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는 일비다.
4월14일 토요일, 굳은 땅을 푸는 봄비가 내리는데 밭으로 가지 않았다.
4월의 동동숲에 스미고 물 들기로 작정하니 뿌리고 심는 일은 다음 주에 하기로.
그러니까 사람은 때때로 다른 곳에 가야한다.

부산에서 출발한 차는 김해 공항 들러 한 사람을 픽업해 빗속을 달렸다.
창밖엔 봄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차안은 5인 동행의 즐거움과 일상탈출의 해방감이 가득.
가다가 맛있는 점심밥 사먹으니 아흐, 흙투성이로 밭고랑에 있지 않음이 깨소금맛.
낯익은 길을 새로운 눈으로 보며 산길을 달려 동시동화나무 숲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다.

잘있었니, 동시동화의 숲아.
벌통과 옹달샘도 반갑다.

나무로 이랑을 구분 지은 예쁜 밭에 뭐가 있나 내려다본다.
밭농사 12년차 건달농부의 눈에 거름 많이 먹은 비옥한 밭흙이 믿음직하다.

자정향실 입구 떨어져누운 동백꽃의 강렬한 색감에 아찔.

흠, 하룻밤 동침하며 만리장성 쌓을 메이트 성함이렷다.

숙소에 가방 들여놓고 내려다보니 솦속 잔치에 초청받은 분들이 속속 도착해
둘러서거나 거닐며 만남의 정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다.

오후 5시, 보약 밥상으로 만찬이 시작됐다.
숲에서 채취한 두릅, 문어숙회, 멍게, 가지미식혜, 각종 장아찌, 백합탕 등...
풍성하게 차려진 맛깔난 음식에 특별 소스인 숲 공기를 아낌없이 뿌려 먹었다.
밥맛도 술맛도 신령스러웠으니, 이것이 바로 선계의 밥상.


백승자 선생님 이제 도착하셨네요.
환한 표정이 영락없이 친정집 오신 딸 포스이십니다.


배익천 주간님이 인삿말.
"주말에 산골짜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숲의 진달래가 하도 좋아 4월7일에 열린 한마당을 하려했다며
올해부터 예술진흥원 지원으로 정겨운 원고료대신 때묻은 돈으로 원고료를 드리게 됐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만큼 책이 만드니 책두께가 재미없게 일률적이다.
한국아동문협에서 분기별로 뽑는 우수작품의 30프로는 열린아동문학 발표작이더라.
책을 내시는 분 중 우리책에 실린 작품이 표제작이 될 경우 한 번에 한해 광고를 해주겠다......
그리고 새로 책 내신 분들을 일일이 호명해 이규희선생님이 만드신 케익에 촛불 꽂아 축하했다.
(제 이름은 빠뜨리셨지만^^)

건배사는 공재동 선생님이 하셨는데,
선창, "동시동화!"에 "백년백년!"으로 합창.

백승자선생님은 2018년 봄호 '내 작품의 고향'꼭지에 실렸다.
"어느 분의 글이나 마찬가지지만 작품을 읽으면 내면의 깊이를 알게 된다.
연륜으로 치면 등단 삼십년이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지만
제 스타일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깊이 있게 가려 한다.
작품론 써주신 김문홍선생님 글을 깊이 들여다봤는데
오래 지켜봤더라는 것,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느꼈다. 감사드린다."

왼쪽부터 공재동, 김문홍,노원호 선생님
김문홍선생님에 대한 배익천 선생님의 소개.
"김문홍 선생님은 열린아동문학 일세대시다. 원고료 없음에도 선뜻 빨리 써주신다.
대단한 정열이다. 연극 동화 동시 에세이 등 멀티플레이어이시다."
그리고 다음은 김문홍선생님 말씀.
"엇그제 종합검진을 했다. 제발 폐에 이상이 있어라. 그래야 담배를 끊는다,
했는데 대장에 용종만 있더라. 오십여년 피웠는대도 폐가 깨끗하니 앞으로 더욱 열심히 피울 것이다.
요즘 연극 상연 준비중인데 청탁이 있으면 원고를 쓴다.
그리고 원고료를 받으면 절대로 집사람에게 안 준다.
내가 고생해서 쓴거니까 꿈도 꾸지마라고 한다.
또 원고료 많이 주는덴 글자 하나라도 신경 쓰서 쓴다. 안 주면 대충 쓴다. 난 프로니까.
6,7년전 암수술을 했는데 인생관이 바뀌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마시고 피우고 쓰겠다."

이 계절에 심은 동시나무의 차영미 시인. 멀리 고양에서 오셨다.
함박꽃나무를 주문해서 아주 혼이 났다는 배익천 선생님의 말씀과
"아름다운 이 길 함께 걸어가겠습니다."하고 차시인이 차분하게 인사.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공주이신 등단 40년차 분홍분홍한 이규희 선생님.
동동숲에 간다고 하니 부군께서 "친정 가?"하더라는.
신인들의 인삿말이 풋풋하고 감동적이더라며 시 쓰는 이옥봉에 대한 이야기 하심.

최영재선생님의 롯데껌과 해태껌 시엠송에 얽힌 비하인드스토리는 얼마나 재밌던지!

"고성에서 나고 고성에서 크고 고성에 살고 있는 최미선입니다.
계평을 쓰는데, 이 시대의 동화를 열심히 읽고 화자의 목소리가 뭔지 귀기울여 보겠습니다."

"동화 쓰는 김미숙이 무려 네명이나 되더라. 그래서 김나월로 필명을 지었다.
이 숲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많다..."

2018년 국제신문 신춘 동화당선의 박연미씨.
인삿말과 다짐의 말씀 하다가 울컥,
말하다 목 메는 분들은 다 새내기들이었는데, 연초록잎 피우는 봄나무 보듯
풋풋하고 정이 갔다. 눈에 물기가 잘 어리니 마음에 찬란한 무지개가 필 것이다.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박비송씨.
싱그러움과 풋풋함이 얼굴에 한 가득.

그리고 오늘 나의 미션인 나비연님.
올봄 웅진주니어에서 장편동화 '걸어서 할머니집'을 펴냈는데,
책속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가 나비연님의 시 '구경'이다.
책 속에 인용했음을 전하며 얼굴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는 나비연님께 메일을 보내
동동숲에서 만나자고 했다. 서로를 알아보는 증표로 초록스카프를 만들어 보내고...

저녁밥을 먹고 내내 밖을 내다보는데 어둠 내리는 숲에 택시 한대가 들어왔고,
나랑 같은 초록스카프를 메고 기타를 등에 멘 긴머리 그가 내렸다.
숲의 요정이 택시를 타고 온 줄!
이런 비주얼의 젊은 아가씨일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놀랐고,
우린 서로의 스카프를 가리키며 웃었다.
들려준 자작곡 노래도 심금 울렸고 나비연님 덕분에 행사가 풍성해진 느낌.

정담 나누며 봄밤이 깊어간다




높은 소나무에서 풍경이 울며 숲속에 아침이 왔다.

산길 걸으며 숲해설 듣는 분들

여기는 선다일체의 자세로 아침 맞는 분들

그리고 전설의 글샘물로 거장의 꿈을 꾸는 사람...
저마다의 마음과 스타일로 아침숲을 누렸다.

그리고 걷는 곳이 런웨이인 이분의 오늘 패션코드는 초록초록.
"선생님 귀걸이도 초록이시네요."
하니 곧장
"아이구 머리야."
초록반지 자랑 퍼포먼스에 좌중에 웃음꽃.

아침 식사후, 문득 내다 보니 떠나기 전 기념 촬영대오.
몰래 셔터 누르는데 알아챈 몇 분이 올려다보고 손을 흔드신다.

특별한 장소에서 쌓은 하룻밤 정분이 못내 아쉬워 소맷부리 잡고 몌별.


모두 떠나간 숲에 청소 잘하게 생긴 6인과 두분 선생님만 남았다.
(예원 선생님은 주방에)

특별한 공간에서 몸과 마음 쇄신하고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했으니
저마다의 터전에서 가열차게 살다가 다시 만나기로 해요.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첫댓글 강경숙선생님
청소도 열심히 해주시고
기록사진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애 많이 쓰셨습니다. 음식 담는 잘그릇 무게에 깜놀했는데, 진심 너무 걱정됩니다.
그 무게는 여자의 손목이, 그것도 예원선생님 손목에는 흉기나 진배 없어요.
저희집도 사용하는 그릇을 가벼운 스텐과 나무그릇으로 교체하는 중이라,
선생님에 대한 걱정이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곡진한 제 건의를 수용해 주시기바랍니다.
헉~!
이를 어째?
후기 쓰란 과제 받고 아직도 게으름 중인데 이리 맛깔스럽게 쓴 글을 읽고 나니 비슷한 감성을 어찌 다르게 쓰나?
난제로다.
잘 가셨지요? 사진이 있으니 글 몇자만 곁들이면 되니...^^
귀가하신 분들이 즐거웠던 시간 되새김하시라고 밤이 늦어도 후딱 올리는 편이지요.
선생님의 한마당 후기 기대됩니다.
답글도 재밌어요.
무거운 그릇을 교체하라는 건의를
겸허히 수용바랍니다.^^
초록 스카프를 두르고 만나는 사이.
낭만의 최고봉입니다.
시상식 기다리는 행복한 시간이지요? 다시 한번 축하해요.
기세를 이어 내년 열린아동문학상까지 고고씽...
진짜 크고 무거운 그릇 엄청 신경 쓰여요. 주부의 손목과 허리 공격하는 크다란 유리나 도자기 그릇은 주방에서 퇴출하는 중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