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케레스? (so keres; '머하고 계세요'라는 뜻의 집시어) ”
코레오가 침대위에 옆으로 길게 누워 팔베개를 한 채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리베라가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친딜란? (chindilan; '심난한 일이라도 있으세요?'라는 뜻의 집시어) ”
리베라는 다시 물었다.
“내가 고른 벽지와 커튼으로 방을 새로 꾸민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아니겠죠?”
“아니, 색깔도 좋고 무늬도 마음에 드는데……. 방이 훨씬 더 아늑하고 아름다워진 것 같아.”
“커튼은요? 그렇게 마음에 안 드셨으면 안 된다고 그 날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미안해요. 제가 괜히 고집을 부려서.”
“그런 게 아니야. 커튼 색깔이야 아무려면 어때. 당신이 좋아하는 색깔이면 나도 좋아.”
코레오는 그 날 리베라가 커튼감으로 빨간색 천을 고를 때 자신이 반대했던 일을 기억해내며 말했다.
“그런데 왜요? 당신 왜 그러고 있어요?”
“리베라, 나 지금 생각 중이었어. 자꾸 말시키지 말고 혼자 좀 있게 해줄래?”
코레오의 말에 리베라는 순간 의아하고도 슬픈 표정이 되었으나 아무 말 없이 방에서 나갔다.
리베라는 새로 사온 커튼의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코레오의 기분이 언짢아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리베라가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빨간색 커튼으로 바꾸어 달면서 코레오가 집이 마치 투우장처럼 변해버렸다고 농담한 것이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기라도 할까?
그 때는 그녀도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내가 마치 집시취향을 비판이라도 했다고 오해하며 쓸쓸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리베라가 전에 살던 사람이 해 놓은 인테리어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침실만이라도 분위기를 바꾸어 보자고 해서 커튼이며 벽지를 사러 나갔었다.
리베라가 꽃문양과 나뭇잎문양이 섞인 촌스러운 벽지를 골랐을 때 아무 말도 안했던 코레오도 그녀가 침실 창문에 단다며 새빨간 커튼지를 골랐을 때는 어릴 때 시골 중학교에서 환등기를 돌릴 때 쓰던 두터운 빨간색 커튼이 생각나서 반대했었다.
빨간색이 건강과 행복을 상징한다는 그녀의 주장에 이상하게 중국인들의 취향과도 닮았구나, 라며 속으로 희한하게 생각하면서 슬며시 양보하고 말았지만 막상 집에 와서 달아보니 영락없는 투우장이었다.
도대체 누가 투우일까? 나 아니면 리베라?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코레오에게 집시들은 빨간색 외에도 노란색과 검정색을 좋아한다고 리베라가 말해주었다.
그래서 언젠가 시내에서 바르두라는 집시가 탔나, 하고 놀랐었던 그 노란색 스코다 승용차도 실상은 기르글이란 차도둑 집시가 훔쳐왔을 때는 파란색이었던 것을 바르두가 노란색으로 바꾸었던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기르글이란 비천한 사나이는 바르두의 여동생인 티라나라는 아가씨가 체 게바라 (Che Guevara; 아르헨티나 태생의 의사이자 사상가로써 그의 실천적이고 순교자적인 투쟁은 중남미의 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음) 같은 미남형의 얼굴과 에밀리아노 자파타 (Emiliano Zapata; 1877~1919, 팔자형 콧수염으로 유명한 멕시코의 혁명가) 같은 멋진 팔자형 콧수염을 지닌 문까치라는 다른 남자에게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바람에 헛물만 켜고 있다고 리베라가 말했었지.
어렸을 때부터 리베라가 늘 애지중지 길러 왔다는 리시―리베라가 데리고 온 구관조― 녀석도 문까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했지!
꿈파니아 안팎의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항상 이런저런 선물을 많이 받고 있던 문까치가 어느 날 구관조를 선물로 받고는 리베라에게 주었다고 했다.
새빨간 커튼은 그나마도 낮에는 걷어 놓고 밤에도 불을 끄면 안보이니 다행이었지만 꽃이며 나뭇잎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벽을 바라보면서,
‘집시들은 왜 이런 문양을 좋아하는 걸까?’ 코레오는 자신이 처음 가지오의 집에 들어갔던 날 베란다에서 보았던 겨울 크리스마스 꽃을 등나무 넝쿨이라고 말했던 일을 생각하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벽지는 아무리 봐도 요즘 같아서는 어디 시골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은 촌스러운 것이라서 솔직히 말하면 코레오의 취향은 분명히 아니었다.
굳이 장점을 들추자면 시골 취향이 빛바랜 옛날을 회상케 해주어 한적한 시골집에 있는 것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그 벽지가 고향 생각을 촉발하게 하여 코레오로 하여금 넋을 읽고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코레오가 새 벽지나 커튼의 색깔에 기분이 나빠서는 아니었는데, 리베라는 왜 코레오가 잠시라도 혼자 우두커니 생각에 잠겨 있거나 말없이 잠자코 있으려 치면 마치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해서 코레오의 기분이 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코레오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라고 있는 게 아닌가 염려하는 듯이 ‘소 케레스?’ 또는 ‘친딜란?’하고 물으며 불안해하는 것일까?
집시들에게는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덜한 것인지 이따금은 혼자 있고도 싶어 하는 코레오의 행동은 그런 리베라의 염려와 불안으로 인해서 방해받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항상 서로의 의사를 나누며 생각을 같이 공유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 집시들이 같은 구성원이 되었을 때 기대하는 일종의 유대감을 집단생활로부터 오랫동안 젖어온 습관대로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서일까?
코레오로서는 그런 리베라의 지나친 간섭이 좀 성가시게 느껴지는 때가 있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리베라가 코레오를 집시여자와 갓죠남자의 관계가 아닌 완전한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진정 느끼기 시작했다는 증거이자 깊은 유대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코레오! 식사 준비가 다 됐는데요.”
리베라가 방문 밖에서 조심스럽게 불렀다.
“무슨 음식을 했길래 집안이 이렇게 맛있는 냄새로 가득하지?”
코레오가 후닥닥 뛰어나가며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하자 리베라는 걱정이 풀리는지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두 손을 잡아끄는 리베라를 따라 식탁 앞으로 가니 오븐에서 막 꺼낸 듯한 은박 호일에 둘둘 말려져 있는 음식에서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리베라가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싼 은박지를 다 풀어내자 노릿노릿하게 먹음직스러운 통닭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 맛있겠다! 어서 먹어야지. 그런데 어떻게 만들었지?”
“보시는 대로요. 은박지에 싸서 오븐에 넣어 은근한 불로 오래 오래 구웠죠.”
자랑스러운 듯이 으쓱 어깨를 치켜세운 리베라는 집시들의 닭요리 법에 대하여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집시 닭요리는 무엇보다도 재료 선택이 가장 중요하지요. 마리메한 재료를 쓰면 안 되니까요.
집시들은 항상 바로 눈앞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싱싱한 산 닭을 잡아서 요리를 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날쌔고 빠른 놈을 잡아서 요리한 것이 최고이죠.
요즘 같은 세월에는 어쩔 수 없이 오늘처럼 정육점에서 냉동닭을 사다가 요리할 수밖에 없지만요.
그리곤 닭을 털 채로 진흙으로 싸서 숯불이나 불로 달구어진 돌판 사이에 두고 은근한 불로 오래오래 굽지요.
구수한 냄새가 사방에 퍼져나가 인근의 집시들이 냄새를 맡고 다 모여들 쯤에 닭을 꺼내어 지금 같이 은박지 호일을 벗기는 대신에 딱딱하게 구워진 진흙을 벗겨내면 그 때 닭털까지 깨끗하게 벗겨져서 노릿노릿하게 잘 구워진 닭의 속살이 나오지요.”
“그럼, 내장은 어떡하고? 빼내지 않고 구웠잖아.”
“그 때쯤이면 물론 내장까지 잘 구어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떼어낼 수 있지요. 어차피 내장은 안 먹는 것이니까요.”
리베라의 간단한 대답에 코레오는 맛있는 닭똥집이며 간 등을 떠올리며 아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시요리의 진짜 별미는 뭐니 뭐니 해도 고슴도치 구이죠.
닭 대신에 고슴도치를 똑같은 방법으로 요리하면 고슴도치 고기의 질 좋은 기름 때문에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어서 정말로 일품이지요.
고슴도치 고기의 독특한 풍취―대부분의 집시들은 그것 때문에 더 고슴도치 고기를 좋아하지만―를 싫어하는 집시들은 향기 나는 나뭇잎으로 싸서 먹기도 하지요.”
“뭐라고? 그 뾰쪽뾰쪽한 가시가 있는 고슴도치를 먹는다고?”
“고슴도치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가시 역시도 굽고 나서는 닭털처럼 쉽게 벗겨낼 수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안돼요. 얼마나 맛있다고요. 미식가 집시들이 좋아하는 집시요리의 정수라고나 할까요. 특별한 때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별미이지요.”
“그래도 어떻게 고슴도치를!”
“고슴도치가 어때서요. 고슴도치는 자기 가시를 항상 반들반들하게 흙 하나 묻히지 않는 얼마나 깨끗한 동물인데요. 당신이 좋아하는 마리메 (marime; '부정하다'는 뜻의 집시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오염된 상태, 집시들의 전통적인 가치관은 부정한 것에 대하여 불길하게 생각하여 금기시함) 한 돼지고기보다는 훨씬 낫지요.”
얼굴을 찌푸린 채 쳐다보는 코레오가 얄미워 죽겠다는 듯이 새침하게 눈을 흘겨 보이고는 리베라는 계속해서 집시의 고유한 요리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마말리가 (marime; 집시요리의 하나로 옥수수죽) 며 보켈리 (bokeli; 밀가루 반죽에 바짝 구워서 부순 베이컨을 집어넣고 구워 만든 집시들의 흰 빵) 빵이며 겜벳사 (gembetsa; 동물의 콩팥을 피와 껍질을 깨끗이 제거한 후 잘게 부수어서 밀가루와 같이 반죽하여 골프공 크기로 만든 후에 그것을 베이컨이나 소시지를 바삭바삭하게 구워 부순 가루위에 굴려서 달라붙도록 하여 팥단자처럼 만들어 식탁위에서 수프를 끓이면서 팔팔 끓는 수프에 하나둘씩 집어 넣으며 즉석에서 익혀 먹는 음식) 등이 있다면서 특이한 것은 보켈리가 됐건 겜벳사가 됐건 간에 밀가루를 부풀릴 때 절대로 이스트를 쓰지 않고 제빵용 소다를 쓴다는 것이었다. 이스트는 썩은 것이라서 마리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겜벳사라는 요리는 그러니까 집시들의 스끼야끼라고도 할 수 있겠군.”
“어머, 그럴 듯 하군요. 그럼 다음에는 ‘집시 스끼야끼’를 한 번 해 드릴게요.”
“정말 기대가 되는데. 오늘 리베라가 해 준 이 닭요리도 언젠가 내가 먹어 본 일이 있는 황토구이 오리보다도 훨씬 맛있는데?”
“많이 드세요. 당신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기쁘군요. 남편이지만 이렇게 남자랑 같이 먹으니까 이상해요.”
“남자랑 같이 먹으니까 이상하다니?”
“집시들은 항상 남자들이 먼저 먹고 나서 여자와 아이들이 나중에 모여 식사를 하던 것이 습관이거든요.”
“아니,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것이 아니고?”
“전통적으로 집시들은 대가족이어서 그랬는지 여자나 아이들은 따로 먹는 관습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