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박00(남, 74세. 영월군 중동 태생으로 60년 전에 사북으로 이주.)
- 아들과 며느리 모두 박사고 국방과학연구소에 다닌다 -
<걸어온 길과 자식사랑 이야기>
박00 씨는 올해 74세이다. 영월 중동태생으로 14살에 이곳으로 와 60년 되었다. 슬하에 4남매를 두었고 모두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 아이들은 광업소에서 나오는 장학금으로 모두 학교에 보냈다. 딸 셋을 낳고 5년 만에 막둥이를 낳았는데 그 애가 아들이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모두 박사고,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해요.”라며 자랑을 했다. 자녀교육에 대해서 물으니 특별히 한 것은 없다고 했다. 단지 남한테 욕먹지 않게 하라고 일러주었다.
그가 이곳으로 올 때만 해도 거의 집이 없었다. 자갈밭에 옥수수 심어먹는 정도였다. 마을 둑 너머에 수력발전소가 하나 있었는데 그걸로 전기를 켰다. 방앗간도 그 전기로 돌렸다. 그때 방앗간에 취직을 해서 21살까지 일했다.
“그것 가지고는 수입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만 두었지요.”
그 후에 산판에 다니는 트럭의 조수도 했다. 차주를 잘 만나 23살에 직접 운전을 하게 되었다.
“운전을 할 때는 수입이 좋았어요. 그런데 차주가 충주로 가는 바람에 그만 뒀어요.”
그러고 나서 광산 하청에 가서 일했다. 그것도 얼마 못가서 그만 두고 타이탄 화물센터를 했다. 도로가 비포장이라 먼지가 자욱했다. 비가 오면 길이 모두 진창이었다.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 말이 맞았다. 이 사업도 사고가 나서 접었다. 몸도 아프고 대수술을 받아서 재산도 모두 털어먹었다.
“마땅히 할 게 없었어요. 총각으로 있을 적에 집을 한 채 사 놓은 게 있는데 그것에 방을 여러 개 꾸미고 하숙을 쳤어요.”
그때 장인이 많이 도와주었는데 장사가 잘 되어서 빌린 돈을 모두 갚았다.
“방앗간이 저 건너편에 있었어요. 장마에 다 떠내려갔지.”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외상으로 넘겨주었는데 다 갚고 건너편으로 옮겨 38년간 운영하였다. 동원탄좌 다니면서 아내와 같이 방앗간 일을 했다.
가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방앗간을 하기 때문에 ‘정직과 성실’이라고 했다. 방앗간 할 때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먼 곳에서 가지고 온 것을 가공해서 배달해주었다. 동원탄좌에서 출퇴근 운전을 하였는데 3교대로 9시간만 하면 시간이 났다. 그 시간을 이용하여 집일을 보고 배달도 다녔다. 방앗간을 인수하고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낡은 건물에다 쥐가 득실거리니 손님이 끊겼다. 집을 팔아서 깨끗이 수리를 하고 나니 장사가 잘 되었다. 동원단좌가 문을 닫기 전까지는 사람을 두고 할 정도였다. 방앗간 일은 그 후에도 잘 되었으나 아내가 관절통으로 아파했고 갑상선 수술가지 했다. 어깨 인대도 끊어졌다.
“혼자서 죽어라고 하니 디스크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만 두게 되었어요.”
장사를 그만 둔 후 집을 개조해야하기 때문에 방앗간기계를 모두 철거했다. 고물상 등에 처분하려고 했는데 지역에서 이 지역의 상징이었으니 동원단좌 유물보존소로 보내자고 해서 그곳으로 보냈다.
지금은 도시재생센터 이사로 있다. 사랑채가 완공되면 들기름, 참기름 제조 대표를 맡을 예정이라고 했다.
<사북사태 때의 이야기>
80년대에 사북사태가 터졌다. 그때 그는 동원탄좌에서 운전기사로 일을 했는데 데모대에 협력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정선 나전, 여량, 임계까지 도망 다녔다. 거기까지 따라와서 하는 수 없이 정선경찰서로 도망가서 보호해 달라고 했다. 보호받긴 했으나 나중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도시재생사업 이야기>
지금 우리 마을에는 도시재생센터 사랑채를 짓고 있다. 7리와 10리에 각각 하나씩 짓고 있다. 총 사업비가 96억원 투입되었는데 5층 건물이다. 내년 3월이면 완공이 되는데 여기서 순 국산 참기름과 들기름을 생산해 팔 예정이다. 납품처는 강원랜드와 신협 등이 된다. 독자적인 브랜드이다. 본격적으로 시행하지는 않았지만 사업이 근사하다. 걱정도 많다.
들깨와 참깨를 직접 재배하여야 되는데 그럴만한 농지가 없다. 들깨는 이 지역에서 수매가 가능하지만 참깨는 이곳에서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참깨는 경북지역에 계약재배를 하려고 하는데 그것도 문제다
“참깨를 구매할 돈이 없어요. 기름을 1년 내내 생산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데 말이죠. 정부에서 건물은 지어주지만 운영은 주민들이 하라고 하니 전국에 가동 중단된 시설들이 많아요.”
돈도 없지만 사서 보관할 만한 저온저장고도 없다. 기름사업도 그가 방앗간을 운영한 경험이 있으니 주변에서 한 번해보자고 제안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승낙은 했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했다. 기름을 짜는 일은 가능하지만 판매는 센터에서 하기로 약속하고 진행하는 사업이다.
사업조건도 까다롭다. 여기서 생산되는 물건은 이 지역에서 시판을 할 수 없고 방앗간에서도 일반인들의 기름을 짜주고 수수료를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왜냐하면 지역상권이 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