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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 렘 29:10-14, 롬 12:3-13
지난 1년을 한번 생각해 보자. 좋은 일도 있었지만 괴로운 일들도 많이 있었다. 기뻐서 웃은 날도 있지만,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다. 아직도 그 고통을 움켜쥐고 사는 분도 있다. 하나님께 왜 하필 우리 가정에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호소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한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고통을 보시고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부모가 자기 자녀들이 고통 당하기를 바라겠는가?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결코 부모보다 못한 분이 아니다. 보모의 사랑과 자비에 비길 수 없는 분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이시다.
오늘 본문 배경은 이렇다. 유다 말기에 마지막 선한 왕으로 세움 받았던 요시아는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였다.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에 옷을 찟고 통곡하였다고 역사서는 말씀하고 있다. 그가 듣게 된 율법책이란 모세5경이었을 것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신명기 부분을 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명기란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죽기 전에 행한 세편의 설교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의 중심은 ‘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고, 만일 순종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씀이다. 그중 하나인 신 28:49-53절을 살펴보면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좇게 될 때에 ‘곧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보살피지 아니하며 유아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 마침내 너를 멸망시키며, 또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소의 새끼나 양의 새끼를 너를 위하여 남기지 아니하고 마침내 너를 멸절시키리라.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라고 끔찍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들을 만민 중에 흩으리라고 한다.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겠다고 한다. 요시아왕이 들은 이러한 말씀은 경고하기 위하여 주어졌던 말씀이다. 결국은 에레미야 선지자 때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침략을 받아 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본문 말씀은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접혀가 있을 때에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들에게 전달했던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다. 유다가 포로로 잡혀간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다. 그런 죄의 심판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를 보여준다. 다시 그들을 포로 중에서 회복시켜 주시고 소망을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이다. 어떤 소망과 위로의 말씀인지를 살펴보자.
1. 장래를 보장하시는 하나님
며칠 전 첫눈이 내렸다. 눈이 덮이면 들짐승의 먹을 것이 없어진다. 다람쥐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밤과 도토리를 수천개씩 모아 땅 속에 쌓아둔다고 한다. 이것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사람은 1년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수년 아니 수십년을 내다보고 공부도 하고 저축도 하고 연금도 들고 보험에도 가입하여 장래를 준비한다. 그러나 1년은커녕 하루 일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잠언 27장을 보면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희가 알 수 없다’고 말씁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건의 사고가 일어난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나라 중의 하나인데, 그중에도 특히 전라북도는 저리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사고가 많이 나는 지역이다. 이런저런 사고로 하루 후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저축을 하고 연금을 들고 보험에 가입한다고 해서 하루 후, 한달 후 또는 일년 후를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들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인생들이다. 사람은 한번 죽을 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 영원한 심판이 있다. 그런데 보험에 들었다고 그것을 면할 수 있는가? 영원한 심판은 연금을 든다고 면제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게 아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것으로도 우리 인생을 보장받을 수 없고, 죽은 후를 보장받을 수도 없으며, 죽은 후에 내세를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를 보장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보장할 수 있고, 죽은 후를 보장할 수 있고, 영원한 내세를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우리의 장래를 보장하고 계시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장래를 보장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고 장래에 소망을 주시는 축복을 주셨는데, 이 축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보장된 축복을 받으려면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자기 욕심과 자기 뜻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보장을 받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는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면서, 우리 죄를 전부 담당하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보장을 받게 된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고 천국백성이 되는 보장을 받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보장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기 바란다.
살다보면 일이 안되는 경우도 있고, 부진한 경우도 있고, 마음대로 뜻대로 안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안된다고 안되는 것이 아니고, 망한다고 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마침내 복주시는 하나님이시고,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기 바란다. 우리는 망할 수가 없고 안될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망해봤자 천국과 영생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망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보장해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떤 경우에도 막심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런데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실제로는 장래를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불신자들처럼 낙심하고 근심하며 한숨을 쉬다가, 울다가 슬퍼했다가 이렇게 살아간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다. 장래를 보장 받은 성도가 어떻게 슬퍼하며 근심하며 낙심하며, 세상의 썩을 것 때문에, 세상문제 때문에 낙심하며 좌절하며 사는가? 장래를 보장받은 성도는 그렇게 살면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우리는 장래를 보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확신하면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사는 것이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장래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기 바란다.
2. 기도를 듣고 만나주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장래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확실히 믿을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는 그 방법을 설명해 주고 계신다. 그게 바로 기도하는 것이다.기도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특권이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 에수 믿는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그렇다고 아무나 기도하는게 아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사람만이 기도하는 특권을 받았다. 하나님은 기도를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기도는 하나님을 면회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뵙는 것이며,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께 보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편안히 주무셨어요?’라고 아침인사를 부모님께 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로 뵙고, 기도로 대화하고, 기도로 하나님께 인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기도의 의무를 이행할 때 기도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장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체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는 그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장래르 보장해 주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매일 근심하며 걱정하며 낙심하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우리 갈보리교회 성도들은 기도의 특권을 사용하고, 기도의 의무를 잘 이행해야 겠다. 그래서 응답해 주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기도응답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현대건설 회장이었고, 국회의원이었던 이명박 장로의 어머니는 믿음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믿음이 변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하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얼마나 가난했던지 8년 동안 술찌개미를 먹으며 살았는데, 그나마도 넉넉하게 못 먹었다. 그의 소원은 보리죽을 실컷 먹어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렇게 사는 가운데도 어머니가 새벽 4시면 일어난다. 교회가 몇 십리 밖에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지 가지 못하고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잠결에 어머니의 기도를 들어보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 먼 친척보터 시작하여 가까운 친척까지 예수 믿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가서야 자기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래서 그 기도소리를 들어보면 ‘아하, 지금 몇시일 것이다’라고 대강 안다는 것이다. 그때는 먹을 것도 없는데 뭐하러 매일 기도하는가 하고 속으로 원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보니 그렇게 기도하던 두 아들이 장로가 되고, 국회으원이 되고, 딸이 전도사고, 사돈의 팔촌까지 기도한대로 믿는 사람들이 다 되고, 아주 귀한 인물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영원까지 보장해 주신다고 했다.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응답을 받아 하나님을 확실히 믿으며 살기를 바란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는, 우리의 장래를 보장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온 마음으로 찾자는 말은 마음을 모아서 예배를 드리고, 세상 어떤 것보다 최고로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고 좋게 여기면서 예배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면서, 믿게 하여 주시고, 우리를 만나주신다. 만나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복하게 해 주신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들을 회복시켜 주시며,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시켜 주신다. 우리의 인간성이 얼마나 못됐는가? 원래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 예수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방탕과 거짓이 우리 속에 가득 차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예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전부 회복시켜 가면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여러 가지 연단과 훈련이 있고 아픔이 있고 문제가 있는 것은 우리를 회복시켜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격과 성품을 바꿔주시고, 우리의 더러운 죄악들을 다 씻어주시고, 우리의 여러 가지 악독한 마음을 선하게 만들어 주신다. 이렇게 우리를 만나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기 바란다.
헬렌 켈러하면 누구나 다 아는 이름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그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참으로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신세로 태어났다. 그러나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을 남겼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 하나가 열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행복의 문을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지금 막 열린 문을 보지 못합니다.‘ 옳은 말이라고 본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앞문이 닫혔으면 뒷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믿기 바란다. 우리가 기도하면 사방의 문이 다 닫혀있다 해도 하나님은 지붕을 들어내서라도 위를 향해서 바라볼 수 있는 문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닫힌 문만 가지고 고민하지 마라. 기도하는 사람은 닫힌 문을 가지고 고민하고 괴로워하지 않는다. 닫힌 문이 있으면 열린 문이 있는 줄 알고 사방을 찾는다. 하나님이 반드시 열어주시는 문이 있는 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 가지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차범근 감독이 예수를 건성으로 믿던 당시, 축구로 이름을 날릴 때 그만 무릎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 후에 축구를 다시 하기는 힘들겠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때 예수를 잘 믿는 부인되시는 집사님이 ‘여보, 우리 하나님 앞에 매달려 봅시다’ 해서 한얼산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다. 매달려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은혜받고 무릎이 싹 나아버렸다. 하나님을 만난 후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예전에 ‘월간조선’에 차범근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믿지 않는 기자가 뭐라고 결론을 내렸느냐 하면 차범근 감독은 첫째가 하나님, 그리고 가정, 그리고 축구, 이 세가지 밖에 모른다고 했다. 밤새도록 컴퓨터에 축구에 대한 자료를 입력하는,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경기 때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다고 그 기자가 말한다. 경기할 때마다 늘 기도한다는 거다. 그렇게 해박한 사람이,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이 아는 사람이 축구경기를 할 때마다 기도를 간절히 하는 모습을 보고 기자가 감동을 받아 ‘그는 교회와 가정과 축구밖에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결론을 지었다. 하나님을 만나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믿기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형편과 처지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해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처지와 비교할 수 있는가? 우리를 그들에게 비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과는 우리 인생의 고난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어려움도 만만한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럴 때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우리 모두가 소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본문 말씀을 주신 것이다.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축복을 한량없이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시 한번 본문 11-13절을 읽어보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아멘.
(2000-51)