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47 ㅡ 똘이를 느끼는 순간 (사소)
말티즈 똘이는 아이들이 각기 중학생과 초등학생 때 지네들끼리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회의를 해서 데려온 아이였다. 한창 바쁠 때라 캐어해 주는 게 힘들 것 같아서 반대를 했지만, 즈이 둘이 인터넷 에서 똘이를 발견하고는 목욕도 시키고 산책도 시키겠노라고 키우게 해달라고, 철석같이 굳은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셋이서 서울대역 입구까지 가서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똘이를 데려오고는, 두 달이 채 안돼서 똘이는 나의 차지가 되었다. 규칙적으로 캐어를 하기엔 아직 애들은 어렸기에 내 손길이 닿는 셋째가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똘이는 누구 집처럼 서열 1위로 자라났다. 어릴 때부터 교육으로 버릇을 잡아줘야 했지만, 그럴 때마다 딸아이가 안아버려서 배변이나 목욕 습관을 잡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도 열댓 번씩 엄마의 뽀뽀를 받는 못생겨도 내게는 너무 이쁜 딸, 딸에게 나는 번번이 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귄이 넘쳐나는 딸은 내게 군림하였으니 자연스레 우리 집은 역순으로 서열이 생겨버렸었다. 똘이는 아들이 공부를 할 때는 늘 아들 무릎에 앉아 정서적 교감을 했고, 딸아이에게는 명랑하게 성질 포악한 애정 인형이 되었다. 그러나 똘이의 눈망울은 어찌나 크고 동그랗던지 한 마리 노루 같았다. 털 깎기를 너무 싫어해서, 더울 때를 대비해 한 번 미용을 할 때는 완전 삭발을 시켰었다. 그럴 때면 드러나는 똘이의 몸매는 조그마해도 다리가 길고 늘씬해서 거실을 살폿살폿 걸어다닐 때면 영락없는 작은 사슴한마리였고, 나는 여러 번 그 자태를 감탄하곤 했다.
문제는 똘이는 자기가 사자인 줄 알고 방문자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으르렁대는 것이었다. 집에서 과외를 할 때 학생들이 방문하면 똘이가 기세가 너무 등등해서 누구든 짖고 물어뜯으려 해서 묶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내가 바빠져서 새벽에나 겨우 퇴근을 하고 아이들도 점점 자라면서 학교고 학원이고 다니면서 많은 시간 놀아주지 못하다 보니 똘이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어느날 개를 너무 사랑해서 수의사가 꿈이라는 제자에게 똘이를 보여줬더니 똘이를 자기가 키우겠다고 했다. 사랑을 받던 아이라 많이 아쉬웠지만 똘이의 행복을 위해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똘이는 가족이 많은 신나연이네 집에 가서 '신 똘'이가 되었고 특등으로 사랑받고 대우 받았다. 나연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똘이를 애지 중지했다. 가끔 나연이는 똘이 사진이랑 동영상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똘이 전용 인스타 계정도 생겼다. 똘이는 나연이 집에서 늘 나연이 아빠 배 위에서 잠들고, 가족들은 한시도 똘이를 혼자 두지 않았다. 똘이로 인해 여행도 거의 안 갈 정도이고 어딜 가더라도 케이지에 꼭 데리고 다니는 것 같았으니, 우리 집에서 받은 사랑 곱절을 받고 있어서 안심이 됐다. 제자 나연이는 한 두 해에 한 번씩 부탁을 하면 똘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만나게 해줬다.
똘이는 입양 보낸 지 8년, 똘이가 12살이 되어가고 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약간의 치매 증상과 청력과 시력이 떨어져 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똘이를 어서 봐야겠어서 다시 부탁을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똘이. 사람으로 치면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나이인데 짖는 것은 여전해서 혈기 왕성한 장년같다. 차에 타자마자 캉캉! 소리만으로도 반가움이 밀려들었고 똘이를 본 순간 그동안 봉인됐던 그리움이 철장을 부수고 달려 나가는 듯했다. 기를 때 똘이는 사과를 아주 좋아했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사과를 내는 기색만 보여도 똘이는 집안 어디서든지 뛰어와서 좋아서 팔딱 팔딱 뛰어오르고 캥캥 짓고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어 댔었다.
하지만 짖는 것만 그랬지 이제 똘이는 너무 늙었다. 제자와 함께 우리 집에 도착하자 집안을 연신 빙빙 돌더니 이내 지쳤는지 엎드려서 꼼작도 않는다. 사과를 아주 잘게 저며 코앞에 디밀어줬는데도 눈을 꿈벅꿈벅하더니 졸음이 몰려오나 보다. 나도 엎드려 누워서 똘이랑 눈을 맞췄다. 똘이는 넓적다리를 만져주는 걸 좋아했다. 나도 만지는 걸 좋아했다. 털 빗기도 싫어해서 여전히 동그랗게 말린 털, 똘이의 뒷다리, 엉덩이, 만져지는 두개골. 아! 촉감으로 느끼는 똘이. 똘이 냄세, 똘이와 눈을 맞추고 숨소리를 느끼자 나는 단숨에 8년의 세월을 마구 거슬러 올라갔다. 똘이를 기르던 그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똘이는 가만히 몸을 맡긴다. 똘이도 그 순간 나인줄 아는거다. 잠잠히 나를 쳐다본다. 참 이상하다. 헤어진지 오래됐는데 똘이는 이렇게 내 감각의 모든 것에 그토록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였지만, 모르겠다 사람도 이러할지....
연휴가 끝나가는 오후, 대학원에 다니는 제자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던지라 다시 제자 집으로 똘이를 픽업을 해주고 돌아왔다. 똘이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 생생한데 소환되는 기억으로도 똘이가 마치 우리 집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재회도 이별도 쉽지는 않구나! 며칠은 휘발되지 못하는 똘이에 대한 그리움을 순간순간 느낄 것 같다.
첫댓글 똘이라는 이름이 친밀감을 더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