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3:16-19
I. 들어가면서 그랜드 케년 호피인디언 그랜드 케년에 가면 호피라는 인디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2천년 넘게 건조한 사막에서 농사를 지으면 살아오고 있는데, 그 지역은 1년에 130밀리 정도의 아주 작은 비만 옵니다. 130밀리면 저희 여름철에 한번 내리는 비의 양입니다. 이 작은 비를 가지고 호피 인디언은 옥수수 농사를 짓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보니 이 사람들은 비 이야기만 하면 흥분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보니깐, 온통 비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이상혁이라는 한국 선교사님이 그곳에 들어가 사역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호피 인디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비”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역자 선교사에게,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중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민감하게 하는 것 그 중요한 많은 것들 중에 비가 중요합니다. 농부도 아닌데, 무슨 비가 중요하냐? 여기서 말하는 비는 호피인디언들이 생각하는 옥수수 밭에 내리는 비가 아닙니다. 이 비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내리는 비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이 비는 성령님께서 보내 주시는 진정한 비입니다. 성령님은 곧 하나님입니다. 이 비는 메마른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적셔주며, 호피 인디언들에게 비가 내려야만 옥수수가 잘 되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이와 같은 성령의 단비가 내릴 때에 우리 마음에 곡식이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성품속에 사랑, 기쁨, 평화, 오래참음, 자비, 선행, 충성, 온유, 절제라는 이름의 열매들이 주렁 주렁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어릴적 교회에서 어머님과 권사님들이 모여 자주 부르는 찬송중에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듯이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성령의 단비가 내리면, 우리안에 새생명이 역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된 주일! 송크란을 앞두고 주님의 전에 나온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격려합니다.
예레미야 30장 22절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런 관계의 은혜가 주어진 우리에게 오늘 이시간 주님께서 “이른비와 늦은 비”를 때에 맞추어 부어 주실줄로 믿습니다.
II. 본문을 열면서 하박국-매어 달리는 자 소선지서 가운데 여덟번째인 하박국은 히브리 원전의 제목처럼 ‘하박쿡’에서 유래된 것으로 “껴안는자”, “매어달리는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하박국에서의 내용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람 하박국 선지자가 풀려지지 않는 신앙적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어달라는 모습이 하박국 전체에 잘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가 하나님앞에 무엇을 놓고 그렇게 매어 달렸을까요? 주로 신앙의 어떤 영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메어 달립니까?
하박국 시대의 정치적-영적인 상황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한 B.C 612-605년은 고대 근동 지역으로 신흥 제국인 바벨론의 급부상으로 그 일대가 그야말로 대 격변을 겪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북부지역의 중심힘의 축인 앗수르가 B.C 612년 수도 니느웨 성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된 후 거의 몰락상태에 있게 되었고, 남부 지역의 강국이던 애굽도 B.C 605년 바벨론과의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함으로 세력이 엄청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강대국끼리 세력 다툼이 일어 나고 있는 때에 남유다는 그야말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불안한 정국의 날이었습니다.
하박국 시대의 영적인 상황 이러한 때에 남유다는 그 말기적 현상으로 종교적, 도적적 타락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통치자들은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고 압제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종들을 잡아 죽이는 일까지 자행했습니다. 이런 힘있고 가진 자들의 횡포로 인하여 선량한 백성들은 실로 고달프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완전히 저버리고, 이러한 고달픈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영적인 피패함을 경험하고 있던 때입니다. 그러나 그나마 몇몇의 사람들은 이러한 열악한 현실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이 속히 도래하기를 간절히 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박국 시대의 경제적인 상황들 이러한 정치적, 군사적, 영적인 상황이 무너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어할만한 브레이크는 이제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미 탈선해 버린 도덕적 가치와 수준은 바닥을 드러내었고, 마치 브레이크고장난 기차와 같이 달리고 있을 뿐입니다. 나라 안팎으로 압제와 가진자들의 횡포가 날로 더해지고 있을 그때에, 이제는 더 이상 살소망이 끊어져 버린 상황입니다.
이에 하박국 선지자는 그러한 남은 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그런 불의한 상황속에서 더욱 믿음으로 살 것을 격려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격려한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믿음의 고백 중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고백과 “비록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의 고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절규와 같은 메세지이며, 피를 토해 놓는 심점으로 외치는 절규이며, 동시에 마지막 신앙의 고백과 같은 메시지 입니다.
그는 이 불의한 세대와 힘에 겹다못해 솟아날 구멍이 없어 보이는 이 세대를 향해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박국시대와 똑 같은 아니 그 보다 더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하박국과 같은 믿음의 고백이 가능한 것인가?
III. 본문을 풀면서 1, 여호와를 향한 구원의 소망, 확신을 가진 자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합3:17) 무화가 나무, 포도열매, 감람나무 소출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좋은 과실수 이다. 이런 과실수가 말라버렸다는 것, 외양관에 송아지 없음은 인간 생존의 최대 한계, 절대적 소망이 끊어진 상황이다. 내일 먹을 것이없고, 내일 집세를 낼 때인데 낼수없고, 내일 아이들의 등록금 기한인데 낼 수 없고, 몸이 불편한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없고, 다 없고 없고 없고의 연속입니다.
생존의 위기 절명의 순간보다 더 중요한 가치 “하나님 나를 더 사랑하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믿음의 사람은 이러한 생존의 위기의 순간에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에 눈을 돌린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단절되고 끊어질 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더 사랑하신다. 그분은 지금도 이 절대 절명의 순간에, 최고의 정성으로 나를 붙드시고, 사랑으로 키우신다. 나보다 더 속타는 분이 계신데,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가 주를 아버지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박국도 똑 같습니다. 무화과며 포도나무며 감람나무며 모든 것이 다 끊어졌지만, 그러나 그 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나다. 이 소중한 나를 주님이 그냥 두시 않으시고, 분명히 나를 정성을 다해 키우신다. 나보다 더 속타는 분은 주님이시며,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실 분은 주님이시다. 내가 걸을 때에 주님은 뛰고 계시고, 내가 일할 수 없을 때에 주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시편의 기자와 같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구원의 확신가운데에 믿음으로 고백하고 발걸음을 움직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행하신다.
김철호씨의 정성 김철호씨가 쓴《정성》이란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사업 실패 후에 숙대입구역 앞에서 리어카를 장만해 ‘꿀덕개비’라는 이름으로 호떡을 팔았는데 항상 정장을 입고 일을 했습니다. 비록 호떡장사를 하지만 ‘난 소중한 존재’라는 자신의 존엄성을 정장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 시련의 과정을 통과한 후에 재기의 기회가 되어 본죽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죽을 만들어 팔기 위해 아내와 함께 6개월을 수많은 시험을 거쳐 죽을 연구했습니다. 결국 성공했습니다. 창립 8년 만에 1,200여 개의 가맹점을 개설하고 해외에 까지 진출했습니다. 이 분의 성공 비결은 ‘정성’이었습니다. 이 분의 정성은 ‘간절함’이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말하고 싶어 합니다. 무엇이라구요?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최고의 정성으로 양육하고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믿고 확신하는 자녀에게 그러한 놀라운 양육의 결과가 주어진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정성을 다해 키우신다는 확신은 바로 구원의 확신가운데 나오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머리로의 고백이 아닌, 가슴으로의 고백이며, 곧 삶입니다.
오늘 이시대의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은 사람이 머리로 아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령 지성에서 영성으로(열림원) 딸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쓴 이 교수님의 간증이 담긴 책입니다. 어느 날 이교수님은 딸이 실명위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와이로 날아갑니다. 망막박리로 딸이 얼마 안 있어 실명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애절하게 했습니다. 하와이를 방문했던 주일에 딸은 아버지에게 원주민 교회에 함께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교수님은 실명할지도 모르는 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원주민 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들이 부르는 애절한 찬송 소리에 마음이 녹았습니다. 그들의 찬송 소리와 딸의 고통스런 현실을 생각하면서 이교수님은 처음으로 땅바닥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 이 찬란한 빛과 아름다운 풍경. 생명이 넘쳐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당신께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의 딸 민아에게 그 빛을 거두려 하십니까. 기적을 내려달라고 기도드리지 않겠나이다. 우리가 살아서 하늘의 별 지상의 꽃을 보는 것이 그리고 사람의 가슴에서 사랑을 보는 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매일 매일 우리는 당신께서 내려주시는 기적 속에서 삽니다. 그러니 기적이 아니라 당신께서 주신 그 기적들을 거두어 가지 마시기를 진실로 기도합니다.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시고저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
그리고 하나님 이제는 머리로 아는 것에서 마음으로 주님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생각에서 믿음으로 살게하여 주시 옵소서.
하나님은 이교수님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딸을 치유하셨습니다.
머리로 아는 믿음에서, 이제는 삶으로의 고백이 필요한 시대이며 이 지성에서 영성으 로 나아가는 의 온전한 고백이 있을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아바 아버지의 은혜를 맛 보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시대의 패망가운데 이 놀라운 은혜를 맛 본사람이다. 시대의 패망가운데에 하박국이 이러한 은혜를 맛 본사람입니다. 무화과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와 그리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고, 사방에 불신과 어 려움이 처해진 상황에 웃을일 한번 없는 그의 삶에 어떻게 그 입술에서 그런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정성을 깨달은자! 지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영성으로 살아감을 깨닫는자! 이런자의 입술에서 이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이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입술에도 하박국과 같이 “우릴향한 하나님의 정성과 지성아닌 영성의 삶으로 의 결단을 통해” 입술에 하박국과 같은 고백이 흘러 넘치길 축원합니다.
2, 여호와 안에 있는 자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합3:18) 히브리 원문에 보면 “웨”라는 단어로 시작되는데, “나”라는 대명사가 매우 강조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즉 선지자는 비록 엄청난 고통과 극도의 궁핍에 처하게 되더라도 오직 믿음으로 사는 의인답게 장차 있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으로 말미앎아 기뻐하고 즐거 워할 것을 담대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호와로 인해라는 단어를 풀이하면 “여호와 안에서”라는 뜻이 된다. 결국 절대 절명의 순간에서도 하나님 안에 있으면 안식이며, 평안이며, 위로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깊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찾으시는 사람은?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람을 찾으신다.” 이는 조급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는 급변하는 세대 가운데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움직이는 자가 아닌, 주님 안에서 한 번서 생각하고, 주님 안에서 말하고, 주님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3:6)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3)
프로 바둑기사들에 대해 프로 바둑기사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복기가 있습니다. 복기란 바둑이 끝난 뒤 양 대국자가 서로의 잘잘못을 되짚어 보기 위해 방금 두었던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되풀이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프로 기사가 한 대국을 치르기 위해서 하루가 소요되고, 마주 앉은 두 기사가 바둑판 위에 번갈아가며 두는 돌의 수는 적게는 250여 개에서부터 많게는 300여개에 이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바둑판위에 둔 그 많은 돌들의 순서를 전문 기사들은 정확하게 기억하면서 복기를 해냅니다.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는 정말지 믿기 힘든 것이지요. 그래서 얼마전 바둑에 관심이 있는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돌을 다시 기억하고 그것을 거꾸로 갈 수 있느냐? 본인도 불가능한데, 언젠가 프로 바둑기사를 만날 가회가 있어 물어보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훈련을 통해서 그 많은 돌을 거꾸로 돌려 놓을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아 그거요. 아주 쉽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요? “누구나 의미 있는 돌을 놓으면 복기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바둑판 위에 돌을 놓을 때 왜 그 돌을 그곳에 두는지 의미를 생각하면서 두면 복기는 가능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좀 더 깊이 설명하면, 평균 300여 수에 달하는 바둑의 복기는 단순히 돌의 순서에 대한 기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돌이 갖는 의미의 연결로 구성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즉 의미 있는 것만 살아남는다는 뜻이었습니다. 100년이란 긴 세월을 산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일생이 아무런 의미 없는 날들의 누적에 불과하다면 그는 결코 장수(長壽)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장수한 사람은 의미 있는 날의 길이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알았습니다. 힘겨운 어려운 인생의 최대 극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진짜 살아 있는 것이 산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산 것이며, 믿음의 사람은 하루 하루 순간 순간이 예수님과 함께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가는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발걸음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여호와 안에서 하루를 살아도 주를 위해 사는 행복을 맛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순간 순간을 의미 없이 보내는 인생이 아니라, 여호와로 인하여, 여호와 안에서 살아가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고보니, 내가 하루를 살아도 주의 은혜로 감격해 살고 내가 하루를 살아도 주의 영광을 위해 살고 내가 하루를 살아도 주의 기쁨을 위해 살고 이런 고백이 있다보니 그 입술에 그런 찬양이 흘러 넘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 에 하박국과 같이 여호와 안에 사는 재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염려와 근심이 이니라, 여호와 안에 있기에 주님이 우리를 책임지심을 믿고, 신뢰하는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3,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다. 라고 고백하는 자.(합3:19)
주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비록 지금은 거짓말일지라도 믿음으로 고백하라. 힘(하일)이라는 단어는 강하다. 견고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말로 하면 “주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라는 말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자주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할 때도 자주 이런 고백을 하지요? “주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라구요.
우리는 연애할 때 이런 표현을 썼지요? 당신은 나의 전부이야! 아~ 안그러셨군요. 진짜 전부이면 안싸우지요. 진짜 전부이면 안갈라지지요. 결국 당신은 나의 전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도 자주 그런 발언을 한다는 겁니다. 주님은 나의 전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전부입니다. 이게 아니라, 전부 아닙니다. 이런 것이지요.
정말 주님이 우리의 전부이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난리가 나지요 그야말로 대박나는 인생이 되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주님을 향해 전부는 처음부터 안되니깐, 주님은 나의 절반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주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믿음으로 비록 지금은 주님이 내 인생의 10밖에 안되지만, 100 전부가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공갈, 거짓말 처럼 들릴지 몰라도, 주님 나의 전부입니다. 이럴 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킴 위스 맹인가수 스토리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베를린에서 말씀을 전할 때 킴 윅스라는 맹인 가수가 함께 자리했다. 근데, 그 자리에는 조영남씨도 같이 했는데, 서로 찬양을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킴윅스라는 사람이 하기 전에 먼저 조영남씨가 찬양을 했는데, 그때 관중이 참 많이 모였습니다. 잘 준비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노래도 잘 못 마친채 들어갔다.
잠시 뒤에 맹인 가수 킴 윅스가 어설프게 걸어나왔습니다. 그는 서서 조용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십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관중석에 아무런 말이 없자, 다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십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반응 없는 관중을 향해 "주 여호와는 나의 힘시십니다." 라고 강력하게 선포한뒤 찬양을 했습니다.
그가 간증을 하면서 찬양을 했는데, 그 자리가 눈물의 바다와 성령이 강력하게 뒤 덮는 역사가 일어났다. 끝이 나고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님은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내 인생의 걸음마다에 주님이 있습니다. 내 인생은 주님의 땀의 얼룩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내 인생은 주님 덕입니다.
“자신이 한국의 맹인으로 지금까지 온 것은, 다른 사람들은 맹인인 나에게 길을 가르쳐 줄 때 저 앞에 100m 앞에 뭐가 있다고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앞에 무엇인가 있다고 말해주었고, 그리고 단순히 내가 그것에 순종하고 확신하고 믿을 때에 나는 그 때 그때마다 장애물과 위기를 넘어왔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과 환경속에서 이렇게 묻곤 합니다. 주님 내 인생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우리는 가끔씩 5년 뒤의 그리고 10년 뒤의 모습을 꿈꾸곤 한다. 이 말은 결국 맹인인 킴 윅스에게 100m 앞에 그리고 500m앞에 뭔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주는 것과 똑 같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지금 내딛는 바로 앞의 상황과 현실입니다.
믿음이란, 순간 순간, 우리 앞에 놓인 현실에서 순종함으로 철저히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뭐라고 고백하면서요. 주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제가 신뢰하고 따르겠습니다. 이럴때에 우리가 저 멀리 보이는 500m 앞의 문제와 어려움도 뛰어넘게 되는 것입니다.
IV. 나가면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니라 우리의 환경을 보면 그 어떤 상황과 현실속에서도 감사가 나오기 힘든 절대 절명의 순간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이 모든 상황에서 역전시킬 분이 주님이시며, 이 모든 상황에서 모든 것을 전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신앙의 고백이며 입술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느헤미아 선지자와 같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아직 회복되어지지 않는 현실속에서 그는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무엇이라구요?
여호와를 기뻐하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니라! 할렐루야
비록 무화과 나무 잎이 없으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을지라도’ 주님 하박국과 같이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게 하소서 하나님 안에 있음을 기뻐하고 감사하게 하소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감격하게 하소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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