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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실무인 희년법에서 "하나님의 것과 사람의 것(레 25:23)",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네 것과 내 것(마 20:14,15)", 경작자의 비유에서 "주인의 것과 경작자의 것(마 21:33,41)"을 구분하여 생활 현장에서 바로 적용하면 이 세상이 바뀝니다. 희년법과 경제 비유의 신비가 3,500년, 2,000년 간 덮혀있는 수수께끼에 비하면, 55년과 40년을 운운한 수수께끼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읽어주시면 고맙겠고, 공감하시면 퍼나르기 부탁을 드립니다. 지구촌 모두가 알고 생활에서 복을 받을 내용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 관한 경제적 이해와 복음적 적용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 20:1)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포도원에서 주인이 품꾼을 불러서 일을 시키는 노동 현장과 그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품삯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앞에서 베드로가 천국에서는 어떤 보상을 받을 것인지를 묻는 말에서 예수님은 답변을 겸하여 이 비유를 들었습니다.
주인은 포도원 수확 철을 맞아서 필요한 일꾼을 불러드립니다. 주인은 아침 일찍 정시에 온 품꾼들은 하루 1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일을 시킵니다. 그런데 주인은 장터로 나가서 아침 9시에도 일할 사람이 있으면, 불러들이고, 12시에도 불러들입니다. 심지어 일터를 구하지 못해 놀고 있는 사람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기 1시간 전인 오후 5시에도 불러서 일을 시킵니다.
그런데 더 특이한 것은 품삯을 지급하는 순서와 금액입니다. 늦게 온 품꾼에게 먼저 삯을 지급하는데 그 삯이 아침 일찍 온 정상 노동자의 보수와 같은 1데나리온입니다. 그래서 일찍 포도원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불평하게 됩니다. 어떻게 종일 일을 한 사람과 늦게 일을 한 사람에게 같은 보수를 주느냐는 불만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불평으로 보입니다.
비유를 들어 천국을 말하고 있는데 천국은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보수가 같은 불공평한 사회를 말하고 있는가요? 그래서 불평이 있는 것이 천국일까요? 이성적으로 보면 매우 불합리하여 보이고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유를 연구한 학자들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불합리한 내용이 들어있어서 청지기의 비유와 왕자의 혼인 잔치 비유와 같이 "비유 해석의 3대 난제"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의 의미를 이해하면, 학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정도의 난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사람이 가진 정서와 합리성이 의인 욥이 받아야 했던 고통을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요나처럼 적국 앗수르(니느웨)에 가서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 호세아게 음란한 여성 고멜을 아내로 맞으라는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을 설명하기 위하여 든 비유입니다. 그래서 비유를 다시 냉정하게 곱씹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비유는 신앙적, 윤리적, 그리고 경제적 측면으로 나누어 검토해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신앙적(영적, 신학적) 측면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천국에 참여하는 자격과 보상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은 천국이고, 천국에서 살아야 하는 일터에 해당합니다. 천국 일터에는 천국을 거부하는 자를 제외하고 누구라도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천국의 일터는 아침에 일찍 오든, 낮에 오든, 천국 문이 닫히기 전인 저녁 늦게 오던 그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천국 주인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일하기 원하는 자를 포도원으로 불러들여 일하게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천국 백성들이 받는 대우 역시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참여자 모두에게 같습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보면 이 비유는 구원이 은혜로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천국은 사람의 공로에 의해서 취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가 공짜로 받는 것입니다(롬 3:28). 구원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의 구분이 없습니다. 늦게 온 사람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치른 희생의 대가를 같이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롬 3:22,23,24). 그래서 천국에서 받는 품삯은 노동자가 일을 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포도원 일터에 일찍 나온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서 천국 백성이 되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먼저 들어왔다고 나중 들어온 사람을 차별한다면, 이것이 천국에서 오히려 장애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주인은 기회를 먼저 잡았다고 우대를 바라는 자들에게 내가 주는 것이나 받고,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합니다. 먼저 온 사람들의 불평처럼 천국에서도 차별 대우를 바라면, 그 사람은 먼저 된 자가 오히려 나중 된 자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그다음, 비유의 윤리적 측면입니다. 천국에서 있을 경제적 생활윤리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것은 현실 생활에서 구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포도원에 늦게 고용된 자들은 그들이 게을러서가 늦게 고용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일할 일터가 없어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실업자들입니다. 주인은 이들이 일터가 없어서 놀고 있고, 그러므로 수입이 없어서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들에게 아무것도 묻지를 않고 일터로 불러들여 일자리를 주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율법은 포도원 품꾼과 같이 일터를 잃어서 생계가 어려우면 우리가 구제해야 합니다. 특히 신명기는 가난한 자를 항상 돌보아 주어야 할 의무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도 성도들의 구제가 필수입니다(마 19:21). 구제는 하늘에 쌓는 보물입니다(눅 12:33). 성령의 가르침은 가진 재물을 내어서 구제하고 유무상통하는 것이었습니다(행 2:45, 4:32).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제는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나 자선 행위에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약 1:27, 2:15~16).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기에 이웃이 가난하면 내 몸처럼 여기며 가난과 고통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주인은 일터가 없어 실업 상태로 있고 가족들이 굶주리고 있는 자들을 불러서 일도 시키고 품삯을 후하게 쳐서 줍니다. 여기서 주인이 지급한 품삯은 보수라기보다 실업자에 대한 생활비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본 정상 노동자들이 불평합니다. 늦게 온 사람에게 후한 보수로 일찍 온 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늦게 와서 적게 일한 사람의 보수가 일을 많이 한 자와 같은 것만 가지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실업 상태로 생계가 어려운 자의 처지를 이해하거나 배려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들도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를 강조하고 있는 성경(구약)을 얼마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실업자들을 불러들여 일을 시키고 구제를 하는 주인과 함께해야 합니다. 받은 보수가 적다는 불평 대신에 오히려 자기가 받은 품삯도 내어놓고 실업자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들에게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마 20:16)”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측면입니다. 천국에 있을 경제의 구조적 측면을 말합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대한 기존의 연구는 아직 경제의 구조적 측면에서는 연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로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노동의 고용과 임금(품삯)에 관한 것이므로 희년법이 말하는 구약의 노동시장과 함께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할 주제이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소개된 노동의 거래 방식은 희년법에서 시행한 구약시대의 노동의 거래 방식과는 크게 다릅니다. 이것은 노동의 시장거래 방식이 획기적으로 달라지고 개선된 것이므로 한계를 가진 구약의 노동시장이 신약시대에 와서 복음적으로 성취된 의미를 가집니다.
그만큼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노동시장을 크게 바꾸는 개혁안이 되어서 소중한 경제적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구약시대의 노예 노동이 신약시대에 와서 자유 노동으로 바뀌는 복음이고, 변혁입니다.
포도원 품꾼 비유와 노동시장의 복음적 성취
저가 하루 한 데니리온씩 품꾼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마 20:2)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노동시장의 복음적 성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희년법에 있는 구약시대의 노동시장을 이해해야 하며, 몸값과 임금의 시장구조, 노동과 실업의 상태, 그리고 실업 구제를 위한 재원조달 등 비유가 가르쳐 주는 현실적 노동시장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희년법과 구약시대의 노동시장
희년법에서 노동시장은 원칙적으로 필요가 없습니다. 실업자도 없었습니다. 희년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지파별, 가족별로 분배하면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분배받은 자기 경작지에서 자율적인 경작을 하게 되고, 이것으로 생업이 모두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노동시장에서 남에게 몸이 팔리는 종이나 품꾼이 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살다가 보면 각종 재난으로 가난하여질 수 있고, 자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땅을 시한부로 팔아서(잡혀서) 자금을 융통할 수 있습니다(레 25:15,16). 그런데 토지가 팔리면 경작지가 없어서 생업이 어려워지므로 몸도 팔리게 됩니다. 이럴 때 신명기는 6년간의 몸값을 매겨서 노동 거래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신 15:12). 이럴 때도 고용주는 종처럼 대우하지 말고 품꾼처럼 대우해야 합니다(레 25:39,40). 그리고 이방인에게 팔렸으면 형제나 동족이 몸값을 대신 지불하고 속량시켜 주어야 합니다(레 25:47~55). 그렇지 않으면 6년간의 고용 기간이 지나면 7년째 안식년이나 희년이 오면 풀려나서 자유하게 됩니다. 팔린 기업도 동족의 속량으로 풀리게 되고, 희년이면 기한 만료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희년법이 시행되고 있으면 노동시장은 큰 의미가 없으며, 실업자도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만약 형편에 따라 몸이 팔렸으면(미래의 노동임금을 일시불로 미리 받았으면), 곧 몸값을 받고 몸이 팔렸어도 항상 풀려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형제나 동족이 값을 치른 속량으로 풀리게 됩니다. 아니면 안식년과 희년이면, 고용계약이 끝이 나서(값 치르기를 마쳐서) 자유하게 되고, 고용 문제는 시장에서 자동으로 해결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지금 이러한 구약의 희년법의 노동시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경제법대로 한다면, 이러한 품꾼은 희년법 안에서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일터가 없어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것은 희년법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조상들이 분배받아서 상속되어 온 땅이 팔리었거나 상속받아야 할 땅이 없어서 실업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땅이 팔려있다면 친족이 무르기를 하여 일터를 찾아주어야 합니다. 아니면 일터가 없는 이웃을 내 집으로 불러들여 품꾼처럼 대우하며 함께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하여 그 희년법의 복음적 실현 방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일터가 필요한 자들에게 일자리를 주어 노동문제를 해결하고, 일터를 잃은 실업자에게는 생계비를 지급하여 실업 문제도 해결하여 줍니다. 이것이 포도원 품꾼이 보여주는 복음적 노동시장의 운영방식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네 것”과 “내 것”의 분명한 구분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3~15)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기본 철학과 질서는 “네 것”과 “내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 생산물 중에 “네 것과 내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마 20:14,15). 여기서 주인이 말하는 “네 것”은 아침 일찍 나와서 하루 일을 다 한 정상 노동자의 품삯입니다. 그리고 “내 것”은 포도원 주인의 것으로 정상 노동자에게 지급하고 남은 몫의 전부를 말합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토지가 생산한 토지가치를 뜻합니다(막 4:28). 이 토지가치는 씨 뿌림(자람)의 비유에서 본 바와 같이 사람의 노동과는 별개로 토지가 생산에 기여한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시장에서 노동가치는 품꾼이 일하여 번 “네 것”이 되고, 토지가치는 토지라는 천연 생산력이 낸 것으로 토지 주인이 “내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레위기 희년법에서 포도원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레 25:23). 이러한 “네 것”과 “내 것”, 노동가치와 토지가치의 구분은 구약의 희년법은 물론이고, 신약에서도 필요한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전제조건이고, 기본적 철학입니다.
노동시장에서 몸값과 임금의 가격구조
구약의 희년법에서 노동시장은 미래에 발생할 노동가치를 지금 시점에 일시불로 값을 매겨서 운영합니다. 그러면 일시불로 매겨진 가격은 몸값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자금이 필요한 자들은 자기 몸을 저당을 잡혀서 필요한 자금을 빌려 쓸 수가 있습니다. 은행이나 금융제도가 없었던 구약시대는 이런 방식으로 당면한 금융과 경제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몸값은 나의 몸이 빚의 담보로 장기간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신분이 채주에게 예속되어 신분의 자유와 노동의 자유가 장애를 받습니다.
이것이 자율적 시장거래이면 정당하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궁핍에 처한 자가 몸이 팔릴 때는 그 거래의 정당성을 보장받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 가난한 자는 자금 여력이 있는 자들에게 몸이 헐값이 팔릴 가능성이 높고, 팔려가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심하면 품꾼의 신분과 자격은 노예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비록 노예는 아니라도 몸값이 빚 담보로 잡혀 있는 한 노동시장의 자유는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스포츠 선수나 인기 연애인들이 소속사에 전속 계약이 된 경우와 유사합니다. 그들의 경제적 활동이 계약된 몸값으로 소속사에 묶여있습니다. 물론, 스포츠 선수나 인기 연예인들은 인기와 높은 수익성으로 인하여 그들의 몸값은 일반 사람들보다 높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몸을 파는 자가 강자 중심의 노동시장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가난한 자의 몸값과 가격 결정은 몸을 파는 자가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강자 중심의 시장과는 상반된 성질을 가집니다. 그리고 강자이든, 약자이든, 시장에서 발생한 몸값은 채권과 채무로 서로 계약에 묶여있습니다. 서로에게는 권리 의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희년법은 이런 몸값은 무르기로 값을 치러서 자유하게 하는 속량의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한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구약의 희년법과는 좀 다릅니다. 포도원 주인은 구약의 노동시장과는 다르게 노동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바로 품삯이라는 임금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일터로 사람을 불러들이되 하루 한 데나리온씩 일당을 약속하고 사람을 고용합니다. 이 품삯이 하루 분이면 일당제가 되고, 한 달 분이면 월급제, 1년 분이면 연봉제가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임금입니다.
이러한 임금으로 노동을 거래하면, 노동시장은 임금의 자본가격인 몸값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몸값은 채권 채무가 발생하고, 신분의 자유가 서로 예속됩니다. 그러나 임금은 몸값이 발생하지 않아서 몸값이 일으킨 채권 채무의 권리 의무와 신분의 예속 문제가 소멸하여 버립니다. 구약의 희년법처럼 값을 치르는 무르기도 필요가 없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구약시대라면 품꾼을 부르되 안식년 또는 희년까지 지불할 임금을 일시불로 지급하고 고용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많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포도원 비유대로 노동시장을 임금으로 운영하면, 이런 일시불 목돈을 지급을 하지 않고, 품꾼이 일을 하여 생산한 생산물로 임금을 지급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노동시장입니다. 임금 하나로 몸값이라는 자본가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몸값이 잡힌 빚이 없어서 노동자도 자유롭고, 고용자(주인)는 일시불 지급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동의 분배와 세 가지 제도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가 보여주는 포도원 주인은 몸값을 지불하지 않고 임금을 약속하고 고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는 복음적 노동시장 운영방식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구약시대의 몸값을 대신하여 임금으로 노동시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노동시장은 사람을 팔고 사지 않고 노동가치가 거래되며, 몸값이라는 자본과 부채가 발생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 몸값 중심의 노동시장이 신약시대에 와서 임금을 중심의 노동시장으로 개혁되고 성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노동시장은 구약의 노동시장처럼 몸값을 지불하고 사람을 채용하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사람을 팔고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그 자체가 어색하고 불합리한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몸값을 지불하고 사람을 고용하면 사람의 신체에 자유가 제약되어 윤리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몸값은 노동시장은 그 가격이 일으킨 채권과 채무로 인하여 서로의 권리 의무가 묶이게 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르기(부채 상환)라는 금융의 해소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런 절차는 노동시장에서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존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곧 몸값은 노동의 자유를 주고, 발생한 빚은 없애야 하는 안식년과 면제년의 절차가 반복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노동시장은 스포츠나 연예인과 같이 노동자가 우위에 있는 특수한 신분과 직종이 아니면 구약시대처럼 미래의 임금을 선불과 일시불로 받는 거래로 자기 몸이 제도에 얽매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헌법이 정한 신체의 자유는 신분의 법적 예속이 없어야 하듯이, 신체의 경제적 자유는 신분의 경제적 예속도 사라져야 보장되는 것입니다. 노동을 임금으로 거래해야 나의 신분에서 법과 경제적 자유를 예속하는 몸값이 소멸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시대로 접어들면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로 구약의 노동시장을 대신하여 오늘날 자유시대에 걸맞은 복음적 노동시장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2천년 전에 노동시장이 몸값 대신 오늘날의 임금으로 바뀔 것을 미리 내다본(또는 가르쳐 준) 노동시장의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노동시장은 가난한 자의 생계를 위하여, 아니면 목돈이 필요하여 몸을 잡히고 빚을 내는 금융수단의 하나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노동시장은 몸값 대신 현재의 노동력이 가격을 통하여 생산 현장에서 직접 배분되는 기능을 가집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정부의 관료적 배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시장기능과 상반되는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시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분배 구조를 가집니다.
구약시대의 노동제도 : 몸값이라는 자본가격이 노동을 배분하는 구조
신약시대의 노동제도 : 몸값 대신 임금(사용가격)이 노동을 배분하는 구조
공산주의 관료적 노동제도 : 가격(몸값 또는 임금)이 없이 관료적으로 노동을 배분하는 구조
이 세 가지 노동제도 중에 정부가 나서서 관료적으로 인력을 배분하는 노동제도는 실패하였습니다. 지난 세기 약 70년간의 역사를 경험한 공산주의는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노동시장은 가격이 있어서 가격이 없는 공산주의와는 다르지만, 몸값이라는 목돈과 자본가격이 일으키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의 배분제도, 곧 노동시장은 오늘날처럼 임금으로 거래하는 것이 가장 나은 제도입니다.
노동시장의 실업 발생과 구제
그런데 임금을 매개체로 하는 노동시장에서도 문제는 있습니다. 이것이 실업 문제입니다. 실업은 일할 능력이 있으면서 일터가 없거나, 일터가 있어도 놀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노동의 공급과 수요가 시장기능에서 괴리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시장기능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동제도를 구약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으며, 더구나 정부의 관료적 배분에 맡길 수도 없습니다. 정부의 관료적 배분은 공산 또 사회주의 경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더 큰 실패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시장의 한계로 발생하는 실업 문제도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품꾼의 비유에서 그 방법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주인은 정시에 일하는 사람에게는 하루 1데나리온이라는 임금을 계약(약속)하고, 일을 맡깁니다. 그러나 일터를 구하지 못하여 늦게 온 사람은 임금을 계약하지 않고 포도원으로 불러서 일하게 합니다. 여기서 편의상 정시에 온 품꾼을 "정상 노동자"라고 하고, 늦게 온 품꾼을 "실업 노동자"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면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노동시장은 이렇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첫째, 아침이 일찍 일터로 나온 정상적 노동자에게는 노동시장이 자유 계약제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노동시장도 이렇게 하는 대원칙입니다. 비유에서는 편의상 정상 노동자의 일당이 1데나리온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 노동시장은 노동 능력에 따라 임금이 매겨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주인과 노동자 사이에 맺은 자유 계약에 따른 것입니다.
둘째, 포도원 주인은 “네 것”과 “내 것”이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의 노동가치는 네 것이고, 포도원 토지가치는 토지가 생산한 것으로 토지 주인의 것입니다. 이 구분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입니다.
셋째, 일터가 없는 실업 노동자는 조건 없이 일터로 불러들이고 일할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일당(임금)은 일을 한 시간이나 능력에 따르지 않고 정상 노동자와 같은 보수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장원리로만 보면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이런 행동은 실업자에 대한 구제 방식입니다. 실업자도 사람으로서 먹고살아야 합니다. 실업자는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생존이 필요합니다. 지금 포도원 주인은 이러한 실업자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실업자, 곧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는 구약의 희년법과 율법에 따른 자비를 베풀고 있습니다. 실업자에게도, 일을 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은 지급액은 노동의 대가라기보다는 생활비로 지급한 것입니다. 아마도 1일 1데나리온의 지급은 실업자 한 가정에 필요한 생계비로 볼 수 있습니다.
넷째, 실업자에게 후한 보수를 주었어도 노동시장의 기본 질서인 법질서와 시장기능은 그대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주인이 지급한 실업자의 후한 보수에도 계약조건을 따라서 일을 한 정상 노동자에게는 법적, 경제적 손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정상 노동자도 계약을 따라 약속된 보수를 모두 받았기 때문에 불평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정상 노동자가 하는 불평에 대하여 “내가 잘못 한 것이 없다(마 20:13)”라고 단호하게 대응합니다. 이처럼 주인은 정상 노동자에게는 시장원리를, 실업 노동자에게는 구제에 필수인 자비의 원칙으로 노동자를 대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과 실업 구제에 대한 바른 이해
<영어 교수의 A 학점 이야기>
공산주의 경제의 목적은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쓴다.”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두고 공산주의 같은 제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어를 가르치는 어느 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영어 교수가 자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모두 A 학점을 주기로 했다. 집단에서 평등한 대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실험 초기에는 학생들이 영어 교수가 점수를 잘 준다는 소문으로 지원자가 많았다. 그래도 영어 교수는 성적을 낼 때 약속한 대로 모든 학생들에게 A 학점을 주었다.
그런데 이런 평가 방식을 계속하여 보니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영어 수업에 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학생이 많다. 어떤 학생들은 영어 수업에 등록만 하고 영어 대신 다른 과목을 공부하고 영어는 A 학점을 받으려는 수가 늘어났다. 그래서 학생들은 영어에서 A 학점을 받고는 있지만, 집단 전체의 영어 실력은 낙제생이 되어갔다. 집단에서 차별 없는 평등 대우는 집단 전체를 열등생(낙제생)으로 만들게 했다.]
이 일화는 실제로 이런 실험을 한 사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등한 경제를 제일로 내세우는 공산주의의 실패를 말할 때 이런 예를 들게 됩니다. 간혹,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현실적으로 적용하려고 할 때, 이와 비슷한 사례를 들면서 현실적 적용은 부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구원의 문제를 말하는 영적이고 신앙적인 주제에만 한정된 것으로 봅니다. 현실적인 노동시장에서는 이 비유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주제로만 다루었어도 이 비유는 불합리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해석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비유 해석에서 3대 난제 중에 하나가 된 것입니다. 비유에서 먼저 일한 사람이 나중에 일한 사람과 보수가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말하는 동일 보수의 지급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이것이 경제제도나 시장원리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비유를 대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지급하는 같은 보수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공산주의나 이상주의가 되어서 현실적 노동시장에서는 채용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생각이 오히려 품꾼의 비유가 말하는 노동제도와 시장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봅니다. 그 배경에는 실업 노동자가 일하지 않고 보수만 챙기려고 한다는 부정적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어려운 말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대한 염려입니다. 아니면 포도원에서 정상 노동자와는 별개로 실업 노동자의 수가 너무 많다는 전제를 두고 하는 생각입니다. 실업자의 후한 보수로 나의 세금과 공적 부담금이 커진다는 잠재의식 발동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는 약자 계층에 대한 편파적 내용으로 집단적 노동 운동의 빌미를 주는 것으로 봅니다.
실업자의 수와 실업 대책
우리가 보듯이 현실적인 노동시장은 완전 고용이 불가능하여 실업자가 생깁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시장경제에서 노동시장은 실업자 수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시장기능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또 이 비유가 말하는 실업자는 놀면서 보수만 챙기려는 불량 노동자가 아닙니다. 일하려고 해도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가 말하는 포도원은 특정 기업이 아니고, 한 사회가 가진 노동시장 전체를 뜻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회 전체의 포도원 경영과 노동시장의 운영은 정상 노동자와 실업에 대한 문제를 동시적이고, 종합적인 검토를 해야 하는 주제입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한 사회에서 실업자는 통상적으로 3%~5% 정도입니다. 많아도 10% 미만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물론, 실업자 수는 전쟁, 정치적 불안, 금융위기와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이 비율을 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유가 말하는 포도원은 실업자 수를 정상상태로 보는 경우입니다. 실업자가 있는데 정상상태라는 말은 모순이지만, 우리가 노동시장에서 보고 있는 실업자의 일반적 현상을 말합니다.
한 사회에서 노동자가 총 100명이라면, 완전 고용은 100명 전원에 대한 일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원 사회가 완전 고용을 달성하지 못하고 100명 중 10명 정도는 실업 상태로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런 노동시장에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대로 임금을 지급하면 현장은 어떻게 될까요?
첫째, 100명의 노동 인구 중에 90명은 정상 노동자이므로 노동시장의 90%는 자유 계약제입니다. 그러면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수요와 공급은 90%가 시장원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사회는 정상적인 노동시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10명의 실업자도 시간별로 포도원에 불러들여 일하게 했습니다. 10명의 실업자 중 9시에 3명, 12시에 3명, 오후 3시와 5시에도 각각 2명씩 일을 한 것으로 보겠습니다. 그러면 10명의 실업자가 포도원에서 하루 동안 일을 한 노동 시간을 비율로 계산하면 정상 노동자의 절반인 5명 분 정도의 몫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포도원 사회의 순수 실업은 5%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실업의 원인이 일할 의사가 없는 자발적 실업, 게으름 때문이 아니고 일터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레위기 희년법에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분배받은 기업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원칙상 실업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실업의 근본 원인은 분배받은 기업이 현재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형제나 친족, 신약시대는 이웃이 그 기업 무르기를 하여서 실업 상태를 해결시켜 주어야 합니다(레 25:24,25). 그러므로 지금 예를 든 포도원 실업의 원인은 노동자 개개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형제, 친족, 그리고 이웃이 무르기를 해 주어야 하는 사회적 공동 책임도 있습니다.
위의 가정에 따른 포도원 1일 노동자 총 생산량이 120데니라온이면 정상 노동자, 실업 노동자, 그리고 주인의 몫(지분)은 다음 표와 같습니다.
포도원 1일 품삯 중 정상 임금과 실업 임금(단위 : 데나리온)
①정상 노동자의 몫(90명) | ② 실업자 보수 (10) | ③주인의 몫 | |
구제5 | ㉢잔여 20 | ||
①90 | ㉠노동생산 5 | ㉡생활비 후원 5 | ③20 |
①네 것 | ② 네 것 임금 5 | ③내 것(25) | |
1일 노동 총생산 120 = ①㉠노동임금 95 + ③토지가치 25(㉡실업 수당 5+㉢잔여 20) 총생산 120 = ①정상임금 90 + ㉠②실업임금 5 + ㉡실업구제 5 + ③잔여 토지가치 20 총생산 120 = ①네 것 90 + ②실업자 것 5 + ③내 것(주인 것, 토지가치 총액) 25 |
<관련 성구> : 네 것(마 20:14), 내 것(15)
<생산의 크기> : 정상 임금(90) > 토지가치(25) > 실업 임금 (10)
<포도원 가치의 중요도> : 토지가치(주인) > 실업자 보수(먼저) > 정상 노동자(나중)
셋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레위기 희년법과 모세의 율법은 백성들이 기업이 없는 자, 가난한 자에게는 항상 돌아볼 의무가 부여되어 있습니다(레 19:18, 25:6, 35~55, 신 10:18,19, 16:14, 24:17). 토지 소산의 십일조도 기업이 없는 자(민 18:23,31)와 가난한 자의 몫(신 14:28, 15:7)으로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생활에서 중시하는 약자에 대한 구제입니다.
넷째, 한 사회에서 5% 정도의 실업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회는 실업을 없애고, 가난한 자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제도는 사회 안정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주인은 이러한 사회적 실업과 가난한 자를 위한 구제로 실업자를 일터로 불러 일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업자에게 생계비를 위하여 일한 시간보다 후한 임금을 지급합니다. 실업자에 대한 이런 처방은 오늘날 경제 선진국에서 어느 나라나 하고 있습니다. 곧 실업 문제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사회의 공동의 문제이며, 모두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다섯째, 포도원 주인이 실업자에게 후한 임금을 지급하여도 정상 노동자에게는 계약을 위반하거나 손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세속 경제법은 실업 구제나 가난한 자에 대한 복지비 지출은 세금으로 충당합니다. 그러나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주인은 실업 구제를 위하여 정상 노동자에게 세금이나 실업 보험료를 부담시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포도원 비유가 제시하는 천국 경제와 세속 경제의 두드러진 차이점입니다. 우리는 이 차이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세금과 개인 부담이 없어도 복지비 지출이 가능한 사회가 희년법이고, 천국 경제법입니다.
여섯째, 위의 다섯 가지를 종합하면 정상 노동자는 실업 노동자에게 후한 보수를 지급한 주인에게 불평해야 할 명분(권리,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상 노동자들은 한 가지 이유, 곧 주인이 지급한 보수가 노동 시간에 비례한 임금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서 불평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주인이 일터를 주어서(있어서)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은 모르고 이렇게 불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도 노동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흔히 보는 노사 갈등의 문제는 이런 연유로 발생합니다. 물론, 노동 현장에서 고용자가 노동자 우위에 있는 노동시장은 회사나 고용자 측의 부당한 처우로 인하여 노사 문제가 발생합니다.
포도원 품꾼과 실업 구제를 위한 재원조달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시장원리로 노동문제를 해결하고, 그러한 시장원리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실업 문제도 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실업자에게 지급한 후한 품삯으로 실업자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그 재원이 어디서 나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실업자에게 생활비 구제를 위해서는 정상 노동자에게 아무런 부담을 지우지 않고 해결하였습니다.
지금의 세속 경제는 이런 경우, 정상 노동자가 일하여 벌은 1데니라온의 품삯에서 세금을 징수하여 재원을 확보해야 실업자 구제를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받는 임금에서 내야 하는 근로소득세가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 아니면 정상 노동자에게는 실업을 대비하여 받은 품삯에서 실업 보험료를 내게 합니다. 이것도 아니면 정상 노동자에게 구제비나 후원금을 내어야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품꾼의 보수에는 아무것도 부담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실업자에게는 일한 것과는 별개로 생활비까지 고려한 보수를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여 이런 해결 방식이 가능할까요?
그런데 이 문제는 포도원 토지가치가 모두 해결하여 줍니다. 여기서 포도원의 토지가치는 희년법이 말하는 땅을 알아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씨 뿌리는 비유와 씨가 자라는 비유에서 이 해법을 가능하게 합니다. 희년법과 씨 뿌리는 비유는 씨를 뿌리는 사람보다 땅이 스스로 내는 생산물을 말하고 있습니다(레 25:5,19, 막 4:28). 포도원에서 생산된 생산물은 사람과 토지가 생산한 가치입니다. 여기서 사람이 일하여 생산에 기여한 몫은 임금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사람이 일하여 생산에 기여한 것을 노동가치라고 하며, 비유에서는 이것을 “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포도원 경작을 위해서 경작비용도 들어갑니다. 포도원 경작에 필요한 쟁기나 경운기, 포도의 성장과 생산을 증대시킬 비료 구입과 같은 비용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작에 들어간 임금과 경작비용을 모두 제하고 나면 그 남은 것은 모두 포도원 토지가 생산한 몫으로 남습니다. 포도원은 주인이 직접 만든 것이므로 포도원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금융비용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 경작에서 지불하는 임금과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면 순수 토지가치가 남습니다. 이것은 토지의 자생력이 생산에 기여한 몫이므로 토지가치입니다. 비유에서 주인은 이 토지가치를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주인이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마 20:15)”은 모두 토지가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토지가 생산한 토지가치로 늦게 일을 한 품꾼들에게도 후한 보수를 지급할 수가 있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토지가치가 있어서 실업자를 불러들여 일하게 하고 노동과는 별개인 후한 삯을 줍니다. 그리고 포도원 토지가치는 포도원 사회가 필요한 다른 용도에도 공적인 경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곧 포도원 토지가치가 포도원 사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경비가 됩니다. 이러한 공경비가 되는 포도원의 토지가치는 이렇게 계산됩니다.
포도원 노동가치 : 포도원 노동자가 일을 하여 생산에 기여한 가치 = 네 것(품꾼의 것)
포도원 토지가치 : 포도원 토지가 자생력으로 생산에 기여한 가치 = 내 것(주인의 것)
포도원 토지가치 = 포도원 총생산물 – (포도원 노동자의 임금 + 각종 경작비용 + 경작자 이윤)
포도원 토지가치 = 포도원 주인의 몫(하나님의 것)
포도원 토지가치 = 포도원 사회의 공경비 총액 = (실업 구제 + 복지비 + 기타 공경비)
포도원 품꾼의 비유와 천국 경제법의 노동시장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아침에 일찍 일터로 나온 자나 늦게 나온 자가 동일한 보수를 받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서 천국 백성이 되는 자격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포도원은 천국이며,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로 미래에 있을 천국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천국은 나이가 말하는 출생의 선후, 출생 신분 등에서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문이 열려있습니다. 천국은 부자이거나 학식이 많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세운 공이 많고, 윤리 도덕적으로 선하여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조건 없이 천국 백성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을 가르쳐 준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지금 우리가 사는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경제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제문제를 희년법의 원리를 따라서 복음적으로 해결하는 방법까지 알려준 것입니다. 희년법은 모든 백성에게 기업을 주어서 실업자가 없는 경제 사회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재난과 가난의 문제로 기업이 팔려서 실업의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때는 형제나 이웃이 값을 치른 무르기로 그 문제를 해결하여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에서 실업자가 발생하면 희년법의 취지를 따라서 이를 복음적으로 해결하여 줍니다. 품꾼의 비유는 일터가 필요한 자들은 모두 포도원을 불러들여 일자리를 줍니다. 이것은 구약의 희년법이 모든 백성에게 기업을 분배하여 실업을 없애고, 경제문제를 해결한 것과 원리가 같습니다. 비유가 그르쳐 준 천국 경제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① 희년법과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가르쳐 주는 천국 경제법은 구성원 모두에게 실업이 없이 경제를 해결하려는 취지가 같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시장기능으로 동시에 충족되는 경제제도입니다.
② 천국 경제법에서는 네 것과 내 것, 노동가치와 토지가치가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이것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기본입니다.
③ 천국 경제법에서 노동의 배분은 시장원리가 원칙입니다. 곧 노동시장은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합의와 계약을 전제로 자유시장제로 운영됩니다. 희년법의 경제원리도 사유재산제와 시장원리가 원칙입니다.
④ 천국 경제법에서 신약시대의 노동시장은 노동의 현재가치만 거래하는 임금으로 노동력이 배분되고 있습니다. 임금은 현재의 노동가치이고, 몸값은 미래의 노동가치에 대한 일시불 가격입니다. 그래서 현재가치인 임금은 미래가치인 몸값보다 노동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움직입니다. 노동시장은 임금으로 노동을 배분하면 부채인 몸값이 사라져서 노동자에 대한 신분의 자유와 시장의 유동성이 커집니다. 이것은 구약의 노동시장이 신약적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⑤ 천국 경제법은 실업자를 모두 일터로 불러들여 일자리를 주고, 생활비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하여 줍니다. 구약의 희년법은 가난과 경제문제를 예방하는 경제제도의 근본입니다. 이런 제도에서도 빈곤 문제가 발생한다면 구제로 해결하는 것이 신구약 성경이 알려주는 생활 방식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희년법과 신약의 경제법은 생활경제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⑥ 천국 경제법은 실업자에 대한 구제비를 지출하여도 지금의 세속 경제처럼 세금(근로소득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실업에 대비한 개별적 부담도 지우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성경 희년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가 가르쳐 주는 천국 경제법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침해하지 않고, 경제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⑦ 천국 경제법은 사회가 필요한 공경비는 포도원 토지가치에서 충당합니다. 세속 경제는 사람이 힘들여 벌은 개개인의 소득에서 세금을 내어 공경비를 해결하지만, 천국 경제는 이러한 세금 부담이 없이 공경비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 주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실업자가 없거나 실업자가 있어도 세금 없이 그 실업을 해소할 수 있는 시장제도입니다. 이것은 구약 희년법의 신약적 성취라고 할 수 있는 천국 경제법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조적 또는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경제제도입니다. 그것은 이 비유에 담긴 ①~⑦의 경제적 특징을 종합하여 보면 누구나 인정을 해야하는 노동시장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는 희년법, 신약시대는 포도원 비유가 가르려 주는 천국 경제법이 세상의 어떤 체제나 제도보다 우수한 경제제도(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인간의 영혼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하는 천국이나 현실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포도원 경제법은 그 운영원리가 같습니다. 천국의 일터는 일찍 온 자나 늦게 온 자나 주어지는 기회가 같습니다. 레위기 제사법에 따른 영혼의 구원이나 레위기 희년법에 따른 경제의 구원은 하나님 앞에 모두 같은 신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런데 미래의 천국이나 지금의 현실 경제에서나 주인이 행한 이런 통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터로 나온 품꾼들처럼 불평하는 부류를 말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영어 교수의 일화와 같이 모든 수강생 전원에게 차별 없는 학점을 주는 것은 구성원 모두를 낙제생으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염려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염려와 부정적 견해는 비유가 말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잘못 이해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지막에 하신 말씀과 같이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현실 경제에 시행할 수 있는 천국 경제법이나 미래에 있을 영원 천국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 행위인 경제적 처방의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아침에 일찍 일터로 나온 자들처럼 천국에서는 구원의 우선 순위가 나중으로 밀려날 수 있겠습니다.
토지가치의 이해는 앞글(씨 뿌림과 자람의 비유)을 먼저 읽으셔야 합니다.
세 가지 농업 비유와 희년법의 복음적 적용 1(희년 천국의 실현) - Daum 카페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와 희년법의 복음적 적용(성취)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눅 20:9:10)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행한 가르침입니다. 고난 주간 화요일 십자가의 희생을 앞둔 3일 전입니다. 예수님이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청소한 이튿날입니다. 이로 인하여 예수님에 대한 종교 지도자들(대제사장, 서기관, 장로)의 적대감이 커진 상태에서 이 경작자의 비유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인(한 사람)은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貰)를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세를 받으려고 하면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포도를 비롯한 과일나무는 곡식처럼 심고 바로 수확할 수가 없습니다. 심은 지 4, 5년은 기다려야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레 19:23~25). 여기서 때는 이런 포도를 심어서 열매를 내는 기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구약시대부터 고대하든 메시아가 와서 신약시대를 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의 수확은 성경 절기와 달력으로 1년 중에 마지막 시기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의 수확은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추수기를 뜻하며, 1년에 한번 토지 무르기를 하는 속량절(속죄일), 7년마다 토지 휴경을 하는 안식년, 땅이 본(원래) 경작자에게 돌아오는 희년이 이때 있습니다. 추수기는 성경 구속사에서 종말(종결, 완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인은 포도원을 만들어서 농부들에게 그 포도원을 소유하라고 주지는 않고 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그 세를 받으려고 자기의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 세입자인 농부는 세를 주지 않고 종들을 때려서 보냅니다. 다시 보내도 세입자 농부는 또 그렇게 하여 이런 짓을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까지 상속자라고 죽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아들을 포도원 밖에서 끌어내어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비유를 가지고 주인은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주인이 올 때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할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이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에게 (貰를) 준다고 합니다. 이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도 포도원 품꾼의 비유와 같이 신앙적, 윤리적, 경제적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경작자의 비유는 해석을 두고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공관복음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모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기록된 비유 중 어느 자료가 최초의 것(원자료)인지를 두고 의견이 달랐습니다. 초기에는 정경이 아닌 도마복음 자료가 최초의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도마복음은 누가복음의 내용을 축약한 것으로 판명되어서 지금은 마가복음 자료가 최초의 자료로 보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자료의 출처를 밝히는 것은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비유에서 등장하는 주인은 누구이며, 종은 누구, 아들과 상속자는 누구인지가 해석의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아돌프 율리허(1857~1938)는 등장인물에 대한 우화적(알레고리적) 해석보다 비유 그대로 주인, 종, 아들의 관계만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가 이 비유는 이사야의 포도원 노래(사 5:1~7)와 같이 상징적 해석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비유 연구의 권위자인 예레미야스(J. Jeremias)와 다드(C.H. Dodd)는 주후 1세기경 팔레스타인의 경제적 배경을 이 비유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톰슨 성경 별책 주석은 당시의 이스라엘 경제 구조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갈릴리에 있는 비옥한 토지는 부재지주들이 감독자를 거느리고 큰 토지를 관리하였다. 악한 농부의 비유(마 21:33~44),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가 이런 사실을 명확하게 묘사해 준다. 수많은 랍비와 대제사장들은 예루살렘에 거주지를 둔 부재지주들로서 막대한 토지 소유자들이거나 그 자손들이었다.” 주) 톰슨 성경, 주제별 성경사전, 기독지혜사, 1986년, 458쪽.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예수님의 성전청결 사건을 두고 그 권위에 대한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반응(막 11:27~33)에 이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배경은 그 당시 이스라엘의 경제 구조를 알려주면서 종교적으로는 성전청결에 대한 권위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이 비유도 앞에서 본 포도원 비유와 같이 세 가진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신앙적(신학적, 영적)인 내용입니다.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에서 포도원은 이스라엘, 농부는 유대인, 특히 종교 지도자들, 종들은 선지자들, 다른 사람들은 이방인, 그리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경작자의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종교 지도자들의 고소로 십자가에서 희생되는 사건을 비유를 들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둘째, 윤리적, 사회적 내용입니다. 주인의 포도원을 경작하는 농부가 가지는 경제적 탐욕이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남의 경운기를 공짜로 사용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때가 되어서 경운기 주인이 사용료를 받으려고 종을 보냈으나 경작자는 사용료 납부를 거부합니다. 주인은 종을 여러 차례 보내면서 반복하지만, 경작자는 사용료를 내기는커녕 종들을 해치고 죽입니다. 주인은 마지막 수단으로 아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 아들까지 포도원 상속자라면서 죽이게 됩니다. 포도원에 대한 소유욕 때문입니다.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그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나 토지 경작자의 윤리 의식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셋째, 경제적, 복음적 내용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품꾼들이 포도원 생산물에서 자기가 받을 보수에 대하여 탐욕이 생겨서 불평하다가 주인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포도원을 경작하면서 세(貰)를 내기 싫어서 살상까지 합니다. 그리고 경작자가 그 포도원을 소유하여 버립니다. 품꾼들은 네 것 내 것을 식별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지만, 경작자의 비유는 사람을 해치고, 상속자까지 없애고 그 포도원을 소유하여 버리는 탐욕을 부리게 됩니다. 이런 물질적 탐심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엡 5:5).
이것이 포도원 비유가 보여주는 이스라엘 백성들(품꾼들)과 지도자들의 경제관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 악한 자들을 징벌하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에게 주게 됩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포도원의 경작자는 유대인이지만, 신약시대에는 경작권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비유대로 경작권은 포도원을 소유하지 않고, 주인을 인정하고, 포도원 주인에게 세를 내는 자에게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내용이 경제적 의미가 담겨있으므로 경제생활을 직접 다루어놓은 구약의 희년법과 관련지어서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에 관한 경제적 이해와 복음적 적용
희년법에서 포도원의 소유와 경작
땅은 자기(스스로) 열매를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하게 거주하리라(레 25:19 사역)
땅은 영영 팔리지 말라 땅은 다 네 것임이라...(레 25:23)
희년법에서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경작권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의 소유와 매매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경작권은 시한부로 팔 수도 있고, 이때는 무르기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아니면 희년에 무르기가 완료되어 다시 원 경작자에게 돌아옵니다. 안식년은 땅부터 쉬게 하며 노동 계약에 묶인 몸(사람)도 기한 만료로 풀려나며, 남아있는 빚도 탕감됩니다. 그래도 발생할 수 있는 가난한 자는 구제를 하고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희년법 계명을 지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안전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희년법은 백성들에게 토지 경작권을 주되 소유권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작권을 주되 세(貰)를 받지 않고, 값을 치르는 무르기, 희년 준수, 부채 탕감 등의 의무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세(貰)는 포도원 경작자가 희년법을 따라서 해야할 경제적 의무를 뜻합니다. 비유가 말하는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파별, 가족별로 분배받은 기업, 곧 경작지 전부를 말합니다.
희년법과 선지자(종)의 활동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희년법의 권리와 의무가 주어진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런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는 바알법을 받아드려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바알 숭배와 바알제도의 도입은 백성들보다 왕과 지도자들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아합왕과 그의 아내 악녀 이세벨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려고 희년법을 어기고 매매를 요구하였고, 이세벨은 이를 거절한 나봇을 반역자로 몰아서 포도원에서 죽여버립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경제적 상황에서 하나님은 왕과 지도자 대신에 선지자를 세웁니다.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에서 주인이 세를 받으려고 보낸 종들이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들은 왕과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백성들에게 희년법의 준수를 가르칩니다. 구약시대에 대표적 선지자는 아합왕 통치시대에 엘리야를 비롯하여 아모스, 호세아, 미가, 이사야 등입니다. 이들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미 2:2), 가옥에 가옥을 전토에 전토를 더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사 5:8) 강하게 외칩니다. 이후 포로기 시작기에는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세례 요한입니다.
그런데 왕과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을 때려서 돌려보내거나 죽입니다. 하나님은 바알 숭배 초기에는 북이스라엘에 엘리야를 보내었고, 중기에는 남유다에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세례 요한을 보냅니다. 그러나 지도자와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요청을 듣지 않았으며, 입을 떼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를 때리고 때로는 톱으로 썰고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하나뿐인 독생자를 이스라엘로 보내어서 이들이 거부하는 희년을 직접 선포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한 희년입니다(눅 4:18,19). 희년이 선포되면 전국의 모든 토지가 자기 가족에게 돌아갑니다(레 25:10).
포도원은 제 때에 세(貰)를 내야 합니다.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마 21:33), ...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貰)를 줄지니이다(마 21:41).
여기서 세(貰)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에크디도미”로 ‘내어주다(to give up)’의 뜻을 가지며 의미상 ‘세를 놓다(let out for hire)’로 의역되었습니다(마 21:33,41, 막 12:1, 눅 20:9). 비유에서 세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낸 것은 경제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지도자와 백성들에게 바알제도를 버리고 희년법의 준수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토지를 경작하면 세를 내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희년법과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가 말하는 포도원의 사유재산제이고, 시장제도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토지법을 세워서 정액 임대료를 징수했습니다. 희년법에서 토지거래는 희년까지 기한이 있는 사글세(貰) 제도입니다. 성경은 토지 경작에서 임대만 허용하고 소유는 금지했습니다. 그것은 토지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토지를 만들 수도, 그 값을 소비할 수도 없고, 단지 사용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희년법은 토지를 임대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토지 임대제도는 구약적인 한계와 약점이 있습니다. 요셉의 토지임대는 생산물의 20%인 정률 임대제입니다(창 47:24,26). 이것은 토지의 생산력을 구분하지 않고 생산액에서 단순 비율로만 임대료를 징수하는 문제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토지는 위치별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낼 정도로 생산성이 다르므로, 이에 대한 20%의 균일 징수는 불합리한 점이 있습니다. 경작에서 적자가 날 수 있는 한계토지에도 20%의 임료를 징수하면 부당한 징수가 됩니다. 희년법은 토지를 거래하되 희년까지만 팔고 사야하고, 이 거래는 빚이 발생하기 때문에 무르기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래서 원 경작자에게 희년처럼 경작권이 회복되려면 값을 치른 무르기 절차가 필요하고, 아니면 희년이 돌아와야 비로소 토지가 회복되게 됩니다.
그런데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포도원을 경작하되 포도원에서 얻은 생산물에서 제 때에 세만 내면 됩니다. 여기서 세는 토지를 경작하고 시장가치대로 세만 내면 됩니다. 그 세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본 임금처럼 주인과 경작자 간에 사적 계약으로 값이 매겨집니다. 토지거래가 시장원리입니다. 생산성이 높은 토지는 임료가 높고, 낮은 토지는 임료가 낮습니다. 그래서 토지는 이 시장원리를 따라 효율적으로 배분됩니다.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토지의 임대와 세(貰)의 납부는 이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포도원 토지가치의 계산과 인식
포도원 경작자가 낼 토지임료(貰)는 시장에서 시장기능을 따라서 자유롭게 매겨집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개인 농장일 수도 있지만, 한 나라의 전체를 하나의 포도원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1년간 한 나라의 총생산물에서 포도원 주인의 몫인 토지임료는 이렇게 계산됩니다.
포도원의 생산조직 및 분배
포도원 조직 | 주인 | 경작자 | 비고 | |
생산요소 | 토지(소득) | 노동(소득) | 자본(소득) | |
생산물 분배 | 토지가치 | 임금 | 이자 및 이윤 | 이윤=총생산-생산비 |
% | 30 | 60 | 10 | |
사유 및 공유 | 貰(임료) 30 | 사유 70 | GDP |
<표> 경작자의 자가 생산이면 사유는 70, 고용 생산이면 고용 임금이 60, 자가 소유 소득은 10으로 봄
포도원 총 생산가치 : 일정 기간(1년) 포도원에서 생산된 가치물 총계 = GNP 또는 GDP
포도원 총생산물 = 포도원 토지가치 + 포도원 노동가치(임금) + 포도원 자본가치(경작비용)
포도원 토지가치 : 포도원 토지가 자생력으로 생산에 기여한 가치 = 주인의 것
포도원 토지가치 = 포도원 총생산물 – (포도원 임금 + 경작비용)
포도원 토지가치 = 포도원 주인의 몫 = 포도원 토지임료(포도원 貰)
포도원 토지가치 = 포도원 사회의 공경비 총액 = (실업 구제 + 복지비 + 기타 공경비)
포도원 총생산물은 한 나라의 생산 총계인 국내 총생산액(GDP)입니다. 이것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낸 생산물 총액입니다. 여기서 포도원 경작에 필요한 임금 총액이 노동가치이고, 경작에 들어간 경작비용 총액이 자본가치입니다(경작비용에는 경작자의 금융이자도 포함). 그리고 나면 포도원 토지가치는 그 잔여액인데, 이것이 포도원 주인의 몫인 토지임료입니다. 포도원 경작자는 이 토지임료를 주인에게 세(貰)로 내야 합니다.
그러면 포도원 경작자는 주인과의 (장기) 계약대로 세(貰)를 내면 세금도 내지 않고, 한 나라의 공경비가 저절로 생깁니다. 여기서 발생한 토지임료와 임금, 그리고 경작비용은 모두 시장원리를 따라 매겨진 가격입니다.
포도원 희년 천국의 현실적 실현
... 또 포도원을 제 때에 소출을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제 때에 세로 주리이다(킹제임스성경, 마 21:41)
그래서 포도원 경작자는 포도원을 경작하여 제 때에 세를 내면, 이 포도원은 영구로 내가 경작할 수 있습니다. 상속도 자유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시장원리를 따라 세만 받고, 포도원 경작이나 경영은 경작자의 자유입니다. 포도원은 생산성이 떨어지면 사과밭으로 바꾸어도 됩니다. 이런 계약 상태는 영구적입니다. 곧 포도원 비유에서 포도원 경작자는 세만 내면 그 포도원은 사실상 영구적으로 나의 소유입니다. 이렇게 포도원은 제 때에 세만 내면 그 포도원 경작에는 땅값을 지불하지 않고 사실상 내 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회에서 부담할 세금이나 공경비 부담도 사라집니다. 다만, 포도원 경작자는 그 포도원을 소유하거나 팔지는 못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포도원 임대제도이며, 희년법의 복음적 성취라고 할 수 있는 “천국 경제법”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종을 때리고 죽이며, 심지어 상속자까지 없애버리는 살벌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하나님 나라에서 시행할 천국 경제법을 말하는 복음적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가 미래의 종말에 있을 천국을 말하고 있든,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 경제를 말하고 있든, 실제적인 경제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든 창조질서에 들어있는 물질계의 물리적 성질입니다.
포도원 세(貰) 하나로 7~8개의 가격 소멸
그래서 우리가 현실 경제에서 포도원 비유처럼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 토지임료만 내게 되면, 이론상 토지에 매겨진 땅값은 모두 소멸합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지급하는 임금으로 사람의 몸값이 소멸하듯이 토지에서 임료 하나로 땅값이 사라집니다. 땅값으로 인한 빚이 사라지고, 토지 사용의 자유가 회복됩니다. 토지 사용의 자유가 보장되므로 실업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실업자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시장에 맡기는 윤리적, 경제적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시장은 토지 임료 하나로 지금 우리가 지불하고 살아왔던 많은 값이 소멸하여 버립니다. 몸값이 사라지고, 땅값이 사라져서 지금까지 이 값이 일으킨 빚이 사라집니다. 구조적 실업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가격이 일으켜 온 시장 불균형이 생기지 않아서 경제불황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현실 경제에서 이론적으로 더 낳은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그리고 구조적(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최고 최선의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온전한 자유를 모두 보장하면, 세상은 획기적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희년법의 복음적 성취입니다. 이것이 성숙하면 영구 희년, 곧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이 완성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알려주는 "희년 천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한 30회 희년이 제시된 포도원 비유로 현실에 적용되면 이것은 희년법이 말하는 약 7개 정도에서 값이 소멸합니다. 희년은 매년 7월 10일 속하는 날(속죄일) 선포되기 때문에 죄(원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값 치르기로 소멸합니다. 희년에는 빚이 소멸합니다. 사회에서 채권과 채무만 발생시킨 몸값과 땅값이 사라집니다. 포도원 비유에서는 세금이 없고 실업이 없습니다. 물가도 오르지 않고 경제불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희년법의 복음적 성취인 포도원 경제법은 죗값, 빚값, 몸값, 땅값, 세금, 실업, 물가고, 경제불황 등 약 7~8개의 값이 완전소멸하거나 지금의 절반 이하로 떨어져 버립니다. 이처럼 희년법과 포도원 비유의 현실적 적용은 우리 경제의 천지개벽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변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도원을 소유하지 않고 제 때에 세를 내면 이처럼 엄청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포도원에 대하여 소유만 고집하거나, 포도원 임대제를 부정적으로 보고 세(貰)를 내기 싫어하면 우리는 포도원 비유처럼 큰 실책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천국 포도원을 빼앗겨 버릴 수가 있습니다.
희년법과 포도원 천국 경제법의 종합
구약의 희년법은 생산된 실물은 자유 소유와 거래(레 25:3), 미래에 생산될 미래물은 기한과 무르기 조건부로 소유(사용)와 거래(레 25:15,16,24), 미래에 영구로 생산될 영구물은 영원히 소유와 거래를 금지했습니다(레 25:23). 이것이 구약 희년법이 정한 시장의 3가지 유형입니다. 여기에 경제구원과 십자가의 구원원리를 설명하여 주는 무르기시장(레 25:23~28)을 포함하면 4가지 유형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두고 물질이 가진 물리적 성질에 따른 시장원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로의 신호등처럼 지켰어야 할 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희년번은 삼색 신호등과 같은 신호 체계를 지켜야 하고, 희년을 맞기 위해서는 무르기라는 반복적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희년법도 구약의 제사법처럼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 가지 농업 비유로 구약의 희년법이 가진 약점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이 노동시장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대로 임금제도를, 토지시장은 경작자의 비유대로 세(토지임료)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씨 뿌리는(또는 자라는) 비유에서 토지가 스스로 생산한 토지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49년,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은, 무르기 절차도 필요 없이 영구 희년이 돌아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세 가지 농업 비유로 가르쳐 주는 “천국 경제법”입니다.
그러므로 희년법이 소유와 거래를 구분하여 준, 현재 실물, 미래물, 영구물(영구 미래물)이 가진 물질의 고유 성질과 포도원 비유가 가르쳐 준 시장 노동임금과 시장 토지임료(貰)는 시장문제를 뿌리에서 해결하는 제도입니다. 이론상으로 세금도 필요 없는 사유재산제이며, 구조상으로 규제가 필요가 없는 자유시장경제입니다.
주) "웨하아레쯔 로 티마케르 레짜미투드(레 25:23a)의 증명(레위기 시장 3유형과 땅값 헛값의 과학적 이해)", 통합연구, (사)기독학술교육동역회(현,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01.
포도원 비유와 하나님 나라의 보충 이해
기업 경영에서 재무활동을 기록하는 대차대조표는 복식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회사가 가진 자산 총계가 100억이면, 대차대조표는 200억원으로 기록합니다. 차변(왼쪽)은 실제로 우리의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자산을 100억원이라고 기록하고, 대변(오른쪽)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채와 자본을 100억원이라고 기록하여 대차 균형을 맞춥니다. 그래서 대차대조표는 전문 용어로 말하면 대변은 자본의 조달 원천을 나타내고, 차변은 그 조달된 자본의 운용 상태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이 복식 회계가 가진 기본원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식 회계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은 복식 구조가 왜 그렇게 하는지 잘 몰라서 무척 어렵게 생각합니다. 한 가지 가격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기재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여 혼돈에 빠집니다. 그것은 회계를 우리가 가계부처럼 단식 구조로만 생각하다가 복식 구조를 처음 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어렵게 생각하는 복식 회계를 왜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식으로 하면 기업 규모가 큰 회사는 방대한 자산 전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가진 자산 항목 하나 하나의 분포가 어떻게 되는지, 자산은 어디서 어떻게 조달되었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계산과 검증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복식 구조로 하면 처음은 어렵지만, 알고 나면 기업의 재정규모가 한눈에 들어오고,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복식은 기록의 오류를 구조 자체에서 알려줍니다. 이것을 복식 회계의 자동검증기능이라고 합니다. 가계부는 단식 회계도 가능하지만, 규모가 큰 기업은 단식 회계로 복잡한 재무상태와 경영활동을 제대로 나타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복잡한 기업의 재무활동을 복식으로 나타내면 전체의 이해가 단식보다 더 단순해지고 쉬워집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를 설명하는 비유는 회계가 말하는 복식 구조와 원리가 비슷합니다. 대상은 현재와 미래, 구상과 추상, 지상과 천상의 세계를, 내용은 공개와 은닉, 정의와 자비를 복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복식의 비유가 말하는 천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도 복식의 형태로 중첩(overlap)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회계의 복식 구조가 가진 원리를 모르면 기업의 재무구조를 파악하지 못하듯이 비유가 말하는 복음과 천국을 단식 구조로만 보면 그 내용과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천국과 복음의 세계가 영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이 복식 구조로 된 중첩적 내용으로 보면 이해가 한결 쉬어집니다. 이러한 복식 구조로 된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말미에 참고로 올려놓았습니다.
필자가 말하는 “희년 천국” 또는 “경제 천국”은
구약시대의 희년법이 신약시대에서 성취되어 실현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경제는 구조적으로 최적의 상태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시장 불균형을 일으키는 각종 요인이 사라져서 균형에 접근하는 상태입니다. 천국 경제법은 구약 희년법에서 희년이 되면, 죄, 빚, 몸값, 땅값이 모두 소멸하고 세금과 실업 등이 사라지듯이 신약에서도 이 불균형 가격 일으킨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주식, 선물, 가상자산 등이 일으키는 시장문제는 남아 있음). 구약 희년법은 무르기를 하거나 희년이 도래해야 이런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만, 천국 경제법은 그런 절차나 기간과 관계없이 항상 유지되는 영구 희년을 말합니다.
경제 범위로는 개별적 국가일 수도 있고, 세계가 하나의 정부로 통합되는 세계 정부일 수도 있습니다. 또 국가가 아닌 지역 공동체나 경제 공동체도 가능합니다. 다만, 지역 공동체, 단일 개별국가, 세계 정부 구분 없이 자립 경제가 가능한 주권, 영토, 국민이라는 3요소가 갖춘 공동체를 말합니다. 여기서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을 때를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필자가 말하는 희년 천국은 현실적인 경제 부분만을 말하므로 성경이 말하는 영적이고 포괄적이며, 다양한 하나님의 나라와는 개념과 범위가 다른 점도 있습니다.
희년법과 천국 경제법은 구성원들이 부정하면 천국 경제가 사람의 자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희년법과 천국 경제법은 도로교통법처럼 현실에서 실무적 준행이 필요한 제도입니다. 도로교통법을 어기면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희년법이나 천국 경제법을 어기면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문제는 하나님이 공짜로 속량하여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빚 문제는 사해주지 않으십니다. 주기도에서 보듯이 우리가 진 빚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눅 11:4). 희년법과 천국 경제법이 말하는 경제구원은 하나님이 공짜로 이루어 주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해결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공짜로 건넜어도 약속의 땅은 희생을 치러야 들어가는 것과 맥락이 같습니다. 희년은 현실적, 실무적 문제이므로 구성원 전체 또는 적어도 과반수 이상 천국 경제법을 준행할 의사가 있어야 그 경제법이 시행되고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추가 설명이 필요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구속사를 경제적으로만 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 ) 안은 성경 구속사에서 사람이 주인의 땅에 대한 불순종 또는 의지의 빈약함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생활공동체의 필수 요소인 땅에 대한 영성과 지성이 회복될 때까지 생활훈련을 받는 기간을 뜻합니다.
<구약> 애굽의 예속 =>/ ①홍해 세례 =>// ②광야공동체 => (땅이 없는 40년) =>/// ③약속의 땅
<신약> 세상의 예속 =>/ ①세례 =>// ②신앙공동체 => (땅이 없는 약 2,000년) =>/// ③약속의 나라
<구약> 구약 경제의 예속 =>/ ①레위기 죗값 속량 =>// ②몸값 속량 => (약 3,500년) =>/// ③ 레위기 땅값 속량
<신약> 신약 경제의 예속 =>/ ①십자가의 죄 속량 =>// ②노동문제 해결 => (약 2,000년) =>/// ③토지문제 해결
<씨와 땅의 구속사> 갈대아 우르 =>/ ①아브라함과 횃불언약(씨와 땅) =>// ②약속의 땅(가나안)=> (약 3,420년) =>/// ③약속의 나라
* 구속사로 본 사람들의 생활은, ①은 순종, ②는 순종과 불순종의 반복, ③은 강한 집단적 불순종 상태를 보임(/, //, ///은 불순종의 강도 표시)
** 구속사에서 희년법 순종자는 ①~② 기간에 횃불언약, 요셉총리, 갈렙과 여호수아, ②이후는 보아스, 나봇, 선지자들이 구속사에 쓰임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족보(씨)와 기업(땅)을 이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후 26년 7월 10일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한 희년이 ③영구 희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홍해를 건너도 약속의 땅을 거부하면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며, 세례를 받아도 희년(은혜의 해, 수용의 해, 눅 4:19)은 거부하면 희년이 올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공동체에서 세례를 받았어도 구성원 전체가 천국 경제법을 거부하면, 구성원의 자력으로 경제 천국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경제 실무에서 포도원 경작자가 포도원을 경작하여 수익을 내면, 주인에게 세를 내어야 포도원을 계속하여 경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작자가 포도원에서 세를 내지 않고, 그 포도원을 소유하려고 들면, 포도원 주인은 그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줍니다. 지극히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사람이 소유하게 되면, 경제는 시장에서 땅값이 일으키는 가격 불균형과 부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물리적 현상에서 희년은 불가능합니다.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는 이런 경제적 실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년법과 천국 경제법의 실현과 실현 불가능은 사람들의 순종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은 필자의 이런 말에 크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포도원 비유와 세(貰), 지대시장제(토지임대제)의 오해
포도원 비유에서 노동시장은 임금 하나로 노동문제가 해결됩니다. 토지시장은 제 때에 내는 토지임료(貰)가 하나로 경제문제를 모두 해결합니다. 포도원 임대제도는 이론적으로, 구조적으로 완전한 사유재산제이고, 자유시장경제 사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면 대체로 오해를 많이 합니다. 필자는 토지시장에서 전면적인 토지 임대제도의 시행을 “지대시장제”라고 부릅니다. 20년 전에는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를 따라 “땅세(貰)제도”라고 하다가 지대시장제로 바꾸어 부릅니다.
지대시장제는 토지의 사유제보다 낫고, 국가 배급제인 토지 국유제보다는 월등하게 낫습니다. 지대시장제에 가장 근접한 제도가 조지스트들이 제창하는 토지수익 전액을 세금으로 징수하는 토지가치세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방법론에서 시장원리가 아닌 정부원리를 앞세웁니다.
그래서 조지스트들은 방법론에서 사유재산 몰수효과를 내는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조지스트들은 공시지가와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올리는 보유세 주창자들입니다. 그런데 땅값에 매기는 세금은 소득 아닌 자본(재산)에 세금을 매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별 토지별 토지수익은 같아도 땅값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조세의 형평성을 크게 해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는 희년 운동과 부동산 개혁 방안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일으켜서, 희년법과 포도원 천국 경제법을 실현하는데 오히려 방해 요소로 작용해 왔습니다.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사회적, 집단적 조세저항을 말합니다.
실물경제에서 토지양도차익은 자본가격의 커짐일 뿐 소득이 아닌 허수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양도소득세는 소득이 아닌 자본에 세금을 매기고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도소득세는 사유재산에 대한 직접적인 몰수효과를 가집니다. 여기에 양도소득세는 시장동결을 초래하여 시장거래를 차단하는 아주 나쁜 악세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에서 토지를 임대하여 세를 내라고 하는데, 우리 헌법은 농지의 소작(임대)제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1가구 1주택, 토지거래 허가제 등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시장경제가 아니고 강제성을 가진 정부원리이므로, 공산주의 배급제와 다를 바가 없는 부동산제도입니다. 지금(2023년 7월 기준) 전국에서 미분양주택이 7만 가구가 넘어가고, 농어촌 빈집도 많은데 1가 1주택 제도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1가구 1주택 제도(1주택 우대=무세, 다주택 징벌=중과세)는 그 내용을 파고 들면, 임대사업자가 아니면 임대도 못하도록 하는 제도와 같아서 무지하고 불합리한 제도입니다.
<양도소득세의 자본과세와 몰수효과> : 100평의 땅(또는 30평 아파트)을 팔아 세금을 내고 나면 같은 100평의 땅(또는 30평의 아파트)를 다시 구입할 수 없는 현상을 말한다. 땅과 집을 팔 때 내는 양도소득세는 자본과세다. 양도소득세는 세금을 소득에 징수하지 않고, 자본(원물)에 세금을 거두어서 납부하는 세금만큼 자본(원물)이 줄어든다. 이것을 자본의 잠식이라고 한다. 소득에 세금을 징수하는 "조세의 대원칙"을 제도가 스스로 위반한 악세에 해당한다.
<시장 동결효과> : 양도소득세는 세금이 원금(원물)에 대한 직접 징수의 성격을 가져서 부동산 거래가 차단, 위축되는 경제 현상을 말한다. 상품매매차익에 매기는 세금은 실물수익에서 내는 세금이지만, 양도소득세는 원금 자체에 거두는 세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본차익과 상품차익을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자들도 대부분 잘 모르고 있다. 알아도 거래가 잘 안되는 수용 공급의 현상만 알고, 세금이 원금(원물) 징수의 성격을 가진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대시장제는 세계 각국에서 시행하는 토지제도와 비교를 통해서도 그 우수성이 입증됩니다. 토지제도는 이념형이나 방법론을 따라 세분하면, ①실패한 사회주의적 토지 국유화, ②규제가 없으면 투기가 일어나는 중국·싱가폴식, ③부분적 임대제도(일본의 借地·借家法과 미국 맨해튼 베트리 파그시티와 하와이 전역의 사유토지의 임대), ④헨리 조지식 조세제도, ⑤이스라엘의 키부츠와 같은 공동·조합식 소유,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⑥토지 사유제 등이 있으나 이런 것과 비교해도 ⑦지대시장제는 가장 우수합니다. ①~⑥은 시장에서 규제가 필요하지만, 지대시장제는 제도상 100% 사유재산제이고, 이론상 완전한 시장경제로 세금과 규제가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지대시장제는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생소하다.”, “하나의 이상론이다.”, “공산주의도 이론은 좋으나 현실성이 없어서 실패했다.”, “지대(땅貰) 하나로 나라 재정이 돌아가는가?”, “토지임료는 누가 어떻게 매기나?” 등의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런데 지대 하나로 재정이 부족하면, 별도의 세금을 징수하면 되며, 이것으로 지대시장제를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재정 규모의 염려는 지대시장제가 되면 시장 불균형을 일으키는 7개 정도의 가격이 소멸하여, 시장기능이 회복되기 때문에, 재정 지출은 대폭 줄어들고, 지대 수입은 지금보다 크게 늘어납니다.
토지의 분배, 지대 징수, 납부 방식 등은 객관적 중개기관인 <토지거래소>를 통하여 필요한 조건을 붙인 경매로 실시합니다. 세계 각국에서도 임대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다만, 각국의 임대제도가 토지가치에 대한 인식이 매우 둔하여 땅을 공짜나 다름이 없는 저가격 임대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토지임료가 저가격이면, 집값에 땅값 프리미엄이 붙어서 토지사유제와 같아져 버립니다. 토지가치를 도무지 모르는 중국 부동산시장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토지임료를 조건부 경매 형식으로 값을 매기면, 이 문제는 시장과 가격이 모두 해결하여 줍니다.
주) 각국의 토지제도와 임대제도의 비교 연구는 필자의 책,
『반값주택의 이론과 정책(도서출판 인간사랑, 2007)』과 『토지전세주택(수원대학교, 국토미래연구소, 2009)을 참고할 것.
포도원 세(貰)에 대한 종교적(신학적, 신앙적, 영적) 오해
필자는 포도원 세(貰)의 납부와 희년법 순종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도 약속의 땅을 거부하면 들어갈 수가 없듯이, 희년법은 사람들이 거부하면 시행하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포도원 비유가 가르쳐 준 “천국 경제법은 사람들이 거부하면 인간 자력으로는 그 천국을 이룰 수는 없다”라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필자의 희년법이나 천국 경제법에 대한 사전 이해가 없으면, 오해를 합니다. 어떤 분은 “희년법이 일리는 있지만, 그 시행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몰입한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희년복음은 자기복음이며, 남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직접 들은 바는 없지만, 희년 운동을 하고 있는 조지스트들에게 간혹 “신율법주의자”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자가 말하는 희년 천국 또는 천국 경제법은 어디까지나 현실 경제적 측면에 국한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를 건너게 해 주시지만, 약속의 땅은 공짜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전체가 합심하여 가나안 땅을 진격해 들어가야 하는데, 성인 남자 60만명 중 2명을 제외하고 백성들 모두가 이를 거부합니다(민 14:38). 그런데 어떻게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서 구원을 베풉니다. 목표는 우상숭배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새 땅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족장들은 믿음이 좋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정착하지 못하고, 기근을 대비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흉년이 들면, 경제를 알고 땅을 아는 요셉에게 구원을 받아야 살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 등 속량의 경제법을 지키면, 현실에서 복을 받고, 족보에도 이름이 오릅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면, 이 법이 주는 복을 받지를 못할 뿐 아니라 족보에도 이름이 끊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원은 죽음과 관련된 죄는 공짜로 사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삶(생활)과 관련되는 빚은 ‘우리가 우리에게 값을 치러서’ 사하라고 하십니다. 경제문제의 해결책인 희년과 천국 경제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속사의 섭리이며, 세상 구원의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어도 차를 몰면 도로교통법을 지켜야 합니다. 도로교통법 준수는 우리 죄를 사하는 영혼구원과는 별개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시대에도 도로교통법의 준수는 율법이 아니고 생활입니다. 율법주의는 도로교통법을 지키는 것을 영혼 구원의 전제 조건으로 생각하거나 바리새인들처럼 그 법을 지키며 자기 의를 나타내는 잘못된 신앙관을 말합니다.
필자가 말하는 희년 천국이나 천국 경제법의 준수도 이와 같은 생활 규례의 준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희년법과 천국 경제법의 준수는 죄를 사하거나 영혼구원을 받기 위한 수단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과 복음, 믿음과 행위를 엄격하게 구분하는데 쓰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신득의(이신칭의) 기초를 세우고 신앙공동체를 키우고 지켰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할례를 받지 못하게 합니다(갈 2:3). 그러나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받도록 했습니다(행 16:2,3).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받으면 율법주의에 속하지만, 이미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할례와 구원은 관련이 없다는 뜻입니다. 디모데가 할례를 받은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시대에도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지켜서 복을 받는 것이 복음적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율법이나 행위에 속한다면서 그 준수를 회피, 거부하면, 이런 믿음이야말로 편협한 신앙관이며, 신율법주의 속한다고 할 것입니다.
필자는 토지 소유제도가 나쁘고 토지임대제, 곧 지대시장제로 해야, 풀지 못하는 부동산 문제를 비로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필자도 형편이 되면 땅을 사고, 집도 사고, 소유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셋방살이 하면서 집은 사지 않고, 고향에 있는 토지(임야)부터 무르기를 해놓은 땅 몇평이 있습니다(첨부된 사진의 기도처 주위). 이 토지를 희년법과 포도원 비유대로만 사용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자손 대대로 상속할 수 있게 해두고 싶습니다. 희년법은 후손이 끊어질 위기이면 계대결혼이나 양자를 들여서라도 기업을 이어가게 합니다. 희년법은 후손 중에 탕자가 나와도 땅은 팔아먹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농지법, 상속법, 등기법 등은 이런 제도를 시행하지 못하도록 각종 규제로 얽어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고심하고 있습니다. 신앙공동체에 맡겨서(또는 기증으로) 희년법대로 사용하며, 희년법을 세상에 알리기를 바라지만, 희년법의 취지와 토지 사용방식을 아는 공동체가 없을 것 같습니다. 농지는 농민이 아니면 등기도 하지 못하므로 기증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토지 소유자 개개인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필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독자들이 필자가 말하는 천국 경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세상의 종말에 있을 심판의 때를 연상하거나 직접 관련짓기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로 보입니다. 아니면 성경은 정신계만 다룬 책으로 보고, 물질계는 악하다고 회피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종교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고, 한계입니다.
포도원 비유의 현실적 적용을 말하는 희년 천국 또는 경제 천국은 재림이나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지켜서 누릴 수 있는 경제적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년 천국은 구성원이 함께 지켜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희년은 개인구원처럼 누가 혼자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성경 희년법이 말하는 경제구원이고, 사회구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인도하고 구원하시는 성경 구속사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도 또 필요한 말이 있습니다. 도로교통법의 준수 여부는 운전자의 영적인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도로교통법의 준수 여부는 당면한 나의 안전과 사회 전체의 교통문제와는 직결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통신호등을 어기며 살고, 도로교통법을 계속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생각과 행동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필자는 희년법의 준수 여부가 구원의 판단 기준은 아니지만, 이를 계속 어기면 이래도 정상적 그리스도인이 맞을지, 아닐지는 다시 생각해 볼 주제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 주제에 대한 답은 사람이 하지는 못하며, 토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최종적인 결정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맡겨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어도 도로교통법과 희년법(천국 경제법)을 계속 어기는 사람이 맞게 되는 재림과 종말의 판단은 다시 오실 예수님이 직접 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때를 기다리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희년법은 심판의 법이 아니고, 죽은 자에게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희년법은 계대결혼법과 같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생존과 자유를 보장하고, 복을 주기 위한 법입니다(마 22:32).
건축자의 버린 돌과 모퉁이의 머릿돌, 그리고 경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마 21:42, 막 12:10, 눅 20:17)
건축자의 버린 돌과 모퉁이의 머릿돌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를 마친 다음 그 자리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시편 118:22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사도행전 4:11과 베드로전서 2:7에도 나옵니다. 모퉁이 돌은 건축물을 지을 때 모퉁이 놓아서 건물의 위치와 중심을 잡아주는 돌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건물에 놓은 주춧돌과 비슷한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건축자들은 유대 종교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버린 돌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모함을 받아서 많은 고난을 받았고, 끝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여 우리의 구세주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머릿돌이며, 머릿돌이 하는 역할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죽어서나 부활하고, 구세주가 된 사건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된 것처럼 기이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이방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합니다(마 21:43).
그런데 건축자의 버린 돌과 모퉁이의 머릿돌은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에서 직접 비교하여 볼 수도 있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의 역사에는 종교 지도자들이 버린 구약의 희년법이 들어있습니다. 건축물의 머릿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비유로 가르쳐 준 포도원 천국 경제법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머릿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 사람은 깨어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경제법인 희년법은 이 법을 버린 바알 제도나 세속 경제법 위에 떨어지면 바알 경제법은 건축자가 가진 돌로 인하여 가루처럼 부서질 것입니다. 곧 땅과 희년법, 포도원 비유와 천국 경제법은 이 법이 알려주는 시장원리를 모르는 지금의 경제(관련)학과 제도는 부서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세속적 경제이론과 제도는 전면적 수정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하여 그분을 위한다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빌 3:8). 희년법과 예수 그리스도가 비유로 가르쳐 준 포도원 천국 경제법은 탁월합니다. 그러나 바알 숭배가 초래한 토지 사유제 옹호론과 유물론 공산주의 신봉자들이 만든 토지 국유화 사상과 이론은 성경 경제법에 비교하면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필자는 생산(이자, 배당, 수익) 없이(또는 별개로) 자본 원금이 스스로 커지는 값은 "시장의 가격 요물(妖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요물은 거름으로도 쓰지 못하는 허구물이라서 급격히 커질 때는 일확천금의 환상으로 사람들의 눈을 뒤집어놓고 공황과 위기를 일으킵니다. 그러니 배설물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토지가치를 노동가치라고 하는 막스주의 철학과 경제론, 땅과 상품, 땅과 자본을 기초에서 식별하지 않는 못하는 기존의 세계관은 희년법으로 부서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세계관이 주도한 편중, 편협한 해석과 학문은 모두 희년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비유로 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희년법과 천국 경제를 모르는 세계관이 입각한 기존의 연구나 세상 지식은 새로 써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 건축자의 버린 돌과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바알 토지제도를 추종하는 세속 경제법과 예수 그리스도가 비유로 가르쳐 준 천국 경제법의 상관관계(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a) 건축자의 버린 돌 => (x)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난과 희생
(A) 건축물의 머릿돌 => (X)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
(b) 건축자의 버린 경제(바알과 인본 경제) => (y) 계명과 희년법의 불순종
(B) 경제의 머릿돌(예수 그리스도의 경제 교훈) => (Y) 희년법과 포도원 비유의 경제 복음적 실현(영구 희년의 성취)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를 들은 종교 지도자들(대제자장과 바리새인)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알고 잡고자 하고 있습니다(마 21:46). 다만, 무리가 예수를 선지자를 알고 있어서 행동에 옮기지는 못하고 잡을 모의에 들어갑니다. 이날은 고난 주간 화요일이었으며, 이로부터 3일 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모함으로 십자가 형을 받게 됩니다.
<참고 1>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
**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존의 연구물들을 보고, 필자가 그 내용을 발췌하거나 종합하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영역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Βασιλεία του Θεου 바실레이아 투 테우), 천국, 하늘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서에 근거하여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찾을 수 있는 신학적 개념이다. 앞으로 다가올, 그리고 현재 확장되어가는 미래적이고 현재적인 신의 통치를 뜻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보이는(유형체) 나라와 보이지 않는(무형체) 복식의 세계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씨가 자라는 생명체처럼 시간 흐름을 따라 다양성과 역동성을 가지고 성장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유형체와 무형체의 복식의 형체를 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게 임한다고 하여 이 땅에서 이루어질 나라를 부정합니다. 또 한 쪽은 이 땅에서 이루어질 현실적 나라와 영적인 나라가 별개라고 분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유형·무형을 제외하면 내면에는 모두 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나라는 내면적 조건만, 현실적 나라는 영적 조건에 현실적 조건까지 갖추어야 성립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밝힌 나라 중 천국(마 3:2)은 현실적 나라이며, 하나님의 나라(막 1:15)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분류
신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세 가지 종류의 왕국(나라)이 등장합니다. 이 세 왕국은 서로 비슷해 보이고, 또 사람들에 따라서 같은 나라라고 인식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린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갑돌이는 사람이지만, 모든 사람이 갑돌이는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적어도 세 개의 나라가 서로 중복(overlap)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 영적인 나라를 말하며, 가장 넓은 개념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왕국이며, 하나님이 다스리지만,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실체로 보이는 통치자가 다스리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요 3:3).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2)와 (3)을 분리한 (4)협의의 영적인 나라는 물론이고, 모두를 포함하는 (5)광의의 나라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입니다.
(2) 천국(kingdom of heaven) : 마태복음 20:1에서 말하는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다스리는 실제적인 나라를 말합니다. 주기도에서 이 땅에 이루어지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관념적으로 “천국”을 피상적인 나라로 생각하지만, 마태복음에서 제시하고 있는 천국은 구약 전체를 통하여 예언된, 왕이 다스리는 실제적인 지상의 왕국입니다. 필자가 말하는 경제 천국은 (2)에 가장 근접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유무와는 관계 없이, 초림 이후부터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나라입니다.
(3) 하늘나라(heavenly kingdom) : 하늘 나라는 성도가 죽어서 가는 사후 세계를 말합니다. 이 나라는 예수님이 강도에게 말한 낙원(눅 23:43)이 이에 해당합니다. 사도 바울도 “낙원(고후 12:4)”이라고 했고, 구체적으로는 디모데후서 4:18의 “하늘나라”(heavenly kingdom)를 말하고 있습니다. 천당 또는 하늘궁을 말합니다.
<참고 2> - 토지제도와 토지임대제 참고 문헌(저자명, 이대환) -
<도서> 반값주택의 이론과 정책, 도서출판 인간사랑, 2007.
토지전세주택, 수원대학교 극토미래연구소, 2009.
한가위 희년나라 1(희년과 포도원 천국), 요벨랜드, 2021.
<논문> “토지시장의 특성과 운영방안”, 토지연구, 토지개발공사, 1993.
“지가구조와 시장모순”, 토지연구, 토지개발공사, 1994.
“성경적 토지법과 땅세경제”, 통합연구, 기독학술교육동역회, 1995.
“웨하아레쯔 로 티마케르 레짜미투드(레 25:23a)의 증명(레위기 시장 3유형과 땅값 헛값의 과학적 이해)”, 통합연구, (사)기독학술교육동역회(현,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01.
”성경적 경제법과 헨리 조지 이론의 비교, 미게재 논문, 2002.
첫댓글 긴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많은 내용을 말씀하고 계셔서 코멘트가 좀 힘든데요
가장 먼저 나온 포도원 품꾼에 대해서
- 나중에 온 사람에게 같은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은혜' 라고 하면 이해가 되나
- 경제적으로 공평 하다거나, 경제적인 해결책이라고 하는 부분은 이해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임금을 지급하고 싶은 경영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영적으로 해석하면 동의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경제적으로 해석하려면 동의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댓글 고마워요. 품꾼 비유는 영적으로 보아도 맞고, 경제적으로 구분한 것 의미가 있어요.
정상 노동자에게 정상급여를 주었고, 실업자에게는 생활비로 같은 금액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좀 쉬어요
그러나 정상노동자는 주인이 자기 것으로 실업자에게 생활비를 주는 것에도 불평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상노동자가 토지가치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해서 그래요.
늦게 온 사람에게 준 1데나리온은 주인의 토지, 곧 땅이 생산한 토지가치를 내어 준 것,
이것은 하나님과 땅이 인간에게 베푼 선물이므로 은혜다.
시장경제는 이 토지가치를 지대로 내는 것은 시장원리가 되며, 경제의 근본 해결책도 돼요.
아직, 글의 내용에 대한 전체적 이해가 필요해 보여요.
땅과 사람이 있는 생산조직에서
땅과 사람이 함께 생산활동을 하면
사람이 생산에 기여한 몫은 노동가치가 되고,
땅이 생산에 기여한 것은 토지가치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 노동가치는" 네 것"이라고 하고(마 20:13),
토지가치는 "내 것"이라고 합니다(마 20:14).
주인은 세금도 거두지 않고 "내 것"으로 실업자 구제도 하고, 조직의 공경비로 사용합니다.
이런 경제 모델이 100% 사유재산제, 100% 자유시장경제 구조입니다. 세금도 필요 없이...
성경 희년법은 알고 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노동가치를 임금으로 거래하면, 자본가격인 몸값이 소멸하고,
토지가치를 임료(地代)로 거래하면, 자본가격인 땅값이 소멸하여
지대 하나로 시장은 세금도 필요 없이 공경비도 저절로 해결됩니다
실물 아닌 땅값이 일으킨 부채가 소멸하며,
제값보다 두 배로 커져 있는 땅값의 소유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인플레이션이 멈추고, 땅값 불균형 가격이 일으킨 구조적 실업이 해결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포도원 경작자의 비유가 제 때에 貰를 내는 자에게 포도원을 맡기는 지대시장제가 됩니다.
희년은 구조적 또는 이론상으로,
죗값(기독인), 빚값, 몸값, 땅값, 세금, 실업, 물가고, 경제불황 등 약 7~8개의 값이 사라지거나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땅지기로 지음 받은 인간은(창 1:28)
선악과 욕심이래(창 2:6) 지금까지
토지가치와 토지탐욕이 자꾸자꾸 발동하기 때문에
포도원 품꾼처럼 제값을 다 받고도 토지가치에 더 욕심을 부립니다(마 20:10~12).
포도원 경작자는 자기 땅도 아니면서 소유하고 싶고 貰를 내기 싫어서
세를 받으로 오면 오는 즉시 때리고 죽이고, 심지어 상속자까지 없애버리고
포도원을 자기 이름으로 등기를 해 놓습니다(마 34~38).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제 때에 세를 내는 다른 사람에게 포도원을 주게 됩니다.
이것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와 경작자의 비유가 가르쳐 주는 희년 천국의 경제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