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8:1~14 하나님의 성 2021. 4. 21
1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 3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4 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5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6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7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8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 (셀라) 9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11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12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 13 그의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의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14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지난주에 본 47편도 오늘 보는 48편도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지난주에 본 내용은 보좌에 오르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기에 보좌에 오르실 필요가 없는데 왜 보좌에 오르심을 찬양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보좌를 버리시고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이 보좌에 오르시기에 찬양합니다. 그렇게 오르신 주님이 보좌에서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곧 아들의 나라입니다(골1:13). 오늘은 그 왕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이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영원히 견고할 것을 노래합니다.
본문 1~3절을 봅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셔서 극진히 찬양받을 분이라고 합니다. 그가 계시는 곳은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합니다. 그 큰 왕의 성은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라고 합니다. 시온산은 예루살렘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시온산은 다른 나라들의 높고 큰 산에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작은 산입니다. 그러나 그 터가 높고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새 곧 피난처가 되십니다. 이러한 일들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입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나라로 출발하는 출애굽의 역사를 통하여 거대한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나옵니다. 그 애굽을 리워야단이라고도 합니다. 그 용의 머리를 깨드리시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시74:13). 광야에서 발람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민22~24장). 약속의 땅에서 적들이 쳐들어왔다가 손도 쓰지 못하고 18만 5천이 하루아침에 송장이 됩니다(사37장). 물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적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계시하십니다.
4~8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4 왕들이 모여서 시온산을 치러 왔다가 5 시온산을 보고는 넋을 잃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6 거기에서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으니, 고통당하는 그들의 모습이 해산하는 여인과 같고 7 광풍에 파산되는 다시스의 배와도 같았다. 8 우리가 들은 바 그대로, 우리는 만군의 주께서 계신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그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이 성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신다. (셀라)” 앞에서 본 몇 곳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었다고 합니다. 만군의 주께서 계신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하나님이 그 성을 지키셨기에 영원히 견고하다고 찬양합니다.
9~11절입니다. 적들이 시온을 공격하려고 왔다가 놀라서 도망간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성에 함께 하시고 지켜주셨기 때문이라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자함을 성전에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번역으로는 인자를 한결같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헤세드’란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영원하기에 그 인자함도 영원합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끝까지 미쳤다고 합니다.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기에 주의 심판으로 시온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합니다. 유다의 딸들이란 유다에 속한 성읍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12~14절입니다.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고 합니다. 그의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의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본 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이기에 적들이 왔다가 다 도망간 겁니다. 그 구원을 받은 성읍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 성을 자세히 살펴보고 후대에 전하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시편을 전하는 이유는 죽을 때까지 주의 인도하심을 믿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122편을 봅니다.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고 하면 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다는 말씀을 자기들이 출석하는 교회로도 해석을 하고, 지금의 예루살렘을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의 예루살렘을 말하는 자들이 세대주의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이렇게 시편을 끝내도 별 이상할 것 없이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어느 정도라도 안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가 계시는 시온과 그 안의 성전이 영원 무궁히 지켜져야 하는데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그 안의 성전마저 파괴되었습니다.
주전 586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무너졌습니다. 물론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였지만 초라하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칠십 이레를 예언하며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 예언대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 헤롯이 성전을 잘 꾸며놓았지만, 그 성전은 도둑의 소굴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다 나라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이럴 때 혈통적인 유대인들은 누구나 국권의 회복과 성전의 영광을 추구할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23:37~38절입니다.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누가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은 이 예루살렘을 보고 우십니다(눅19:41). 그 이유는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눅19:42). ‘예루살렘’은 ‘평화의 성읍’입니다. 그런데 평화의 성읍이 참된 평화이신 예수님을 몰라보니 울고 계십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려고 선지자들을 보냈는데 오히려 그런 선지자들을 죽여버린 성읍이 예루살렘입니다. 평화의 성읍이 참 평화를 배척함으로 망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24:1~2절입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전 건물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건물 성전의 기능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끝이 납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그 기능이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도 예루살렘 안의 성전도 다 무너지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8~14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성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거라고 찬양하였습니다. 그 성이 영원히 견고하면 성안의 성전도 견고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도 무너지고 성전의 건물도 다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시온을 돌아보고 그 망대를 세어 보고 후대에 전하라는 내용도 건물로만 한정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미 구약에서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유대인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성전은 재건되었지만, 나라는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강력한 메시아가 와서 나라를 회복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성전도 헐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2:19~22절입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성령이 임하여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떠나셔야 하신다는 말씀에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떠나가야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 것과 같이 너희도 우리 안에 있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20). 그곳이 하나님의 거처입니다.
거처라는 말씀을 자주 드렸습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가 찬송하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기 처소를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90편도 모세의 찬송인데 여호와께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거처가 된다고 찬송합니다.
이러한 처소에 관한 내용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과 성전은 그 피로 구속한 성도가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피(행20:28)로 값을 주고 산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3:16, 6:19). 이러한 성전은 영원하신 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그곳이 영원한 겁니다. 그러므로 시편 48편에서 영원하신 여호와께서 지켜주시니 영원한 성이 된다고 찬양한 내용은 단지 지상의 한 국가나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만드십니다.
에베소서 1:20~23절입니다.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이루어내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가 만물 위의 교회 머리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몸 된 교회가 만물 위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였는데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시고 한 몸으로 지으십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이며 이 성전만이 영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교회라는 곳에서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만물 아래 있는 것을 구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이 아닙니다. 교회는 만물 위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만물 위에 있는 영원을 추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충만함이어야 합니다. 전도서 1:8절입니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렇게 피곤한 만물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곳이 교회인데 교회가 세상의 것을 추구한다면 교회 안에 참된 안식과 평화가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곳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본문 12~14절을 봅니다. “봉독” 시온의 성벽과 궁전을 살펴보고 후세에 전하는 말씀은 예루살렘의 성벽과 궁전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것들이라면, 이미 예수님의 말씀으로 무너져 내린 겁니다. 그러므로 시편의 이런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완성하시고 이루실지를 계시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되는 겁니다. 그 영원한 거처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열두 문과 열두 기초를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의 이름으로 말하는 이유는 버림받은 모퉁이 돌, 죽임당한 어린 양의 피로 세워지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거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만이 영원한 나라가 됨을 성경 전체가 계시합니다.
요한계시록 21:1~7절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1)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오늘 본문의 성취를 이렇게 분명하게 증거 합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어린 양의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나님의 성은 건물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성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들도 그 성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구약과 신약의 구원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영원한 성이 됩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신 그분이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시기에 그 생명수를 마신 자들은 더는 세상의 것에 목말라 하지 않고 그 생명수로 자족하면서 또 다른 목마른 자들에게 그 생명수를 증거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