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종들 가운데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는 살아가는 집단은 먼 옛날 진화의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조상들은 순간순간의 경험을 제대로 음미하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살아남아 후손의 성격을 형성해주었다. 반면, 이들보다 집중력이 강했던 동료들은 자신이 현재 속해 있는 시간과 장소에 몰입하는 바람에, 눈에 보이지 않는 들소의 뿔에 받혀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35)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그가 결론을 내린 대로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어디로라도 떠나는 것이었다."(49)
"너희는 언제 행복을 향해 돛을 올릴 것이냐?"(51)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해줄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 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68)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78)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상대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방식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상대가 구두를 고르는 취향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일에 영향을 받는다고 우리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자잘한 것들도 그 속에는 풍부한 의미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101)
삶은 근본적으로 혼돈이며, 예술을 지외하면 질서를 창조하려는 모든 시도는 우리의 삶의 조건에 대한 부인, 까다롭게 굴면서 내숭이나 떠는 부인 행위.(110)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사랑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사랑할 때는 우리 자신의 문화에는 빠져있는 가치들에 좀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도 따라갈 것이다.(118~9)
"우리가 (부분적으로라도) 워즈워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그 이전에 우리의 정체성에는 다소 순응성이 있다는 원칙, 즉 우리가 함께 있는 사람--때로는 사물--에 따라서 변한다는 원칙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반면,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경쟁심이 생기고 질투가 일어난다."(189~190)
콜리지는 워즈워스 초기 시들을 돌아보면서 구 시들의 천재성을 이렇게 규정했다.
"일상의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관습에 따른 무관심에서 벗어나 우리 앞의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초자연적인 것을 만났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맛보게 하는 것. 사실 우리 앞의 세계는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보고이지만, 익숙함과 이기적인 염려 때문에 우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심장이 있어도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워즈워스에 따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내부의 선을 찾을 수 있다.(194)
숭고한 장소는 일상생활이 보통 가혹하게 가르치는 교훈을 웅장한 용어로 되풀이 한다. 우주는 우리보다 강하다는 것, 우리는 연약하고 한시적이고 우리 의지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 자신보다 더 큰 필연성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사막의 돌과 남극의 얼음 벌판에 쓰인 교훈이다.(216~217).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은 어떤 장소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특질이, 또는 우리 심리의 내부 회로가 결정하는 것 같다.(234)
어쩌면 어떤 장면에서 찾아야 할 것을 파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각 예술을 공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235)
자연 가운데 아무리 적운 조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무한하다! 따라서 화가는 자연 가운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화가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기가 그릴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243)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는 말울 했다.(248)
원래의 모숩에는 감탄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닮게 그린 그림에는 감탄하니, 그림이란 얼마나 허망한가.(팡세, 단장 40, 264재인용)
러스킨은 아름다움과 그 소유에 관한 관한 다섯 가지 핵심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아름다움은 심리적인 동시에 시각적으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복잡한 요인들의 결과물이다.
둘째,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타고난 성향이 있다. 셋째,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에는 저급한 표현들이 많다.
넷째,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276~277)
하마가 하마로 태어나둣아 어떤 사람은 화가로 태어난다. 자신을 기린으로 만들 수 없둣이 자신을 화가로 만들 수도 없다...데생은 우리에게 보는법을 가르쳐준다(러스킨, 278~279 인용)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사람의 기쁨은 결코 가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러스킨, 280)
첫댓글 당신의 예술은 당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 그것은 조개껍질이나 돌멩이에 대한 찬양일 수도 있다(러스킨, 285 인용)
당신의 예술은 당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 그것은 조개껍질이나 돌멩이에 대한 찬양일 수도 있다(러스킨, 285 인용)
러스킨.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울 굳히려면 굴로 써야 한다...."말로 그려야 한다." 우리 모두가 말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충분한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분석하는 데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다(291)
많은 장소들은 미학적 기준이 아니라 심리적 기준에서 우리에게 아름답게 비친다는 인상을 준다. 색깔의 조화나 대칭과 비례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나 분위기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295)
러스킨이 말하는 예술의 두 목적.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보는 것...."나는 보는 것이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학생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해 자연을 보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라고 가르치겠숩니다."(300)
니체--"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게 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그 숫자는 얼마나 많은!--은 운명의 솟구치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시대와 나라가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물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면서도 늘 그 위에 코르크처럼 까닥거리며 떠 있다.....
우리는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운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극)소수와 많은 것울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318)
보통의 글은 일견 가벼운 듯 하면서도 날리지 않고, 생기있는 듯 하면서도 그 속에 따끔한 바늘 같은 금언적 태도를 숨기지 않으며, 무슨 이야기를 왜 어떻게 누구에게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하다. 무엇보다 그가 읽은 책의 흔적들을 통해 독자가 그 길을 되밟아 가고 싶다는 유혹을 강렬하게 느끼게 한다. 아직 기다리고 있는 보통의 다른 글들을 읽을 시간이 미리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