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 역사가 바로 한국사라는 관점에서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는 바로 고대 한국어이다. 즉, 시간적 격차를 제외하면 지금의 한국어와 고대 히브리어는 동일한 언어라는 의미이다. 이전 글에서 <훈민정음>의 의미를 설명하는 몇 개의 글들을 통해 성경 히브리어는 고대 한국어라는 것을 주장하였는데, 이번 글은 필자(筆者)가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성경 창세기 1장 1절의 구절을 통해 짧게 나마 필자의 주장을 한번 더 어필하려고 한다. 필자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을 한국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오래 전부터 했다. 엄밀히 말하면, 동일한 언어이므로 번역이 아니고 그저 소리나는대로 따라 적는 것이다. 독자들께서는 참 신기한 일이라 생각하실 것 같다. 그럼, 먼저 위의 창세기 1장 1절의 구절을 히브리어로 보자.
위의 히브리어 구절이 바로 창세기 1장 1절을 표현한 기록이다. 현대의 모든 맛소라 히브리어 성경은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가 되어 있는데 이것은 독자의 편의를 위해 구분한 것일 뿐임을 먼저 알자. 실제 고대 성경은 모든 글자들이 전부 붙어 있다. 그럼 먼저 위의 문자들을 현대 이스라엘 국가에서 발음하고 지금 모든 성경 학자들이 그렇게 발음하는 현대 히브리어 소리를 한글로 들어보자.
베레쉬트 빠라 엘로힘 엩하 쉬 마임 외 엩하 아레츠
독자들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위의 현대 히브리어 발음을 들어보면, 이것은 히브리어가 한국어와 동일한 언어임을 전혀 생각할 수 없게 한다. 아무리 성경 히브리어가 고대 한국말이었다고 증명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위의 발음을 들으며 이것이 고대의 한국말인가 하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이 발음은 현대 이스라엘의 아버지 벤 예후다와 그의 추종자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다. 어쩌면 조작이라고 보다,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을 구별하는 문자가 기호가 없었기에 현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재건국이 명시되었을 때, 임의로 발음을 만들었다고도 본다. 고대 히브리어가 모음을 따로 표현하지 않았던 언어 기록적 특성을 두고서 왜곡자들은 자기식대로 모음을 추정해서 발음을 만들었던 것이다.그렇다면 필자(筆者)가 주장하는 창세기 1장 1절의 히브리어 문자를 실제로 그 당시 히브리어로 어떻게 발음되었는지 먼저 보자.
비로소 보라 얼님 곁의 저마음과 곁의 아래쪽
필자가 제시한 고대 히브리어 발음을 보고, 독자들께서는 비웃으실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발음을 보면 현대의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문장은 아니다. 다만 고대의 한국인들이 사용했던 문장이기에 지금의 한국어와 조금 어색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수천년이 지나는 동안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대부분의 현대의 한국 사람들은 고대의 히브리어 발음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될 것이라는 것이고, 지금 현대 이스라엘이 발음하는 그런 종류의 발음과는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의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고대의 삼국 시대로 즉, 고대 이스라엘 시대로 시간 여행을 가더라도 그들과 대화가 어느 정도 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히브리어 단어별로 그 뜻과 발음을 하나씩 살펴 본다.
위 히브리어 문자는 <베레쉬트> 라고 읽는다. <베> + <레쉬> + <트>로 구별해서 설명할 수도 있는데, 이 글의 취지와 큰 상관이 없고 설명이 길어질 듯 해서 묶어서 표현했다. 문장 속에서 그 뜻은 <처음에>, <태초에> 라는 뜻이고 영어로 <In the biginning> 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단어의 실제 발음은 <베레쉬트>가 아니고 <비로소>이다. 성경 속에서 무수하게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며, 모두 처음 시작한다는 의미의 <비로소>로 읽어야 한다. 앞의 <비>를 빼고 <로소>만 읽을 때도 있는데 이 때는 한국말의 <~로써>와 같은 의미와 발음을 가진다.
이 문자의 현대 히브리어는 <빠라> 또는 <바라> 라고 읽는다. 그 뜻은 <창조하다>, <만들다> <(아들을) 낳다> 인데, 성경 사전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서 처음 창조하다>의 의미로 해석되며, 영어로는 <created> 라고 <창조하다>의 과거형으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실제로 고대 히브리어 발음은 <빠라>가 아니고, <보라> 이다. 즉, 지금의 한국어의 <보다>의 감탄문 <보라>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보다>의 의미를 아주 넓게 사용한다. <자식을 보다> 라고 하면 <see, look>의 의미도 있지만 <born>, <낳다>의 의미도 있다.
위의 문자는 그 유명한 <엘로힘>으로 읽는다. 성경 학자들은 장엄 복수라고 하며, 성경 여러 구절 속에서 바로 그 뜻은 대부분 <하나님>으로 번역되었고, 여러군데에서 <신들>로도 번역되었고, 그리고 시편을 비롯한 성경의 몇 군데 구절에서 <천사들>로도 번역되었다. 영어로는 <God>, <gods>, <angels> 로 번역된다. 하나님으로 번역될 때, 많은 부분에서 단수 동사와 함께 쓰이는데, 이것은 복수의 형태지만, 장엄 복수 문법으로써 단수 동사와 함께 쓰인다고 성경 문법 학자는 애써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이 단어의 발음은 <엘로힘>이 아니고 <얼님>이다. 고대 히브리어가 바로 고대 한국어였고, 지금의 <얼>이라고 하는 단어에 존칭 복수 어미 <~님>을 붙여서 <얼님>으로 발음했다고 본다.
위의 단어는 현대 히브리어로 <에트>라고 읽는다. 그 뜻은 <~같은> 동격 접속사로 쓰이거나, 감탄사로서 <바로 그>로도 쓰이고, 특히 소유를 나타내는 <~곁에>, <함께>, <with>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가끔 <~부터>, <from>으로도 쓰이는데 그러나 현대 히브리어 50% 이상이 주로 목적격 조사 <~을>로 번역되며, 이 경우에는 영어로는 번역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현대 히브리어 문법은 법칙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권위있는 학자가 단어를 갔다 부치면 그것이 정설이 된다. 이 단어는 실제로는 <강한 ㅌ>로 발음했다고 본다. 한국어에서 바로 <곁>이라고 발음하는 그것으로 본다. 즉, 소유를 나타내거나 감탄 어미인 <에트>의 실제 발음은 <곁>이거나 그와 비슷했다고 본다.
위의 단어는 <하늘>이라고 번역되며 현대 히브리어 발음은 <하 쉬 마임> 또는 <하 쥐 마음>이다. 앞쪽의 <하>는 정관사라고 부르며, 번역시에 생략되는 경우가 많고 현대 히브리어 발음은 <흐> 또는 <하>로 한다. <쉬>라고 발음되는 이것은 히브리어 접두사로서 <저 쪽에>, <there>의 의미로 번역되며, 이 경우에는 <쉬>가 아니고 그저 <저->라고 발음했다고 본다. 그래서 <하늘>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단어 <쉬 마임>은 실제로 <저 마음>으로 본다. 즉, <하늘>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쉬마임>은 바로 한국말의 <저 마음> 이라고 발음했다는 것이다. 성경 속에서 히브리어 접두사 <쉬>라는 단어를 따로 보면 <저 쪽에>, <there> 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바로 한국말의 <저 곳에> 라는 뜻의 <저-> 라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은 <마음>이라는 단어가 바로 <하늘>이라는 의미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즉, 마음=하늘 이다.
이 글자는 현대 히브리어로 <외> 또는 <뵈>라고 발음하며 그 뜻은 동격 접속사로서 <and>, <그리고>이다. 이것이 왜 <외>라고 발음되어야 하는가? 이것의 고대 히브리어의 실제 발음은 <외>가 아니고 <와>이다. 현대의 한국말의 <철수와 영희>, <너와 나> 할 때, 앞과 뒤를 연결시키는 접속사 <와>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즉 위의 경우에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접속사로 쓰였다.
위 히브리어 단어는 <땅> 이라고 의미를 가지며, 현대 히브리어 발음은 <아래쯔>이다. 필자(筆者)는 이 단어의 발음과 의미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발음은 <아래쪽> 또는 <아랫>, 또는 <알앳>으로 발음했던 것으로 본다. 물론 의미 또한 현대 한국어의 방위 개념으로 <아래쪽>과 같다. 그러나 옛날에 <아래쪽>을 <땅>의 의미로 쓰인 것이 확실하다고 본다. <땅>이라고 번역된 단어 <아레쯔>는 한국말의 <아래쪽>이다. 히브리어의 <아레>라고 발음하는 그것은 <계란, 알>의 뜻도 있으므로 고대 히브리인들은 <알이 있는 쪽>이 바로 <땅>으로 인식했다는 것이고 <아래쯔> 라는 발음은 실제로 <아랫> 또는 <아래쪽>으로 발음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창세기 1장 1절의 구절을 다시 한번 히브리어로 읽어보자. 필자는 독자들에게 되도록 천천히 읽는 것을 권한다.
베레쉬트 빠라 엘로힘 엩하 쉬 마임 외 엩하 아레츠
비로소 보라 얼님 곁의 저마음과 곁의 아래쪽
이 발음을 통한 구절의 의미는 현대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독자들은 대략 의미적으로 짐작할 수 있기에 독자들에게 해석을 맡기고 싶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의 개역 한글 성경 구절과 의미가 통하는 것에 대해서도 독자들에게 맡기고 싶다.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 단어는 대략 1천개 정도이다. 의미적으로 단어를 늘려도 대략 3천개 안팎이다. 그러나 번역된 영어 성경을 보면, 그 단어의 총수가 1만개 가까이 된다. 이 의미는 동일한 히브리어 한 단어를 대략 평균 10개의 의미적 단어로 표현했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번역에는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너무 세세하게 의미를 확대시키면, 오히려 해석이 복잡해지고 헷깔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이에 따라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국 사람은 축복을 받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원어 히브리어를 소리나는대로 그대로 읽어도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 번역은 성령께서 직접 행하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그러한 번역 성경을 통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알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성령께서는 진실로서 자기의 죄를 알고 돌이켜 믿음을 구하는 자들에게 직접 말씀을 풀어 깨닫게 하시기에 어떤 성경도 말씀을 받는 성도들에게 무오하고 거짓이 없는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깨닫는 것과 명확하게 지식을 아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번역 성경은 한 구절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사람마다 다른 심각한 해석 오류를 보일 수도 있기에 히브리 성경을 한국말로서 있는 그대로 읽어 내는 것은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성경 이스라엘 역사는 세계사였고 바로 한국 역사다. 이에 따라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는 바로 고대 한국어이며,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의 조상들이 사용했던 언어다. 이에 따라 당연히 <고대 히브리어 = 고대 한국어>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고, 역으로 또한 <성경 역사가 바로 한국사다>라는 의미 또한 성립한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히브리어 즉 한국어는 아브라함(박혁거세)과 모세(해모수)의 시대 이후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단어의 의미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이 글은 예전에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그 후 창세기 1장 2절 번역 글을 올리는데 성령께서 강하게 감동하시고 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역사 진실을 찾는 카페 회원들께서는 다른 번역도 궁금하다 생각되지만 아직 성령께서 막으시니,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저의 역사적 견해를 마음으로 깊이 인정하는 분들이 많이 함께 되었을 때, 오직 그분들 만을 위해서 제가 성경을 한글로 읽어내는 글을 또는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고대 히브리어 발음과 관련해서 궁금한 내용이 있는데요
출애굽기 3장 14절에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알렙 헤 요드 헤' 4자음이 있습니다.
현대 영어식으로는 '에흐예'라고 발음하는데요..
고대 히브리어식으로 발음하면 어떻게 발음이 되나요?
잘못 적으셨는데, 그것이 아니고 '요드 헤 바브 헤' 입니다.
여호와 라는 뜻은 일반적으로 성경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요드' 는 현재형 강세 표현이므로 <나는 (지금) 있다> 입니다. 그러나 그 해석은 뒷 쪽의 '바브 헤'를 생략한 표현이기에 전체적으로 합쳐서 해석해야 해요.
그래서 뒷쪽의 '바브 헤' 가 '보다(see)'는 뜻이 있으므로 그것까지 포함해서 표현하면 "나는 (현재 여기서) 보고 있다>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히브리어가 고대 한국어라는 관점에서는 '바브' 발음이 콧소리나는 'ㅂ' 이므로, 콧소리 나는 <여~보>, <여~봐> 정도로 발음했을 것으로 봅니다.
프리메이슨들은 자기들의 마크를 눈동자 하나로 표현하며 그것을 'All Seeing Eye' 라고 하며 문장으로는 "I am seeing" 이라고 표현하죠. 그것은 바로 히브리어 <여호와>라는 이름을 영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그들은 <여호와> 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우상화하여 눈동자로 표현한 것이고, 글로도 그렇게 표현해서 상징으로 삼은 사람들이죠. 그들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으로 대표 이미지 만든 것이 잘못입니다. 대부분의 일루나 프메 회원들은 매우 착한 사람들이고 나름 예수님 신앙이 매우 좋은 사람들입니다. 세간에 알려진 무섭고 두려운 이미지 그런 부분은 잘못되고 음모적 정보예요. 감사합니다.
15절에 나오는 것은 우리말 성경에 '여호와'라고 번역된 '요드 헤 바브 헤'이구요..
14절에는 현대 영어식 발음으로 표기되는 '에흐예 .. 알렙 헤 요드 헤'가 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리구요..
말씀 중에 테트라그라마톤이라고 일컫는 사자음 '요드 헤 바브 헤'가 '눈동자'라고 표현한다는 말씀에 공감하는데요..
'요드 헤 바브 헤'가 이집트 태양신 '라'와 '호루스의 눈'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성경 확인했는데, 14절과 15절이 동일하게 '요드 헤 바브 헤' 입니다. 안나님이 잘못 보신 것 같아요. 동일한 문자네요.
저하고 성경 역사 이야기 탐험을 하다가 보면 더욱 자세히 알게 됩니다.
고대 이집트가 바로 역사적으로 성경 속의 유대 왕국과 동일한 국가입니다. 동일한 국가이니 이집트인들의 종교는 유대교이고, 호루스의 눈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상징한 것은 당연한 겁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이집트와 다른 국가예요. 유대인과 이스라엘인은 역사적으로 다릅니다. 잘 구별해야 하는데, 한국의 교인들은 대부분 아직 못하고 있어요. (성경 역사를 모르고 성경을 깊이 상고하지 않고 대충 읽어서 그런 현상이 나온 것으로 봅니다)
안나님도 많이 오셔서 댓글 대화하시고 즐겁게 보내요~~ 건강하시고요. 샬롬입니다.
히브리어 성경(BHS) 한 가지만 올릴게요..
현재 이스라엘은 에돔 후손.. 가나안민족 후손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감사드려요~
앞에 '요오드' 를 생략시키고 '알렙' 이 붙고 뒤에 '바브' 도 생략시킨 저 문자들은 문장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고요, <나는 존재한다> 라는 히브리어 문장으로 보면 됩니다. 전체적으로는 <나는 존재하는 나로 존재한다> 라는 문장입니다.
히브리어 문장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착각하셨어요. 뒤에 파란색으로 안나님이 표시한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에흐예' 고대 발음은 어떻게 되나요?
궁금한 게 많으신가 봐요..안나님은 제가 주장하는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가 현재 우리 한국인이 사용하는 한국말과 동일한 언어라는 것에 믿음이 가나요? ㅎㅎ 한번 대답 부탁드려 봅니다. 좋아서요. ^^ 대답 듣고 답변 드릴께요.
동일한 언어라기보다는 한 조상인 노아로부터 모든 민족과 언어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유사한 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글이 완벽한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천지인을 차용해서 만들어진 것에 실망을 했었는데요
히브리어를 알고 나서는 맛소라학자들이 만든 히브리어 모음부호도 천지인 원리로
비롯된 것임을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한글과 히브리어가 동일한 천지인 원리로 출발했다면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안나님은 고구려 사람의 언어가 한국어 라는 것을 인정 안하시나봐요..
고구려가 이스라엘과 동일한 국가라는 것이 저의 역사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저 노아의 후손이라서 비슷한 언어 체계를 가졌다는 생각이시면서 '에흐예' 히브리어 발음이 궁금하시다면 좀 논리의 모순이 있네요.ㅎㅎ 그저 '에흐예'로 발음했다고 아시면 될 것 같아요. (고구려 언어가 이스라엘 언어였다고 인정해도 발음 들으면 이해가 안될 수도 있는데, 그것을 거부하면서 아는 것은 님께 도움이 안되고 흥미거리 전락입니다. 그래서 그 발음에 대한 제 의견은 말씀 안드릴께요)
역사의 진실을 탐구하는 이 카페가 님께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늘 샬롬하세요~
제가 드린 질문을 단순한 흥미거리로 말씀하신다면 가을 남자님의 글이 흥미 위주의 글도 아니고
여기에 와서 다소 생소한 내용의 글을 읽지는 않기 때문에 가을 남자님께서 오해하신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에흐예는 현대 영어식 발음이기 때문에 고대 히브리인들의 발음이 궁금했을 뿐이고
저는 에흐예(히브리식 아하야)가 모세에게 알려 주신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믿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
윗 댓글에서 얘기 나누었듯이 '에흐예'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정확히 하시는 것이 안나님께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문장이고, 현재 이스라엘인들은 '에흐예'로 읽고 있어요. 중요한 단어도 아니고 너무 집착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네요. 그저 <나는 있다>라는 <평범한> 문장일 뿐입니다.
흥미로 물론 보시겠지만 말씀드리면, 한국말로는 <에헤이 에히야> 라고 발음했다고 봅니다. 사람 죽으면 장사지낼 때, 부르는 곡조이죠. 에헤이~ 에히야~ 나는 여기 있어~ 나는 여기 있는데~ (왜 너는 죽었니?) 라는 의미와 같은 겁니다.
답변이 되었을 거라 생각되요. 늘 믿음으로 굳건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구전되어 오는 민요(가요) 중에도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한 노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에흐예'가 우리 말로 <에헤이 에히야>라고 발음했다는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질문에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