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을 읽고
『가든파티』 캐서린 맨스필드
발제: 박은희
모임에서 밥을 먹으면 차 마시러 가는 것이 정해진 코스다. 차 한 잔 하는 것이 일상이고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요즘은 다양한 카페들이 생기면서 차 한 잔 값이 밥값에 버금가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누군가에게는 차 한 잔 값이 간절하고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정말 부자인 로즈메리가 작은 앤티크 상점에서 반드시 사고 싶은 몹시 아름답고 작은 애나멜 상자를 사지 못하고 나와 만난 그림자 같은 젊은 여자처럼.
로즈메리는 꽃집에서 눈부시게 압도하는 약간 유별난 태도로 한가득 꽃을 사듯 상자를 사지 못하고 나와 겨울 오후를 응시하며 묘한 통증을 느끼고 아주 불쾌한 순간들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집에 가서 최고급 차를 마시려고 할 때 만난 그 흐릿한 사람을 집으로 데려간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 나오는 중요하고 묘한 사건처럼 느껴져 책에서 읽거나 연극에서 보기만 했던 일을 직접 하면 짜릿할 것 같아서.
그저 차 한 잔 값을 주기만 하면 되는 여자는 옷을 우아하게 잘 입은 여자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을 때 경찰서로 데려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불안했지만 굶주린 사람이 유혹에 쉽게 넘어가듯이 로즈메리와 함께 간다.
로즈메리는 마치 놀이방 벽장을 다 열어젖히고 상자란 상자는 다 열어놓은 부잣집 어린이처럼 불쌍한 여인을 얼른 대접하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다. 깡마른 사람을 깊고 큰 의자에 앉히고 모자와 코트를 벗겨서 바닥에 놓고 차와 여러 가지 음식을 주었다.
그러자 그 별것 아닌 음식이 놀라운 효과를 낳았다. 약간 멍청해 보이고, 배가 고파 기절할 것 같고,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어 죽어버리고 싶었던 그 여자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커다란 의자에 앉아 엉클어진 머리, 깊은 입술, 깊고 밝아진 눈으로 기분 좋게 나른한 상태로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이서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남편 필립이 들어왔다. 그는 불가에 서서 이상하다는 듯, 그 늘어진 사람을 보고, 손과 부츠를 보고, 다시 로즈메리를 보고 서재로 와달라고 말했다.
필립은 그 여자가 놀라울 만큼 예쁘고 아름다워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로즈메리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심장이 커다란 종처럼 쾅쾅거렸다. 로즈메리는 아주 몹시 잘해주고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저녁 초대를 한 필립의 말을 무시하고 1파운드짜리 세 장(4,800원 정도)을 그 불쌍한 것에게 주고 돌려보냈다.
로즈메리는 필립에게 오늘 본 28기니 기니=영국 옛날 화폐 단위, 1기니=21실링, 1파운드=20실링
(44,800원 정도)짜리 작은 상자를 하나 사도 되냐고 물어본다. 필립이 그녀를 아이 어르듯 다리 위에서 흔들었다.
“그럼요, 돈 잘 쓰는 우리 자기”
라고 말했다.
하지만 로즈메리가 하려던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필립”
그녀가 속삭이며 그의 머리를 가슴에 안았다.
“나 예쁘죠?”
마지막 문장은 기가 막힌다. 읽자마자 감탄했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남편은 과연 뭐라고 대답했을까? 예쁘다고 했을까? 아니면 말을 돌려서 다르게 말했을까? 몹시도 궁금하다.
그 여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일단 로즈메리 집을 나서면서 배도 부르고 낯선 장소에서 빠져 나왔기 때문에 한결 숨쉬기가 편했을 것 같다. 길에서 굶주리다가 마담을 만나면 또 차 한 잔 값을 달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다시는 따라가지 않을 것 같다. 너무 비참하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 테니까.
로즈메리 입장에서는 차라리 집에 혼자 돌아와 고급 차를 마셨으면 하는 후회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음의 통증과 함께 계속 그 여자가 생각나지 않을까?
외모에 자신 없는 나는 누군가와 비교해서 나의 예쁨을 확인 받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스스로 만족스럽게 일을 잘했거나, 누가 무엇을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언가 열심히 하고 나서 묻고 싶어진다.
“나 잘했죠?”
앞서 읽은 해러웨이가 말하는 것과 연결하고 연관 지어서 생각하기는 벅차다. 기존의 이분법과 이항대립의 미로를 통과해 그 경계를 붕괴시키는 이야기가 이 글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이분법이 드러나 있을 뿐 공의존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배고픈 사람과 배부른 사람. 예쁜 여자와 아닌 여자.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남자와 여자. 주인과 하인?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로즈메리가 그 여자에게 잘 해주고 싶다고 했을 때 필립은 절대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여자가 굉장히 아름다우니 로즈메리가 그 여자를 보살펴 주고 싶은 생각은 아주 잘못 생각하는 거라고 말한다. 필립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알 듯 말 듯 잘 모르겠다.
첫댓글 발제문 정리해주신 덕분에 <차 한 잔>이 훨씬 다양하게 읽혔습니다. 또 다른 시선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