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시대, 다시 이름을 묻다: 에스겔서, 제의적 분주함, 그리고 관계적 안식>
김수정 박사(센트럴 신학교 겸임교수)
초록
본 강연은 에스겔서를 중심으로, 불확실성과 붕괴의 시대 속에서 인간과 공동체가 무엇을 신뢰하며, 무엇에 이름을 부여하고, 어떻게 관계를 다시 세워 갈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강연은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긴장—분주함과 관계, 준비와 신뢰 사이의 긴장—을 출발점으로 삼아,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이 왜 더 분주해지고, 왜 더 많은 제의·세팅·통제를 통해 세계를 붙들어 보려 하는지를 질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에스겔서 안에서 충돌하는 두 흐름, 곧 끊임없는 제의와 통제를 통해 불안을 관리하려는 ‘제의적 분주함’의 오빗(orbit / 궤도),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의 제의적 계산이나 자연의 순환 리듬에 갇히지 않는 분임을 깨닫고 그분의 자유와 관계성을 받아들이려는 ‘언약적 신뢰의 오빗’으로 이어진다.
고대 근동의 종교 세계에서 인간은 반복적인 의례와 희생을 통해 신과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이러한 제의적 분주함은 더욱 강화되었고, 때로는 극단적 희생과 자기 소진으로 이어졌다. 에스겔 8–11장은 이러한 불안 기반 종교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밀실에서 거행되는 제의, 담무스 애곡, 태양 숭배, 자녀를 불에 지나가게 하는 극단적 희생은 모두 “신을 움직여 현실을 통제하려는 욕망”과 연결된다. 에스겔은 여기에 더해 정치적 차원의 또 다른 통제 시도—곧 시드기야 시대의 애굽 의존—을 비판한다. 이는 단순한 외교 전략이 아니라, 바벨론 제국의 침입을 야훼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에스겔의 담론을 우회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종교적 제의와 정치적 선택 모두가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이 세계를 붙들어 보려는 서로 다른 형태의 ‘분주함’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본 강연은 이러한 종교적·정치적 반응들을 단순한 오류나 배반으로만 규정하지는 않는다. 말라기 제사장들이 “우리가 언제 주를 더럽혔습니까?”라고 항변하듯, 그 시대 사람들의 선택 역시 그들 나름의 논리와 불안, 그리고 생존의 계산 속에서 나온 것이다. 본 강연은 그들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논리가 형성된 역사적·정서적 조건 또한 따라가 보려 한다. 이는 에스겔의 급진적 비판을 그대로 반복하는 대신, 그 비판이 지나치게 단순화될 수 있는 인간사회의 복잡성까지 함께 들여다보려는 해석학적 시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은 금지 조항의 나열이 아니라 관계 회복을 위한 신학적 구조로 재조명된다.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명령은 “무엇을 최종적으로 신뢰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며, 형상 금지는 불안 속에서 하나님을 자기 방식대로 재구성하려는 욕망에 대한 경고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은 잘못된 하나님 이해가 결국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또한 고대 근동에도 노동을 멈추어야 하는 날들이 있었으나, 그것이 주로 신의 변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던 반면, 구약의 안식일은 창조주와 함께 쉬고 먹으며 세상이 유지되는 근본 원리를 다시 기억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날로 제시된다. 이는 “내가 붙들지 않아도 세계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뢰의 구조를 드러낸다.
한편, 이러한 신학적 구조는 공동체 재구성의 과정에서 강한 긴장과 배제의 언어도 동반한다. 예를 들면, 에스겔 9장의 “이마에 표를 받은 자들”은 공동체의 폭력성과 왜곡을 애통해하지만, 그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체제를 전복하는 영웅도, 승리하는 다수도 아니다. 오히려 무너져 가는 공동체 속에서 끝까지 슬퍼하고 견디는 작은 사람들이며 에스겔서에서조차 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잠시 언급되고 서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그룹이다. 본 강연은 이 장면을 통해, 공동체 재구성이 승리의 서사가 아니라 연약한 자들을 어떻게 품고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임을 묻고자 한다.
동시에 에스겔의 급진적 비판이 지닌 날카로움이 때로는 인간적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하며, 그 단순화의 틈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함께 듣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강연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떠올리며 마무리된다. 윤동주의 시적 화자는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신념이 좌절되는 시대 속에서 한숨짓고, 이름을 묻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조용히 기억하는 사람이다. 특히 일본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언어를 다루는 시인의 고뇌가 이 시에는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태도는 에스겔 9장에서 표를 받은 이들의 애통과도 닮아 있으며, 애굽을 향해 눈을 돌렸던 이들, 분주함 속에서 버티려 했던 연약한 자들의 심정과도 겹쳐 읽힌다. 에스겔의 비판은 날카롭고 단호하지만, 독자인 우리는 윤동주의 시선을 통해—한숨, 기억, 이름 부르기라는 조용한 행위를 통해—절망 속에서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희망을 불러오는, 약간 다른 방식의 응답을 상상할 수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공동체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통제의 완성보다, 서로의 상처와 불안을 지그시 바라보며 관계와 현존을 다시 배워가는 일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강사 약력]
김수정(Soo Kim Sweeney) 박사는 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히브리 성서와 유대학으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에서 학부를 마친 후 Evangelia University에서 목회학 석사(M.Div.)를,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 석사(M.T.S.)를 취득하였다. 현재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센트럴 신학대학원, 그리고 포틀랜드 신학대학원에서 구약 성서와 해석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성서문학학회(SBL)와 국제성서문학학회(ISBL)에서 섹션 체어 등으로 섬기며 활발한 학문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연구는 해석 이론, 윤리 신학, 상호텍스트성, 그리고 공간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해석적 경계를 확장하는 데 기여해 왔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텍스트를 면밀히 읽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건설적으로 적용하는 모든 과정까지 거치게 될 때 ‘책임 있는 독서’가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