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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숲지기' 세 사람이 차를 마시며 일과를 의논하고 있다. |
동시동화의 숲에는 '동시나무' '동화나무'가 실제로 자라고 있다. 해마다 평균 20그루씩 심는데 지금은 140여 그루가 되었다. 이 사연을 알려면 세월을 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동시동화나무의 숲이 태어난 배경은 아동문학계와 지역 문단에 알려진 편이라 약사(略史)만 간추리면 이렇다.
숲지기 가운데 또 한 명인 홍종관(66) '계간 열린아동문학' 발행인은 부산 광안리 방파제횟집 대표이다. 경남 양산이 고향인 홍 발행인은 젊은 날 가업을 이어 서울에서 여러 사업을 했다. 도전과 우여곡절 끝에 사업은 깨끗이 실패하고 말았다. 서른아홉 나이에 실패와 실의, 빈손만 남은 홍종관은 30년 서울 생활을 접고 1987년 부산으로 온다.
"당시 부모님이 민락동에서 작은 횟집을 하셨는데 너무 영세해 장사를 제대로 못 할 집, 곧 망할 집이라고들 했어요." 홍 대표는 주방장을 맡아 "고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한창 나이 동화작가로 부산MBC 방송국에 다니며 부산문인협회 사무국장 일을 하던 배익천이 허름했던 초창기 방파제횟집을 드나들면서 두 사람은 서로 인간미에 반하고, 우정을 가꾸기 시작한다.
"예술계, 방송계, 문화계 손님도 모셔오고 주방이 바쁠 땐 상을 나르고 '찌짐'도 부지런히 굽고 설거지까지 하더군요. 덩치 큰 배익천 선생이 횟집을 누비고 다니자 '날아다니는 돈가스'라는 별명까지 생겼죠." 홍종관 대표의 회고다. 허름하고 작고 연약했던 횟집은 자리를 잡아갔다. 그사이 사십에 접어든 배익천 작가는 은퇴한 뒤 동화를 쓰며 살 시골집을 찾아헤매다 1990년 지금 동시동화나무의 숲 자리의 옛집을 구한다.
■"50년, 100년 뒤의 명소를 생각"
숲속에 만든 작은 책장. |
동시동화의 숲을 일군 주역이자, 또 한 명 숲지기가 바로 홍 대표의 아내 박미숙 여사다. 세 사람은 1990년께부터 주말마다 고성으로 와 배익천 작가의 시골집과 주변을 가꾸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세 사람은 "동심이 숨쉬는 동시동화의 숲을 고성에 꾸며보자"는 꿈을 품게 됐다.
천천히 이곳 방화골마을 주민들과 어우러져 가며, 근처 산(5만2800㎡)을 사들이고, 오랜 노력 끝에 4년 전 2층 건물 열린아동문학관을 짓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동심과 어울리는 '공룡 관광'(군청 마당에도 커다란 트리케라톱스 조형물이 있다)으로 유명한 고성군청도 돕겠다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재정 충당은 홍종관 박미숙 부부가 도맡았다. 횟집이 웬만큼 잘 된다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일을 이토록 오래 펼치는 것은 여간한 정성과 재원으로는 힘들 텐데도 부부는 "이런 보람을 얻은 것은 모두 배 선생 덕분"이라고 한다. 배 작가는 "감로 홍종관 선생과 예원 박미숙 선생처럼 진정으로 아동문학을, 예술을 사랑하는 분을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난 1일 동시동화의 숲 마당에서 배 작가가 설명했다. "'해마다 '계간 열린아동문학'이 제정한 상을 받거나 글을 실은 동시인과 동화작가 20명에게 동시나무와 동화나무를 이 숲에 심어 줍니다. 나무 앞에는 우리가 직접 글씨를 새긴 표지석을 두지요. 지금 140여 그루 심었으니 10여 년 더 이어가 400그루만 되어도 한국의 훌륭한 아동문학인 나무가 거의 서게 되겠지요. 그렇게 50년, 100년 뒤엔 숲은 소중한 명소가 될 거예요."
■이미 아동문학의 명소로 떠올라
홍종관 발행인이 돌에 글씨를 쓰고 있다. |
지금은 6월에 여는 열린아동문학상 시상식이 동시동화나무의 숲에서 가장 큰 행사다.
'계간 열린아동문학'은 신뢰받는 편집진을 꾸려 철저히 작품성 위주로 2009년부터 잡지를 낸 덕에 한국 아동문학계에서 권위를 높이 인정받는다.박미숙 여사가 마련하는 특별한 원고료로도 유명하다. 청도구시장참기름집에서 짠 참기름, 청도 감말랭이, 강화 고추장, 영양 고춧가루, 기장멸치, 김장김치에 서예가인 박 여사가 정성스레 쓴 작품 한 구절 등이다. 6월에는 동시동화의 숲에서 1박2일 진행하는 특별한 시상식을 여는데 이때 전국 아동문학인 100~200명이 이곳 고성 산골로 몰려온다. 아동문학인이 머물며 글을 쓰도록 작업실도 개방한다. 이미 이곳은 아동문학 명소이다.
"앞으로 이 숲에 동시도서관, 동화도서관, 공룡도서관 같은 작은 도서관을 만들까 해요. 아이들이 뒹굴며 책을 읽는 좀 큰 도서관도 마련하고요. 일본 미야자키의 목성(키죠)그림책마을 같은 명소를 참고합니다. 물론 주말마다 우리 세 사람이 와서 숲을 가꾸는 일은 계속되죠."
당사자들은 "부디 미화하지는 말아달라"고 당부했지만, 홍종관 박미숙 부부의 예술 후원을 보고 있으면 정직하고 힘들게 버는 경제적 수입을 참 아름답게 쓴다는 감동이 있다. 30년 전 세 사람이 맺은 작은 인연이 '아름다운 정삼각형'(강정규 아동문학가의 표현)을 이뤄 오늘 동시동화의 숲으로 피어난 이야기, 그 숲이 100년 뒤를 내다본다는 이야기, 동화 같다.
첫댓글 고생하는데 알아 주는 사람이 있으면 힘이 나지요. 화이팅 ! 열린 아동문학 !
좋은 인연으로 대단한 일을 하시는 세 분께 정말 감사드려요^^ 글 쓸 때마다 떠올리며 곁에서 늘 응원합니다~!
세분의 이야기가 세편의 동화입니다.
젊은날 방송국 방문했을때 배익천선생님 멀리서 뵈었습니다
부그러워서 인사도 못하고 나온 기억있습니다
세 분의 우정이 감동적입니다.
모두가 꿈꾸지만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
배익천 선생님은 이걸 실천하셨어요.
홍종관 선생님의 믿음직한 신의,
박미숙 선생님의 예술혼.
트라이앵글의 조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