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가슴 아파하며 지금이라도 무사귀환을 기다리며 노란 리본달기 캠페인이 진행되고, 우리 학교에서도 학생회가 자치회를 통하여 리본 달기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미 사고발생 2주가 지나가는 시점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하지만 노란 리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대로 노란 리본은 '다시 돌아오기만을 염원한다. 기다린다.' 는 뜻으로 부디 그 의미대로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하며 노란 리본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먼저 노란 리본의 유래입니다. 첫 번째는 영국내전(1642~1651년)당시 영국 의회의 청교도 군대가 노란 리본과 허리띠를 착용하고 전장으로 나간 데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 후 미국에서는 전쟁터에 나간 병사, 인질 또는 포로로 잡혀간 사람의 조속한 무사 귀환을 바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베트남전(1965~1973년)으로 포로가 되거나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을 찾기 위한 캠페인으로 노란리본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George Norton이 작곡한 노란 목도리를 맨 여인이라는 의미의 'Round her neck she wore a yellow ribbbon' 에서 노란 리본의 전통을 찾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1949년에는 이와 유사한 'She wore a yellow ribbon' 이라는 존 웨인 주연의 영화가 나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1972년 어윈 레빈이 작곡하고 L.러셀 브라운이 작사하여 1973년에 토니 올랜도와 다운(Tony Orlando & Dawn)이 발표한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라는 노래로 노란 리본은 더욱 유행하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1900년대 초에 3년 여 동안 감옥에서 생활하다 나온 사람이 뉴욕에서 플로리다 주를 향해 가던 버스 안에서 버스 운전사에게 전해 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3년간 수감 생활을 마친 죄수가 아내에게 아직도 자기를 사랑하고 돌아오길 원한다면 마을 어귀의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달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리본이 없으면 마을을 그냥 지나치겠다고 했습니다. 가슴 졸임 속에 마침내 마을 어귀에 닿았을 때 노란 리본이 100개나 달려있는 모습을 보고 버스 속 승객들이 먼저 환호했다는 내용입니다. 그 후 1971년경에 뉴욕 포스트의 피트 해밀이라는 칼럼니스트가 자신이 들은 한 전과자의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Going Home'('귀향')이라는 글로 신문에 발표했고, 그 다음 해에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에 게재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오천석씨가 단편모음집 [노란손수건]으로 재구성하여 발표함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와 작품으로 노란 리본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노란리본에 대한 역사는 이어집니다. 미국 1979년 미국인들이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인질로 억류된 사건이 터졌을 때 인질 가족들이 나무에 노란리본을 달기 시작하며 전국으로 번지기 시작, 1990년대 초 걸프전 때 다시 등장하고,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면서 파병된 군인들을 노란리본으로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번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이 펼쳐진바 있습니다. 2005년 납북동포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노란리본 달기는 2007년 아프간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의미로, 2008년에는 세계아동학대예방의 날을 맞아 전국적으로 노란리본달기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달기 시작한 것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노란 리본의 영향을 받아 진정한 양심을 찾자는 그린 리본, 낙태를 반대하는 하얀 리본, 사이버 세계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자유 발언과 정보 공유,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책임 의식을 고취하자는 캠페인을 상징하는 파란 리본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 리본 달기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과거 어느 정당의 심볼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정치적 해석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또 무속신앙과 종교적인 이유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마을의 서낭당이나 나뭇가지에 노란색이나 붉은 색과 흰색 천에 소원을 적어 매달아 놓은 데서, 그리고 상례에서 사용하는 노란 나비 모양의 머리핀이나 상복에 착용하는 노란 리본이 저승으로 가는 영혼을 표현하고 있다거나, 종교혼합주의라는 일부 종교 단체나 논객들의 오해와 확대 해석으로 순수한 의도를 왜곡하는 현상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소위 빨갱이라고 치부되었던 빨간색과 죽음을 의미하는 검정색은 물론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 불길하다는 숫자 4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없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물론 조심하고 삼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확대하고 왜곡하는 일은 없어야 하고 오히려 좋지 않은 의미가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바꾸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묶어 매는 것도 구속이고 무속이라고 거부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매듭을 통해 살리는 살림운동으로, 삶의 지혜로 사용하였습니다. 한 때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터부시 되었던 빨간 색이 2002년 월드컵 응원단의 붉은 물결로 온 국민이 하나되고 응집되어 지금은 여당의 상징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노란 리본 역시 온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작은 움직임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기적을 이뤄내는 씨앗이 될 것입니다.
1) 노란 리본은 기다림이요 희망입니다.
노란 리본은 피그말리온처럼 온 국민의 간절한 열망을 담은 희망입니다. 청교도들을 비롯한 남북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나간 병사들이 무사귀환하기를 기다린 것처럼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희망고문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단지 죽은 자나 실종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희망만은 아닙니다. 무너져 내린 신뢰와 절망적 상황을 이겨내려는 몸부림으로의 희망입니다.
2) 노란 리본은 용서와 화해입니다.
귀향의 내용처럼 노란손수건은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두 덮어버리자는 것은 아닙니다. 따질 것은 따지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처를 안아주고 감싸주는 것은 용서와 화해입니다.
3) 노란 리본은 생명운동입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 나오는 것처럼 번데기에서 각종 고통을 이겨내고 나비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달걀에서 부화하는 노란 병아리처럼 생명을 노래하는 생명운동입니다. 원전의 상징색은 노랑입니다. 주의하라는 것도 있지만 에너지의 상징입니다. 어린이 통학차도 노랑입니다. 그것은 안전과 보호를 의미합니다. 노랑은 생기발랄이고 화사함의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노란 리본은 생명존중이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지못미’의 표현입니다.
4) 노란 리본은 Re born입니다.
리본은 장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함의 표출입니다. 특히 리본은 우리가 거듭나 새롭게 개혁하고 갱신하는 운동의 실마리가 되어야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짚어 봐야합니다. 우리의 슬픔과 분노와 절망이 감정으로 그치지 않고 회개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 회개는 새로운 삶, 새로운 질서를 탄생시킵니다. 그래서 노란 리본은 스스로를 갈고 닦고 허물을 벗는 아름다운 행위로 이룰 수 있는 가치 있는 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만 거듭나야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이번 일을 계기로 변해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정신도, 의식도. 신앙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죽음같은 절망에서 다시 태어나는 온 국민과 겨레와 나라가 되어지길 소망하며 마음속 노란 리본을 매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14년 4월 30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