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안끼엠 / 김석수
하노이 도착한 다음날 아내와 딸은 하롱베이 여행하고 나는 시내 구경하기로 했다. 예전에 두 번이나 하롱베이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나와 10여 분쯤 걸으니 숲이 우거진 작은 호수가 나왔다. 하노이 관광의 중심지 호안끼엠이다. 15세기 여 왕조를 세운 레로이 장수는 이 호수에서 나타난 거북으로부터 검(劍)을 받는다. 그는 이 칼로 베트남을 침략한 명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다시 거북에게 돌려준다. 칼을 돌려주었다고 해서 환검(還劍: 베트남어로 호안끼엠이라고 읽음) 호수라고 한다.
가랑비가 내리는데도 호수 주변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서양 사람이 눈에 많이 띄었다. 우산도 쓰지 않는 채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 연인끼리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젊은이도 보인다. 호수가 잘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코코넛 커피 한잔을 시켰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여기저기 둘러봤다. 인도 옆 찻길은 일방통행이다. 오토바이와 차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큰물결을 이루고 있다. 호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다.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빵빵 울려 대는 자동차 경적으로 시끄럽다. 차와 오토바이, 사람이 뒤엉켜 있어도 사고가 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무질서 속에 그들만의 질서가 있는 것 같다.
비가 그치자 시티 투어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갔다. 매표원이 네 시간에 30만동(16,680원)이라고 한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영국인은 런던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왔다고 한다. 그는 농장 기계를 손봐 주는 기술자이며 은퇴하지 않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고 했다. 옆에 서 있던 여자도 영국 잉글랜드 요크(York)에서 왔다고 한다. 12년 전에 잉글랜드 하라게이트(Harragate)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려고 요크에 간 적이 있다. 내가 요크셔데일(YorkshireDale) 국립 공원을 방문하고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가 요크 지방을 배경으로 쓴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읽어 봤다고 했더니 그녀는 놀라운 표정으로 반갑다고 했다.
시티 버스 투어 정류장에서 큰 광장을 지나 서쪽으로 좁은 골목길을 십여 분 걸어가면 큰 교회가 있다. 하노이 성요셉 성당이다. 1886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교회다.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건축 양식이다. 쌍둥이 종탑이 노트르담 대성당과 비슷하다. 외벽은 화강암 석판으로 되어 있다. 겉면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 시커멓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뾰족한 아치 모양이다. 천장은 유럽의 성당처럼 갈빗대 형태다. 성모 마리아상은 가마에 보관되어 본당 왼쪽에 있다. 서유럽에 와 있는 느낌이다. 성당 구경을 마치고 삼거리로 나오면 베트남 도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콩카페(Cong Caphe)’ 본점이 있다. 그곳은 코코넛 커피가 유명하다. 코코넛 향과 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마실만 하다.
성당 아래 골목으로 내려오니 큰 도로 옆에 학교가 있다. 운동장이 없고 건물만 있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담벼락에 바짝 다가가니 교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선생님이 앞에 앉아 있고 한 학생이 칠판에 무엇인가 쓰고 있다. 아마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는 것 같다. 칠판 위 가운데 호찌민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10여 분 동안 걸음을 멈추고 공부하는 학생과 그 사진을 쳐다봤다. 호찌민은 베트남 국민에게 국부다. 그는 베트남이 외세로부터 독립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호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의 얼굴은 베트남 화폐뿐만 아니라 하노이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학교 교실에까지 걸려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성요셉 대성당에서 호수 아래로 내려오면 명품점이 많은 백화점이 있다. 그 건너편에 하노이에서 유명한 장띠엔(KEM TRANNG TIEN) 아이스크림 집이 있다. 길가에 있는 가게만 보면 작다. 가게 왼쪽으로 들어가면 집이 크게 따로 있다. 많은 사람이 긴 의자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주문하면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꺼내준다. 수제 아이스크림이라 금방 녹기 때문에 빨리 먹어야 한다. 한국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보다 맛이 있지는 않았다. 더운 지역이라 아이스크림은 일 년 내내 잘 팔리겠다.
오후에 비가 그치자 더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다. 나무 아래서 스포츠 댄스를 하는 사람이 있다. 수십 명씩 짝을 지어 춤을 추고 있다. 춤뿐만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 큰건물 사이 창고 같은 곳에서 쌀국수를 즐겨 먹고 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휴지를 아무 데나 버리고 담배꽁초가 길모퉁이에 많다. 길바닥에 앉아서 좌판을 깔고 카드 놀이하는 사람도 보인다. 베트남 사람들은 호찌민이 생전에 그토록 바랬던 독립과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호수 가운데 탑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어서 가봤더니 응옥썬 사당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빨간색 다리를 건너야 사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베트남의 이순신 장군이라고 할 수 있는 ‘쩐 흥 다오’ 장군을 비롯하여 나라를 대표하는 신을 모신 곳이다. 얼굴이 붉고 긴 수염이 턱 밑에 달려 있는 관우 같은 상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약 2미터 정도 되는 박제 거북이다. 베트남 사람은 그 거북이를 자기 나라를 수호하는 신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베트남 국민은 거북이와 호찌민을 믿고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미국을 물리쳤다. 호찌민은 베트남인들이 자신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검소하게 생활하며 늘 인민 곁으로 다가갔다. 많은 사람이 그의 진정성을 믿고 따랐다. 그 믿음 때문에 베트남은 이제 세계에서 당당한 독립 국가가 되어 빠르게 성장하고 었다. 호안끼엠 거리에 있는 하노이 인민위원회 건물을 지나가면서 베트남인에게 독립과 자유의 강한 믿음을 주었던 그의 사진을 다시 한번 쳐다 봤다. 베트남은 호찌민 같은 지도자 복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부러웠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도 국민이 믿고 신뢰하는데서 나라의 저력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첫댓글 콩카페의 시원하고 달콤한 코코넛 커피가 그려지는 글이네요.
베트남을 아직 가보지 못 했는데 그곳을 잘 그려 주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계속되는 베트남 이야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원장님과 베트남 여행 함께하는 기분입니다.
특히 주변의 외국인과 대화가 통하는 분인 게 부럽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벙어리에다 귀머거리라서 아쉬울 때가 많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휴가를 가족과 함께 일본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베트남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방향이 베트남 쪽으로 기울것 같습니다. (베트남 이야기 재미있네요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응원해 주면 이번 학기는 가능한 글감에 맞추어 베트남 이야기를 계속 쓸까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