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변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쉬~이~ 물 나오는 소리다.
그래서 변기 위 뚜껑을 열고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호스에서 물이 나오진 않는다.
참으로 이상하다.
분명히 소리는 나는데...
그래서 이번에는 물을 잠그고 오래도록 관찰했다.
이젠 쉬~이~ 소리는 나지 않는다.
그런데 물통의 물이 점점 줄어든다.
화장실 바닥이 아니라 변기 안으로 물이 샌다.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조금씩.
오랜 시간 관찰 결과 결론이 났다.
물이 미세하게 빠져 떠 있던 부레(?)가 기울고 그래서 물이 미세하게 나오며 소리가 나는 것이었구나.
으~ 이번 달 수도세 많이 나오겠다. 흑흑 ㅜㅜ
그래서 얼른 관리실로 SOS를 한다.
그랬더니 기사님이 달려오시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파트가 10년이 넘어가니 그래요. 아마도 고무바킹 부분이 마모돼서 그래요. 근래에 여러 집들이 그러네요. 요 앞에 타일 집 가서 변기 부품 세트 사 놓으세요. 모레 연락해주시면 설치해 드릴게요.”
나는 변기를 교체해야 되는줄 알고 내심 걱정했는데 그래도 다행이었다.
설치한 지 오래돼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부품만 교체하면 된다고 하니.
얼른 차에 시동을 걸어 부품을 사 오고 다시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더니 오늘은 힘들다고 하신다.
모레까지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럼 이틀 동안 변기를 못 쓰거나 아니면 물이 계속 세는 것을 보면서 변기를 써야 한다.
둘 다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결심했다.
기사 아저씨를 기다리지 않고 설명서 보고 내가 스스로 해보기로.
참 무모하기도 하지.
하지만 나이를 먹으니 누군가에게 부탁하기 싫고, 내가 해보고 싶은 용기와 오기가 생긴다.
용감한 아저씨라고나 할까?
일단 설명서를 정독한다.
글자보다는 그림이 많아서 참 다행이다.
집에 있는 연장을(몽키, 드라이버) 준비하고 빨간 목장갑을 낀다.
비장한 표정과 함께.
물을 잠그고 변기 상체를 해체한다.
나사란 나사는 다 풀고 연결된 호스들도 풀어 헤친다.
해체된 재료들을 보니 여기저기가 낡고 헤져 있다.
10년 동안 한자리에서 얼마나 고생했을꼬.
고장 날 만하다.
이런 내가 무슨 감상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거지?
정신을 다시 차리고 새 부품을 꺼내 아까 보았던 설명서를 옆에 쫙 펴놓고 1번부터 하나하나 따라 한다.
역시 글보다는 그림이 최고지.
이해가 잘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글밥책보다 그림책을 좋아하나 보다.
도기로 되어있는 물통을 조심스레 뒤집어엎어 주어진 재료들로 구멍에 잘 끼우고 나사를 조인다.
여기에 잘 맞지 않으면 물이 또 센다.
잘 맞춰야 한다.
더는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나사를 조이고 또 조인다.
도기가 혹시라도 깨지면 이 모든 게 도로 아미타불이니, 도기를 뒤집어엎을 때는 조심 또 조심이다.
이러기를 30분 넘게.
설명서를 보며 낑낑댄다.
드디어 완성.
모든 부품을 잘 맞춰 끼웠다.
변기통을 낑낑대며 구멍에 맞춰 원래의 자리에 안착시킨다.
이젠 물을 틀어 어디가 세지는 않는지 물은 잘 내려가는지만 확인하면 끝.
빠밤... 떨리는 마음으로 물을 튼다...
오~~~ 잘된다 잘돼.
이젠 물세는 소리도 안 나고 물도 잘 내려간다.
해냈다.
나 스스로가 비전공자인 내가, 공대도 안 나온 내가 변기를 고치다니 너무 뿌듯하다.
당장 관리실에 전화해 기사 아저씨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겠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대신한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처음엔 어려운 줄만 알았다.
하지만 부딪쳐서 해보니 가능했다.
시행착오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해냈다.
유튜브도 안 보고 설명서만으로 해냈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기뻤다.
역시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움에 이르러야 한다.
모르면 어렵지만 알면 쉽다.
종이 한 장 차이라고나 할까?
이런 게 참 공부이다.
교실에 앉아서 책으로만 하는 공부가 아닌 삶에 약이 되는 진짜 공부.
모르는 뭔가를 알아가는 기쁨이 큰 하루였다.
이젠 누가 변기 고장 났다고 걱정하면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로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 배워야 할 것 천지다.
매일 매일 내가 모르는 것들을 성실히 배워가야지.
#그냥에세이, #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