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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2 주일설교
어떤 신자가 될 것인가?
마태복음 16:5~12
사람은 저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신앙 생활하는 모습도 다양합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종류의 신자가 필요하고 그런 다양한 신자들이 교회를 멋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사람이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는, 그런 사람이 없듯이 신앙생활의 모습에도 장점이 있으면 동시에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위험 요소를 극복하여 반드시 성경적 신앙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늘은 교회 안에 있는 세 종류의 신자에 대해서 그 장점과 위험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똑똑한 신자
교회 안에는 똑똑한 신자가 필요합니다. 사실은 신자는 누구나 똑똑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 자체로 지식이며 지혜입니다. 한글성경으로 조사했을 때 성경에는 ‘지식’이라는 말이 123번 나옵니다. ‘지혜’라는 말은 무려 434번 나옵니다. 이런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으며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점점 똑똑해집니다.
신자는 모두 똑똑해져야 합니다. 중세시대에는 일반 신자에게 성경을 주지 않았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 성경만 있었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해 주지 않았습니다.
중세 카톨릭교회는 성경을 아무나 읽으면 안 되고 오직 사제들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모르는 중세의 믿음은 맹목적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거의 미신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중세는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제들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누구나 읽으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명료한 책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한글 번역 성경도 열 종류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서 성경에 똑똑한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가까이하는 만큼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똑똑한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똑똑해지면 한 가지 위험이 따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종종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나옵니다. 어떤 성경이 다른 부분과 충동하는 부분을 발견합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런 부분을 난제 구절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신학이 발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똑똑한 신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예전에는 설명되지 않던 난제 구절 가운데 설명이 되는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난제 구절을 알고 나서 발견한 것은 그 내용이 전에 알았던 내용의 범주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구절이 난제라고 해서 성경이 틀린 것이 아니고 그것 모른다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는 아직도 난제 구절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나오면 감히 성경이 틀렸다고 말하기보다 우리의 무지함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4세기에 유명한 신학자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성경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만일 성경을 평범한 사람이 썼다면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말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더 많이 공부하고 똑똑한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혹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보이면 그것 때문에 더욱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신자가 되기 바랍니다.
2. 성실한 신자
교회 안에는 성실한 신자도 필요합니다. 부산에 있는 누나에게 전화해보면 자주 교회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농담으로 권사가 목사보다 더 자주 교회를 가느냐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제 누나와 같은 권사, 장로, 집사들이 많습니다. 그런 신자들의 헌신과 봉사와 헌금 덕분에 한국교회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새벽기도부터 밤 예배까지, 각종 성경공부, 봉사와 전도 활동 등을 의무처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각종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많은 장로, 권사, 집사들이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안내하고 주차봉사,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지어 참석자를 대접하며 기쁨으로 자원봉사를 합니다. 이런 성도들은 수십 년째 주님의 섬기는 마음으로 그렇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 대를 이어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 자원봉사 신자가 없으면 교회라는 조직체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요즘은 교회 안에서 하는 헌신과 봉사만이 아니라 성 오염 교과서 반대 피켓 기도회를 하는 학부모 성도들도 많습니다. 전국의 교육청 앞에서, 대통령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서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나라가 망하고 다음 세대가 망한다는 위기를 느끼고 피켓을 들고 외치는 분도 많습니다. 바쁜 생활 중에 시간을 쪼개어 매주 피켓을 드는 분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실한 신자에게도 자칫하면 문제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오래 하다 보면 진실한 마음은 사라지고 봉사가 하나의 종교적 습관이 되고 의무가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다른 신자들에게 합당치 않은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공로주의자가 되어 하나님께 그만한 보상을 요구하게 됩니다. 내가 이만큼 봉사했는데 하나님도 나한테는 복을 주셔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다른 신자를 향해서는 내가 이쯤 했으면 알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직분자를 선출할 때는 의당히 표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내가 이 교회에서 내 지분이 있으니 큰소리 좀 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도 나를 무시하면 안 되고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섬긴 것은 교회에서 지분을 요구하려고 한 것이 아니지요. 누가복음 17:10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3. 열정적 신자
교회 안에는 열정적 신자도 필요합니다. 자주 금식도 하고 기도회마다 참석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종종 기도원에 올라가서 오래 기도하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극동방송이나 찬양을 듣고 유튜브에서 훌륭한 목사들의 설교를 골라서 듣고 은혜받으면 경건하게 사는데 매우 유익합니다.
제가 목요일마다 청계산 기도원에 가는데 정말 기도하는 분이 많습니다. 여름에는 모기가 있어서 방충 스프레이를 뿌리며 기도하고 겨울에는 추워서 옷을 껴입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어디에서 기도하든지 기도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또 유튜브와 기독교방송에서 설교와 찬양 듣는 일에도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는 분들이 조심할 것도 있습니다. 열정적 신자 가운데 신비주의 신자도 있습니다. 목사 중에도 그런 신비주의자가 있어서 신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갑니다 그중에는 종종 자기가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하고 무슨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자기가 기도를 많이 해서 자기가 기도하면 병이 다 낫는다고 자랑합니다.
교회에는 신비 요소가 있고 또 있어야 합니다. 기도해서 기적적인 기도 응답도 있고 불치병이 낫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런 은혜를 입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도 기적을 믿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평소에도 산기도와 금식기도가 필요하지만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산기도와 금식기도를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신비한 응답을 믿는 것과 신비주의는 다릅니다. 신자가 병이 나면 병원에도 가고 약도 먹고 기도도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의사만 의지하거나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기도만 하는 것은 둘 다 문제가 있습니다. 공부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열심히 하면서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신비를 믿는 종교이지만 신비주의는 아닙니다. 기도하다가 무슨 느낌을 받았거나 어떤 꿈을 꾸고 그런 체험을 성경의 권위로 올리면 큰일 납니다.
지금도 한국교회 안에 신사도운동 이단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성경 시대의 사도처럼 하나님과 교통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단 교주가 됩니다. 자기가 기도하면 그대로 된다고 하고, 자기는 사람의 속을 훤히 본다고 하고, 자기에게 돈을 가져오는 만큼 축복기도해 준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안녕히 계세요.”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본문속으로
이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데가볼리에서 갈릴리로 돌아왔을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와서 예수님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마 16:1). 하지만 전에 설교했듯이 그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해도 예수님을 믿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시 갈릴리바다는 건너갔는데 예수님이 무겁게 말씀하셨습니다(6절).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예수님이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시니 처음에는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수군거렸습니다. 당시에는 요즘 같은 이스트가 없어서 먹고 남은 빵을 말려 가루를 만들면 그것이 반죽에 넣을 누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쩌다가 당장 먹을 빵도, 누룩을 만들 빵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누룩 걱정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조심하라고 다시 말씀해 주셨습니다(11~12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예수님 당시의 양대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능통하고 종교 행위를 완벽하게 하던 사람들입니다. 사두개파에는 대제사장들이 있고 바리새파에는 율법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그룹 모두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두개파는 지금으로 말하면 자유주의 신학자들입니다. 자유주의는 성경을 많이 알지만 성경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무식하게 믿지 말고 공부 좀 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어디가 틀렸는지 지적하고 비평하다가 결국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똑똑한 신자가 되어야 하지만 성경을 비평하는 자유주의자는 절대로 되지 말아야 합니다.
바리새파는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것도 의무로 합니다. 신앙생활도 의무로 합니다. 그들에게 예배와 기도, 금식과 구제와 봉사, 헌금 등이 모두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기보다 그것이 그들의 종교적 의무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시작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았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어떤 신자가 될 것인가?”입니다. 똑똑한신자, 성실한 신자, 열정적 신자. 이 셋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를 골고루 갖추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세 종류의 신자의 위험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1) 여러분은 똑똑한 신자가 되세요. 하지만 감히 성경을 비평하고 성경이 틀렸다고 말하는 자유주의신학을 조심하세요. 2) 여러분은 성실한 신자가 되세요. 하지만 자기의 헌신과 봉사를 자기의 의로 내세우는 의무적 신자, 율법주의자를 조심하세요. 3) 여러분은 기도와 경건 생활에 열정을 내세요. 하지만 신비주의자는 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https://youtu.be/qqqKbZFrZ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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