히지 마옵소서“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겼으며
온유는
성난 사자를 잠재웠도다.
역사의 오점을
앞질러 사랑케 하신
그분의 속성을 닮은
지혜로운 아비가일
분노가 파도처럼 밀려 올 때
갈앉아버린 선한 마음을
흔들어 일으키는 아름다운 사람
아비가일
이 험한 세상
지치고 힘이 들 때
그대여
나는 당신의 아비가일
당신은 나의 아비가일
* 아비가일 : 성경에 나오는 여인으로 남편 나발의 잘못으로 온가족이 죽을 뻔 한 위기에서
지혜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지고 장차 다윗왕의 아내가 된다.
시를 짓는 여자
- 이혜지
하릴없이 밭에 나가 돌을 고른다.
모난 돌
거친 돌
부서진 돌
때로는
엉겅퀴 가시떨기로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언제쯤 이어야
몽근 흙이되고 비옥한 땅이 될까
말씀의 씨앗 곱게 틔워
꽃을 피우고
빛나는 언어의 열매 기쁨으로 거둘까
막막하고 황량한 마음 밭 언저리에
야심찬 고뇌로 엎드려 있다.
청 호
-이혜지
보랏빛 여명
잔잔한 수면위로
해를 안고 일어나
도도하게 시작하는 아침
소슬바람 부여잡아
밤 낚시꾼 안부도 물어보고
어린 연잎들 흔들어 깨운다.
햇살로 부서지는 잔물결
잘방잘방 속삭임
아기 오리 떼 한가롭다.
하늬바람 물보라로
처덕이는 몸짓
고상한 바위는 여전히 겸손한데
그림자 길어지는 오후
석불산 고운님 마음껏 품었다.
* 청호 : 부안읍 청호리에 있는 푸른 호수이름
* 석불산 : 부안읍 청호리에 있는 산이름
타는 목마름
-배은경
인간의 먹이가 그리워
풀을 앞에 놓고도
죽어가는
그랜드캐년의 사슴처럼
나도 죽어가고 있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을 수확
-배은경
시라는 이삭 한 톨 한 톨 모았다
꽤 모았다
누군가에게 휜 쌀밥 한 그릇은
따뜻하게 지어 먹일 수 있게 되었다
한 치 혀
-배은경
한 치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너의 혀는
살리는 혀인가
죽이는 혀인가
박재규 문학치유사
농촌 사람들
- 박재규
동트기전 이슬이 내려앉은 시골길
한사람 두사람 모습이 보이고 아침 인사를 건넨다.
저마다 낫을들고 논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지네.
각자의 할 일을 위해서 오늘도 손발이 바쁘겠지.
농촌의 하루가 이렇게 시작된다.
지평선 가는 길
- 박재규
자동차를 몰고 신작로 길을 달린다
좌우에 서있는 가로수가 저마다 색깔을 바꾸고
노랗게 물든 나무잎이 하나둘씩 떨어져 길가에 널브러지네
넓은 들판에 익어가는 벼 이삭도 고개를 숙이고
한켠에 허수아비가 덩그러니 서 있네
참새가 지저귀고 귀뚜라미 울어댄다
가을을 재촉하는 소리인가 보다
김복례 문학치유사
우리집 앞마당
-김복례
어수선한 우리집 마당 맨드라미 분꽃 봉선화 채송화가 맘대로 피었다.
옛날 시골풍경 그대로 얼마나 색깔이 청명하고 고운지 꽃들을 보면서 하루가 지나간다.
바람
- 김복례
난 널 너무 좋아해
그리고 사랑해
바람 불어와다오
기다렸어
내 곁에 머물러 있어 주길 바라지만 넌
그렇지 않아
네 맘대로야
그래도 좋아 시원함 상쾌함 서늘함
모든 기분을 다 주는 너이기에 좋아
태풍과 폭풍이 불어서 무섭기는 하지만 너무 멋져
이은아 시인/문학치유사
세월 도둑
이은아
그날이 그날인것 같더니
언제 부터인지
이팔청춘 보이지 않아
세월이 훔쳐간것 같으니
그놈은 분명히 도둑놈
잠든사이 살며시
훔쳐 가더니 이제
남은세월이 지나간 세월보다 적다
세월에 속고 살다보니
남은 세월은 도둑맞은 이팔청춘 찾기 위해
후회없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가을
행복 나누며 건강히
도둑과 한판
내일이 오면
이은아
하늘을 봐라보면서
소리처본다
하늘은 내편일거라구
그렇게 착각속에 살아왔지만
언제나 후회만 남는다.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삶을 산다는 것은
내일이 있음에 오늘은
또 아름다워 야 한다
아름다운 오늘을 살아야
내일을 설레임으로 또
맞이 한다
.내일은 사랑으로 편지를
쓰고 희망의 나팔을 불면서
내겐 꿈이 있음을 위로 한다
고마운 당신
이은아
따뜻이 내민손
버팀이 되어 나를 지탱한다
손 내미는 당신
고맙습니다.
응원한다고
삶이 힘들지 않지만
함께 해주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혼자 간다고
길 잃은 건 아니지만
기다려 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말 한마디 안 한다고
우울할건 아니지만
말 건네 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당신처럼
마음 따뜻한 분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양해완 시인/문학치유사
엄마가 그립다
양해완
바람이 차갑다
이런 날이면
엄마 품이
참 많이 그립다
따뜻한 방에
이리저리 기우뚱기우뚱
장난치고 있으면
밥 먹자
엄마 목소리
미안함도 모르고
반찬투정을 하던
철없던 그때가
오늘따라
가느다란 그리움으로
세상을 연다
세월
-양해완
매화향기
둥글둥글 영글어
수줍게 웃는다
쑥향이 짙어지고
올망졸망
감꽃도 피었어라
한잔에 봄을 마시고
빈잔에 여름을 따르니
어느 하늘
어느 바람 끝에 머물러 있을
하얀 세월의 조각들이
저홀로 눈물 짓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